한겨울 낮에 꾸는 한여름 밤의 꿈

연극 <한여름 밤의 꿈>

 

글_고수진

원작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번역   마정화
윤색   황이선
연출   문삼화
제작   국립극단
장소   명동예술극장
일시   2019년 12월 4일 ~ 12일 29일

 

우리는 모두 꿈같은 사랑을 한 번씩은 꾸었을 것이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도피를 떠난다거나 재력과 현실적인 문제보다 진실한 사랑을 앞세우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이야기의 결말이 비극이든 희극이든 장애물을 뛰어넘는 사랑은 멋지고 낭만적인, 누구나 꿈꾸는 그런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그런 사랑을 현실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현실은 단순히 사랑 하나로 해결하기 힘든 일들이 수두룩하고, 사랑을 하는 데 있어서도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장애물도 이겨내는 이야기 속의 강렬한 사랑은 낭만적이고 아름답지만 허무맹랑하고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되기도 한다.

 

 

국립극단의 <한여름 밤의 꿈>은 견고한 계급이 존재하는 현실과 마법과 사랑이 존재하는 꿈의 간극, 즉 도시와 숲의 차이를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한여름 밤의 꿈> 속에서 도시는 계급과 권력, 폭력이 존재하는 장소다. 이곳에서 지배자 테세우스는 전쟁의 전리품으로 데려온 아마존의 히폴리타를 폭력으로 소유하려 한다. 또한 허미아의 아버지인 이지우스는 가부장적 태도를 가진 채 허미아를 자신의 소유물로 인식한다. 그렇기 때문에 허미아가 라이샌더와 사랑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아끼는 드미트리우스에게 넘기려고 한다. 마치 물건을 주고받듯이 말이다. 하다못해 이곳에서 연극을 하는 노동자들마저도 계급이 나뉜다. 연출을 맡은 쐐기와 나머지 노동자들의 힘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이곳에서의 쐐기는 때때로 다른 이들의 아이디어를 마치 자신의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하고, 다른 이의 불만을 아무렇게나 무마해 넘어가는 등 자신의 권위를 이용한다. 다른 노동자들은 그가 가진 권력에 가만히 순응한다.

 

 

그러나 숲은 다르다. 숲은 요괴들의 공간이며 티타니아와 오베론이 존재하는 마법의 공간이다. 이곳에서 허미아와 라이샌더는 사랑의 도피를 하고 드미트리우스는 그런 둘을 쫓아가며 헬레나는 그런 드미트리우스를 따라간다. 숲속에서 네 명의 청년들은 도시와 달리 오직 사랑을 위해 걸음을 옮기고 사랑을 위해 행동한다. 노동자 중 한 명인 엉덩이는 연극 연습을 하다 이 숲에서 당나귀가 되기도 하고, 오베론과 티타니아는 마법을 부리며 싸우기도 하며 장난꾸러기 요괴인 퍽에 의해 티타니아와 당나귀로 변한 엉덩이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허미아를 사랑하던 라이샌더와 드미트리우스는 꽃즙에 의해 허미아가 아닌 헬레나를 사이에 두고 연적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숲은 마법의 공간이자 꿈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극이 시작될 때, 관객석을 통해 입장하는 노동자들을 따라 관객들은 극에 몰입한다. 노동자들이 극의 전면, 중반부, 무대 전체를 사용하는 것을 따라 관객들도 점점 한여름 밤의 꿈에 빠지듯 극을 감상하는 것이다. 관객들이 이미 극에 충분히 빠져들었을 즈음 관객들의 예상과는 다른 결말이 펼쳐진다. 원작에서는 숲에서의 소동이 허미아와 라이샌더, 그리고 헬레나와 드미트리우스가 다시 사랑에 빠지고 테세우스와 히폴리타의 결혼이 성공하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국립극단의 <한여름 밤의 꿈>은 다르다. 도시는 마법이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다. 순리대로 법대로 따라야만 하는 곳이 바로 도시다. 그렇기 때문에 허미아는 원래 결혼이 예정되어 있던 드미트리우스와 짝이 되고, 이 순리를 무너뜨리려던 헬레나와 라이샌더가 짝이 되어 도시의 위험 요소가 제거된다. 히폴리타는 테세우스와의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만 한다. 이 도시에서 가장 이상적인 사랑 이야기는 노동자들이 하는 연극, 피라모스와 티스베다. 그러나 이미 사랑보다 순리가 앞선 이 도시에서는 이 사랑 이야기마저 허무맹랑하고 우스운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결국 노동자들이 연극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모든 인물이 엉망진창으로 싸우는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들은 당황스러움과 함께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 과거의 이야기가 왜 현재도 통용될까? 계급과 계급이 뒤섞여 엉망진창으로 싸우는 모습에서 왜 통쾌함을 느낄까? 우리의 삶도 이들의 이야기와 다를 게 있을까? 하는 의문 말이다. 결국 우리도 도시 속의 인물들처럼 주체적으로 선택하지 못하고 계급과 계급 속에서 살고 있지는 않는지, 연극을 감상하던 관객들은 원작과 달라진 마지막 장면을 보며 다시 한 번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물음은 잘못하면 불쾌감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국립극단의 <한여름 밤의 꿈>은 코미디 요소들을 사용해 유쾌하게 풀어낸다. 허미아가 라이샌더에게 자신 스스로를 누나라고 칭하며 마초적인 대사를 던질 때나, 헬레나의 톡톡 튀는 대사들, 오베론과 티타니아의 우스꽝스러운 마법 싸움, 헬레나를 사이에 둔 드미트리우스와 라이샌더가 트램펄린을 이용해 누가 더 높이 뛰는지를 과시하며 싸우는 장면은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이렇듯 진지한 상황에서 사용하는 코미디 요소가 계급과 갈등, 순리에 대한 비판과 결합되며 유쾌한 풍자를 만들어냈다.

 

 

극을 감상하며 원작과 결이 다른 이야기, 코미디 요소의 삽입으로 원작의 낭만성이 조금 지워진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무대 연출을 통해 이 부분을 충분히 상쇄시킬 수 있었다. 바로 무대 뒤편에 나오는 거대한 달이었다. <한여름 밤의 꿈>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달빛이었다. 극 시작 전 흘러나오는 노래도 드뷔시의 ‘달빛’이라는 곡이었고 무대의 전면에서 후면으로 넘어갈수록 달의 이미지가 더욱 커졌기 때문이었다. 무대 뒤편의 거대한 달은 인물들이 숲으로 향할 때 드러났다. 우리가 밤에 샛노랗고 커다란 달을 보면 가만히 걸음을 멈추고 달을 응시하듯이, 숲 장면에 커다란 달을 배치함으로써 관객들이 마법과 낭만이 가득한 숲의 오묘한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달이 가지는 힘은 관객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숲의 장난스러운 요괴, 퍽이 달을 조정해 더 큰 달을 만들어내면 거칠게 싸우고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던 인물들도 달의 마법에 이끌려 우스꽝스러운 방식으로 다투게 되었다. 달의 마법은 마지막 장면인 테세우스와 히폴리타의 결혼식 장면에서 더욱 극대화된다. 숲에서 일어났던 사랑의 혼란스러움이 끝나고 행복한 결말만이 남았다고 생각할 무렵, 허미아와 드미트리우스, 그리고 헬레나와 라이샌더를 짝지어주는 테세우스를 통해 관객들은 다시 권력과 계급이 굳건하여 마법이 없는 장소인 도시를 다시 깨닫게 된다. 사랑보다 조건이 앞선, 행복하지 않은 결혼식에서의 연극은 엉망진창이 되고 결국 모두가 싸움판에 휘말린다. 그 속에서 퍽은 다시 달의 마법을 키우게 되고 그와 동시에 그들은 최고 권력자인 테세우스를 잡아끌기도 하고 노동자 중의 권력자인 쐐기를 잡아끌기도 하며 계급과 계급이 뒤섞인 난장판을 만든다. 수직적이었던 계급 관계가 달의 마법을 통해 난장판이 되면서 엉망진창이지만 한데 뒤섞이는 것이다. 이처럼 무대의 달은 관객들이 오묘하고 신비로운 숲에 매료될 수 있도록 하는 연출의 일종이자 인물들의 싸움과 계급을 보다 유쾌하고 우스꽝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마법의 상징이었다.

 

 

이처럼 꿈같은 사랑과 수직적인 관계로 이루어져 있는 현실은 달을 통해 기묘하고 오묘한 뒤섞인다. 유쾌한 혼란과 알 수 없는 일들은 극 중 인물들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경계로 빠져들게 한다. 그와 동시에 행복하게 끝날 줄 알았던 이야기의 결말은 웃음과 씁쓸함을 불러온다. 권력자를 잡아끌고 난장판이 되도록 싸우는 그들이 걱정되고, 사랑에도 조건을 따져야만 하는 그들이 안타깝고, 또 우리의 삶도 저들과 별다를 바 없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극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냥 이렇게 생각해 주세요. 다 괜찮아질 거라고요. 우리는 함께 여기서 꿈을 꾼 거예요.”라고. 한여름 밤 알 수 없는 일을 겪은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우리의 삶 또한 알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잊고 살고, 앞으로도 진정한 사랑보다는 여러 조건이 붙은 사랑을 더 많이 보겠지만 이 연극과 함께하며 그래도 작은 위로를 얻는다. 어쨌든 다 괜찮아질 거라고. 마치 우리가 한겨울 낮에 한여름 밤의 꿈을 꾼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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