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에르

‘동 쥐앙’ Dom Juan

글_임야비(서울 신포니에타 기획 및 연출, 극단 동맹 연출부 드라마트루기)

동 쥐앙(Dom Juan)은 몰리에르가 1665년에 쓴 5막의 희곡으로, 그의 걸작이라 할 수 있는 타르튀프Le Tartuffe(1664)와 인간혐오자 Le Misanthrope(1666) 사이에 완성된 숨겨진 명작이다.
사실 동 쥐앙이라는 인물을 몰리에르가 창조한 것은 아니다. 17세기 당시 동 쥐앙의 이야기는 유럽 세계에 널리 퍼져 있었던 전설이었다. 돈 주앙, 동 쥐앙, 돈 후안, 돈 조반니 등으로 불리던 전설의 기원은 중세로 추측되며, 스페인의 성직자 티르소 데 몰리나가 1613년에 초연하고 1630년에 출판한 권선징악형 종교극 ‘세비야의 바람둥이와 석상의 초대’에 이르러서야 문자화된다. 지금으로부터 약 700년 전 중세 스페인에 동 쥐앙이라는 사람이 실존했는지는 모두의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다.

동 쥐앙 전설의 인물 구조와 플롯은 매우 단순하다.
등장인물은 크게 넷으로, 주인공이자 천하의 호색한 동 쥐앙, 그의 하인(스가나렐 또는 레포렐로), 동 쥐앙을 향한 복수의 칼을 가는 석상 그리고 돈 쥐앙을 향해 사랑과 증오, 애정과 질투를 반복하는 수많은 여자다. 플롯은 하나다. 지칠 줄 모르고 바람을 피우는 돈 쥐앙의 행각이 발단이고, 너무도 쉽게 동 쥐앙의 유혹에 넘어가는 바보 같은 여자들에 대한 묘사가 전개이며, 아슬아슬한 상황을 잔머리로 모면하는 것이 위기다. 그러다가 복수의 석상이 동 쥐앙을 지옥으로 끌고 가면서 절정이자 결말에 이른다.

동 쥐앙과 하인 스기나렐

몰리에르의 동 쥐앙 역시 위의 인물 구성과 플롯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당시 43세로 극작의 절정기에 있던 몰리에르는 권선징악의 흐름은 이어가되, 주인공 동 쥐앙에게 철학이라는 조미료를 살짝 가미한다. 이렇게 몰리에르는 뻔하디뻔한 동 쥐앙의 전설을 자신만의 고유한 극으로 탈바꿈시킨다.

동 쥐앙은 누가 봐도 악당 그 자체다. 그래서 그는 벌을 받아야만 한다. 관객들은 지옥에 끌려가는 악장 동 쥐앙을 보면서 인과응보적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다.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나 관객들의 수준을 생각했을 때, 제아무리 파격을 일삼는 몰리에르일지라도 이 플롯을 뒤집을 만한 용기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몰리에르는 플롯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주인공에게 ‘다면성’을 부여하는 방법을 쓴다. 데 몰리나의 책 위에 적힌 평면적인 동 쥐앙(Don Juan)은 몰리에르의 무대 위에서 입체적인 동 쥐앙(Dom Juan)으로 다시 태어난다.

동시에 여자 두 명을 유혹하는 동 쥐앙

몰리에르의 동 쥐앙은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제약을 받지 않고, 끝없이 자유를 갈구하는’ 인물이다. 그의 자유는 곧 그의 의지이고, 그 의지는 늘 새로운 여자를 향한다. 그 과정의 부산물인 원한, 악명, 빚 심지어 죽음까지도 그에겐 전혀 중요하지 않다. 즉, 동 쥐앙은 자유만 있을 뿐, 고민은 없다. 이러한 동 쥐앙의 새로운 면을 부각하기 위한 몰리에르의 극작이 눈부시다. 동 쥐앙의 자유를 향한 초월적인 의지는 주인공의 연기로 강조되며, 부산물들은 코믹한 상황으로 연출해 얼렁뚱땅 넘겨버린다.

17세기의 프랑스 관객들은 19세기에나 등장할법한 철학을 지닌 동 쥐앙의 독특한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동 쥐앙과 관객 사이를 연결해주는 인물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야만 한다. 그 역할을 바로 동 쥐앙의 하인 ‘스가나렐’이 한다. 스가나렐은 동 쥐앙의 엽기 행각에 동참하면서도, 관객을 향해 신랄하게 주인을 욕한다. 한마디로 스가나렐은 무대에 올라가 있는 관객이다. 쏟아낼 욕지거리가 많았는지, 스가나렐의 대사 분량은 주인공인 동 쥐앙보다 훨씬 많다. 스가나렐의 역할이 극작과 공연의 성패를 좌지우지했기 때문에, 1665년 초연 당시 몰리에르가 직접 스가나렐을 연기했다.

중세 스페인의 전설에서 정형화된 흑백의 동 쥐앙은 몰리에르의 손끝에서 총천연색이 되었지만, 너무 눈이 부신 나머지 곧바로 좌초된다. 모두의 예상대로 이 위험한 연극은 ‘사회 비판’, ‘여성 멸시’, ‘신성 모독’, ‘풍기 문란’의 낙인이 찍힌 채 단 15회 공연을 끝으로 상연 금지된다. 그리고 시대를 너무 앞서간 동 쥐앙은 초연 후 180년이 지난 1841년에서야 비로소 재공연된다. 이후 몰리에르의 바람대로 동 쥐앙의 테마는 문학 및 예술 장르뿐 아니라 철학에서까지 깊이 재해석되기 시작했다.

동 쥐앙과 연관된 문학(시, 소설, 희곡)과 예술(음악, 미술, 무용)과 철학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래서 몰리에르가 희곡 동 쥐앙을 썼지만 바로 상연 금지 처분을 받은 1665년부터 1800년까지의 시기와 낭만주의가 밀려 들어온 1800년부터 재공연이 되기 전인 1841년까지의 시기 그리고 초연 후 180년간 묻혀있던 이 작품을 세상에 다시 선보인 1841년 재공연 이후부터 현재까지 세 시기로 나누어 보고자 한다.

우선 1665~1800년에 여러 작가와 예술가들에 의해 해석된 작품들은 몰리에르의 ‘파격 세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동 쥐앙은 중세의 전설 그대로 매우 평면적 캐릭터이다.

토머스 섀드웰이 1676년 발표한 영국판 동 쥐앙인 ‘리베르틴(Libertine)’의 주인공 또한 매우 평면적인 악당이다. 1692년 영국의 작곡가 퍼셀은 섀드웰의 희곡에 음악을 붙여 극부수음악 Libertine(Z.600)을 남겼다. 음반은 고음악 전문 레이블에서 전체 중 5곡 정도를 겨우 찾을 수 있는데, 우연인지 음악 역시 매우 단조롭다.

1761년 안무가 앙기올리니는 작곡가 글루크와 함께 발레 ‘돈 주앙’을 공연한다. 글루크는 이 발레를 위해 총 31곡을 만들었는데, 스페인 색이 짙은 ‘판당고(Fandango)’가 아주 흥미롭다.

발레 ‘돈 주앙’의 판당고 장면

이 시기에 가장 유명한 동 쥐앙은 모차르트/다 폰테의 오페라 ‘돈 조반니(K.527)’다. 흥행을 아는 리브레티스트(Librettist; 오페라의 가사를 쓰는 극작가) 다 폰테와 가난한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가 함께 빚어낸 명실공히 최고의 오페라다. 여기에 이 작품에 대한 구차한 설명을 쓰는 것 자체가 모독이다. 당장 음반이나 DVD를 사서 감상할 것을 강권한다. 자칫 밋밋해지기 쉬운 이 플롯을 통통 튀게 살려내는 두 천재의 기지를 집어내는 것이 감상의 포인트다. 잘 안 알려진 흥밋거리가 있는데, 전설 속 돈 쥐앙의 현신(現身)인 카사노바(G. Casanova; 1725-1798)가 이 두 천재와 매우 가까운 친구였다는 점이다. 분명 오페라 돈 조반니는 술집에서 카사노바가 두 친구에게 자랑스럽게 읊어댔던 그의 여성 편력을 다 폰테가 공책에 쓰고 모차르트가 악보에 옮겨 적은 작품일 것이다. 1787년 초연된 돈 조반니는 대단한 유행을 만들었고, 그 영향은 순식간에 유럽 문화 전체에 파고들었다.

1800년부터 재공연이 되기 전인 1841년까지 만들어진 동 쥐앙은 몰리에르의 희곡보다는 모차르트/다 폰테의 돈 조반니로부터 영감을 얻게 된다. 이 시기의 동 쥐앙에는 ‘신비한 환상’과 ‘격한 감정 분출’이라는 낭만적 요소가 덧붙여진다.

모차르트의 광신도라고 자칭했던 작가로 E.T.A 호프만과 푸시킨이 있다.

호프만의 원래 이름은 Ernst Theodor Hoffmann 이었다. 모차르트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자신의 이름 중간에 모차르트의 중간 이름과 같은 ‘Amadeus’를 삽입하여 E.T.A Hoffmann이 되었다. 돈 조반니의 영향은 그의 ‘칼롯풍의 환상 소품집’에 수록된 ‘돈 주앙’에 잘 나타나 있다. 독일 환상 문학의 대가답게 호프만의 돈 주앙에는 검은 안개와 기괴한 마법이 짙게 깔려 있다.

푸시킨은 특히 오페라 돈 조반니를 좋아했다.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의 공연 때 질투에 찬 살리에리가 야유를 퍼부었다는 말을 전해 들은 푸시킨은 ‘돈 조반니에 야유를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살인도 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푸시킨이 1830년에 쓴 4개의 작은 비극 중 ‘석상 손님’,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푸시킨의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는 나중에 피터 셰퍼의 연극, 밀로스 포먼의 영화 ‘아마데우스’의 모태가 된다.)

낭만주의의 화신 리스트가 1841년에 작곡한 돈 주앙의 회상(Reminiscences de Don Juan; S. 418)은 모차르트의 오페라에서 멜로디를 차용한 일종의 환상곡이다. 피아노의 파가니니라고 불릴 만큼 초절기교를 자랑했던 리스트의 곡인 만큼 상당한 연주 테크닉을 요구하는 곡이다. 원곡은 한 명의 피아니스트가 한 대의 피아노로 치는 것이지만, 작곡가인 리스트 외에는 아무도 혼자 칠 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 리스트는 범인(?)들을 위해 2대의 피아노 버전(S. 656)으로 편곡을 해야 했다. 현대에는 연주 기술이 많이 발달하여 혼자 치는 연주가 많긴 하지만, 듣기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알고 있는 모든 계이름이 한꺼번에 고막으로 쏟아진다. 연주 시간은 약 15분으로 듣다 보면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이 최소 12개 이상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될 것이다.

‘신비한 환상’과 ‘격한 감정 분출’을 장착한 동 쥐앙은 자연스럽게 ‘자유’와 ‘이름다움’이 추가된다.

유명한 로코코 화가 J.H. 프라고나르의 아들 A.E. 프라고나르의 1829년 작 ‘돈 주앙과 석상의 기사’는 동 쥐앙의 무시무시한 결말을 너무나 예쁘게 그려냈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의 큰 형인 바이런 경은 격정에 넘치는 풍자 서사시 ‘돈 주안’을 1819년부터 발표했다. 총 5년에 걸쳐 총 16편까지 이어졌지만, 바이런의 죽음으로 17편은 미완성으로 끝났다.

바이런의 서사시와 프라고나르의 그림은 동 쥐앙의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했고, 다층적인 접근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돈 주앙과 석상의 기사 – A. E. 프라고나르(1829)

이렇게 환상, 감정, 자유, 아름다움이 점철된 동 쥐앙은 1841년 몰리에르의 희곡이 재공연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1841년부터 지금까지 문학, 음악, 철학, 영화에서 앞다투어 동 쥐앙을 인용했다. 더 나아가 새로운 각도로 메스를 넣어 동 쥐앙을 완전히 해체한 후 재조립하는 새로운 해석들도 등장했다. 동 쥐앙은 40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원작자 몰리에르의 의도대로 다면화, 입체화가 되었다.

오스트리아의 시인 레나우는 1843년에 이상주의자 ‘돈 주안의 최후’를 썼고, 이에 영감을 받은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1889년에 교향시 ‘돈 후안(Op. 20)’을 작곡한다.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돈 후안은 동 쥐앙을 소재로 한 무수한 서양 음악 중 늘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다음에 놓여있는 위대한 음악이다. 이 교향시에는 죽음의 석상도 귀찮은 스가나렐도 없다. 오직 동 쥐앙의 에너지만 있을 뿐이다. 슈트라우스는 금관악기가 뿜어내는 요란스럽고 장쾌한 음향을 통해 이상을 좇아 자유분방한 모험을 떠나는 동 쥐앙의 밝고 싱싱한 측면을 들려준다.

반면 보들레르는 그의 문제작 ‘악의 꽃(1857)’ 중 ‘동 쥐앙은 지옥으로’에서 동 쥐앙의 무겁고 어두운 부분만 발췌해 심각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마지막 연에서 지옥의 공포 속에서도 그 뻔뻔함을 잃지 않는 동 쥐앙의 모습은 어쩐지 시인 자신과 많이 닮아있는 듯하다.

동 쥐앙은 철학 속으로도 스며들었다. 키에르케고어는 ‘이것이냐 저것이냐(1843)’에서 실존을 3단계로 나누면서, 이성의 인간 ‘소크라테스’, 신 앞의 단독자(單獨者; Der Einzelne) ‘아브라함’의 대척점으로 동 쥐앙을 본능적이고 감각적인 천재로 분석했다.

카뮈도 그의 부조리 철학의 집대성인 ‘시지프의 신화’의 2장 부조리한 인간의 전면에 ‘돈 후안주의’를 내세웠다.

멋진 말도 많이 했지만 구설수도 많았던 버나드 쇼는 1903년 철학적 희극 ‘인간과 초인’을 발표했다. 이 연극의 3막은 돈 쥐앙의 등장 인물들과 악마가 성욕에 대해 대토론회를 펼친다.

(버나드 쇼처럼 나도 잡설을 하나 하자면, 나는 이상하게도 400년 전 몰리에르가 만들어낸 동 쥐앙이 세상에 뿌린 정자(精子)로부터 쇼펜하우어와 니체 그리고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연상된다.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 같다.)

아무튼 동 쥐앙이라는 ‘인물’은 철학을 통과하면서 ‘추상적 개념’에 이르게 된다. 시벨리우스는 1901년 그의 교향곡 2번(Op. 43)의 2악장에서 동 쥐앙의 이미지를 해체하여 추상적으로 청각화 했다. 저음의 준엄한 주제는 석상을, 불안하고 황량한 주제는 동 쥐앙의 최후를 파편적으로 그려낸다.

제레미 레벤 감독 ‘Don Juan DeMarco’(1995)

현대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동 쥐앙은 여전히 정력적이다. 현대의 동 쥐앙의 세 가지 핵심 요소는 ‘반전(反轉)적 요소’, ‘견자(見者)적 요소’, ‘추리(推理)적 요소’다.

201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한트케의 파괴적인 소설 ‘돈 후안’(2004).

동 쥐앙으로 빙의한 정신병자 조니 뎁의 마성적 외모와 이를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 말론 브랜도의 카리스마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제레미 레벤 감독의 영화 ‘Don Juan DeMarco’(1995).

다 폰테와 카사노바의 관점에서 오페라 탄생 과정을 추적한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의 영화 ‘돈 조반니’(2009).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 ‘돈 조반니’(2009)

위 작품들에서 반전, 견자, 추리의 세 가지 요소들과 400년 전 몰리에르가 만들어낸 동 쥐앙의 입체적인 원형을 찾아본다면 재미와 감동 그리고 지식까지 얻는 일석삼조의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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