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연극 10대 과제

 

글_오세곤(연극평론가)

 

정책은 일종의 계획이다. 계획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니므로 어떻게 실행하느냐에 따라 맞아떨어지기도 하고 전혀 엉뚱한 결과를 빚기도 한다. 물론 현실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아예 처음부터 방향이 틀린 계획을 세웠다면 당연히 비난받아야 한다. 또 설령 큰 방향은 맞았더라도 세부적으로 정교하지 못 하여 일을 그르친다면 역시 앞의 경우와 다를 바 없다. 다만 각각의 경우에 대하여 문제 분석과 대책 마련에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어야 한다. 나아가 그 대책 역시 방향이 옳아야 하고 티끌만한 오차조차 없도록 정교해야 한다.

 

 

연극에도 정책이 필요하다. 정책을 세우려면 현실에 대한 진단과 함께 목표로 삼고 나아가야 할 지향점을 정해야 한다. 즉 현재 상태는 이런데 도달해야 할 상태는 이러니까 이러이러한 방법과 순서로 진행하면 되리라는 예측 아래 분명한 계획 수립이 가능하다. 이에 있어 왜 연극이 필요한지, 왜 국가가 정책을 세워 연극을 진흥해야 하는지, 왜 사회가 그것에 동의하고 지원해야 하는지는 이미 확보된 전제로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연극의 가치와 필요성을 인식하고 그 진흥을 위한 사회적 지불의 타당성을 설득하는 것 역시 국가의 의무이자 하나의 정책으로 행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정책 결정자들은 무엇을 정할 때 가장 먼저 예산을 생각하는 듯하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펼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 한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우선순위를 낮게 잡기 때문이 아닐까?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다른 것을 조금도 바꾸지 않은 채 해보려니 안 되는 게 아닐까?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가 아닐까? 돈이 문제가 아니라 생각의 문제가 아닐까?

 

 

연극 발전을 위한 10대 과제를 생각해 보았다. 아주 거칠지만 정책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고 도달해야 할 목표점이 될 수도 있다. 과연 돈이 없어서 못 할 일인지, 돈의 문제인지 의지와 생각의 문제인지 하나하나 따져 보았으면 한다.

 

 

1. 공공극장

1-1. 공공극장은 전속 공연단체, 그에 버금가는 상주 공연단체를 두어야 한다. 단 모든 전문단체에 개방하는 대관 전용 공공극장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할 수 있다.
1-2. 공공극장은 전속 공연단 또는 상주단체는 물론 대관해서 들어오는 외부 전문단체들의 공연에 대해서도 대관료 면제 및 최상의 홍보 마케팅 지원을 제공하여야 한다.
1-3. 공공극장의 기획 제작이나 초청은 공연 현장을 위축시키는 등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세심하게 그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
1-4. 이상의 내용을 보장하는 특별법 제정을 추진한다.

 

 

2. 국립극단

2-1. 국립극단은 최소한 전국적으로 3-4단체가 되어야 한다. 이에 있어 각 단체에 나름의 특성 및 임무를 부여할 수 있다.
2-2. 각 단체의 규모는 최소한 3-4개 작품이 동시에 준비되고 공연될 수 있어야 한다. 즉 전용극장 공연, 전국 순회공연, 해외 순회공연, 신작 준비 등이 동시에 진행될 수 있도록 단원을 확보하고 운영해야 한다.
2-3. 국립극단의 단원은 상임과 객원으로 구분하되 상임의 경우 일정한 경력과 조건을 충족한 이후에는 정년을 보장한다.
2-4. 이상의 내용을 보장하는 특별법 제정을 추진한다.

 

 

3. 표준인건비

3-1. 정부는 연극계와 협의하여 매년 공식적인 평균 제작비와 표준인건비를 산정해 발표해야 한다. 이에 있어 2015년 문화부와 예술인복지재단의 “공연예술 전문인력 표준인건비 산출 연구”를 근거로 한다.
3-2. 위의 연구에서 명시한 일반 공연의 경우 표준인건비 준수를 의무화한다. 보편 지원 내지 소액다건 지원에 해당하지 않는 큰 액수의 공공 지원을 받는 작품의 경우 일반 공연으로 간주한다. 이에 대해서는 지원 사업 공고 시 그 해당 여부를 명시하여야 한다.
3-3. 위의 연구에서 명시한 비영리공연의 경우 동인들 간의 지분 계약을 인정한다.
3-4. 정부는 직접 또는 연극계에 위탁하여 표준인건비의 정착 및 실행을 지원하기 위한 조직 또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3-5. 이상의 내용을 보장하는 특별법 제정을 추진한다.

 

 

4. 저작권

4-1. 공연을 위해 신작을 집필했을 경우에는 위의 표준인건비 규정을 적용한다.
4-2. 위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즉 사전에 집필된 희곡의 경우 해외 작품들에 적용되는 수준의 저작권료를 인정한다. 이에 대한 기준 역시 정부가 연극계와 협의하여 공식적으로 매년 발표해야 한다.
4-3. 연극 현장의 열악한 실정을 감안하여 희곡 저작권료 지급을 위해 적절한 공공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4-4. 희곡 외에 연출, 디자인, 연기 등을 망라하여 초상권 및 지적 재산권 전반에 대해 저작권을 인정한다.
4-5. 정부는 직접 또는 연극계에 위탁하여 국내 또는 해외 저작권 관련 정보 제공 및 실행 지원을 위한 조직 또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4-6. 이상의 내용을 보장하는 특별법 제정을 추진한다.

 

 

5. 보편지원 강화

5-1. 표준인건비 준수는 필연적으로 지원금 상향 조정을 초래할 것이다. 그러므로 전체 지원 예산의 대폭 증액이 없다면 전체적으로 지원 건수와 대상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을 보완하기 위해 컨설팅 지원, 홍보 마케팅 지원, 대관료 지원, 저작권 섭외 지원, 저작권료 지원, 융자 지원, 펀딩 지원 등 이른바 보편지원을 강화하여야 한다.
5-2. 정부는 직접 또는 연극계에 위탁하여 컨설팅 및 맞춤 지원을 실행 또는 제안할 수 있는 조직 또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6. 연극 플랫폼 조성

6-1. 역시 보편 지원의 일환으로 연극 플랫폼을 조성해 운영해야 한다. 이 플랫폼은 불평등을 해소할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력 정보가 모이고, 교육 정보가 모이고, 훈련 정보가 모이고, 제작 정보가 모이고, 희곡 등 콘텐츠가 모이고, 자료가 모이고, 기록이 모이고, 또 영세한 단체들은 만들고 버리기를 반복해야만 하는, 그래서 부익부빈익빈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장치, 도구, 소품, 의상들이 모이고, 또한 상황과 경우를 살펴 적재적소에 정보와 콘텐츠를 연결시키는 역량까지 갖춘 그런 플랫폼이 필요하다.
6-2. 정부는 직접 또는 연극계에 위탁하여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공유 플랫폼을 만들고 그것을 운영할 수 있는 제도와 장치를 마련하여야 한다.

 

 

7. 일반인을 위한 연극 교육 강화

7-1. 연극이 2015 교육과정에 의거 고등학교 예술교과 일반선택 과목으로 지위가 격상되고 중학교와 초등학교에서도 확대 실시하기로 되었으나 현실적으로 확산되기 어려운 실정을 고려하여 정부는 연극계와 협의하여 연극 분야 예술강사 활용, 순회교사를 포함한 정규 교사 임용 등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7-2. 정부는 연극계와 협의하여 연극의 생활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연극 동아리 지원 등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7-3. 연극계는 기존의 한국연극교육위원회를 재가동하고 그 산하에 연극교육지원센터를 조직하여 실질적인 학교와 사회에서 일반인을 위한 연극 교육이 활성화되도록 다양한 정보 제공, 교육자 재교육, 프로그램 제공, 컨설팅 등 다양한 지원을 펼치도록 한다. (한국연극교육위원회는 2002년 구성된 연극인강사풀 운영위원회를 개명한 조직으로 한국연극협회, 한국대학연극학과교수협의회, 전국민족극운동협회, 한국교사연극협회, 한국연극교육학회, 한국연극학회, 한국교육연극학회 등 7개 단체가 모여 결성하였고, 각 단체의 장들로 구성된 대표자회의가 총회 역할을 하며 거기에서 위원장을 선임한다. 정관상 대표자회의의 의장은 한국연극협회 이사장이 맡는다.)

 

 

8. 군 연극사병 제도와 국군공연예술부대

8-1. 연극 분야에는 현실적으로 적용 불가능한 군 면제 제도를 폐지하고 대신 군 연극사병 제도를 신설하여 군대 내 연극의 생활화를 촉진한다.
8-2. 연극 분야를 포함한 국군공연예술부대 내지 국군공연예술단을 창설한다.
8-3. 이상의 내용을 보장하는 특별법 제정을 추진한다.

 

Media Screens

 

9. 방송 예술 쿼터제

9-1. 뉴스를 포함하여 공영방송의 일정 비율을 반드시 연극을 필두로 하는 기초예술을 내용으로 다루도록 하여야 한다.
9-2. 특히 가족들이 함께 대화를 나누기 좋은 소위 저녁 황금시간대에는 기초예술을 중요하게 다루도록 하여야 한다.
9-3. 이상의 내용을 보장하는 특별법 제정을 추진한다.

 

10. 예술활동증명 협력단체

10-1. 정부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활동증명 운영지침에 의거한 협력단체로 단독 또는 공동으로 한국연극협회와 그 산하 지부 또는 연극계 각 단위협회들을 지정한다.
10-2. 한국연극협회는 단독으로 또는 다른 단위협회들과 공동으로 예술활동증명 및 연극인 복지 지원 센터를 조직한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