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공연
더 웰킨(The Welkin)

18세기 영국 가장 낮은 계급 여성 노동자들

21세기 여전히 변화 없는 상황 속의 여성들

 

극단 그룹動·시대 연출 오유경

 

 

작: 루시 커크우드(Lucy Kirkwood)

번역: 김수아

연출: 진해정

제작: 하지스토리

공연일시: 2020/07/25-07/26

공연장소: 소극장 씨어터송

관극일시: 2020/07/25

 

 

샐리 포피는 마을의 지주 왓슨의 딸, 앨리스를 죽여 토막 내 2개의 자루에 담아 버린 끔찍한 살인자로 체포되어 교수형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샐리는 자신이 임신했음을 알리고 법에 따라 형 집행을 멈춰줄 것을 요구한다. 이에 따라 그녀의 임신 여부를 판단할 마을의 12명의 부인들이 배심원으로 소환되고, 법원의 가장 열악하고 더러운 다락방에 모인다. 그들 모두는 이웃으로 서로를 매우 잘 알고 있으며 각자의 이해관계로 얽혀있다. 그들은 모두 몹시 가난하고, 육아와 가사노동은 물론 이에 더해 먹고살기 위한 힘든 노동까지 해내야 하는 환경에 놓여있다. 또한 남편의 무지함과 폭력, 하녀일, 빨래나 똥을 처리하는 등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그들을 고용하는 지주 남성들 혹은 그냥 마을의 남성들에게 수시로 의례히 성추행과 강간당하는 삶을 견뎌오고 있다. 서로의 처참한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서로에게 동정과 연민을 갖기엔 각자가 너무도 삶에 지쳐있고 시달려서 마음에 여유가 없다. 샐리가 임신이 아니면 목숨을 잃게 된다는 절박한 상황이며 이 중대한 판단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서둘러 이 일을 마치고 얼른 집으로 돌아가 산더미처럼 쌓인 자신의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마음이 더 앞선다. 더구나 샐리가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데다가 그 죄에 반성이 없고, 평소에도 품행과 말이 단정치 못하고 거칠어 그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매우 나빴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 냉정했다. 임신 초기여서 배를 만져서 임신여부를 판단하긴 어려운 상황인데, 그들 대부분은 샐리의 몸을 만지는 것을 노골적으로 꺼리는 것은 물론, 샐리가 교수형을 면하기 위해 임신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법원 밖 광장에는 샐리의 교수형을 지켜보려는 성난 군중들의 분노의 함성이 들려오고, 1시간 만에 샐리의 임신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그들은 더욱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다. 마을의 산파인 엘리자베스 루크는 산파로서 처음 출산을 도운 샐리의 구명(救命)을 위해 부인들을 설득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샐리는 그런 엘리자베스의 노력에 고마워하기는커녕 가증스럽게 자신을 동정한다며 그녀가 자신의 몸을 만지는 것을 거부하고 임신여부나 빨리 판단하라 종용한다. 엘리자베스는 샐리에게 젖이 나오지 않았는지 묻고 샐리는 자주는 아니지만 틀림없이 초유가 나왔다고 말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젖가슴을 아프게 짓눌러 컵에 자신의 초유를 어렵게 받아낸다. 임신 사실이 증명되는 순간, 다락방 굴뚝에서 새의 퍼덕임이 들려오더니, 굴뚝 안에서 커다란 까마귀의 죽은 몸이 튀어나오면서 순식간에 그을음이 다락방에 가득 퍼진다. 1막 끝. 2막이 시작. 굴뚝 재로 인해 샐리의 초유는 검게 오염되고 임신을 증명할 증거가 사라지게 된다. 샐리는 절망하고 엘리자베스는 초유가 오염되었어도 샐리의 가슴에서 초유가 나왔음을 모두 분명히 목격하지 않았냐며 부인들을 설득한다. 하지만 부인들은 오염된 증거는 소용이 없다며 샐리의 가짜임신에 손을 든다. 그런 그들에게 엘리자베스가 분노하자 십 몇 년 동안 말을 하지 않던 사라 홀리스가 입을 열어 엘리자베스가 샐리를 낳는 것을 목격했다며 샐리를 낳은 진짜 엄마는 엘리자베스임을 폭로하고 그러므로 친엄마인 엘리자베스의 의견은 정당하다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작품 《더 웰킨》은 엘리자베스 루크역을 연기한 하지은배우의 하지스토리에서 제작을 담당한 입체낭독극이었다. 내년에 본극을 목표로 하고 있단다. 본래는 영국국립극단이 준비하고 있는 공연이었는데 코로나사태로 인해 뒤로 미루어지면서 하지스토리에서 우선 낭독공연으로 먼저 선을 보이게 되었다고 한다. 낭독공연이지만 13개의 검은 테이블에 각 배역의 이름이 적힌 명패가 놓이고 이 테이블의 움직임과 조합으로 작품의 긴장감과 미장센(mise-en-secean)을 구축하고 볼거리를 획득하였는데, 그 형식 그대로 공연을 올린다고 해도 충분히 흥미로울 낭독극이었다. 180분이라는 러닝타임(running time)이 부담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소설 같은 지문의 낭독으로 상상력을 더욱 배가(倍加)시켜, 그 긴 시간이 결코 지루하지 않았으며, 그동안의 관객의 집중도 흩어지지 않았다. 대단한 성과라 생각된다. 14명(지문을 읽어주는 자를 포함)의 여자배우들과 2명의 남자배우들의 앙상블이 돋보인 손색없는 훌륭한 낭독연기도 이 극을 단순히 희곡 자체를 즐기는 것 이상으로 몰입하게 해주었다. 더구나 배우들의 집중된 에너지와 호흡의 밀도를 숨 쉬듯 따라가 주는 조명과 음향의 역할도 결코 가볍지 않다. 또한 배우들이 실제 나이와 역할 나이를 상식적으로 매칭(matching)하지 않고 배역이 주어진 점도 흥미로왔다. 여성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관습적 편견을 따르지 않아 더 당당해 보였다.

 

 

작품은 18세기 영국 한 마을을 배경으로 당시 하급 여성들의 열악한 사회적 지위와 노동환경을 그렸다. 그러면서 마지막 2026년의 동명의 여인들의 모습을 병치시킴으로 18세기의 여성의 모습이 21세기 여성의 처해진 상황과 그다지 변화되지 않았음을 관객에게 노골적으로 인식시키는데 성공하였다. 18세기 여성들이 첫 장면에서 자신의 이름과 나이 그 외에는 자식과 남편을 소개하는 것으로 자신을 소개한 것처럼, 2026년의 동명의 여인들도 그들과 똑같은 자기소개를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은 사회가 여성에게 가하는 부당한 처사뿐만이 아니라, ‘여성의 적은 오히려 여성’이라는 말처럼 여성이 오히려 같은 처지의 여성을 경멸하고 남성을 같은 여성보다 더 신뢰하며, 자신보다 나은 처지의 여성을 시기함으로써 더 드러낸다. 엠마 젠킨스는 샐리의 천박한 품행과 말투가 反기독교적이라 생각하며 그녀를 혐오한다. 샐리 포피는 자신이 자칫하면 교수형으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녀를 구명하고자 다른 부인들을 설득하는데 헌신을 다하는 엘리자베스를 경멸하고 그녀의 도움을 거절한다. 산파로서 오랜 경험과 민간요법의 의사로서의 그녀의 의술보다 남자의사의 능력을 더 높게 신뢰한다. 처음엔 샐리에게 동정적이던 헬렌 러드로는 샐리의 임신이 확인되자, 자신이 못하는 임신을 저 더러운 여인이 더 잘한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외친다. 그리고 샐리를 시기한다. 작품은 21세기 2026년 동명의 여인들에게도 여성 스스로 여성을 존중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가부장 사회에서 세뇌하듯 학습된 그 모순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여성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드러냄에 있어 같은 문제를 지닌 다른 여성과 함께 연대하지 못하는 상황은 18세기에서나 21세기에서나 변하지 않고 그대로가 아닌가라고 지금의 여성들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내년 본 공연이 기대된다. 입체낭독공연의 발전은 더욱 다양하고 새로워지고 있다. 이러한 낭독연극에 후원하는 지원정책이 조금 더 확대되고 다양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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