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콰토 타소(Torquato Tasso)’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임야비

고귀한 사람은 고귀한 사람들을 불러들이지요
– 토르콰토 타소 1막

타소 초상

토르콰토 타소(Torquato Tasso; 1544~1595)는 르네상스 말미를 풍미했던 이탈리아 시인으로, 대표작으로 ‘해방된 예루살렘’, ‘리날도’, ‘아민타’가 있다. 유명했던 시인이라지만 지금의 우리에겐 이름조차 낯설고, 작품명 또한 생소하다. 르네상스 시대의 문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 말고는 이 작품들을 읽어본 사람이 있을까? 400년이 지난 현재의 우리에겐 묻혀버린 시인이지만, 200년 전 괴테의 시대에는 그러지 않았던 모양이다. 18세기의 괴테는 16세기의 시인을 주인공으로 멋진 희곡을 남겼다.

괴테 1787

1790년. 괴테는 예민한 이상주의자 시인 ‘타소’와 냉혹한 현실주의자 외교관 ‘안토니오’ 둘 사이의 심리적 갈등을 소재로 한 비극 ‘토르콰토 타소’를 탈고했다.

둘은 상대가 자신과 상극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성주인 알폰소 공작의 중재로도 둘은 쉽게 다가서지 못한다. 여기에 공작의 누이인 레오노레 공주와 삼각관계가 형성되자, 오해와 갈등은 더욱 깊어진다. 유약한 타소는 안토니오의 의미 없는 말 한마디에도 우울증에 빠지고, 냉혈한 안토니오는 타소의 시적 재능을 시기한다. 둘은 상대방의 재능에 스스로 좌절하며, 그 좌절의 깊이만큼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

“두 남자는 자연이 그 두 사람을 모아 한 명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적이 되더군요. 만일 그들이 서로의 장점을 알 만큼 현명하다면 그들은 친구로서 연대하겠지요. 그렇게 되면 두 남자가 한 남자가 되어 힘과 돈과 쾌락을 손에 쥐고 인생을 사는 거예요.”

등장인물 중 하나인 백작 부인이 둘의 불편한 관계를 중재해 보지만, 자존심 높은 둘은 좀처럼 엮이지 못한다. 그러다 원고 문제로 타소가 성을 떠나기로 하자 둘은 마지막으로 화해를 시도한다. 안토니오는 대인배처럼 타소에게 냉혹한 현실에 대해 진심 어린 조언을 하지만, 이를 모욕으로 받아들인 타소는 다시 피해망상에 빠진다.

괴테는 예술 속에 살고 있는 시인 ‘타소’와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외교관 ‘안토니오’를 동시에 무대 위에 올려놓고 갈등을 내면화한다. 이 극에는 웅장한 전쟁도 없고 드라마틱한 죽음도 없다. 갈등의 폭발은 등장인물의 깊고 넓은 내면과 얕고 좁은 외면으로 제한된다. 

흥미로운 비극이지만, 21세기의 우리에게는 지명도가 낮은 작품에 속한다. 연극 상연도 거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괴테의 파우스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탈리아 기행, 서동 시집 같은 위대한 작품들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표_에그몬트와 타소

여기까지 이전 회(8월호)에 언급했던 ‘에그몬트’의 ‘역사의 실존 인물 → 괴테의 극화’라는 모델과 비슷하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모델의 확장판인 ‘역사의 실존 인물 → 괴테의 극화 → 후대 작곡가의 음악화’까지 똑같다는 점이다. 후대의 작곡가들이 거의 꺼져가는 위대한 인물의 고귀한 불씨를 음악으로 다시 살려냈다. 16세기의 라모랄 에그몬트 백작은 19세기(1809년)의 베토벤에 의해서, 마찬가지로 16세기의 시인 토르콰토 타소는 19세기(1840년)의 프란츠 리스트에 의해서 21세기의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는다. 물론 실존 인물과 작곡가들 사이에 ‘18세기의 괴테’라는 교두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리스트 캐리커쳐

프란츠 리스트(1811-1886)는 불멸의 피아니스트이자 교향시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시한 작곡가다. 예민한 천재였던 그는 신경쇠약을 달고 살았고, 대다수의 작품은 도취적이고 비현실적 감정을 쫓는 낭만주의풍이었다. 하지만 삶은 철저하게 현실적이었다. 그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초절 기교를 아이템으로 ‘피아노 리사이틀’이라는 단독 콘서트를 세계 최초로 기획한 흥행사였다. (리스트는 자신의 잘생긴 얼굴을 청중들이 잘 보게끔 피아노를 옆으로 돌려 연주한 최초의 연주자다) 당시 콘서트에 모인 수많은 여성들을 기절시킬 정도의 강렬한 카리스마와 화려한 퍼포먼스 그리고 잘생긴 외모는 유럽 전체를 들썩이게 했다. 그는 순회공연에 박차를 가했고 이로 인해 상당한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낭만주의자 리스트는 실리(實利)에 밝았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자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과대망상적인 예술을 마음껏 펼쳤다. 이러한 시도 또한 대중들의 지지를 얻으면서 그는 자신의 예술관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열광적인 신도들을 확보한 리스트는 점점 더 자신을 신격화하기에 이른다. 마치 사이비 교주처럼 자신을 선대와 당대의 가장 명망 있는 인물들과 연결했다. 그의 음악적 설교에는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원조 아이돌인 니콜로 파가니니, 악성 베토벤, 대문호 괴테가 인용되었다.

요제프 단하우저 ‘피아노를 치는 리스트’ (1840)
당시 문학 예술계의 낭만주의자들이 모두 모여 있다.
앞줄에 앉아 있는 남자는 알렉상드르 뒤마 페르, 의자에 앉아 있는 여인은 쇼팽의 연인으로 유명한 조르주 상드다. 뒷줄의 왼쪽부터 빅토르 위고, 파가니니, 롯시니가 서 있다. 피아노 옆에 앉아 있는 여인은 리스트의 연인이 마리 다구 백작부인이다. 리스트의 피아노 위에 놓인 베토벤의 두상이 인상적이다.

실존 시인 토르콰토 타소와 독일의 대문호 괴테. 여기에 자신 프란츠 리스트를 추가. 낭만주의의 한복판에 선 대중들과 평론가들이 보기에 거의 완벽한 조합이었다. 흥행사 리스트가 이를 모를리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인 흥행 요소보다 리스트의 마음을 흔든 것은 비극의 두 남자 주인공이었다. 감정의 폭풍에 휘말리는 시인 타소와 현실적 균형을 잃지 않는 안토니오. 백작 부인의 대사처럼 합쳐지면 완벽해질 이 두 남자의 상반된 성격을 리스트는 한 몸에 가지고 있었다.

괴테의 희곡 타르콰토 타소는 리스트의 내적 분열을 보듬고 외적 야망을 채워줄, 그야말로 완벽한 소재였다.

리스트 지휘

리스트가 작곡한 타소의 정식 명칭은 Tasso. Lamento e Trionfo, (Symphonic poem No. 2, S. 96) ‘타소. 비탄과 승리 (교향시 제 2번, 작품번호 96)’다. 대편성 오케스트라가 필요한 곡으로 연주 시간은 약 25분이다. 몇 번의 수정을 거쳐 1849년에 관현악 버전을 완성하고, 바이마르에서 열린 괴테 탄생 100주년 축제에서 초연했다. 지휘자는 물론 리스트 자신이었다.

곡의 주요 두 주제는 강한 대비를 이룬다. 느린 부분은 주로 독주 악기로 연주되며 고뇌와 비탄을 긁어낸다. 빠른 부분은 관현악 총주로 강하게 연주되며 극복과 승리를 뿜어낸다. 이 두 주제를 각각 타소와 안토니오로 생각하면 악곡의 이해가 쉽겠지만, 이는 작곡가의 의도가 아니다. 리스트의 의도는 두 주제를 이용해서 주인공 타소와 자신의 분열된 자아를 표현하려 했다.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두 주제의 변환은 매우 극적이다. 싸인-코싸인의 주기 함수처럼 크게 요동치는 음악은 마치 조울증 환자의 감정을 듣는 듯하다. 

이렇게 리스트는 온전히 주인공인 타소에 몰입해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리스트에게 안토니오 같은 주변 인물은 안중에 없다. 공식은 단순하다. ‘대시인(타소)=대문호(괴테)=자신(리스트)’.

카라얀 리스트 음반

리스트의 자아도취적인 면을 극대화한 지휘자를 소개한다. 누가 뭐래도 – 물론 논란의 여지가 다분하지만 – 20세기 최고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의 리스트 관현악곡 음반이다. 지휘자 카라얀도 리스트처럼 불타는 예술성과 상업적 성공이라는 두 개의 트로피를 거머쥔 입지전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베를린필의 종신 지휘자로 수많은 연주회와 녹음으로 많은 이들에게 벅찬 감동을 선사했다. 사업가 카라얀은 음반 산업에도 뛰어들었다. 그는 자신이 지휘하는 모습이 더 멋있게 녹화되기 위해, 촬영 카메라의 각도까지 직접 감독할 정도로 이미지 관리에 신경을 많이 썼다. 음반과 영상물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카라얀의 재산은 가히 천문학적이었다.

위 음반 표지를 살펴보자.

멋이 폭발한다. 심상치 않다. 카라얀의 매력이 범람한다.

지휘라는 행위는 예술의 범주에 들기 애매모호한 면이 있다. 아무리 예술적으로 지휘를 해도, 그 행위가 예술 작품을 새로이 창조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휘라는 행위에 붙인 카테고리는 ‘재연 예술’이다. 하지만 위 표지의 카라얀은 모든 창조를 주관하는 신인 듯하다. 그는 마치 타소의 시, 괴테의 희곡, 리스트의 음악을 만들어낸 사람 같다. 실제 연주 또한 이러한 면을 여실히 드러낸다.

‘대시인(타소)=대문호(괴테)=대작곡가(리스트)=대지휘자(카라얀)’

카라얀의 예술은 위 등식의 확장 선상에 있다. 좋지 않을 수 없는 연주다.

대시인 타소 → 대문호 괴테 → 대작곡가 리스트 → 대지휘자 카라얀

유구한 시간이 흘러도, 예술의 장르가 바뀌더라도, 글의 머리말처럼 고귀한 사람은 고귀한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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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야비(tristan-1@daum.net)

 – 자유기고가, 서울 신포니에타 기획 및 연출

– 극단 듀공아 / 극단 동맹 연출부 드라마투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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