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브레히트는 古典主義 작가인가? (7)

이재진 (단국대 명예교수)

[죽은 병사의 노래]

파 지식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많은 비평가나 지식인들은 이 노래를 브레히트가 쓴 최고의 시로 평가했다. 반면 보수진영에서는 가장 모욕적인 노래로 받아들였다. 반전을 노래하는 이 발라드(Die Ballade vom toten Soldaten)는 나치의 눈을 거슬린다: 전쟁이 끝날 무렵 병사가 하나 죽는다. 황제의 심기가 불편해진다. 전쟁이 잘 안 풀리고 군인 하나라도 더 필요하게 되자 군의관이 무덤에 나타나 죽은 병사를 다시 일으켜 갑종판정을 내린다. 썩는 냄새를 덮기 위해 독한 소주와 향수를 몸에 뿌리고 전선으로 끌고 간다. 이 병사는 또 한번 영웅적 죽음을 맞는다.” 1929Kurt Weil(1900-1950)이 발라드에 곡을 붙였다. (이 노래는 19연으로 되어있다. [한밤의 북소리]. 지만지 2018)

나치는 정권을 잡기 이전부터(1920년대) 뮌헨의 거리를 활보했다. 이 노래로 브레히트는 이때 이미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브레히트의 작품이 무대에 오르는 것을 방해하던 나치는 1933년 정권을 잡은 후 경찰을 동원해서 노골적으로 공연을 중단시키고 관계자들을 체포했다. 브레히트의 독일 시민권을 박탈할 때 나치는 그 근거로서 “독일 병사를 욕보인” 이 발라드를 내세웠다. 국회의사당이 불타자 그 이튿날로 브레히트는 가족을 데리고 망명길에 오른다.

쿠르트 바일(출처_구글)

신발보다 더 자주 나라를 바꾸어가며

망명생활은 13년이나 지속된다. 폴란드, 오지리, 스위스, 프랑스, 덴마크, 스웨덴, 미국 브레히트가 이미 나치의 입김이 거세진 핀란드를 찾은 것은 러시아를 통해 미국으로 건너가기 위해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1940년 여름 브레히트는 가족과 함께 핀란드의 여류작가 부올리요키 (Hella Wuolijoki. 1886-1954)의 농장에서 한동안 지내게 된다. 이 당시 [사천의 선인]을 집필중이었다. 이 작품의 주제가 착하게 살면서 살아남기가 착취의 역학관계 때문에 늘 제약을 받는다라고 부올리요키에게 소개한다. 이에 여류시인은 먼 친척뻘 되는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의 단편소설, 시나리오, 드라마의 주인공으로도 등장시킨 아저씨 푼띨라(Punttila)는 대지주이다. 술만 취하면 자기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누구에게나 형제처럼 마음을 털어 놓으며 돈을 뿌린다. 술에서 깨면 그 반대로 매우 냉혹한 대지주의 본색을 드러낸다. 즉 푼띨라는 술 취했을 때는 인간적이다. 그때만은 지주로서의 이해관계를 잊기 때문이다. 마침 핀란드 극작가협회에서 드라마 공모가 있어 이에 응모하기 위해 브레히트는 곧 공동작업을 하게 된다.

헬라 부올리요키(출처_구글)

민중극 [푼틸라 혹은 비는 언제나 아래로 떨어진다]가 완성된다. 부올리요키의 마음에도 들지 않았지만, 상도 타지 못했다. 1940-1941년 브레히트는 이 작품을 취리히 등 여러 곳으로 보낸다. 이때부터 작품제목은 [主人 푼틸라와 下人 맛티] (Herr Puntila und sein Knecht Matti)로 굳혀지게 된다. “나의 작품 중 어쩌면 >바알<은 예외가 될지 모르지만, >푼틸라<처럼 자연경관이 깊이 숨 쉬는 작품은 없을 것이다.”

지배계급의 합법성

브레히트의 작품 중에서 이 작품에서처럼 성경이 많이 인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어느 비평가가 브레히트에게 어떤 책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았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이에 브레히트는 당신 웃을지 모르지만 성경이요.”라고 대답했다. 브레히트의 언어는 반복적이고 비유적인 루터의 성경, 바이에른 지방의 도떼기시장에서 떠들어대는 거친 서민들의 언어, 동양연극의 간결하고 상징적인 표현양식 등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브레히트는 자신의 작품에 성경구절이나 속담을 인용하거나 패러디화해서 즐겨 사용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푼틸라는 딸아이(Eva)의 약혼식에 찾아온다. 오는 도중 호텔에서 며칠을 퍼마신다. 이런 아빠가 못마땅해서 에바는 아버지의 술가방을 치운다. 마실 술이 없자 푼틸라는 차를 몰고 마을로 달려간다. 푼틸라에게 밀주집 여인이 자신이 직접 만든 밀주를 내놓는다. 이때 푼틸라는 황야의 예수처럼 호통을 친다: “여인아, 물러가라!” 이와같은 패러디는 관객을 순간 우스꽝스럽고, 동시에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서사극의 핵심인 소위 소외효과”(V-Effekt)를 얻게된다. (이 개념은 다음번에 상세히 다룬다.)

브레히트(출처_구글)

푼틸라는 불법적으로 만든 소주는 단연코 거절한다. “나는 모든 것을 법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만 행하는 사람이거든.” 여기서 푼틸라가 무엇이든 법이 허락하는 테두리 안에서만 받아드리겠다는 선언은, 카를 마르크스가 말하는 지배하는 법률은 지배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위해 만드는 법이다.”라는 지배자들이 행사하는 폭력으로서의 법을 강조하고 있다. 푼틸라가 법을 지키려함은 지주로서의 권리가 보호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푼틸라는 네 여인과 차례로 술 한 모금과 커튼고리를 가지고, 하지만 소위 합법적인 약혼식을 거행하게 된다.

이리로 오라 모두들! 이리로! 이른 아침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여인들아,

연기를 피우는 여인들까지도, 맨발로 오려면 오너라. 싱싱한 풀잎이

너희들의 발걸음에 입 맞추면 푼틸라는 그 소리를 들을테다! (3장)


머슴과 주인

부욜리요키의 푼띨라와 브레히트의 푼틸라는 같아 보이면서도 서로 다르다. 푼띨라는 술취했을 때(돈 많은 착한 아저씨)와 깨어있을 때(악질 자본주)로 단순히 구별된다. 브레히트의 푼틸라는 하지만 인사불성이 되려는 순간을 감지하면 비겁(!) 하게도 다시 깨어나기 위해 커피를 마시고 목욕을 하거나 심지어 집안에 있는 술병을 모두 깨어버린다. 절대로 그런 위험한 지경까지 가지 않는다. 푼틸라는 술 취한 자신을 가장 위험시 한다. 즉 브레히트의 푼틸라는 술이 취했을 때나 술이 깨어 있을 때나 대지주로서의 계급의식은 변하지 않는다.

푼틸라 농장에 운전기사로 맛티(Matti)가 고용된다. 운전뿐 아니라 농기계 수선, 농장운영까지 도맡아 한다. 외형적으로는 주인이 머슴을 지배하고 있지만, 실상은 주인이 머슴에 의존하고 있다. 머슴은 주인 없이 살 수 있지만, 주인은 머슴 없이 살 수 없다. 헤겔에 의하면 참된 자립적 의식은 머슴의 의식이다. 머슴은 노동을 하고 주인은 머슴이 노동한 것을 누릴 뿐이다. 맛티는 지배(주인)와 피지배(머슴)의 변증법적 관계에 있어서 자신이 정당하게 받아야 할 대우를 받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주인에게 순종과 노동으로써 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술 취하면 그래도 주인이 인간적으로 되리라 기대하며 인내하고 기다린다. 하지만 끝내 이런 기대가 무너진다, 푼틸라는 취하지 않으려고 마지막 순간 커피를 마시고 목욕을 한다. 그다음 약속했던 해고된 노동자의 복직을 단호히 거절한다! – 결국 맛티는, ‘물과 기름은 섞일 수 없다는 말을 남기며 푼틸라 농장을 떠난다. 시대에 뒤떨어진 주인과 새 시대를 기다리는 머슴의 대립으로 회귀함으로써 사회적인 변혁의 필요성이 표면화된다. 레닌이 말한 누가 누구를선택할 수 있는가는 분명하다. 하인들이 주인이 되는 날에야 자기들에게 좋은 주인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에필로그에서 맛티는 강조한다.

현실은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누가 누구를?”

그러나 눈물을 아무리 훔쳐낸다 해도

물과 기름은 섞일 수 없으니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오직 눈물만 아까울 뿐.

이제 당신의 머슴들은 당신에게 등을 돌릴 때가 올겁니다.

좋은 주인을 머슴들은 곧 만나게 될겁니다,

그 사람들이 스스로 주인이 되는 날에야.

해학적이고 희극성 짙은 이 민중극은 계급투쟁의 칼날을 무섭게 숨겨 놓고 있다. 브레히트의 작품 중에 >푼틸라<만큼 익살스럽고 서정적이고 전원적인 분위기 속에 펼쳐지는 드라마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브레히트의 작품 중 가장 심한 이념적인 드라마를 내게 묻는다면 나는 별로 주저하지 않고 >푼틸라<를 떠올릴 것이다.

브레히트와 헬레네 바이겔(출처_구글)

브레히트 연출

1948년 도망치듯 미국을 빠져나온 브레히트는 취리히에서 >푼틸라<를 연출한다. 국적이 없었기에 정식 연출로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다. 잠시 공연이 중단되기도 했다. 공동저자로 넣기로 한 협약을 어겼기 때문에 부욜리요키가 법적으로 이에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었다.

브레히트는 1949년 동독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부인 바이겔(Helene Weigel. 1900-1971)과 함께 베를린 앙상블(Berliner Ensemble)을 창단한다. 이곳에서 >푼틸라<를 두 번이나 연출했다. 브레히트는 베를린 공연에서 푼틸라를 흉측한 대머리로 분장시켰으며 늙고 저속한 인상을 띄게 만들었다. 하지만 거의 모든 공연에서 푼틸라가 관객에게 호감을 주는 인물로 나타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연습중에 브레히트가 한 말은 모두 녹음되어 정리되어 있다: “1장에서 푼틸라가 술이 취했을 때는 정말 좋은 사람인가요?/그렇다면 술 취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경우와 어떻게 구별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자연에 대한 푼틸라의 감정은 순수한 것입니까? … (이와같은 연기자와 브레히트와의 대담은 [主人 푼틸라와 下人 맛티], 지만지 2017에 수록되어있다.)

브레히트 작품의 번역

제목을 [푼틸라씨와 그의 하인 마티]라고 번역된 경우도 있다. 내게는 너무나 실망스럽다. 미국판 “Mr Puntila and His Man Matti”((John Willett 옮김)을 그리 번역한 모양이다. 나는 주인과 하인의 관계를 더욱 분명하고 강조하기 위해 主人下人과 같이 한자로 표기했다. 그것이 이 작품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번역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가 언제 있으면 좋으련만!

샬(출처_구글)

한국초연

1993년 문예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랐다(박찬빈 연출). 우리는 베를린 앙상블의 공연을(비디오) 보았다. 연출가이며 배우이며, 브레히트의 사위이기도 했던 샬 (Ekkehard Schall 1930-2005)은 헬레네 바이겔과 함께 베를린 앙상블을 이끌었다. 1975년 공연에서 샬은 푼틸라를 코메디아 델 아르테” (commedia dell’arte) 풍의 분위기로 연기했다. 서울공연에서는 베를린에서처럼 자동차를 무대에 올리지는 못했지만 무대장치며 의상, 배우들의 동작선까지도 거의 똑같이 연출되었다. 3시간이 넘게 공연이 이어졌어도 관객은 지루할 겨를이 없었다. 다만 오후관객과 저녁관객이 서로 밀치며 나오고 들어가느라 극장입구가 너무 혼잡스러웠다. 배우들은(윤주상, 김학철, 정경순 등) 재미있는 민중극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무대나 객석이 마지막 장면의 의미를 찾기란 아직 역부족이었다. 브레히트가 이제 우리에게 아주 낯설지는 않았지만 깊숙이 다가가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였다.

*본 기사의 띄어쓰기와 맞춤법은 필자의 주장에 따라 국립국어원의 규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3 thoughts on “

  1. [主人 푼틸라와 下人 맛티] 작품에
    대한 상세하고 재미있는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이렇게 한 작품만 집중적으로 말씀해주시니까. 재미있습니다

  2. 맛티가 농장을 떠나는 장면을 보충설명합니다: “ 맛티는 주인이 술에 취하면 그나마 착한 사람이 되리라 기대하며 참고 농장에 머물고 있다. 보수도 아주 좋다. 주인의 딸과의 농짓거리도 재미가 솔솔하다. 애들이 딸린 노동자가 해고된다. 술에 취한 푼틸라는 복직을 약속한다. 협동조합애서 불매운동을 내세워 협박하며 “빨갱이”인 노동자의 복직을 반대한다. 그러자 술에서 깨어나기 위해 푼틸라는 커피를 마신다. 그것도 부족하자 목욕까지 한다. 복직은 물건너간다. 농장에 조금이라도 손해를 주면 어떤 경우에도 주인은 ‘착한 사람’이 될 수 없음을 맛티는 깊이 깨닫는다. 보따리를 싼다. “머슴이 주인이 되는 날”을 기약하며 맛티는 농장을 떠난다.“

  3. ‘머슴이 주인이 되면’ 좋은 세상이 올 것 같기도 하고 아닐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푼틸라가 한국에서 공연 되었다는 사실이 대단해 보입니다.교수님 아니면 누가 시도를 했을까 싶습니다.
    앞으로 푼틸라가 한국에서 올려질 수 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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