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위적이고 강렬한 빨간 색채의 오페라

작 : 오페라 빨간 바지
공연단체 : 국립오페라단
연출 : 최용훈
작곡 : 나실인
작가 : 윤미현
제작 : 국립오페라단
공연 일시 : 2020. 8. 29 (금) 네이버TV생중계 19:30
8. 29 (토) 15:00 KBS 중계석 녹화
1부 10. 8 (목) 01:00 / 2부 10. 9 (금) 01:00 방송
관극 일시 : 1부 10. 8 (목) 01:00 / 2부 10. 9 (금) 01:00 방송
출연 : 정성미, 김성혜, 엄성화, 양계화, 박정섭, 전태현
리뷰 작성 : 정윤희

전위적이고 강렬한 빨간 색채의 오페라

이 작품은 인상적이고 특이했다.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강렬한 붉은 빛깔이 무대를 채우고 있었고 배우들은 희번득한 눈빛으로 불길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복잡한 관계 속에서 서로를 속고 속이는 음모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빨간 바지는 강남 일대 땅값을 들쑤셨던 전설의 인물이자 당대 여자들의 롤 모델이었다. 빨간 바지 주변에는 빨간 바지가 되고 싶어 하는 가짜 빨간 바지들과, 그녀들과 비밀스러운 관계를 유지하며 음탕한 꿈을 꾸는 남자들이 머물고 있다.

인간의 욕망에 아주 조금의 아름다운 구석이 있다면 그것은 강렬한 빛깔과 부조리한 음색이 아닐까. 그리고 욕망의 끄트머리를 잡고 있는 가난하고 슬픈 이야기들이 빨간 바지가 되려는 그녀들의 마음속에 사연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부조리극의 요소를 지니고 있었던 오페라

오페라 ‘빨간 바지’는 70-80년대 강남에서 일어난 부동산 열풍을 소재로 하고 있다. 부조리극은 아니나 부조리극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우선 부조리한 상황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세대가 거듭나도 식지 않는 부동산 열풍이라는 현상 자체가 이 사회의 부조리이기 때문이다. 그 열풍의 주역인 빨간 바지와 그녀의 명의를 도용하기 위하여 인물들은 지속적으로 음모를 꾸미고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유채꽃’, ‘부두남’, ‘최기사’라는 이름의 등장인물들은 끔찍할 정도로 가난한 유년시절을 극복하기 위해 온몸으로 발버둥 치는 현대인들을 대변하고 있었다.

예측 불가능한 음률 속에서 간혹 피어나는 서정

무엇보다 이 작품이 부조리극의 인상을 강렬히 풍겼던 이유는 배우들이 들려주는 음악이 부조리했기 때문이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과도 같이 전개가 예측되지 않는 불길한 음률 속에서 간혹 아련한 추억 같은 대중가요의 음색이 나타나곤 했었다. 등장인물들이 벌이는 예측할 수 없는 음모 속에 그들의 아픔이 서려있듯이 말이다.

짙은 화장을 한 배우들은 붉은 욕망을 음산하게 드러내며 노래를 불렀다. 전형적인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의 목소리이건만 시시때때로 귀청을 자극했다. 워낙 예측이 어려운 음악이기에 그들이 곡을 찰떡같이 소화하고 있었는지는 필자로서는 판단이 어려웠다. 하지만 확실한 건 배우들의 연기는 노래 못지않게 큰 힘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음모와 고통을 드나드는 다중적인 현대인의 캐릭터를 잘 소화했다. 중계석의 카메라는 이들을 드라마를 연기하는 배우처럼 가깝게 잡고 있었지만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아무리 이 작품이 현대적인 이슈를 다루고 있다 해도 배우들의 연기력이 아니었다면 작품은 동시대성을 담지 못했을 것이다.

의상은 등장인물들의 정체성을 직설적이고 감각적으로 보여주었다. 피트가 딱 떨어지는 빨간 슈트와 굵고 높은 힐, 커다란 귀걸이, 붉게 칠한 손톱과 입술, 70-80년대 복부인을 상징하는 풍성한 머리, 그녀들의 내연남들이 가슴을 드러내며 걸치고 있는 비단 가운 등 막장 드라마에서 봤음직한 과한 의상들은 무대의 음산하고 불길한 분위기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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