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극협회 정책분과 1월 논평)
연극인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2014년 새해가 밝았다.
2013년 연말 한 대학생이 쓴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 한 장의 열풍이 뜨겁다. ‘안녕’이라는 질문 하나가 이렇게 큰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고 당사자도, 그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는 고등학생들과, 선생님, 학부모, 시민들 이 참여하여 한쪽에서는 대자보를 훼손하거나 철거하고 한쪽에서는 또 다른 ‘안녕’으로 화답하고 있다. 급기야 교장선생님이 제자를 경찰서에 신고하는 가슴 아픈 현실도 벌어졌다. 동시대의 정치와 사회를 견제하는 힘인 연극을 업으로 삶고 있는 연극인으로서,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좋은 일도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행동한다면 좋은 일이 일어 날 겁니다.”라면서 ‘안녕’을 묻고 답하는 모두에게, 그 작은 울림이 부디 건강한 논쟁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역사 발전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고단한 환경 속에서 연극작업에 인생을 헌신하고 있는 안녕 못한 연극인 모두에게 늦게나마 인사 말씀 드린다. 연극인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연극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었고, 연극은 시대의 얼굴이었으며, 연극은 시대의 진실을 전하는 목소리였다. 그런데 이 시대 이 나라의 진실을 전하던 연극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연극은 문화의 원동력이고, 예술 발전의 근간이었다. 하지만 연극은 침체되고 그 위상은 흔들리고 있으며, 이제는 생존의 위협마저 받고 있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렇듯 안녕하지 못한 연극의 현실에 이제는 우리 연극인이 지혜를 모아 함께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 연극의 안녕을 담보하지 못 할 것이다. 2014년에는 연극과 관련한 모든 기관과 단체에 우리의 안녕을 요구하는 하나된 목소리를 강하게 내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선 우리 연극인이 변화해야 하고, 그 변화를 위해서 반드시 이루어져야할 몇 가지 중요한 문제들을 거론 안 할 수 없다.
먼저 연극과 관련한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각 지역문화재단, 연극관련 시설 및 기타 지원기관들은 관주도의 폐쇄성과 독선에서 벗어나 더 이상 연극인을 배제한 정책수립을 중지해야 한다. 연극과 관련한 모든 정책결정에 연극인의 참여를 보장해야 하고 이와 함께 투명한 운영을 해야 한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며 문화예술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겠다면서, 지난 정부들이 시행했던 무수히 많은 문화정책들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수많은 연극인들과 연극단체들이 힘겨운 활동들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문화정책이 공허한 구호가 되지 않으려면 예술인들의 마음과 현실을 헤아리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둘째로,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정권 변화 때마다 예술관련 기관장이나 단체장들의 물갈이와 한쪽으로 치우친 코드맞추기식 인사를 중지하고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인사들을 균형감 있게 중용하여야 한다. 권력의 교체와 함께 예술계의 일부 세력들이 자기편과 상대편을 구분하고 서로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현재의 편중된 인사는 편중된 정책과 지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며, 그 위험성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공감할 것이다. 순수예술계에는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그중에서도 연극계의 체감 위기는 더욱 심각하다. 한국 현대사와 더불어 국민들과 애환을 함께해 온 전통의 극단들이 하나 둘 문을 닫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공공제작극장 시스템의 한쪽에서 민간 극단들과 대학로의 연극들이 마이너리티로 전락하면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고 있다. 매년 연극을 비롯한 예술 관련 대학 졸업생들 수 만 명이 변변한 일자리 하나 구하지 못해 비정규직 신세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중견 연극배우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이 작업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둥지를 구하지 못하고 때를 지어 옮겨 다니며 오디션을 보아야만 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과연 예술관련 기관장들과 단체장들은 이러한 현실을 알고는 있는 것인가. 중요한 것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려고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인가이다.
셋째로, 연극에 대한 성과나 평가 기준을 전면적으로 재고해야 한다. 단기적 성과 위주나 단순한 수치를 기준으로 한 평가는 결코 연극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직시하여야 할 것이다. 문화예술의 지원 효과가 발생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그 효과에 대한 명확한 평가 또한 그렇게 쉽지 않다. 올바른 예술의 가치를 세울 때에 예술인들이 걱정 없이 재능과 열정을 펼칠 수 있고 지속가능한 창작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점점 예술계가 승자독식의 세계로 변해가고, 흥행성공이 예술에 대한 모든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예술적 성과를 내세우기 앞서 진정한 문화예술의 시대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문화예술에 대한 건강한 비평과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단지 지원금을 나누어 주기 위한 방편으로 예술 활동을 심사한다면 결국 지원금 분배의 공정성 시비를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연극인 스스로의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연극의 품격을 해치는 타락한 상업주의에 오염된 연극을 탓하기에 앞서 우리 연극이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진정한 감동을 선사한다면 지금의 동숭동 대학로가 호객행위를 하는 유원지나 유흥가 같은 풍경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지금의 현실은 연극인들이 현실에 안주하며 영혼을 불사르는 창조의 고통을 겪지 않은 결과이다. 그동안 연극계는 세상을 이끌어낼 가치와 철학적 이슈를 생산하지 못한 채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만 있다. 연극행사만 요란할 뿐 진정한 연극은 찾아보기 드문 것도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어진다면 연극인들은 차디찬 연습실에서 그저 고독을 씹으며 좌절감만이 팽배해질 것이다.
문화의 가치와 위상을 높여 문화가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국가사회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문화기본법이 지난 연말에 통과 되었다. 이제 문화가 민주국가의 발전과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영역 중의 하나임을 인식하고, 문화의 가치가 교육, 환경, 인권, 복지, 정치, 경제, 여가 등 우리 사회 영역 전반에 확산될 수 있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그 역할을 다하며, 개인이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차별받지 아니하도록 하고, 문화의 다양성, 자율성과 창조성의 원리가 조화롭게 실현되도록 하는 것을 법으로 삼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문화보다 정치, 경제의 발전을 우선하였다. 정치, 경제가 발전하면 자연히 문화도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이를 정당화 해왔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 연극인들은 사회에서 보장되어야할 당연한 가치의 평가와 정당한 권리에서 소외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연극인들이 어려운 현실에 순응하면서 살아가기에는 우리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따라서 연극인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문화의 가치와 위상을 높이는 국가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국가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 2014년에는 우리 연극인들 스스로가 먼저 소통하고 더욱 더 강한 연대감을 가져야 한다. 우리 연극인들의 어려운 현실을 그 누구도 해결해 주지 못할 것이다. 사회가 바라보는 연극에 대한 시선이 그리 녹녹하지 않으며 그들 자신 또한 시대의 어려운 환경을 해쳐나가기에도 힘겨운 상황이다. 우리 연극인들의 문제는 연극인들 스스로가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해결하려고 하는 의지가 있을 때에야 비로써 해결될 것이다. 현실 순응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지금의 연극작업 환경 속에서 우리 연극인의 삶이 ‘안녕’하지 못한 상황이기에 다소 가슴 아픈 현실을 우리 연극인 모두가 단결하여 2014년은 변화의 해가 될 수 있도록 행동해야할 것이다.
우리 연극인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좋은 일도 생기지 않는다.
우리 연극인이 행동한다면 좋은 일이 일어 날 것이다.
2014. 1. 1.
서울연극협회 정책분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