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명 : 공개토론회 <문화융성과 대학로>
일시 : 2014년 12월 19일 (금) 14:00~16:00
장소 : 예술공간 SM
발제자 : 오세곤(순천향대 연극무용과 교수), 김성노(한국연극연출가협회 협회장), 이동준(서울연극협회 정책분과장)
주최 : 한국연극연출가협회, 한국연극배우협회, 서울연극협회, 대학로 포럼
한국공연예술센터의 역할 정립을 위한 제언
오세곤(순천향대 교수, 공이모 대표)
1. 극장의 권력
연극에서 극장은 필수 요소이다. 물론 그때는 극장이란 말 대신 무대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연극의 3대 요소로 배우, 관객과 함께 포함되는 무대는 배우와 관객이 만나는 장소 전체를 사용하기에 결국 극장을 뜻한다. 물론 이때의 극장이 반드시 건물로 이루어진 극장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배우와 관객이 만나서 뭔가를 보여주고 그걸 보며 이해하는 연극 행위가 일어난다면 하다못해 길거리 옆 작은 공터라도 극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극은 건물에 들어앉은 좋은 극장을 선호한다. 1970년대만 해도 서울에서 연극을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물론 극단의 수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 적은 수의 극단이 공연하기에도 극장은 턱없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공연 기간이 보통 며칠에 불과했고 길어야 1주일 정도였다. 서울연극협회 등록 극단이 200개를 훨씬 넘고 대학로 소극장 수가 150개를 넘는 현재의 상황을 생각하면 참으로 믿기 어려운 역사라 하겠다.
그러나 숫자만 많을 뿐 대학로의 소극장들은 대부분 환경이 열악하다. 원래 공연장을 염두에 두지 않은 지하실 등을 개조한 결과 천정이 낮고 무대 옆 공간도 거의 없다. 더욱이 환기가 잘 안 돼서 공기가 나쁘고 좁고 가파른 계단은 위험하기 짝이 없지만 화재를 대비한 비상구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공연을 하는 이들이나 공연을 보러 오는 이들이나 모두 불편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작더라도 공연 조건이 완벽하고 관극 환경이 쾌적한 극장은 우리에게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사정이 이러니 극단마다 모두 1년에 한두 번이라도 시설이 좋은 극장에서 공연하기를 원하지만 그것은 결코 만만치 않다. 우선 웬만큼 시설을 갖춘 극장은 대관료가 엄청나게 비싸다. 그러니 확실한 흥행 요건을 갖추지 않고는 그런 공연은 시도하기 어렵다. 그래서 시설이 좋으면서도 대관료가 저렴한 공공극장을 선호하지만 거기에 선택되려면 중요 연극제에 초청받는 정도의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결국 공공극장은 일종의 권력이 된다. 서울의 대표적인 공공극장은 한국공연예술센터이다. 아르코 대극장과 소극장은 오랫동안 문예회관 대극장과 소극장으로 연극인들의 사랑을 받았고 비록 그에는 못 미치지만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과 소극장도 연극인들에게는 꼭 서보고 싶은 무대이다. 이렇게 4개 극장 외에도 몇 개의 극장을 더 임대해서 연극 단체들에게 대관해 주고 있으니 한국공연예술센터는 서울 연극계에 활력을 제공하는 심장과도 같다.
그러다 보니 한국공연예술센터는 자체 기획 공연을 하지 말고 순수 대관으로만 운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꽤 높은 편이다. 예를 들어 대극장은 1주일, 소극장은 2주일 기준으로 대관을 할 경우 수리 등으로 휴관하는 일정으로 4주 정도를 빼더라도 대극장은 1년에 약 50단체, 소극장은 25단체에 기회를 줄 수 있으니 4개 극장을 다 합치면 적어도 150단체가 1년에 한 번씩은 시설 좋은 공공극장 공연을 시도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물론 각종 페스티벌과 무용이나 일부 음악 공연까지 수용해야 하는 입장이므로 이 수치가 그대로 연극 단체에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또한 이런 생각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도 많다. 우선 대극장 1주일, 소극장 2주일이라는 기간에 대해서 그래서는 결코 제작비 대비 수지를 맞출 수 없다는 기획 차원의 지적이 만만치 않다. 즉 그렇게 많은 단체들에 골고루 기회를 주기보다는 그래도 어느 정도 능력이 되는 단체들에 좀 더 긴 기간 대관해 주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더해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공공극장이기 때문에 엄격하게 능력을 검증해서 대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논리도 나름의 설득력을 지닌다.
그러나 아직 누구나 인정할 만한 선정 기준을 정립하지 못 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은 계속 불만의 원인이 되고 있으며, 아직 기획력과 지명도를 지니지 못 한 젊은 단체들의 경우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할 기회조차 얻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즉 시설 좋은 극장이 충분하지 못 한 상황에서라면 선택과 집중보다는 가능한 한 넓은 기회 부여로 만에 하나 사장될지 모르는 예술적 가능성을 살리는 쪽이 안전하지 않을까 싶다.
본 발표자도 2013년 문화부 기관평가에 참여하여 한국공연예술센터를 평가한 바 있는데, 그 때 공식 컨설턴트로서 같은 내용의 조언을 한 적이 있다. 즉 한국공연예술센터는 기획 공연을 하기보다는 순수 대관으로 방향을 잡고 오히려 그 우수한 기획력으로 일반 대관 팀의 최대 취약점이라 할 수 있는 기획, 홍보, 마케팅 부분을 적극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분명하게 전달하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정부의 공식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컨설팅임에도 불구하고 이후 이러한 조언이 반영된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극장은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극장이 바로 작품은 아니기 때문이다. 극장이 작품에 큰 부담을 주는 까다로운 조건이 되기보다는 직품을 살리는 호의적인 요소가 될 수는 없을까? 한국공연예술센터 같은 공공극장이 많은 단체들에게 기회를 부여하며 가장 취약점인 기획력에 도움을 주는 상황은 기대할 수 없을까? 그래서 경제에 치이고 제도에 치인 연극인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는 없을까? 연극적 기량만 있으면 누구나 활짝 피어날 수 있는 연극인들이 행복한 그런 연극 동네를 꿈꿔 본다.
2. 서울연극제의 대관탈락 사태와 공공극장
서울연극제가 한국공연예술센터 대관 심사에서 탈락하였다. 참으로 믿기 어려운 사실이다. 마치 광복절 행사를 세종문화회관에서 하려는데 서울시가 대관 탈락을 통보한 셈이다. 이런 문제가 있으면 협의해서 해결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적어도 중요한 행사가 차질을 빚는 것은 다 함께 나서서 막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옳다.
논리란 때로 허구적이다. 극장에서 대관 공고를 내고, 대관을 원하는 단체나 기관이 신청을 하고, 들어온 서류를 원칙대로 심사하여 대관 결정을 하는 것은 너무도 논리적인 절차로 보인다. 신청이 미달이 아닐 경우 탈락자가 나오는 것도 지극히 당연하다.
서울연극협회가 서울연극제 때 사용하겠다고 대관 신청을 했다. 신청을 한다는 것 자체가 앞서의 절차적 논리를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탈락을 하자 반발한다. 정해진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도 소용이 없다. 엄격한 심사 과정에 대해서도 강한 불신의 태도를 보이며 다시 살려내라고 생떼를 쓴다. 그야말로 비논리적 억지의 극치이다.
이상이 형식 논리 차원에서 본 이번 사건의 전말이다.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논리적으로 서울연극협회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내용을 아는 우리가 보면 이건 황당한 말장난일 뿐이다. 원칙은 사람이 정한다. 원칙은 일에 맞게, 일이 잘 되도록 정하는 것이다. 서울연극제가 대관 탈락이 될 수 있는 원칙이라면 그건 잘못 정해진 것이 분명하다. 만약 서울연극협회의 소홀함이 있었다면 그건 담당자를 처벌하고 미비점을 보완하도록 할 일이다. 그러나 서울연극협회로서 가능한 노력을 다 했어도 채울 수 없는 대관 기준이라면 그 기준을 바꿔야 한다.
서울연극제의 전신인 대한민국연극제가 생기고 몇 년 안 돼 문예회관이 개관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서울연극제는 당연히 거기서 하는 거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행정 편의를 위해 절차를 밟아달라는 협조 요청이 있었을 것이고, 별로 심각하지 않은 요식행위라 생각하고 요청에 응했을 것이다. 아마 그 동안 대관 심사위원들도 미리 서울연극제 기간으로 표시된 달력을 놓고 심사를 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문예진흥원이, 이후 문화예술위원회가, 또 그 이후 한국공연예술센터가 직접 기획을 하겠다는 야심을 품으면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심사위원들에게 제공되는 달력에 공란이 점점 줄어들게 된 것이다.
기획 공연은 심사위원들에게는 불가침의 영역이다. 그런데 서울연극제는 형식상 심사 대상으로 되어 있다. 며칠 안 남은 공백에서 그나마 서울연극제 같은 고정 행사를 빼고 나면 일반 단체에 나눠줄 여분은 거의 없다. 그래서 때로 예술적 수준도 높지 않으면서 날짜만 차지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반면에 기획 공연은 아예 대관 선정 발표 목록에서 빠져 있으니 불만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물론 본질을 제대로 볼 줄 안다면 기획 공연의 폐해를 지적하겠지만 우리 연극계에 그런 속사정을 밝혀낼 만큼 행정에 밝은 사람은 별로 없다.
사실 기획 공연을 허용한 것부터 잘못이다. 법적인 허가권을 갖고 있지 않다 해도 실제 그걸 허용하고 말고는 연극계가 정할 일이다. 또 서울연극제 같은 연극계 대표 행사에 대해 대관 심사제도의 적용을 수용한 것도 잘못이다. 그건 처음부터 심사 대상이 아니라 협의해서 함께 결정하든지 아니면 결정 내용을 통보해 주는 방식이 되었어야 옳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또 정부산하기관 등과 일을 할 때 책임자들에게 자주 하는 조언이 있다. 민간 전문가들로부터 제대로 된 자문이나 심사를 받으려면 정말 마음을 비우고 가능한 한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강변하면 공무원이건 산하기관 직원이건 누구 하나 틀렸다 하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실제로 그걸 지키는 경우는 거의 볼 수 없다. 그만큼 힘들다는 얘기다. 왜냐 하면 그렇게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나면 십중팔구 자기들의 잘못까지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렇게 자신의 잘못까지 드러날 각오를 하고 자문을 받고 심사를 맡기지 않으면 모두 허구적 논리를 바탕으로 하는 기만적 요식행위일 뿐이다.
이번 사태에서 심사위원들이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약자이고 피해자이다. 물론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한 잘못은 있지만 그건 연극계 전체에 해당되는 어리석음이므로 그들만을 비난할 수 없다. 결국 그들은 철저히 이용당한 것에 불과하다. 정보도 안 주고 심사를 하라 해놓고 그 결과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우는 꼴인 것이다.
가장 비난받을 대상은 한국공연예술센터와 문화예술위원회일 것이다. 이런 행사는 형식상 신청을 받기는 하지만 심사해서 탈락시키고 말고 할 수는 없다는 가장 중요한 정보를 주지 않은 채 원칙대로 엄격하게 심사해 달라는 주문만을 했을 것이다. 심사위원 중 일부가 원칙대로 하면 서울연극제가 탈락하는데 그건 곤란하지 않느냐고 할 때도 담당자는 엄정한 심사만을 주문처럼 되뇌었을 것이다.
이에 더해 탈락시킬 수밖에 없는 정보를 집중적으로 제공했을 수도 있다. 이번 사태 뒤 나온 한국공연예술센터의 해명을 보건대 이전 서울연극제에서 발생한 몇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아마도 특별 초청 공연이나 모금 행사 등이 문제가 되었던 것 같다. 여기서 그런 공연이나 모금의 내용과 성격이 공익에 반하는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으니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만약 공익에 반하는 것이라면 그건 한국공연예술센터가 아니라 연극계 전체가 나서서 성토하고 바로잡을 일이다. 문제는 공익에 부합하면서 대관 원칙에 어긋날 경우일 텐데 이건 협의를 통해 해결하거나 심지어 원칙을 조정해서 수용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심사위원들에게 과연 이런 부분을 어떻게 설명했는지 대단히 궁금하다.
지금의 아르코극장, 즉 문예회관을 지켜온 건 연극인들이다. 더욱이 대학로극장은 이미 상가로 팔려 공사 중인걸 오로지 연극인들의 노력으로 살려낸 것이다. 대학로의 유일하게 남은 빈 공간을 반드시 공공극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연극인들의 의견이 무시되고 상가로 팔리기까지 아무 노력도 안 한 것이 당시 정부와 문화예술위원회였다. 그러나 연극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 극장을 사용할 주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극장들의 주인은 당연히 연극인이다. 그런데 그 극장을 잘 관리하라고 맡겼더니 그 관리인이 완전히 주인 행세를 한다. 뭐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것이다.
이제 주인으로서 다시 질서를 잡아야 한다. 서울의 연극단체들은 모두 한국공연예술센터의 극장들을 원한다. 1년에 단 한 번이라도 그 무대에서 공연하고 싶어 한다. 여러 번 강조했지만 한국공연예술센터는 절대 기획 공연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보다는 가능한 한 많은 단체들이 골고루 쓸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그 우수한 기획력을 이용하여 일반단체들의 기획 홍보 마케팅을 지원해야 한다. 물론 서울연극제도 함께 노력해서 더 성공적인 행사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연극을 진정한 주인으로 세우고 봉사하는 것이야말로 문화예술위원회와 한국공연예술센터가 갖춰야 할 최우선의 자세일 것이다. 그렇게 진정한 봉사가 이루어질 때 그 종사자들도 직업인으로서의 참된 행복과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적어도 주인이 아닌 사람들이 주인 위에 군림하면서 느끼는 병적으로 왜곡된 쾌감에서는 빨리 해방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연극도 살고 그들도 건강해지는 일석이조의 일이 가능해질 것이다.
마침 현 정부가 내세우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주객이 전도돼 있는 우리 연극계에서 우선적으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3. 해결을 위한 제언
갈등은 때로 에너지가 된다. 이번 사태는 그간의 소통 부재가 곪을 대로 곪아 터진 경우라고 생각한다. 이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물론 무조건 빨리 봉합하려고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모든 문제가 낱낱이 드러나도록 한 뒤 하나하나에 대해 단기적인 처방과 근본적인 대책을 함께 찾아야 한다.
우선 단기적 처방을 위해 이번 정기대관 심사 결과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각 극장 별로 대관 결정 일수와 잔여 일수를 조사해 보았다.
아르코 대극장 |
아르코 소극장 |
대학로 대극장 |
대학로 소극장 |
합계 |
|
연극 |
42 |
97 |
91 |
191 |
421 |
무용 |
174 |
57 |
28 |
15 |
274 |
다원 |
24 |
13 |
8 |
45 |
|
합계 |
216 |
178 |
132 |
214 |
740 |
잔여 |
149 |
187 |
233 |
151 |
720 |
물론 잔여일수의 정확한 용처는 알 수 없다. 또 주말과 주중 사이의 선호도 차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치상으로 볼 때 거의 절반 정도가 미결정으로 남아 있는 상태라면 한국공연예술센터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서울연극협회에서는 모든 해결의 전제로 한국공연예술센터 측의 잘못 인정과 사과를 요구한다. 한국공연예술센터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근본적인 잘못에 대해서는 앞서 지적한 바 있다. 모름지기 ‘공공’의 이름을 달고 있는 기관이나 사람들은 ‘잘못 인정’이나 ‘사과’에 있어 대단히 적극적이어야 한다. 민간을 상대로 잘못을 인정하면 밀리는 거고 그럼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은 틀린 생각이다.
동시에 서울연극협회도 혹시 협조 가능한 부분에 대해 소홀히 한 점은 없는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아무리 당연히 대관이 되어야 한다지만 협조적인 분위기는 상호 노력해서 유지해야 하는데 너무 일방적으로 달려가지는 않았는지 세밀히 살펴서 개선 의지를 밝혀야 한다. 이에 있어 원칙에 맞추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그것에 대하여 충분히 설명하고 함께 노력하여 그 원칙을 수정하자고 제안했어야 옳다. 만약 그런 제안이 바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범 연극계 토론 등을 통하여 분위기를 조성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국공연예술센터가 공지사항에서 밝힌 대로 “2015년도 정기대관공모에는 총 197건(연극 85건, 무용 87건, 다원 12건, 뮤지컬 8건, 행사 등 기타 5건)의 신청이 접수되었으며, 심의결과 총 71건(연극 20건, 무용 45건, 다원 5건, 뮤지컬 1건)이 선정”되었다.
전체적으로는 2.77대 1이고, 연극은 약 4.25대 1, 무용은 1.93대 1의 경쟁률이다. 뮤지컬은 수치상으로는 8대 1이지만 비상업적인 작품이라면 연극에 포함시키면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아예 대관 대상이 안 돼야 하므로 논외로 하든지 오히려 유일하게 포함된 1작품이 과연 어떤 건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신청 현황은 현장의 요구를 반영한다. 연극단체로 대관 신청을 냈다 탈락한 65건은 과연 어떤 결격 사유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잔여 일수로 보아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 평가에 의해 탈락시켰다고 보아야 하는데, 그렇다면 연극의 발전을 위하여 많은 연극단체들이 반성해야 할 점으로 분명하게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 이유가 타당하다면 연극단체들은 겸허하게 수용하여 이후 절대적 기준을 넘을 수 있도록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에 한 가지 더 부언하자면 연극과 무용의 차이에 대해서다. 건수로 보면 연극은 20건, 무용은 45건으로 무용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대관 일수로 보면 연극은 421일이고 무용은 274일로 연극이 훨씬 많다. 아마 이렇게만 보면 연극과 무용이 공평하게 나누어 쓴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각 예술 장르는 나름의 성격이 있고 그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도 다르다. 즉 연극은 어느 정도 기간을 갖고 공연하는 데 반해 무용은 대부분 아주 짧은 공연 기간으로 이루어진다. 아마도 대관 건수가 아닌 작품 수로 보면 무용은 다시 또 몇 배로 늘어날 것이다. 하루에도 여러 편을 묶어 공연하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형평성이란 말은 때로 유익하지만 조금이라도 잘못 적용되면 대단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더욱이 예술처럼 예민한 현장에 그것을 적용할 때는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 옛날 신화에 나오는 강도처럼 사람을 침대에 눕혀 늘려 죽이거나 절단해 죽이는 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연극 관련 20건을 보면 우선 아시테지가 3건(아르코 소극장 7일, 대학로 대극장 14일, 대학로 소극장 14일), 연출가협회 2건(아르코 소극장 9일, 대학로 소극장 9일), 2인극 페스티벌 1건(아르코 소극장 23일)이다. 그러니까 일반 극단은 14건에 불과한 셈이다. 그런데 그 중 특기할 만한 내용이 있다. 우선 주식회사 신시컴퍼니가 연극에서는 유일하게 아르코 대극장을 대관 받게 되었다. 그것도 42일이라는 최장기간이다. 과연 어떤 기준에 의거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았는지 역시 공개되는 것이 옳다. 아울러 뮤지컬 중 유일하게 선정된 건수를 보면 주식회사 이다엔터테인먼트가 대학로 대극장을 21일간 대관 받을 수 있게 되었는데, 대학로의 대표적인 상업 공연 기획사라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하다.
공공극장에는 국민의 세금이 대거 투입된다. 상업적인 공연이 공공극장에 맞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지 이번 대관 심의 결과는 기획 능력이 뛰어난 두 단체에 특별히 호의적인 것으로 보인다. 만약 대관 심의 규정상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면 그 규정을 손봐야 할 것 같다. 공공극장으로서 한국공연예술센터의 역할에 대한 깊은 고민과 그것을 토대로 한 역할 정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 문예진흥원을 문화예술위원회로 전환할 때 연극계는 어느 예술장르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움직였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그 때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는지 이유를 찾기 어렵다. 독임제 위원장 시절보다 민간 예술 현장의 의견이 골고루 반영되리라는 그 때의 희망은 과연 실현되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경직되고 더 관료화된 부정적인 방향으로 퇴보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우리나라 예술 발전을 위해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마찬가지로 한국공연예술센터에 대해서도 현장의 필요가 올바르게 반영되어 진정 공연에술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과연 어떤 체제를 갖춰야 할지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 모든 것에 대해 고민하고 분명한 대책을 찾기 위한 ‘범공연계 논의기구’의 구성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