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 보고
안녕하세요?
오세곤입니다.
저는 2017년 5월 1일자 ‘오늘의 서울연극’ 제79호 발간과 함께 편집인의 직을 사퇴하였습니다. 매체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편집인의 글에 사과문을 게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장본인으로서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되었던 1월 2일자 제75호 편집인의 글 “투명한 인사로 법의 의미 정립을!”에 대하여 그 동안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 글에 어떤 논리적 결함이 있었는지는 사과문을 통해 이미 밝힌 바 있습니다만, 무엇보다도 한 순간의 경솔함으로 정작 문제 삼고자 했던 예술계 공직자 인선의 비합리적 관행에 대한 지적이 무색해진 점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이 글로 인한 명예훼손 형사 고소는 취하되었고 경찰에 출두는 했지만 정식 조사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사립교원으로서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고 또 겸직에 관한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징계가 예정되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외적인 과정의 부담은 제 스스로 느끼는 자책감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일은 그 동안 제가 살아온 연극 인생 전체를 되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론은 1992년 학위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연극계에 뛰어들던 때의 순수한 열정은 사라지고 어느덧 수많은 직함을 내세우며 거들먹거리는 연극계의 기성 권력이 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깊은 고민 끝에 그 동안 맡고 있던 직책들을 가능한 한 내려놓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우선 ‘오늘의 서울연극’ 편집인 사퇴 후 송형종 서울연극협회 회장을 만나 ‘서울연극인대상’ 운영위원장에 대하여 사의를 표하였습니다. 동료 연극인들을 평가해서 시상하는 책임은 제게 걸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5월 31일자 열린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임시이사회에서 상임이사직을 사퇴하였습니다. 물론 사전에 박정자 이사장님을 만나 저의 뜻을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하는 과정을 거친 뒤에 이루어진 공식 발표였습니다.
사실 상임이사직 사퇴는 이전부터 깊이 고민하던 일이었습니다. 2017년 1월 26일 한국연극인복지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밝힌 바 있지만, 2015년 7월 ‘찾아가는 연극’의 선정 단체를 결정하는 심의 도중 내려온 문체부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 하고 일부 단체를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도록 한 것은 상임이사로서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더욱이 그렇게 부끄러운 경험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2015년 10월 공연계 검열에 반대하는 성명 발표에 앞장섰던 일은 제 스스로에 대한 문제의식이 얼마나 취약했으며 그로 인한 자기모순과 타당화의 정도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즉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상임이사직 사퇴는 위의 명예훼손 피소가 결단의 계기이긴 하지만 이미 필연적으로 결행해야 할 당연한 일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그 동안 너무 오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너무 많이 덕지덕지 껴입고 살았다는 생각입니다. 이에 깊이 반성하며 앞으로는 연극계에 누를 끼치지 않고 티끌만큼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그간 이런 저런 일로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이만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2017년 6월 1일
오세곤 올림
이 시대에 진정 이만한 반성과 비움을 실천한 분을 보지못했습니다. 작금의 불렉리스트 상황이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나의 눈의 티끌까지 보이며 광장에 홀로 설수 있는 용기는 뼈속까지 그 본질에 다다른 이의 용기라 생각됩니다.
오세곤선생님!
이젠 무대에서 숨쉬고, 생각하고, 노래하며 그 아름다운 용기를 보여주세요.
당신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