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늘푸른연극제 공연총평 & 제 10회 남해섬 공연예술제 평/ 박정기

2017 늘푸른연극제 공연총평

 

한국연극협회(이사장 정대경)에서 지난해 개최한 <원로연극제>의 축제 명을 <늘푸른연극제>로 변경해, 한국 연극계에 기여한 원로연극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행사로 오현경, 김도훈, 노경식, 이호재 등 4인의 원로선생의 대표작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연극잔치를 마련했다.

행사는 2017년 7월 28부터 8월 27일까지 1개월간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봄날> <유리동물원> <반민특위> <언덕을 넘어서 가자> 순으로 공연되었다.

필자는 네 작품 모두 첫날 관람했기에 공연을 관람한 차례대로 평을 게재한다.

 

 

1, 극단 백수광부의 이강백 작, 이성열 연출의 <봄날>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늘푸른연극제(위원장 정대경) 첫 번째 작품인 극단 백수광부의 이강백 작, 이성열 연출의 <봄날>을 관람했다.

이강백(李康白, 1947 ~)은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다섯’이 당선되어 극작가로 활동을 시작하고, 이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 장막희곡에 입선해 극단 ‘가교(架橋)’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현대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희곡과 70년대 군사정부의 상황 하에서 민중의 억눌린 삶을 우화적(寓話的)으로 표현하는 희곡을 써서 서울극평가그룹상, 동아연극상, 대한민국 문학상, 서울연극제 희곡상, 백상예술대상 희곡상, 대산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작품으로는 <심청> <황색여관> <내마>,<쥬라기의 사람들>,<호모세파라투스>,<봄날>,<칠산리>,<동지섣달 꽃 본 듯이>,<북어대가리>,<불 지른 남자>, <물고기 남자>, <느낌, 극락 같은> 등 다수가 있고, 평론집 <교회와 축제>가 있다.

이성열은 연세대 사학과에 입학해 연희극예술연구회에 들어가며 연극을 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극단 목화(대표 오태석)에서 연기와 연출을 배우고, 제대를 해서는 극단 산울림(대표 임영웅)에서 연출을 익히며 산울림 소극장의 극장장을 맡기도 했다.

연극으로는 <아버지와 아들> <햄릿아비> <벚꽃동산> <과부들> <봄날> <여행> <그린 벤치> <자객열전> <미친극> <키스> <야메의사> <굿모닝? 체홉> <햄버거에 대한 명상>과 무용극은 <비천사신무> <두 도시 이야기> <유랑> <운수좋은 날>, 음악으로는 <톨스토이 IN Music> <드라마가 있는 음악회> <파가니니&리스트> ‘,죠르쥬>, 오페라는 <손탁호텔>(협력연출) 등을 연출했다.

1998 한국백상예술대상 “신인연출상” <굿모닝? 체홉>, 2005 서울연극제 “연출상” <Green Bench>, 2007 김상열 연극상 <물고기의 축제>, 2009 서울연극제 “연출상” <봄날>, 작품상으로는 1997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Best 3” <키스>·

2004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Best 3″ <자객열전>· 2005 올해의 예술상 “연극부문 최우수작품상” <Green Bench> 서울연극제 “우수상” <Green Bench>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Best 3″ <여행>, 2006 서울연극제 “우수상” <여행>, 2009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Best 3” <봄날> 2013 이해랑연극상 등을 수상했다.

<봄날>을 극단 성좌의 권오일 연출로 초연된 이래 경향의 각 극단에서 공연을 했고, 인천시립극단의 이종훈 연출, 정 현 주연의 <봄날>이 필자의 기억에 생생하다.

<봄날>은 이 희곡이 집필된 당시(1984년)의 정치적 상황과 민중의 삶이 바탕에 깔려있다. 비민주적인 정치상황하에서 민중의 타오르는 분노를 꺼질 줄 모르는 산불로 묘사하기도 했고, 한번 붙잡으면 종신토록 놓지 않으려 했던 집권 욕을 희곡 속에 은유적(隱喩的)으로 표현하기도 해 주목을 받았다.

2009년부터 공연이 계속되는 극단 백수광부의 <봄날>에서는, 이미 민주주의가 이 땅에 정착되고, 아비세대가 이루어놓은 공과를, 게으르고 입만 가지고 사는 자식들이, 빼앗거나 도적질해 가려는 모습에서, 포퓰리즘이나 국민이라는 단어를 들먹이며 정권찬탈의 야욕만 보이고, 애국심이나 미래를 향한 비전은 원거리에 있거나 아예 없어 보이는, 정치권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듯하여, 시기적절하고 안성맞춤의 공연이 되었다.

무대에는 초가 한 채를 상수 쪽으로 지어 놓았고, 잎이 없는 나무 한 그루가 뒤에 바짝 붙어있다. 또한 배경 전체를 거대한 반원형의 화폭처럼 만들어 놓고, 초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르막길을 만들어 산길로 설정하고, 언덕 입구와 중간에 바위 조형물을 배치했다. 초가는 하수 쪽에 아버지 방, 중앙에 마루와 장남 방, 그리고 상수 쪽에 형제들 방이 있다. 마루 오른쪽에 부엌이 있고, 하수 쪽 집 뒤로 통하는 길은 곡간, 상수 쪽 집 뒤로 통하는 길은 우물이 있는 것으로 설정된다.

연극은 도입에 초가 앞에 누리끼리한 옷을 걸치고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다섯 아들의 허기진 모습과 초가지붕에 잠시 모습을 드러낸 수탉, 그리고 구렁이운운하며 잡아먹자는 대화로 춘궁기임이 들어나고, 바구니에 쑥을 캐어오는 장남과 심한 기침을 하며 등장하는 막내의 모습에서 7명의 아들이 있는 가족임을 알 수가 있고, 아버지는 홀아비이고 외출 중이라는 것과 봄 가뭄으로 인근 산에 산불이 났다는 것이 객석에 전해진다. 장남은 아우들에게 어미노릇까지 하는 자상함이 들어나고, 아우들을 독려해 농사준비를 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아우들은 천성이 게으른데다가 저마다 다른 어미에게서 태어났음이 객석에 소개된다. 산불이 계속 번지니, 부근 산사의 승려들이 불을 피해 떠나면서 동녀(童女)를 맡기고 간다. 백발의 아비가 귀가를 하고, 먹을 것을 사올 것으로 기대하는 아들들에게 아비는 공복에 회충약을 먹이고, 농사일을 하라며 내쫓는다. 아비는 장남에게, 나이 들면 동녀를 품고 자는 것이 건강과 장수의 비결이라며, 이웃 무녀의 딸을 보리 세말에 사오면 어떨까 하고 묻는다. 그 때 막내가 얼굴이 빨개져 등장하고, 승려들이 맡기고 간 동녀를 목욕을 시키려 하니 동녀는 어린여아가 아니라, 가슴이 봉긋한 처녀임이 밝혀진다. 아비는 처녀를 품고 자기로 결정을 하고, 처녀에게 마음을 둔 막내는 아비의 뜻을 거역하지 못하고 못내 서러워한다. 다음날 늦잠을 자는 아비를 두고 아들들은 기이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 까닭이 스님이 두고 간 동녀 때문임을 알아차리고, 아비가 일을 시키지 않으니, 자발적으로는 농사를 지으러 갈 필요가 없다는 의지를 들어내고, 놀이를 시작한다. 아들들의 놀이에서 서정주, 김춘수, 이 상, 김소월, 허영자 시인의 <봄날>과 관련된 시를 읊조리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며 재주를 펴는 장면은, 힘든 일은 뒷전이고 놀이나 집회에는 앞장서는 일부 젊은 세대를 들여다보는 것 같아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공연자체는 문학적으로 한 단계 상승되는 느낌이다. 무녀를 만나려고 아비가 장남과 함께 외출을 한 사이 막내를 제외한 다섯 아들은 아비 방의 구들 밑, 항아리 속에 감춰둔 돈을 탈취해 집에서 달아날 흉계를 꾸미고, 구렁이를 잡아 가마솥에 과놓고, 송진을 끓여서 아비를 기다린다.

귀가 길에 장남은 장성한 아우들에게 땅을 나누어주도록 막무가내 하는 아비를 설득시키고 아비를 업고 흥겨운 마음으로 귀가한다. 그러한 아비나 장남의 의사와는 정반대의 사태가 아우들에 의해 야기된다. 아우들은 돌아온 아비에게 젊어지고 주름이 펴진다는 말로 아비에게 구렁이탕을 마시게 하고 송진을 눈에 바르도록 한다. 송진이 굳어 눈을 못 뜨는 아비 앞에서 아들들은 돈 항아리를 파내 들고 제각기 뿔뿔이 흩어져 도망을 한다.

장면이 바뀌면 아들들은 각자 자신들의 일을 하면서 아비에게 안부를 전하는 광경이 펼쳐진다. 그러나 이 장면은 집을 떠난 아들들에게 바라는 아비의 마음이라는 것이 알려진다.

대단원에서 따사로운 <봄날> 초가마루에 앉은 아비는 빨래를 너는 동녀에게 막내아들의 행방을 묻는다. 승려들이 맡기고 간 동녀는 이제는 막내의 아낙이 되어있고, 아낙이 신 것이 먹고 싶다고 해, 막내가 복숭아를 따러 갔다는 소리를 들으며, 아비는 며느리의 임신사실을 알게 된다. 마침 승려들이 절로 되돌아가는 길에 동녀에게 함께 가자고 이르지만, 동녀는 이 집 며느리가 되었다며 이 집을 떠날 수가 없노라고 배웅의 합장을 한다. 아비는 손자의 탄생을 상상하며 즐거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집 떠난 아들들을 그리워하고, 울타리 같은 배경에 세월의 흐름을 나타내는 영상투사와 함께 아들 각자가 나름대로의 직업에 종사하며, 신문에 난 집 떠난 자식을 애타게 찾는 부모의 기사를 모두 함께 읽는 장면과 아비에게 다가가는 장남의 모습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오현경 선생이 아비 역을 일생일대의 명연으로 다시 한 번 객석에 감동을 전달해 갈채를 받는다. 장남 역의 이대연의 출중한 기량은 천년을 이어온 이 땅의 효(孝)의 표상으로, 의연하고 의젓한 연기를 펼쳐 극의 대들보 역할을 한다. 차남 역의 유성진은 아우들을 이끄는 선동자로서의 역할을 발군의 기량으로 표현하고, 김효중, 조재원, 양윤혁, 문법준, 하동기, 등 아들들의 독특하고 탁월한 성격창출로 객석으로부터 갈채를 받는다. 처녀 역의 이하늘이 붓꽃 같은 자태로 객석에 꽃 향을 전달시키고, 목탁소리와 함께 음성을 전달한 민병욱, 심재완, 윤상원은 스님다운 음성전달로 객석의 합장(合掌)을 이끌어 내는 듯싶기도 하다.

김효영(생황) 민지선(생황) 김보미(해금) 장연정(해금), 허윤정(가야금), 한덕규(타악) 김동욱(기타, 건반, 베이스) 등의 연주가 극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분위기 상승을 주도한다.

무대 손호성, 조명 김창기, 의상 이수원, 음악 박승원, 분장 이동민, 소품 주미영, 영상 박 준, 조연출 김현중 김경회, 무대감독 김은선, 조명어시스트 이명진, 조명팀 신동선 홍유진 정주영 정하영 유보민, 분장팀 하우연 박혜솔, 의상팀 박인선 최은영 문주은, 소리지도 김율희, 무대감독보 김인수 이도형, 기획 이정은 서동연 등 스텝진의 기량과 열정이 하나가 되어 늘푸른연극제(위원장 정대경) 첫 번째 작품인 극단 백수광의 이강백 작 이성열 연출의 <봄날>을 명작연극으로 창출해 냈다.

7월 28일

2, 극단 뿌리의 테네시 윌리엄스 작, 김도훈 연출, 김정근 협력연출의 <유리동물원>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늘푸른연극제(정대경 위원장) 극단 뿌리의 테네시 윌리엄스 작, 김도훈 연출, 김정근 협력연출의 <유리동물원>을 관람했다.

김도훈(1942~) 선생은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경남고등학교와 서라벌예술대학 출신의 연출가로, 1990~1991 서울 연출가 그룹회장, 1998~2000 거창국제 연극제 조직 위원장, 2001~2005 영호남 연극제 조직위원장, 2001~2002, 2015 거창국제연극제 예술 감독 겸 심사위원장을 역임했다.

한국 연극 예술상 수상(주최: 한국연극협회 1987.10), 서울 연극제 대상 및 연출 상 수상(1992.), 서울 연극제 대상 및 연출상 수상(1997), 예총 예술 문화상 대상 수상(2001), 한국연극협회 자랑스러운 연극인상(2012), 서울연극협회 공로상(2012), 보관문화훈장(2015), 제4회 연극인대상 공로상(2017) 등을 수상한 훤칠한 키(183cm)에 반듯한 용모를 갖춘 미남 연출가다.

연출작으로는 <보잉 보잉> <등대> <조용한 식탁> <이성계부동산> <굿모닝 파파> <Q요라 그게 뭐지요?> <가스펠> <품바대장 술꾼> <성호가든> <유리동물원> 그 외의 100여 편의 작품을 연출한 원로 연극인이다.

필자가 처음 <유리 동물원>을 관람한 것은 1967년 11월에 명동국립극장에서 극단 동인극장의 노덕선 기획, 오화섭 역, 정일성 연출의 정혜선, 오지명, 손 숙, 최지민이 출연한 연극이다.

정혜선이 아만다, 손 숙이 로라, 오지명이 톰, 최지민이 짐으로 출연했다. 정혜선은 TV출연으로 잘 알려져 있었기에 어머니 역으로 적절했으나, 로라 역을 부각시키려고, 연출이 아만다의 대사를 대폭 삭제한 공연이었기에 어머니라는 역할만 드러났을 뿐 작품에 따른 제대로 된 성격창출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톰 역의 오지명은 당시 햄릿을 비롯해 동인극장 연극의 주역을 도맡아 했기에, 해설자 겸 시인인 톰 역을 마치 햄릿 역을 하듯 멋들어지게 연기했다. 손 숙은 연극 초년병이었으나, 미모와 호연으로 갈채를 받았다. 최지민(본명 최종화)은 한양대학교 영화과 출신답게 성격창출이나 연기 면에서 탁월함을 보였다.

그런데 오지명이 TV출연으로 공연 펑크를 내는 일이 발생했다. 극단 측에서는 난리가 났다. 당시 아내 손 숙의 연기를 연습장에 와서도 지켜보던 김성옥이 오지명 대신 무대에 올라섰다. 연습장면과 공연장면을 보았으니, 물론 동 선을 잘 알고 있었지만 대사를 외우지를 못했기에, 대본을 들고 연기를 했다. 톰이 시를 쓰니, 시를 쓰는 노트로 대본을 설정하고, 대본을 들여다보며 했어도, 김성옥이 워낙 능숙하게 연기를 해, 객석에서는 대역으로 출연한 것인 줄을 전혀 몰랐다. 물론 관객의 우레와 같은 박수도 커튼콜에 쏟아졌다.

그 공연 이후 극단 대표였던 노덕선은 자취를 감췄다. 오지명은 연극무대에서 사라졌다. 연출을 한 정일성은 미국으로 갔다가 30년 뒤에 귀국해 다시 연출을 시작했다. 50년 전 일이지만 엊그제 일 같아 소개한다.

2014년 명동예술극장 제작, 한태숙 연출의 <유리동물원>도 기억에 남는다. 한태숙 연출의 <유리 동물원>은 김성녀의 아만다 역을 완벽하게 부각시켰다. 김성녀 역시 출중하고 탁월한 연기와 성격창출로 아만다 역을 100% 살려냈다. 로라 역의 정운선도 독특한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관객의 기억에 오래 남을 연기를 선보였다. 톰 역의 이승주도 젊은 연기자답게 여성관객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다만 테네시 윌리엄스 자신일 수도 있는, 톰의 시인으로서의 풍모는, 다소 부족하게 느껴지는 듯도 싶었으나, 그의 훤칠한 용모와 호연은 부족을 메우기에 충분했다. 짐 역의 심완준은 그의 발전적 장래를 예측할 수 있는 연기자였다. 그리고 무대 상수 골목 한 귀퉁이에서 거리의 악사처럼 첼로를 연주하는 최 영, 그의 연주에 따른 극적 분위기의 창출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에 날개를 달아 하늘높이 비상토록 했고, 한태숙의 연출력이 감지되는 설정이었다.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 1911~1983)는 자신이 소속한 MGM사에 <유리동물원>을 제출하기 전에 유리동물원의 여러 가지 초안을 썼다. <유리동물원>은 윌리엄스의 단편소설이다. 처음에는 “The Gentleman Caller”라는 이름의 희곡으로 발표되었다.

<유리동물원>은 1944년 시카고에서 초연되었다. 시카고의 연극평론가 Ashton Stevens와 Claudia Cassidy의 호평으로 브로드웨이 무대에서도 공연되었고 1945년에는 New York Drama Critics Circle Award를 수상했다. <유리동물원>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첫 번째의 성공적인 작품이었고, 향후 미국에서 손꼽히는 극작가가 되었다.

<유리동물원>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1948년 단편소설 “Portrait of a Girl in Glass”가 원작이다. 이 소설의 해설자는 <유리동물원>의 해설자인 Tom Wingfield이고, <유리동물원>의 독백들도 이 소설에 있다.

연극평론가들은 <유리동물원>을 윌리엄스의 자전적 연극이라고 평한다. 윌리엄스의 가족 역시 연극의 배경인 남부의 세인트루이스에서 살았다. 윌리엄스 자신도 톰처럼 낮에는 구두공장에서 일하고, 밤에 집필에 몰두했다. 윌리엄스의 누나는 정신 분열증을 앓았고, 그녀의 모습이 <유리동물원> 속 로라 역으로 설정되었는데, 누나를 안타깝게 여기고 그리워했던 윌리엄스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라 하겠다.

테네시 윌러엄스의 초기 작품에 속하는 <유리 동물원>은 발표직후, 미국을 떠나 전 세계 연극인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윌리엄스의 출세작인 <유리 동물원>은 그 나름의 독특한 내적 미를 지니고 있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슬픈 이야기다. 우리들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슬픔이 아니라 마치 봄비가 꽃잎을 살포시 적시듯이 가슴에 스며드는 아련한 슬픔의 이야기이다. 사실 환상이란 얇은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허상 같은 것이다. 한 아름의 환상을 잡으려고 허우적대는 운명이 <유리 동물원>의 로라 역이고, 톰이고 아만다 역이다.

로라는 자신이 가진 신체적 장애 때문에 현실을 회피한 채 아름답지만 금방이라도 깨질 듯 한 유리동물에 집착하며 그 안에 살기 바란다. 다른 등장인물인 그녀의 오빠, 톰은 자신을 짓누르는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 모험을 떠나고 싶어 한다. 로라와 톰은 현실에서 벗어나 현실 저편의 이상향을 꿈꾼다. 이에 반해 어머니인 아만다는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그 속에서 어떻게 해서든 적응해 나가려고 몸부림친다. 로라를 괜찮은 남자에게 시집보내려고 위해 심신을 쏟고, 매일 밤 영화관을 들락거리는 톰을 붙들기 위해 톰에게 잔소리를 퍼붓는다. 한 가정, 한집안에 살고 있는 세 인물이지만 서로가 너무도 다른 것들을 꿈꾸기에 그들의 욕망은 깨진 유리동물의 파편처럼 되어 서로 충돌한다.

아름답지만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한 장식장 속 유리동물들은 환상 속에 존재하는 그들의 욕망이자 그들 자신의 모습이다.

<유리동물원>은 극의 대부분을 허름한 가정집을 배경으로 로라, 톰, 아만다가 살고 있고 그리고 짐이 이 집을 찾아온다. 하지만 이 극이 주는 주제와 의미는 단순히 어느 한 가정, 한 인물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과 허상을 보여준다.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톰,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고자하는 로라, 현실에서 어떻게 해서든 극복하고, 남들처럼 잘살고 싶은 아만다 역시 결국 우리 안의 내제된 욕망의 표출이며 우리 자신의 모습인 것이다.

무대는 한자 높이와 가로 세로 수많은 사각형 안에 엇갈린 무늬목 문양이 들어간 마루로 바닥을 깔았다. 배경 가까이에 이 집의 식당을 설정하고 식탁과 의자를 배치했다. 식당과 거실 사이에 벽 대신 엷은 커튼을 쳐, 조명효과에 따라 식당이 보이지 않도록 연출했다. 커튼 오른 쪽 상단에 이 집 아버지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식당은 무대 좌우에 가로 늘어뜨린 커튼 사이로 들어간다. 거실에는 낮은 탁자와 의자 그리고 긴 벤치 같은 나무등받이의자가 있고, 하수 쪽 객석 가까이에 유성기를 올려놓은 대가 있다. 거실 상수 쪽에 이 집 출입문이 있고, 밖은 골목길로 설정이 된다. 상수 쪽에서 출발한 골목길은 무대 앞부분을 돌아 하수 쪽으로 이어져 외곽으로 통한다. 무대 중앙 객석 가까이에 유리로 만든 동물과 유리조형물이 아래 위의 단으로 된 작은 진열대 위에 놓여있고, 부분조명으로 유리 진열대를 다시 말해 유리동물원을 강조하기도 한다.

연극은 도입에 겨울옷과 중절모를 쓴 톰이 반백의 머리로 등장해 자신이 1930년대에 살던 옛집 앞 계단위에 서서 집과 주위를 둘러보며 회상에 잠기듯 해설을 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톰이 집 안으로 들어서면 과거 장면이 재현된다. 남편과 사별을 하고 딸과 아들을 키운 어머니 아만다, 그리고 한쪽 다리를 절름거리는 누나 로라, 그리고 글을 쓴답시고 만날 영화관에만 들락거리던 자신의 청년시절이 소개가 된다. 지체 장애로 인해 학교도 졸업을 못하고 취직은 물론 연애상대조차 없이 유리동물에게만 매달려 있는 딸 로라를 대하는 어머니 아만다의 안타까운 모습이 펼쳐지고, 딸에게 짝을 지워주려는 어머니의 애타는 심정과 지극정성이 극에 절실하게 묘사된다, 그리고 아들 톰에게 로라에게 소개시킬 괜찮은 남자친구를 집으로 데려오도록 당부를 한다. 하도 조르는 어머니의 말에 톰은 훤칠한 키에 노래를 잘 부르는 친구 짐을 데리고 온다. 그런데 원래 로라와 짐은 같은 반 학생이었고, 잘 생긴 모습에 노래까지 잘 하는 짐에게 로라는 연모의 정을 품을 적이 있었기에 짐의 방문으로 로라는 충격을 받는다. 두 사람을 가까이 하도록 하려고, 아만다와 톰이 자리를 피하자 마침 정전이 되니, 촛불을 켠 로라와 짐은 상대에게 다가가 학창시절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노래 이야기 그리고 로라가 짐을 연모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두 사람은 키스까지 하게 된다. 아만다가 두사람 사이가 진척된 것으로 판단하고 포도주를 들고 등장한다. 그러나 짐은 약속시간이 되었다며 6월에 결혼을 할 상대가 지금 기다리고 있다며 떠나간다. 로라의 절망과 아만다의 분노, 그리고 곧 결혼할 남자를 집으로 데려온 톰을 꾸짖기 시작한다. 이 일로 해서 톰은 영영 집을 떠나게 된다. 대단원은 다시 이 집 문밖 골목길 계단에서서 톰이 해설을 마무리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최종원이 톰으로 출연해 일생일대의 명연을 펼친다. 차유경이 어머니인 아만다로 출연해 원작의 아만다 역을 200% 살리는 호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전지혜가 로라로 출연해 발군의 기량으로 호연을 해 보인다, 장우진이 짐으로 출연해 훤칠한 키에 당당한 체격 그리고 호연으로 여성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김성헌의 감성적인 연주가 4인의 출연자의 극 분위기 창출과 상승에 날개를 달아주는 역할을 한다.

조연출 정은지, 무대디자이너 민병구, 조명디자이너 탁형선, 의상디자이너 채필병, 음악 작곡 이정선, 드라마트루크 한윤섭, 안무 김윤실, 분장 김선희, 무대감독 이경은, 기획 김현증 등 스텝진의 열정과 노력이 드러나, 늘푸른 연극제(정대경 위원장) 극단 뿌리의 테네시 윌리엄스 작, 김도훈 연출, 김정근 협력연출의 <유리동물원>을 세계정상급 명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8월 4일

3, 극단 동양레퍼토리의 노경식 작, 김성노 연출, 이우천 협력연출의 <반민특위>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늘푸른연극제(위원장 정대경) 극단 동양레퍼토리의 노경식 작, 김성노 연출, 이우천 협력연출의 <반민특위(反民特委)>를 관람했다.

노경식(1938~) 선생은 1938년 전북 남원 출생으로 1950년 남원용성국교(41회) 및 1957년 남원용성중(3회)을 거쳐 남원농고(18회, 남원용성고교의 전신)졸업. 1962년 경희대학교 경제학과(10회)를 졸업하고 드라마센타 演劇아카데미를 수료했다.

196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철새>로 등단하고, 한국연극협회 한국문인협회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및 이사. 한국 펜클럽 ITI한국본부 한국희곡작가협회 회원. 서울연극제 전국연극제 근로자문화예술제 전국대학연극제 전국청소년 연극제 등 심사위원. 추계예술대학 재능대학(인천) 국민대 문예창작대학원 강사 및 <한국연극>지 편집위원.’남북연극교류위원장’등을 역임하고, 2017년 문재인 대통령 후보 지지성명에 앞장선 훤칠한 모습의 미남 극작가다.

주요수상 : 백상예술대상 희곡상, 한국연극예술상(1983), 서울연극제대상(1985), 동아연극상 작품상, (1999) ‘대산문학상’(희곡) 수상, (2003) ‘동랑유치진 연극상’ 수상, (2005) ‘한국희곡문학상 대상’ (한국희곡작가협회), (2006) ‘서울시문화상’ 수상, (2009) ‘한국예총예술문화상 대상’ (연극) (2015) 한국연극협회 자랑스러운 연극인상 등을 수상했다.

2004년-2012년 <노경식희곡집>(전7권)/ 연극과인간, 2004년 프랑스희곡집 <Un pays aussi lointain que le ciel> (‘하늘만큼 먼나라’ 외), 2011년 <韓國現代戱曲集 5> (일본어번역 <달집> 게재)/ 日韓演劇交流센터, 2013년 <압록강 이뿌콰를 아십니까> (노경식 산문집)/ 도서출판 同行, 2013년 <구술 예술사 노경식>/ 국립예술자료원, 역사소설 <무학대사>(상하 2권) <사명대사>(상중하 3권) <신돈>/ 문원북 등의 저서가 있다.

공연작품으로는 1971년 <달집> 국립극단/ 명동국립극장, 1982년 <井邑詞> 극단 민예극장/ 문화회관대극장(아르코), 1985년 <하늘만큼 먼나라> 극단 산울림/ 문화회관대극장(아르코), 1994년 <징게맹개 너른들>(뮤지컬) 서울예술단/ 예술의전당 대극장, 2005년 <서울 가는 길>(佛語번역극) 파리극단 ‘사람나무’/ 대전문화예술의전당, 2013년 <달집>(日語번역극) 東京극단 ‘新宿梁山泊’/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2016년 <두 영웅> 극단 스튜디오 반/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외 40여 편을 발표 공연했다. <두 영웅>은 노경식 작가의 등단 50주년 기념공연이다.

연출을 한 김성노는 홍익대학교, 방송통신대학교, 경기대학교 공연예술학 석사출신으로<리틀 말콤>, <등신과 머저리>, <에쿠우스>, <검정고무신>, <홍어> <아버지> <두 영웅>등 활발한 연출활동을 이어오며 백상예술대상 신인 연출상, 동아 연극상 작품상, 서울연극제 연출상 등을 수상하고 ‘신춘문예 단막극 제’, ‘아시아연출가전’, ‘연출가포럼’ 등 기존 사업과 더불어 ‘한국연극100년 시리즈’, ‘차세대 연출가 인큐베이팅’ 등 신규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오고 한국연출가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서울연극협회 산악대 대장으로 활약한 건강하고 훤칠한 미남인 중견 연출가다. 현재 동양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반민특위(反民特委)>는 2005년 9월 극단 미학의 광복 60주년기념공연작으로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에서 정일성 연출로 초연되었다.

김명수, 오지영, 김경미, 정상철, 맹봉학, 곽인호, 이창호, 장우진, 이돈용, 이람, 방용원, 김동일, 허인구, 강석, 배성호, 김태현, 최우형, 김재홍, 강진영, 이상현, 차문수, 김관표 등이 출연해 호연과 열연으로 갈채를 받았다.

제작 홍유진, 무대 김종선, 조명 백승희, 음향 한철, 의상 손진숙, 소품 구본주, 홍보 장성집, 마케팅 박미향, 조연출 김동일, 김시번, 박진원, 무대감독 조명훈, 기획 고무곤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발휘되어 공연은 성공작이 되었다.

영화로는 2015년에 <반민특위(反民特委)>를 소재로 만든 영화 <암살(暗殺, Assassination)>은 7월 22일에 개봉하여 8월 15일 관람객 천만 명을 돌파한 최동훈 감독의 대 성공작이다.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오달수, 조진웅, 최덕문, 이경영, 박병은, 김의성, 김홍파, 진경, 허지원, 정규수, 김인우, 이영석, 우상전, 정인겸, 송영재, 탕견, 조승우, 김해숙 등이 출연해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 감독상, 작품상 그 외의 청룡영화상, 평론가협회상, 춘사영화상 등을 휩쓸어 수상했다.

1948년 제헌의회가 구성되자 국회의원들은 이승만 정부의 반발을 무시하고 반민법을 제정한다. 이 법은 반민족행위자의 범주와 처벌 규정, 특위의 구성과 활동, 특별재판부 구성을 담고 있다.

이 법에 따라 구성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反民特委))’는 1948년 10월 12일 저명한 독립운동가이자 국회의원인 김상덕을 위원장으로 선출한다.

김상덕 위원장은 와세다 대학을 다니다 2.8 독립선언을 주도해 1년간 옥고를 치른 후 중국으로 망명해 일제 타도의 선봉에 섰던 독립투사다. 그는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학교를 다녔고, 중국에서 독립투쟁을 벌이다 남한에서 돌아온 후 납북돼 북한에서 여생을 보내게 된다.

반민특위는 국민들의 열화 같은 성화를 업고 의욕적으로 출발한다. 반민특위가 가장 먼저 검거한 친일파는 화신재벌 총수 박흥식이다. 그는 조선비행기 공장을 세워 일제의 침략전쟁에 기여한 인물로, 해외도피를 기도하다 체포된다.

이어 만주에서 일본 헌병의 앞잡이로 무려 250여 명의 독립투사를 붙잡아 17명을 처형한 악질 친일파 이종형을 잡아들인다. 그는 마포형무소에 수감된 후에도 “내가 감옥에 들어온 건 빨갱이를 잡는데 앞장서서 사방에 적을 만든 탓”이라고 고래고래 악을 쓰기도 한다.

이어 3.1운동 당시 33인의 한 사람이었다가 변절한 최린, 친일 변호사 이승우, 평안북도 특고과장을 지내면서 많은 독립투사를 잡아들인 악질 경찰 이성근, 고종황제의 당질로 매국 활동을 한 이기용을 구속한다. 이기용은 자택 응접실에 일왕 히로히토의 사진을 걸어놓고, 일본 왕실로부터 받은 훈장 30여개를 진열해놓아 조사관들을 놀라게 한다.

반민특위는 1949년 1월 25일 드디어 악질 중의 악질인 친일경찰 노덕술을 체포하는데 성공한다. 그는 전국 도처에서 독립운동가를 무차별적으로 체포해 여러 명을 고문해서 죽인 친일경찰의 상징이다. 노덕술은 수배 중에도 번호판을 단 경찰 지프에 경호원까지 태우고 서울 시내를 활보하고 다닌 인물이다.

노덕술이 체포되자 이승만은 노기충천하여 김상덕 등 특위위원들을 경무대로 불러 그를 석방하라고 강요한다. 특위위원들은 단호히 거부한다. 국내에 지지기반이 약한 이승만은 어떻게 해서든지 친일파를 보호해 장기집권의 무기로 써먹을 생각을 하고 있다. 반민특위와 정부 사이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먼저 일제 경찰 출신들이 발 빠르게 움직인다. 제일 먼저 반민특위 요인들을 암살하려는 음모가 진행된다.

서울시경 수사과장 최난수와 사찰과 차석 홍택희는 테러리스트 백민태를 불러 국회의원 3명을 납치해 38도 선상의 어느 지점으로 끌고 오면 그 다음은 경찰이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지령을 내린다. 그러나 겁을 먹은 백민태가 검찰에 자수하면서 이 음모는 무산된다.

친일경찰들은 급기야 법을 깡그리 무시하고 “실력으로 반민특위 특경대를 해산시키자”며 준비에 들어간다. 습격 전날 밤 시경국장 김태선에게 계획을 전해들은 내무차관 장경근은 “앞으로 발생할 모든 사태의 책임은 내가 진다. 웃어른께서도 말씀이 계셨다”며 이승만의 사전 양해가 있음을 암시한다.

이렇게 해서 친일경찰들은 1949년 6월 6일 백주대낮에 국가기관인 반민특위를 습격한다.

물리력을 빼앗긴 김상덕 위원장과 특위 위원들은 사퇴서를 제출하고 자리를 떠난다. 이런 와중에 반민특위를 국회에서 지지해주던 김약수 부회장 등 소장파 의원들이 ‘남로당의 프락치’라는 혐의로 대거 구속된다.

이어 반민특위의 정신적 기둥인 백범 김구마저 암살당하면서 ‘친일파 처단’은 물 건너가 버리고 대한민국은 ‘친일파의 천국’으로 전락한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김상덕은 북한 내무서원들에 의해 이북으로 끌려간다. 그 뒤의 소식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2006년 9월 3일 북한을 방문한 독립운동가 유족들에 의해 평양 용궁동에 있는 재북인사묘역에 묻혀 있다는 사실만 확인되었을 뿐이다.

이승만 정권은 국회에서 반민특위에 힘을 실어주던 국회의원들과 백범 김구를 제거하자마자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반민족행위와 관련된 모든 특별법을 지워버린다. 물론 수감돼 있는 친일파들을 모두 석방하고 이들을 군과 경찰, 행정부의 요직에 두루두루 앉힌다.

이렇게 해서 한반도 남쪽이 친일파들의 수중에 떨어지자 독립운동가들의 존재는 까마득하게 지워져 버리고 만다.

무대는 배경에 영상을 투사해 역사적 시대적 사건과 인물을 상세히 부각시킨다. 여러개의 작은 무대를 계단식으로 가설하고, 무대 좌우에도 작은 무대를 설치해 장면변화에 사용한다. 오케스트라 박스에까지 동선을 활용, 무대 끝에 앉아 오케스트라 박스에 발을 내려놓기도 한다. 배경 가까이 설치한 높은 무대 뒤쪽으로도 군중장면이 연출되고, 무대 좌우로 등퇴장 로가 있다.

연극은 도입에 배경 가까이에 정렬된 인물들이 일본제국에 충성을 맹세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배경에 원폭투하 영상이 투사되고, 일제가 패망하는 장면에 이어 이승만이 백색의상과 백색 모자를 쓰고 등장한다. 연극은 신문사 정 기자의 취재장면에서 시작된다. 그의 아내는 임신 중이다. 친일파를 소탕하기 위한 반민특위의 결성과 그 활동을 취재하던 중, 일제 강점기 경찰관 노릇을 했던 조선인들이 대거 경찰관으로 기용되고, 또한 친일행각을 벌인 조선인들 중 그 수뇌 급 인물들을 반민특위에서 체포해 처단하려 하자, 이승만의 옹호 하에 친일파들이 오히려 득세를 하기 시작하고 반민특위 위원장인 김상덕 같은 애국지사를 외면하는가 하면, 반일투쟁을 벌인 인사를 적색분자로 몰아붙이는 해괴한 풍조가 형성된다. 친일파 제거를 부르짖는 제헌의원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처단하려하고, 심지어 반공을 명분으로 반민특위를 집단으로 습격하는 사건까지 벌어진다. 결국 정의가 득세하지 못 하고, 불의가 날개를 펴는 당시의 상황을 보며, 정 기자는 만삭의 아내와 태어날 자식을 위해, 해방된 조국이 옳고 바른 나라, 정의가 승리하는 정치풍토가 형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그게 아득해 보이고 요원하니, 그저 술잔을 기울이는 장면에서 효과음악으로 들리는 동요노래소리 와 함께 연극은 끝이 난다.

권병길, 정상철, 이인철, 김종구, 유정기, 최승일, 배상돈, 문경민, 장연익, 민경록, 이승훈, 노석채, 장지수, 이영수, 이창수, 양대국, 임상현, 김대희, 김춘식, 김민진, 이 준, 정진명, 최원석, 정나라, 윤지영, 김민정, 이재은, 박지원, 정애란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은 조화를 이루어 극적 분위기 창출의 원동력이 된다. 이인철의 이승만 역, 권병길과 정상철, 김종구와 문경민의 성격창출에 따른 연기력, 이승훈과 노석채의 훤칠하고 단아한 모습에 따르는 성격설정과 호연, 장연익과 장지수의 독특한 성격설정과 연기력은 기억에 남는다.

무대감독 송훈상, 조연출 김성은, 기획 임솔지, 무대 김인준, 조명 김재억, 음악 서상완, 의상 김정향, 분장 박팔영, 영상 황정남, 소품 조운빈, 진행 정창훈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어우러져, 늘푸른연극제(위원장 정대경) 극단 동양레퍼토리의 노경식 작, 김성노 연출, 이우천 협력연출의 <반민특위(反民特委)>를 연출가와 연기자의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향후 5대 광역도시에서의 공연을 권장할만한 걸작 서사극으로 창출시켰다.

8월 11일

4, 극단 컬티즌의 이만희 작, 최용훈 연출의 <언덕을 넘어서 가자>

대학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늘푸른연극제(정대경 위원장) 선정작 극단 컬티즌의 이만희 작, 최용훈 연출의 <언덕을 넘어서 가자>를 관람했다.

필자가 이호재 선생의 연기를 처음 본 것은 1978년 극단 고향의 아돌후가드 작, 구희서 역, 박용기 오종우 공동 연출의 <시즈위벤지는 죽었다>라는 작품에서다. 전무송과 함께 출연해 기존의 선배들의 연기를 답습하지 않은 새롭고 독특한 양상의 연기를 펼쳐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이후 그의 공연을 빼놓지 않고 관람을 하게 되었다.

이호재 선생은 올해로 연기 인생 55년째다. 휘문고 다닐 때는 아이스하키 선수였다. 1962년 서울연극아카데미(서울예대)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 전무송, 신구와 만났다. 입학 이듬해인 1963년 명동국립극장에서 직업 연극무대에 첫 발을 디뎠다. 친구인 음향전문가 김벌래 선생이 연출한 존 스타인벡 원작의 <생쥐와 인간>이었다. 이호재 선생의 연기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위엄이 실리고 자연스럽고 유연했다.

이호재 선생은 70대 중반이지만, 50대 역할이 꾸준히 한다. 2014년 데이비드 헤어 원작의 <스카이라잇>에서 성공한 50대 프랜차이즈 사업가 역, <소년B가 사는 집>에서의 50대 아버지 역, 무대분장 덕이기도 하지만 진짜 이유는 ‘생각과 신체가 젊다’는 것에 있다. 최근 국립극단 공연에 출연한 이호재 선생의 모습은 비록 나이든 역을 맡았어도 젊고 싱싱한 연기력으로 무대를 가득 채운다. 아마 이호재 선생은 100세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펴리라는 예감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이만희 작가는 1954년 충남 대천 생으로 1973년에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 출신이다. 1979년 동아일보 장막희곡 공모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미이라 속의 시체들>이 입선되어 등단했다. 이 작품은 <돼지와 오토바이>로 개작되어 1993년 3월에 북 창우극장 개 기념으로 공연되었고, 1997년에는 두산 소극장에서 장기간 재 공연되었다. 1980년에는 <처녀비행>을 발표하고, 1983년에는월간문학신인문학 상을 받았으며, 1989년에는 <문디>를 발표하였다. 1987년에는 <처녀비행>이 주 사랑방 소극장 공연되었고, 1989년에는 바탕골 소극장에서 <문디> 가 공연되었다. 1990년에는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를 발표하여 삼성문예상과 서울연극제 희곡상을 받았으며, 1991년에 는 백상예술상 희곡상을 수상했다. 1992년에는 <불 좀 꺼주세요>를 발표하고, 1993년에는 <돼지와 오토바이>와 <피고지고 피고지고>를 발표했다. 1994년에 영희연극상을 받았다. 1995년에는 원작 <문디>를 개명한 <한놈 두 놈 삑구 타고>를 공연하고, 2005년엔 <풍인>이라는 제목으로 바꿔 재공연 되었다. 1996년에는 <돌아서서 떠나라>와 <아름다운 距離>를 발표하고, 동아 연극상 희곡상을 수상하였다. 1997년에는 <용띠 위의 개띠>를, 1998년에는 <좋은 녀석들>을 발표했다. 그리고 1998년에 대표작 10편을 골라서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 <문디>, <불 좀 꺼주세요>, <돼지와 오토바이>, <처녀 비행> <피고지고 피고지고>, <좋은 녀 석들>, <아름다운 距離>, <돌아서서 떠나라>, <용띠 개띠>를 담아서 이만희 희곡집1, 2을 출간하였다.

최용훈 연출가는 서강대학교 철학과 출신으로 극단 작은신화의 대표다. 연출작으로는 <차이메리카> <위대한 유산> <맨프럼어스> <엄마> <스카이라잇> <민중의 적> <꿈> <콜라 소녀> <음악극 백야> <인형의 집> <그냥, 햄릿> <동 주앙> <냄비> <너의 왼 손> <세 자매 산장> <왕은 왕이다>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 <에이미> <오늘, 손님 오신다> <다우트> <연두식 사망사건> <코리아 환타지> <불 좀 꺼주세요> <채플린, 지팡이를 잃어버리다> <돌날> <똥강리 미스터 리!> <김치국씨 환장하다> <九 데 TA> <황구도> <매직 아이·스크림> <광주리를 이고 가시네요> 外 다수 작품을 연출했다.

<언덕을 넘어서 가자>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초등학교 동창인 세 친구의 이야기다. 제법 많은 땅과 재력이 있으면서도 고물상을 운영하며 매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자린고비처럼 살아가는 무뚝뚝하고 까다로운 성미의 구두쇠노인 완애(이호재)와 매사에 티격태격 하지만 완애 옆에서 갖은 구박에도 칠 년째 빌붙어 얹혀살면서 돈만 생기면 도박장으로 달려가는 철부지친구 자룡(최용민), 완애의 고물상에 어린 시절 남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황혼의 나이에도 보험설계사로 뛰어다녀야 하는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다혜(남기애)가 등장인물이다.

무대는 거실이다. 정면에 커다란 창이 있고 나무 그림자가 동양화처럼 드리워져 있다.

하수 쪽은 조리대와 위쪽으로 그릇장이 부착되고, 식기들이 보인다. 조리대 옆으로 쓰레기통이 있다. 선반에 라디오가 놓여있다. 정면 창 오른쪽에는 냉장고가 있고, 상 수쪽은 책장과 장서, 책상과 의자가 배치되고, 금고도 보인다. 중앙에는 긴 안락의자가 놓여있다. 정면 오른쪽에 이집 출입문이 있고, 하수 쪽 객석 가까이에도 내실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연극은 도입에 주인공이 오래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현미의 “보고 싶은 얼굴”을 들으며 혼자 라면을 끓여먹고 설거지를 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곧이어 친구가 등장하면 주인공은 라디오를 끄고 친구에게 나가라고 고함을 지르며 냅다 식기를 집어던진다. 친구든 그걸 피해 문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다, 그런 장면이 반복이 되지만 친구는 다시 들어온다. 그리고 주인공 앞에 무릎을 꿇고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겠노라 약속을 한다. 연극에서 도박이야기와 상처를 하게 된 이야기, 거기에 복선으로 주인공이 유기 견 여덟 마리를 데려다 기르는 것으로 소개가 된다.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 남학생들의 연모의 대상이었던 여학생의 이야기와 그 여학생이 이 집을 방문하게 되는 내용이다. 그런데 주인공은 그 여학생이었던 동창여인을 껄끄럽게 대하는 것으로 설정이 되고, 친구는 그 여인과 무척 다정한 사이로 설정이 된다. 그리고 그 동창여인이 이 집을 방문하게 된 동기는 노름꾼 친구가 사고로 양손과 다리를 다쳤기 때문에 위로 차 하는 방문이다. 드디어 70이 가까운 나이임에도 날씬한 체격에 미모를 갖춘 동창여인이 등장을 한다. 무대는 붓꽃향기가 흩날리는 듯싶은 분위기로 바뀐다. 당연히 주인공은 본체만체 껄끄럽게 여인을 대하고, 친구는 동창여인을 대하는 태도가 삽살개가 주인마님을 대하는 모습에 방불하다. 친구는 손목이나 팔이 잘리어 나가도 노름버릇을 끊지 못하는 노름꾼들의 양태를 드러내고, 주인공이 가출을 했을 때에는 여인이 보는 앞에서 주인공의 예금통장을 선반에서 찾아내어 다른 장소에 감추기도 한다. 동창여인은 아들의 사고 치료비를 비롯해 나름대로 무척 어려운 입장이지만 하소연이나 발설을 하지를 않는다. 여인의 휴대전화 통화내용으로 그런 사정이 객석에 전달될 뿐이다. 친구가 다친 데가 다 낳아 병원에 붕대를 풀러 갔을 때 동창여인이 주인공이 혼자 있는 집에 모습을 드러낸다. 두 사람 다 껄끄럽고 서먹하게 대하지만, 주인공은 동창여인의 어려운 사정을 잘 아는지 천 여 만원이 든 봉투를 여인에게 조용히 쥐어준다. 여인은 눈물을 쏟으며 고마워한다. 그러면서 여인은 왜 초등학교 시절부터 자신에게 껄끄럽게 대했는가를 주인공에게 묻는다. 주인공이 주저주저하고 대답을 못하자 동창여인은 주인공이 즐겨 듣는 라디오가 실은 자신이 어렸을 때 주인공에게 남몰래 가져다주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주인공은 현재까지 궁금해 했던 라디오에 관한 수수께끼가 풀리자 비로소 자신도 동창여인을 짝사랑했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겨울시냇물처럼 얼어붙었던 두 사람의 마음이 봄바람에 눈이 녹듯 풀리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선다.

장면이 바뀌면 친구와 여인이 여행가방과 옷차림으로 터키의 이스탄불을 가려한다는 것이 소개가 된다. 드디어 주인공이 말끔한 백색정장에 중절모를 쓰고 내실에서 나온다. 어두컴컴한 옷만 입던 주인공의 변신을 보고 객석은 환호성으로 뒤덮인다. 세 사람이 함께 여행을 하려고 문을 나서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이호재가 주인공, 최용민이 친구, 남기애가 동창여인으로 출연해, 완벽한 연기트리오로 연극을 이끌어가고 발군의 기량과 성격창출로 관객은 환호와 우레와 같은 갈채를 보낸다.

의상 이승무, 조명 신 호, 음악 이형주, 분장 백지영, 무대 김혜지, 무대제작 TAF무대술 대표 김동경, 조연출 임지민, 무대감독 손성현, 분장팀 김은혜, 조명팀 김지원 이건혁 염광일 신의정 김수은, 홍보 명랑캠페인, 프로듀서 정혜영 등 스텝진의 기량과 열정이 발휘되어, 늘푸른연극제(정대경 위원장) 선정 작, 극단 컬티즌의 이만희 작, 최용훈 연출의 <언덕을 넘어서 가자>를 남녀노소 누구나 관람해도 좋을 밝고 건강하고 유쾌한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8월 17일 박정기(朴精機)

 

  


 

제10회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의 남해섬 공연예술제 평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은 2008년 5월 개관하였으며 예술창작 및 연구를 돕기 위하여 폐교된 다초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전시관, 도서관, 야외무대, 다초실험극장을 갖춘 살아 숨 쉬는 다목적 예술 공간이다.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은 동국대학교 전 예술대학장 김흥우 교수가 촌장으로 취임하며, 평생 모아온 공연예술관련 자료들을 기증함으로써 문화적 보고가 되었다.

국제탈공연예술촌에는 이름에 걸맞게 세계 각지 여행하면서 모은 탈이 전시되어있고 예술 관련 우리나라의 오래된 구하기 힘든 포스터와 팸플릿, 대본 등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특히 탈 만들기 등 각종 체험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어 체험이 가능하며 공연예술전문도서관 에는 이 분야에 관련된 각종 서적 및 영상자료 등을 열람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은 각종 연극과 문화행사를 계속적으로 관광객들에게 소개하고 있어 이 분야에 관심 있는 분들은 남해 여행 중 꼭 둘러봐야 할 문화적 공간이기도 하다.

2017년 제10회 남해섬 공연예술제는 7월 22일부터 8월 20일까지 극단 애플씨어터의 전 훈 작 연출의 <렌트 더 리얼>, 극단 예도의 이선경 작, 이삼우 연출의 <어쩌다 보니>, 극단 현장의 임미경 작, 고능석 연출의 <강목발이>, 극단 노을의 강재림 작 연출의 <소나기 2>, 극단 지즐의 석봉준 작 연출의 <흉터> 그리고 유라시아셰익스피어 극단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남육현 번역 연출의 <리어왕>등이 다초 실험극장에서 차례로 공연되었다.

1, 애플씨어터의 전훈 작 연출의 <렌트 더 리얼>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 다초실험극장에서 애플씨어터의 전 훈 작 연출의 <렌트 더 리얼(Rent the Real)>을 관람했다.

전 훈은 서울生으로, 보성고와 동국대 연극영화과 졸업하고, 96년 러시아 모스크바 쉬옙낀 연극대 M.F.A.(연기실기석사)출신 연출가다. 1996년 희곡 [강택구]로 동서희곡문학 신인작가상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극단 애플씨어터 대표 겸 연출이고, 서울예대 연극과 출강중이다.

집필하거나 연출을 한 작품으로는 97 [결혼전야] (전훈/작) 아룽구지 소극장 외 다수, 97 [NANTA](Original version) 환 퍼포먼스, 호암아트홀, 98 [갈매기](체홉/작) 극단 떼아뜨르 노리-체홉 페스티발 참가작, ’98 [좋은?녀석들](이만희/작) 극단 연극세상, 아룽구지 소극장, 98 경주세계문화EXPO 메인이벤트 총연출 “인류화합음악축제” ”99 [벚꽃동산](체홉/작) 서울시립극단, 세종문화회관소극장 ’99-2000 [樂햄릿](조광화/작) 서울뮤지컬컴퍼니, 호암아트홀, 장충체육관 2001[유리가면]-episode1″기적의?사람”(전훈/각본)-열린극장, 인켈아트홀, 2001서울공연예술제”참가-바탕골소극장- 2002 [죽음의 토크쇼] (전훈/작) – 인켈아트홀, 2002 [월미도 살인사건] (스가 고헤이/원작, 전훈/번안) – 인켈아트홀, 2004 안똔 체홉 4대 장막전 [벚꽃동산]동국대극장,[바냐아저씨]국립극단, (동아연극상 연출상, 작품상 수상) [갈매기] 정동극장, [세자매] 정미소, 2006 [유리가면]-episode5 “또 하나의 영혼” (전훈/각본) -인켈아트홀, 2008 [말괄량이 길들이기](셰익스피어/작) 서울시극단 – 세종M씨어터, 2010 [내일은 챔피온]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서울연극제 출품작, 무대미술상) 2010 [숲귀신] (안똔 체홉) 연출 게릴라 소극장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 국내우수작 선정), 2011 <아마데우스>(피터 쉐퍼/작> – 국립명동예술극장

2014년 전훈은 안톤 체홉의 작품전체를 공연하기 시작했다. <숲귀신> <바냐 삼촌> <파더레스> <챠이카> <검은옷의 수도사> <벚꽃동산>을 비롯해 자작희곡인 <내일은 참피온> 그리고 피터 쉐퍼의 <아마데우스>를 연출하고 2016년 6월 12일부터 2017년 7월 6일까지 아트씨어터문에서 <전훈 사실주의 희곡전>을 공연하고 있다.

사실주의 희곡작품으로는 <내일은 챔피온> <회상> <결혼전야> <죽음의 토크쇼> <월미도 살인사건> <강택구> 그리고 <렌트 더 리얼>이다.

<렌트 더 리얼((Rent the Real)>은 극의 배경으로 봐서는 건물의 한 방에서 일어나고 방세문제로 시작되는 것으로 집세(Rent the Real Estate)가 맞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다.

무대는 건물의 1실이다. 벽에 공원의 벤치 같은 긴 나무의자가 놓이고, 그 오른 쪽이 방의 출입구다. 출입구의 복도를 통해 건물 위층과 밖으로 통한다. 방안에는 의자도 보이고, 오른 쪽 객석 가까이에는 전자건반악기와 기타가 놓여있다. 전등을 켜지 않고 촛불을 켜놓고 있다.

이 방에는 골목길 벽이나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단체에 소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음악활동을 벌이는 청년이 살고 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건물주 노릇을 하는 젊은 남성이 밀린 월세를 독촉하러 모습을 드러내, 화가와 승강이를 벌인다. 화가는 벤치에 누워있는 악사를 가리키며 조용히 해 달라는 부탁을 하며 꼭 월세를 갚겠다고 이야기를 한다. 건물주는 그림을 그려달라고 청하고 퇴장한다. 전기료가 여러 달 밀렸는지, 전원공급이 차단되어 촛불을 켜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추운 날씨에 전원이 끊겼으니, 방안에 냉기를 견디지 못해 화가와 가수는 커다란 깡통에 악보와 스케치를 한 그림을 태워 불을 쪼인다. 화가는 휴대전화를 받고 급히 외출을 한다.

악사노릇을 하는 청년만 혼자 있는 방에 위층 여자가 촛대를 들고 불을 빌리러 내려온다. 불이 붙은 촛대를 들고 위로 올라가지만 잠시 후 불이 꺼졌다며 다시 내려온다. 방안에 기타와 전자건반악기가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을 가수라고 소개한다. 이름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가수지만 오페라 라보엠의 여주인공 미미와 같은 이름이다. 때는 크리스마스이브로 설정이 되고, 깡통에 남은 온기에 손을 녹이며, 악사의 반주로 가수의 노래가 시작되면서 두 사람의 열기가 방안의 냉기를 밀어내면서 사랑의 기운까지 감돌기 시작한다. 가수는 악사에게 키스를 한다. 그 때 으로 나갔던 화가가 체격이 좋은 행위예술을 하는 여인과 함께 등장한다. 건물주 청년의 등장으로 행위예술을 하는 여인은 건물주 부친과 재혼을 한 여인의 딸인 것으로 설정이 된다. 곧 이어 외국에서 귀국한 몸집이 퉁퉁해 뵈는 남성과 그와 동반한 귀여워 뵈는 여성이 함께 이 집을 찾아온다. 귀국한 남성도 대중음악을 하는 인물이고 여성은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생활하는 여성인데, 처음 만나자 마자 귀국남과 동행하기로 하고 이리로 온 것으로 소개가 된다. 이들 개개인의 내력과 재능 그리고 우정과 애정이 노래와 함께 극 분위기를 서서히 상승시킨다. 물론 건물주와의 갈등이 노정이 되고, 무명의 가수인 미미는 스스로 팔에 주사기를 찌르며 몸에 병이 있음을 드러낸다.

장면이 바뀌면 행위예술을 하는 여인이 가부좌를 한 채 앉아있다. 집주인 남성, 그러니까 부친의 재혼녀의 딸이니, 결국 남매인 셈인데, 두 사람의 갈등이 여전히 연출되고, 위층에 살던 여인은 악사와 가까워졌지만, 병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고, 실은 두 번이나 낙태수술을 해 건강이 악화된 것이 건물주와의 대화로 인해 밝혀진다. 귀국남과 동행한 여인은 돌발한 교통사고로 절명한 것으로 설정이 되고, 귀국 남은 동행녀의 영정을 들고 등장한다. 거리의 화가는 성공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연극을 통해 대중예술가의 어려운 삶이 소개가 되면서 젊은이들의 불꽃처럼 피어오르는 사랑이 세태를 반영하는 듯싶고 그들이 선호하는 노래와 반주가 관객을 감상의 세계로 인도하면서 열정까지 자극을 한다. 대단원에서 오페라 라보엠에서 미미가 절명을 하듯 가수 미미는 악사남의 지고지순한 사랑과 돌봄 속에서 서서히 운명을 한다.

황찬호가 거리의 화가, 박현욱이 악사, 조한나가 위층 여인이자 가수 미미, 황의영이 귀국한 대중음악인, 박재현이 거리에서 노래 부르는 여인, 이규빈이 행위예술가, 그리고 김두영이 젊은 건물주로 등장한다. 출연자 전원이 성격창출에서부터 호연과 열연 그리고 반주와 노래는 물론 춤에 이르기까지 나무랄 데가 전혀 없는 뛰어난 공연이라 극의 도입에서부터 관객을 몰입시키고, 필자 같은 나이든 관객에게는 젊은 날을 돌아보도록 만들며, 관객 모두를 감상과 감동의 세계로 인도하는 창의력이 돋뵈는 수준급 음악극으로, 애플씨어터의 전 훈 작 연출의 <렌트 더 리얼(Rent the Real)>을 작가의 창의력과 연출력 그리고 출연자의 탁월한 기량이 조화를 이룬 한편의 걸작 음악극으로 탄생시켰다.

7월 22일

2, 극단 현장의 고능석 작, 임미경 연출의 <강목발이>

다초실험극장에서 경남극단 현장의 임미경 작, 고능석 연출의 <강목발이>를 관람했다.

<강목발이>는 경남 의령의 <의적 맹 개목과 강목발이> 설화에서 소재를 딴 희곡이다.

<강목발이>는 의적이라는 설정이고, 억울한 죽음을 당해 저승길을 거부하고 인간의 몸에 붙어 있다가 부친격인 도축업자의 도축의식으로 저승사자들과 함께 인감의 몸에서 나와 저승길로 간다는 내용이다.

이 연극에서는 도축업자가 아들 몸에 달라붙은 <강목발이>를 도축의식으로 제거한다. 고깃관 주인이 도축의식을 무당 못지않게 진행한다는 설정이 무리이기에 작품해설을 읽지 않고 공연만 본다면 이해하기가 곤란하다. <강목발이>라는 의적의 설명도 부족하다.

의적 <강목발이>는 진양에 있어서는 홍길동(洪吉童)에 버금가는 인물로 꼽히고 있다.

강목발이는 지금의 진양군 대곡면 대방산 줄기 가정(佳亭)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때, 한 도승(道僧)이 찾아와 사립 밖에서 물었다.

도승이 찾아온 것은 비범한 인물이 태어날 줄 알고 왔는데 시를 넘겨 대적(大敵)이 날 시에 태어난 것을 알고는 걱정을 하며 돌아갔다.

태어난 아이는 천부적으로 남의 물건을 훔치는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어려서 글도 배웠는데, 머리는 좋았으나 글공부를 게을리 하면서도 남의 눈을 속이는 일에는 탄복을 금치 못했다.

어느 날은 그의 숙부가 방바닥에 엽전을 던져놓고 아무도 모르게 가져보라며 시험해 보았다. 강목발이는 밖을 잠깐 나왔다가 들어오더니 “숙부님 가져갑니다.”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엽전이 금세 없어졌다. 강목발이는 밖에서 발바닥에 보리밥알을 이기어 붙였던 것이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강목발이가 남의 눈을 속인다고 그러기에 설마 그럴 리가 있을까 하고 의심했으나 그게 사실이었다.

숙부는 방바닥에 놓인 목침을 들고 그의 다리팍을 내리쳤다. 이때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고 다녔다고 하나 신빙성은 적다.

그 뒤에도 진주 인근의 살만하다는 부잣집은 도둑을 맞았고, 대신 가난한 집에는 쌀이며 돈이 쌓였다. 이때부터 의적 강목발이의 일화는 삼남 일대에 번져 나갔다.

그때 관아의 꾀 많은 형리(刑吏)가 있어 “진양 성을 한 식경(10분 정도)에 세 바퀴만 돌면 모든 도적질한 허물을 벗겨 주겠다.”고 했다. 강목발이는 일생의 실수인 줄 모르고 한 식경 안에 외다리로 진양 성을 세 바퀴를 돌았다.

그렇게 하여 그는 형리의 함정에 빠졌고, 삼남 일대에 번진 의적은 강목발로 판명되었으며, 그는 구 법원 앞 객사(客舍) 뜰에서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이 <강목발이>의 혼령이 도축업자의 아들 몸에 붙어 아들은 평생을 노름이나 하고 지낸다는 설정이고, 저승사자들이 강목발이를 잡아가려고 극에 등장해 시종일관 지켜본다. 도축업자는 부인이 없기에 문 여사라는 여인을 흠모하고, 여인도 도축 업자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으로 설정이 된다. 아들은 노름빚을 청산하기 위해 부동산 업자를 데려다가 집문서를 내어준다. 당연히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고 부동산 업자와 부친의 승강이와 폭력이 벌어지는 속에 강목발이도 변을 당한다. 지키고 있던 저승사자와 이 집터의 대감격인 두꺼비가 이를 지켜보는 과정에서 강목발이는 아들의 몸에서 나오게 되고, 저승사자들이 강목발이임을 확인하고 저승으로 데려간다는 내용이다.

아버지는 도축의식을 무당 못지않게 진행하며 <강목발이>를 떠나보내지만 공연 내내 온건한 성품을 유지하던 모습과는 달리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도축의식을 진행하니 어리둥절한 느낌이다. 차라리 문 여사를 무녀로 설정을 하고 의식을 진행하도록 했으면 납득이 가지를 않았을까?

대단원에서 아버지와 문 여사가 있는 방에 아들이 식사 상을 차려서 들여가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최동석, 송광일, 감수희, 정대영, 김도영, 박진희, 이재선, 박현민, 김진호, 등 출연진의 호연과 악사 김한준, 황이나의 연주와 소리는 갈채를 받으며 극단 현장의 임미경 작, 고능석 연출의 <강목발이>를 기억에 길이 남을 걸작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7월 30일

3, 극단 노을의 강재림 작 연출의 <소나기 2>

다초실험극장에서 극단 노을의 강재림 작·연출의 <소나기 2>를 관람했다.

강재림은 한국외국어대학교와 동국대학교 대학원 연극영화과 석사출신으로 극단 노을 작가 겸 연출가다. 현 MTM 연기강사 및 교육진흥원 연극강사, 세명대학교 공연영상학과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2001년 희곡문학 신인작가상 수상 <팔관회> <오박사의 복수> <눈의 여인> <인터뷰> <지구침공> 뮤지컬 <킹 오브 드림스> 가족 극<바리의 여행> 그 외 다수 작품을 집필했다. 2017년 희곡공모에도 당선된 작가 겸 연출가다.

연출작으로는 <왕은 죽어가다><오박사의 복수><눈의 여인><별이 빛나는 밤><결함><킹 오브 드림스><바리의 여행> <소나기 2> 외의 다수 작품을 연출했다.

<소나기>는 황순원(1915~)이 <신태양>에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소년 소녀의 때 묻지 않은 아름다운 사랑을 그렸다. 조약돌과 호두알로 은유되는 감정의 교류, 소나기를 만나는 장면, 소녀의 병세 악화, 그리고 소녀의 죽음…. 소년은 어른이 되고나서도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가슴깊이 간직하고자 한다.

황순원은 평남 대동 출신으로 동경 와세다 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경희대교수, 예술원회원을 역임했다. 1931년 <동광>지에 시 <나의 꿈>을 발표한 후 문단에 등단, 1934년 첫 시집 <방가(放歌)를 내놓으며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1935년 <삼사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시와 소설을 발표하고, 1940년 단편소설집 <늪>를 간행하면서 소설에 전념했다. 광복 후에는 <독짓는 늙은이> <곡예사> <학> <별> <이리도> <땅울림> <어둠속에 찍힌 판화> <황노인> <모델> <목 너머 마을의 개> <소나기> 등의 단편소설과 <별과 같이 살다> <카인의 후예> <인간접목> 등이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소나기 2>는 강재림이, 황순원의 <소나기>에 등장하는 소년 소녀의 가슴에 시린 사랑을, 어른의 세계로 옮겨 두 개의 단막극으로 집필해 연출했다. 두 작품 다 <소나기>가 오는 상황에서 펼쳐지는 남녀의 사랑이야기다.

첫 번째 단막극은 찻집에서 벌어진다. 외국에서 5년 만에 귀국한 남자주인공이 예전에 자주 들르던 찻집에서 커피 한잔을 시켜 놓고 있을 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내린다. 문득 밖을 보니, 젊은 여인이 비를 맞고 서있었고, 남자는 무의식중에 여인에게 다가가 자신의 외투를 벗어 씌워준다. 두 남녀의 만남…슬픈 과거가 있는… 남성은 운전 중 부부싸움을 하다가 충돌사고로 아내와 아이를 죽게 한 후 자살을 결심했으나 실행을 못하고 외국으로 갔던 일을…. 여성은 어머니의 새 남자를 살해한 후 교도소에서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 괴로운 각자의 이야기와 외로운 처지를 상대에게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사랑의 신이자 현대판 큐피트인 강재림이, 두 사람을 하나로 엮어놓는다.

두 번째 단막극은 20대 남성과 연상의 여인의 사랑이야기다. 여자 친구의 생일날

남자친구가 그녀의 셋방에 들러 생일축하라고 쓴 울긋불긋한 장식종이를 벽에 붙여놓고, 생일 케이크도 꺼내놓는다. 여자 친구가 돌아오는 기척이 들리자 남성이 방 불을 끄고는 생일 축하한다는 소리와 함께 다시 불을 켠다. 그런데 등장한 여인은 여자 친구가 아닌 묘령의 여인이다. 남성이 자세히 보니 자신의 나이처럼 20대가 아닌 30대 여인이다.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남성의 여자 친구는 다른 남성과 정분이 나, 남자친구에게 어머니 수술비 명목으로 돈을 빌린 후 줄 행낭을 쳤고, 30대 여성은 남편의 폭력에 견디지 못해 이혼한 사실을 털어놓는다. 비록 연상이지만 예쁘고 어려보이는 용모에 이끌려 남성은 자신도 모르게 연모의 정이 생긴다. 그러나 남성은 밤이 늦었기에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짐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바로 그 때 소나기가 쏟아져 내리고, 남성이 다시 머무르면서 큐피트 강재림의 의해 두 사람의 사랑이 안개꽃처럼 봉긋이 피어오른다.

박진호, 이용규, 김기태, 이초아 등이 출연해 호연과 열연으로 극단 노을의 강재림 작·연출의 <소나기 2>를 누구나 보고 즐길 수 있는 친 대중적인 걸작희극으로 만들어 냈다.

8월 5일

4, 유라시아셰익스피어 극단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남육현 번역 연출의 <리어왕>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촌장 김흥우) 다초실험극장에서 유라시아셰익스피어 극단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남육현 번역 연출의 <리어왕>을 관람했다.

<리어왕>은 연극은 물론, 수많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앤드루 맥컬로우(Andrew McCullough)가 연출하고 오손 웰스(Orson Wells)가 주연한 1953년 영화 <리어왕>, 코진체프(Grigory Kozintsev)가 연출하고 유리 야벳(Yuri Jarvet)이 주연을 맡은 1970년 러시아판 <리어왕>, 구로사와 아키라(Kurosawa Akira) 연출, 일본풍으로 각색된 1985년 란Ran), 장 뤽 고다르(Jan-Luc Gordard)가 연출 버지스 메레디스(Burges Meredith)가 주연을 맡은 1987년 <리어왕>등은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는 역작들이다.

그 외에도 <리어왕>은 텔레비전 방송용으로 제작되기도 했는데, 조나단 밀러(Jonathan Miller)가 연출하고 마이클 호던(Michael Hordern)이 주연한 1982년 BBC TV <리어왕>, 마이클 엘리엇(Michael Elliot) 연출로 로렌스 올리비에(Laurence Olivier)가 주연을 맡은 TV <리어왕>이 대표작이다.

그 중 특히 주목할 영상 텍스트는 피터 브룩이 연출한 1971년도 영화 <리어왕>이다. 여타 영화는 대체로 원작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에 입각하여 시각적 가능성들을 실험했으나, 피터 브룩의1971년 <리어왕>은 전통적 해석을 넘어선 새로운 창작의 시도로, 원작을 발전적인 방향으로 한 단계 뛰어넘는 연출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실험극장 허규 연출의 리어왕, 극단 76 기국서 연출의 리어왕, 고대극예술동우회 고금석 연출의 리어왕, 연희단거리패의 이윤택 연출의 리어왕, 인천시립극단 김철리 연출의 리어왕, 극단 미추의 이병훈 연출의 리어왕, 극단 숲의 임경식 연출의 리어왕, 국립극단의 윤광진 연출의 리어왕 등의 공연에서 원작의 내용을 최대한 살리며 이낙훈, 기주봉, 주진모, 전성환, 서국현, 정태화, 이문수, 장두이 등 리어를 맡아 탁월한 기량으로 열연을 펼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근자에 이르러 셰익스피어 희곡의 공연들이 내용은 원작을 따르지만 축소 변형된 공연이 많고, 3, 4명으로 축약시킨 공연도 있다. 셰익스피어 작품 뿐 아니라, 고전을 변형시킨 공연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세를 이루는 작금의 현실이니 누가 그것을 탓하랴마는, 셰익스피어 원작을 제대로 공연하는 단체는 드물고, 원작공연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국공립극단을 제외한 각 극단의 재정적 어려움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원작을 제대로 공연하는 경우에는 연출자나 스텝 그리고 출연자의 기량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에, 능력부족을 감추기 위한 방편으로 변형된 작품을 공연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온갖 어려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유라시아 셰익스피어 극단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원작대로의 공연을 할 뿐 아니라, 재작년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이나 작년 서거 400주년에 맞춰, 휴식시간을 제외한 다섯 시간의 원작 <햄릿>공연을 함으로써 한국 셰익스피어 작품 공연 사에 새로운 이정표와 금자탑을 쌓게 되었다.

금번 <킹 리어>를 연출한 남육현 교수는 서강 대학교 대학원과 셰익스피어의 본고장인 런던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유라시아 셰익스피어 극단을 창단해 셰익스피어 전체 작품을 공연할 목표로 현재 17개의 작품을 공연했다. 88올림픽 예술축전 6개국 해외 공연팀 책임연출, 열두 번째 밤, 베로나의 두 신사, 나스타샤, 헛소동, 끝이 좋으면 다 좋아?, 사랑의 헛수고, 리처드 2세, 헨리4세 제1부, 헨리4세 제2부, 헨리5세, 존왕, 아테네의 타이먼, 에드워드 3세, 햄릿 그 외의 다수 작품을 연출했다. 번역 작품으로는 맥베스, 고곤의 선물, 위대한 신 브라운 외에도 다수 작품이 있다.

남육현 교수의 태산(泰山) 같은 의지와 금강석을 뚫는 천착(穿鑿)의 장인정신, 그리고 예술혼(藝術魂)이 금번 <킹 리어> 공연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리어왕(king Lear>)에 나타난 가치관의 갈등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1550년대에서 1600년대 초까지의 영국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1601년 에섹스(Essex)백작은 반역죄로 사형에 처해지고, 엘리자베스 여왕은 아직 후계자를 두지 못한 상황에서 전통귀족과 신흥귀족 그리고 중산계급은 1610년대에 이르러 상호간의 대립을 드러냈다. 특히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Spanish Invincible Armada)를 격퇴하는데 중산계급의 주도적 역할과 세력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의회에서의 중산계급의 역할이 강화되면서 타협과 균형이 깨지게 되었고, 이는 엘리자베스 사후 제임스 I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더욱 심해졌다.

<리어왕>이 집필된 시기로 추정되는 1604-5년경은 이런 정치적 갈등이 가치관의 분열과 결부됨으로써 영국과 전 세계에 대 혼란이 닥쳐올 것이라는 비관적 견해가 팽배했던 시기였다. 따라서 작품 속엔 정치적 질서체계는 물론 인간과 세계를 연관시켜주는 종교적, 철학적 혼란까지 나타나고 있다.

1막에서는 리어왕의 비극적 결함이 드러난다. 그것은 곧 그의 통찰력의 결핍, 고집과 노망, 규정해 놓은 질서의 파괴 행동 등이 바로 그것이다. 아첨을 거부하고 물질적인 이익을 위해 사랑을 거래하기를 거절한 코딜러어와 코딜리어를 변호하는 켄트를 리어왕이 추방하는 것은 그가 진실을 직시하지 못했기에 일어난 일이고, 이 때문에 리어왕은 받아 마땅한 불행을 겪게 된다. 그가 왕국을 분할하고 왕권을 이양하는 것은 신으로부터 받은 왕권을 방기하는 것이며, 신으로부터 위임받은 의무를 저버리는 질서파괴의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리어가 왕관을 벗는 순간 중세적 위계질서는 무너져버린다. 그가 왕관을 벗고도 왕으로서의 권위를 행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중세적 위계질서의 체계가 갖는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사실을 인정하려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게 된다. 그는 광인이 되어 누더기를 걸치고 폭풍우 속을 헤매고 난 후에야 그 사실을 깨닫는다.

코딜리어는 이 극에서 기존 질서체계를 지탱해주는 경직된 형식의 한계를 제일먼저 깨달은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의 진심을 경직된 형식으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언니들의 말을 흉내 내지 않고, 리어왕의 요구에 ‘아무 말씀도 드릴 것이 없다’라고 대답한다. 그녀의 ‘없다’라는 대답은 리어왕을 정점으로 하는 질서체계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붕괴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극적으로 보면 그녀는 불란서 왕과 결혼하여 영국을 떠남으로써 기존의 질서가 붕괴되고 혼돈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질서체계가 대두 되는 과정에서 하나의 이상적 관념으로 존재하게 된다.

인간의 사회적 존재양식이 내용과 형식의 조화라고 하는 이상을 지향하고 있다면, 리어왕의 세계에서의 합당한 인간관계는 고너릴과 리건으로 대변되는 형식과 코딜리어로 대변되는 내용이 조화를 이룸으로써 가능한 것이 된다.

코딜리어가 영국을 떠나게 된 후, 고너릴과 리건은 통치권을, 에드먼드는 상속권을 위해 기존의 가치와 규범과 인륜을 파괴하는 행동을 보인다.

작가는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는 과정을 에드거와 올버니를 통해 이루어 나간다. 에드거가 극한적 고통을 경험함으로써 삶에 대한 깨달음에 도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간관계를 구축해 나가는가 하면, 올버니는 그와 같은 인간관계를 근거로 하여 새로운 사회질서를 확립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올버니는 극의 전반에는 에드거처럼 소극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다. 또한 사회가 혼돈 속에 빠져들어도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4막 2장에서부터는 전혀 다른 인물로 나타난다. 그가 자신을 ‘공명정대하지 않는 경우에는 결코 용기를 발휘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설명하듯 그는 혼돈 속에 방황하고 있는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분명한 판단기준과 공평한 안목을 갖춘 인물로 바뀌어 에드거와 함께 혼란된 질서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한다.

대단원에서 코딜리어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된 리어가 코딜리어와 화해하지만, 이미 두 사람은 더 이상 생존하지 못하고 생을 마무리한다.

역사란 끊임없이 경직된 기존질서체계가 수립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인간의 고통과 회생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면 ,<리어왕>은 그런 역사적 전환기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혼돈과 그것의 극복과정을 냉철하게 탐색하는 극이라고 할 수 있다.

무대는 장치 없이 조명변화로 장면전환이 이루러지고, 무대 좌우와 객석 통로가 출연자들의 동선으로 활용된다. 웅장한 클래식 음악과 나팔소리로 분위기를 상승시키고, 조명의 색상변화, 고풍스런 의상과 왕관을 위시한 장신구, 그리고 장검이 사용되고, 환자이동의자가 등장한다. 다른 공연단체에서는 광대를 남성배우가 맡아했으나, 이번 유라시아셰익스피어극단 공연에서는 여배우가 광대역을 한다.

  

연극은 원작대로 전개된다. 도입에 킹 리어와 고너릴, 리건, 코딜리아의 세 딸이 등장하고. 연로한 리어는 딸의 자신의 대한 효성 심에 따라 국토를 나누어주려 한다. 맡 딸과 둘째는 마음에도 없는 말로 환심을 사는 것을 보고 진실한 막내딸 코딜리아는 거짓 없이 평소에 아버지에게 대하던 태도로 응답함으로 해서 리어의 분노를 사게 되어 추방당한다. 막내를 변호하던 충신 켄트백작도 마찬가지로 추방된다. 국토는 첫째와 둘째 딸에게 모두 분배된다. 그런 후 리어는 호위 병사들을 대동하고 두 딸에게 교대로 다니며 머물기로 했으나, 딸들에게 냉대를 받게 되자 궁정의 광대를 데리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광야에서 두 딸을 저주하며 광란한다.

프랑스 왕비가 된 막내 코딜리아는 부왕의 참상을 듣고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영국으로 가지만 리어와 함께 포로가 되고 죽게까지 된다. 리어는 딸의 주검을 보고 슬퍼하여 절명한다. 두 딸은 불륜의 사랑으로 신세를 망치고, 고너릴의 남편인 앨버니 공작이 왕위에 오른다. 이런 모든 장면을 시종일관 광대가 지켜보는 것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강희영이 킹 리어로 출연해 혼신의 열정으로 열연을 해 보인다. 정연신이 광대로 출연해 독특한 성격설정과 무용하듯 펼쳐 보이는 연기로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박혜준이 고너릴, 조승희가 리건, 정다영이 코딜리어로 출연해 제 자매의 호연과 열연은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국호가 글로스터 백작, 이용민이 올버니 공작, 임주영이 에드먼드, 정슬기가 에드거, 정태호가 콘월, 그리고 정성은, 김창규 등 출연자 전원의 성격창출과 호연은 갈채를 받으며, 유라시아셰익스피어극단의 남육현 번역 연출의 <킹 리어>를 제10회 남해섬 공연예술제의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기억에 길이 남을 걸작 연극으로 창출시켰다.

8월 19일 박정기(朴精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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