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딜 1-예술강사 100년 대계
글_오세곤(연극평론가)
헌법 제22조
①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②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
우리 헌법에서 예술은 학문과 함께 모든 국민이 자유롭게 누려야 할 대상이다. 예술이 국가와 사회의 근간임을 알려 주는 대목이다. 또 그 예술을 담당하는 이들, 즉 예술가들은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함께 법률의 보호를 받도록 되어 있다. 예술가는 국가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인력이라는 뜻이다.
예술은 실패의 확률이 높다. 기술은 여러 번 실패하면 때로 포기하고 다른 것을 찾기도 하지만 예술은 몇 번을 실패해도 집요하게 그것만을 고집한다. 그래서 스스로 설정한 기준이 유난히 높을 경우 일생 단 한 번도 결과물을 내놓지 못 하는 경우까지 있다. 또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므로 자칫 그것 외에 다른 일에는 신경을 못 쓰거나 관심이 없어 때로 무능해 보이기도 한다. 이런 속성의 예술가들은 특별히 보호하지 않고 방치하면 특히 야만적 자본주의가 만연한 일상의 삶에서 낙오하거나 도태될 수 있다. 그러나 예술가가 사라지고 나면 아마 그 사회도 결국 소멸되고 말 것이다.
예술가를 보호하라면 흔히 선택과 집중을 얘기한다. 우수한 능력의 예술가만 찾아서 보호하겠다는 것인데 이게 말은 그럴 듯하지만 실제 예술의 속성과는 맞지 않는 말이다. 왜냐하면 예술은 수많은 실패를 전제로 하는 분야인데 수월성을 기준으로 대상을 찾다 보면 자칫 이미 성공이 확인된 예술가들만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스스로 정한 기준이 높아서건 제대로 길을 못 찾아서건, 실패한 예술가, 실패하고 있는 예술가, 실패할 예술가들, 즉 잠재적 성공 가능성의 예술가들은 애초부터 보호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예술가가 너무 많다는 얘기들을 한다. 예술대학이 너무 많다고들도 한다. 예술가를 무조건 보호한다고 했다가 누구나 다 예술을 하겠다고 나서면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들도 한다. 참으로 고민을 위한 고민이고 걱정을 위한 걱정이다. 아무리 국가가 예술가를 보호한다고 그렇게 어려운 길, 성공의 확률이 거의 제로인 길로 무작정 달려갈 이들이 무한정 많이 나온다고 생각하다니 참으로 단순하기 짝이 없다.
많다는 얘기를 하기 전에 혹시 국가와 사회의 유지 발전을 위해 예술가가 얼마나 필요한지 생각해 본 적은 있는지 모르겠다. 소위 국가 인력 수급 계획을 짤 때 적정한 예술가의 수나 비율을 따져 보지도 않고 무조건 많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그건 크게 지탄받을 일이다. 특히 국가를 운영하는 위정자나 정책 결정자들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심각한 자격 미달로 무척 부끄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예술강사를 예로 들어 보겠다. 모든 국민에게 예술의 자유가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누구건 뜻만 있으면 예술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예술을 즐기는 방법에는 하는 예술과 보는 예술(또는 감상하는 예술)이 있을 것이다. 일반인들이 예술에 참여하려면 대부분 전문 예술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바로 학교와 사회에서 예술강사들이 하는 일이다. 그들은 스스로 예술가이면서 일반인들을 위한 예술 교육 서비스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모든 국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대단히 중요한 인력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대접은 참으로 민망하기 짝이 없다. 더욱이 예산 부담을 핑계로 예술강사의 규모도 모든 예술 분야를 합해 5천명 수준으로 거의 불변이다.
그래서 이런 계산을 해본 적이 있다. 전국에 초중고 학생들에게 1주일 2시간씩 문화예술교육을 실시하려면 과연 몇 명의 예술강사가 필요할까? 주당 15시간 정도 시수를 맡길 때 학교 당 평균 5명이 필요하고 전국 초중고를 약 1만개로 본다면 필요한 예술강사는 5만명이 된다. 여기에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합쳐 약 5만개에 이르는 유아 교육기관에 1명씩의 예술강사를 파견한다면 역시 5만명이다. 그리고 사회문화예술교육을 위한 강사를 국민 500명 당 1명으로 생각한다면 다시 10만명이 필요하다. 결국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문화예술교육을 실시하려면 20만명의 예술강사가 필요한 셈이다.
20만명이란 참으로 어마어마한 숫자이다. 그러나 필요하다. 어쩔 것인가? 많다고 하면서 아무 시도도 안 하면 언제까지나 그 모양일 것이다. 그래서 장기 계획이 필요하다. 매년 1만명씩 늘여간다면 20년이 걸리고 5천명씩 늘여간다면 40년이 걸린다. 너무 멀다고, 너무 오래 걸린다고 하지만 사실은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닐까? 20년, 40년이 아니라, 더 길게, 50년, 100년, 200년이 걸리더라도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뉴딜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예술강사의 정체성은 예술가이면서 교육자이다. 예술가에게 교육은 일단 타인을 위한 서비스이겠지만 동시에 자신의 예술 역량 발전에도 크게 도움을 주며, 비록 아직은 열악하기 짝이 없는 현실에서 품어보는 단순한 희망사항일 뿐이지만, 경제적 삶을 유지시켜주는 수단이 되어 지속적으로 예술 창작을 시도할 최소한의 여건을 제공할 수도 있다. 제대로 된 처우를 받는 예술강사 20만명은 우리나라에 적어도 그 숫자만큼의 예술가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예술 창작에 나설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예술의 진흥을 위해 단순하면서도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역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2020년 6월 1일 오세곤
예술을 담당하는 모든 분들이 꼼꼼히 읽어보고 차극차근 실천해 나이가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