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파사드로 구획된 무대와
비트로 꽉 찬 음악 안에서
전통의 몸짓을 펼치다
글_정윤희
작 : 十_영원 Ⅱ
공연단체 : 리을무용단
안무 : 이희자
연출 : 김남진
조안무 : 김정민, 최희원
드라마터그 : 이주영, 김지민
공연 일시 : 2020.9.18(금) 오후 7시 30분
공연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네이버TV)
관극 일시 : 2020년 9월 18일(금) 오후 7시 30분
출연 : 이주영, 김정민, 박세라, 최희원, 이주희, 김지민, 이자헌, 홍지영, 유재성, 김민지
각시탈을 위한 군무
시작은 각시탈의 군무였다. 무용수가 팔을 곧게 위로 뻗어 들어 올린 각시탈은 하늘하늘한 옷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동그랗게 뻥 뚫린 눈과 뻥 뚫린 입은 호기심에 못 이겨 무언가를 좇고 있었다. 멍청하게 공허한 표정을 짓고서 음악의 비트에 자기도 모르게 반응하며 움칫움칫했다. 각시탈을 쓴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십여 개의 막이 흐르는 가운데 점점 더 역동적으로 변해간다.
한 번은 무용수들이 차례차례 각시탈을 벗었고 비로소 무용수들의 얼굴이 드러났다. 비장한 듯 단단한 그들의 표정은 각시탈의 표정과는 사뭇 달라 나는 당혹스러웠고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다시 한 무용수가 각시탈을 쓰고 형형색색의 미디어 파사드 작업과 음악이 펼쳐지는 무대 위에 등장했을 때, 각시탈과 진짜 무용수의 얼굴 중 어느 것이 ‘영원’이라는 개념에 조응하는지 전혀 판단할 수가 없었다.
전통의 움직임을 긴박하고 각 잡힌 것으로 치환한다면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기본적으로는 전통에 기반하고 있었다. 특히 군무의 중간중간 삽입된 독무는 전통적인 움직임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무대였다. 전통적인 세계에서 무용수는 오랜 세월 몸짓을 가다듬어 드디어 내면의 정신이 움직임으로 형언되는 그 순간까지 수련을 거듭했었다. 미세하게 떨어지는 팔 동작과 아름다운 곡선을 완성하는 손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가느다란 바람처럼 흘려보내곤 했다.
<十_영원 Ⅱ>에서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외형적인 틀은 전통을 따르고 있으나 그러한 여유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음악에 다소 반사적으로 움직인다. (게다가 이 공연은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높은 완성도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었다.) 모든 움직임의 흐름을 끊어먹지 않고 곡선으로 연결하려 했던 전통의 움직임과는 대조적이다. 각시탈을 쓴 무용수들이 미디어 파사드가 만든 좁은 길을 한 줄로 걸으면서 잡았던 치맛자락조차 네모 모양이었다.
구획된 무대와 꽉 찬 음악 안에서
자율과 타율의 문제가 제기된다. 네모 모양의 미디어 파사드 화면은 무대를 가두었다. 오방색의 갖가지 형태들이 음악에 따라 현란하게 무대를 채우곤 하지만 일정의 네모 모양을 벗어나는 일은 없었다. 언제나 무대 위에는 반듯한 네모가 그려져 있었고 무용수는 그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들은 현란한 음악의 비트와 미디어 작품에 반응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스스로 전통의 틀을 깨뜨리고 있었던 걸까. 공연이 흘러감에 따라 그들의 움직임이 점점 더 자유로움과 역동성을 띠고 있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예술과 영원이라는 주제
작품은 다른 장르에 많은 것을 내어주었다. 음악과 미디어 파사드 작업이 무대를 꽉 채우도록 내버려 두었으며, 기발한 소품과 의상에게 큰 역할을 내주었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전통과 현대라는 양극단의 사이를 긴장되게 오고 가는 한편, 다분히 연극적이었다. 작품의 제목조차 무용의 적수인 언어에게 내주고 말았다. 스스로 자신의 틀을 깬 또 하나의 새로운 움직임이 탄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