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과 공명하기, 전통 음악극의 현재

창극 <별난 각시>

정명문(공연컬럼리스트)

작 : 서연호

각색, 연출 : 홍원기

작창 : 박애리

작곡 : 김백찬

출연 : 박경민, 김대일, 윤영진, 이지숙, 정민영, 정승희, 김수아, 김수영, 방수미, 현미, 양혜원, 최영란, 고준석, 김은석, 유태겸, 송세운, 황갑도, 소원검, 김현주, 박은선, 서진희, 최광균, 임재현, 김혜정 외

일시 : 2022.5.13~14

주관 : 국립민속국악원

장소 : 국립국악원 예악당

코로나로 제재를 받았던 것들이 조금씩 풀리면서 신작 공연들이 많아졌다. 공연계가 힘들었던 대신, 콘텐츠들에 K를 붙인 K-영화, K-드라마, K-pop, K-국악 등이 널리 알려졌다. 이날치밴드의 돌풍이나 JTBC 풍류 대장처럼 국악의 대중화 혹은 국악과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도 익숙해지고 있다. 창극은 명창인 도창을 중심으로 잘 알려진 소리를 나눠 부르는 방식이 익숙했었지만, 이러한 다양한 흐름과 결합하면서 변화 중이다.

국립민속국악원의 <별난 각시>는 하회탈춤과 서낭신 전설을 기반으로 한 창극이다. 이 작품은 역병과 치유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코로나 시대를 겪는 지금과 연결되며, 무대 구현 방식에서도 지금의 관객을 고려하고 있다. 진화하고 있는 창극의 면모를 이 작품을 통해 확인해보도록 하자.

사진제공: 국립민속국악원

역병, 치유, 상생

작품의 토대는 안동 하회마을의 탈 제작 기원에서 출발한다. 마을에 역병이 돌고, 허도령은 탈을 만들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신의 점지를 받는다. 그런데 허도령을 사모하던 처녀가 탈 제작을 보지 말라는 금기를 어겨 청년이 죽는다. 뒤따라 처녀도 죄책감으로 따라 죽는다. 서낭당은 그녀를 위로하는 곳이고, 마을 수호신은 그 처녀가 되었다. 이후 안동 하회마을에는 섣달 보름날(12월 15일)이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무진생(戊辰生) 성황님에게 별신굿을 해왔으며 굿과 더불어 성황님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하여 탈놀이를 한다. 특히 각시탈은 성황신을 대신하기에 별신굿 외에는 볼 수 없고, 꺼낼 때는 반드시 제사를 지내야 한다.

<별난 각시>는 위 스토리에서 허도령과 각시, 역병이란 큰 줄기를 가져오되 젊은이의 사랑과 치유 부분을 강조한다. 극의 시작은 옥단춘의 울음과 6명의 혼각시들이 희랍극의 코러스처럼 각시탈 분실을 알리며 시작한다. 물도리동 마을에선 허가와 안가가 탈 분실 책임 소재로 반목이 생긴다. 이 마을 양반댁 마님의 병을 고치기 위해 찾아온 민의원과 딸 진이는 허도령의 목숨을 살리게 된다. 마을에서는 안도령을 위시하여 진이에게 잘 보이려는 소동이 벌어지고, 이를 피하려 서낭당에 들어간 허도령과 진이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이곳에서 안도령, 단춘이가 탈을 건드리고, 마을에는 역병이 번지게 된다. 민의원과 진이는 마을 사람들을 치료하다 죽음에 이르고, 허도령은 진이를 닮은 각시탈을 제작한다. 정월 대보름 무진생 각시 진이와 허도령의 혼례가 별신굿 안에서 치러지며 마을은 평화를 되찾게 된다.


사진제공: 국립민속국악원

민속놀이는 당대의 사회상을 반영한다.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지배계층인 양반과 선비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중의 파계를 통하여 종교의 허구성을 비판하며, 상민들의 삶의 애환을 표현하였다. 상민은 탈놀이로 억눌린 불만을 해소하고, 양반들은 상민들의 풍자를 통하여 그 삶을 이해하고 불만을 해소해 갈등과 저항을 줄였다. 즉 탈놀이는 공동체 내부의 문제점을 완충하고, 다시 체계를 강화하는 기능을 하였다.

그에 비해 <별난 각시>는 탈춤에서 선보였던 무동마당· 주지마당· 백정마당· 할미마당· 파계승마당· 양반과 선비마당· 혼례마당· 신방마당 의 일부 순서는 따르되, 파계승, 양반에 대한 풍자·해학의 내용은 덜어냈다. 대신 종갓집 맏며느리, 수절과부, 의녀 등 과다한 책임과 타인의 시선에 갇힌 각시들의 상황을 보여준다. 그녀들은 많은 일을 하고도 대접받지 못하고, 남편 죽음의 원인으로 손가락질당하고, 능력보다 여성성으로 시선을 받는다. 즉 문제의 대상을 여성의 지위와 같은 사회적인 부분으로 옮겨 지금의 관객들도 쉽게 공감하게 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역병의 원인을 여성이 탈을 꺼내서 혹은 이방인이 옮겼기 때문이라며 인신 공양을 들먹인다. 하지만 산주(제사를 주관하는 자)를 중심으로 병자를 격리하고, 탈을 만드는 등 기준을 세우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지난 몇 년 코로나를 겪으며 그 어떤 공포물보다 혼란한 시간을 겪어왔다. 그래서 작품 내 좌충우돌은 어느 정도 이해도 되고, 또 다른 실수는 없는지 관객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된다.


사진제공: 국립민속국악원

진이는 제 몸을 돌보지 않고 동등하게 의술을 행하며, 종가집 맏며느리의 소원으로 양반네는 귀한 소를 잡아 마을 사람들에게 국밥을 나눠 먹인다. 허도령은 정성껏 탈을 만든다. 내부인이든 타지인이든 본인의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고, 모두 공동체의 존립을 바란다. 그런 그들의 마음은 각시, 중, 양반, 선비, 초랭이, 이매, 부네, 백정, 할미 탈로 옮겨진다. 즉 마을을 돌보게 되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된다.

최종적으로 마을의 새로운 신은 자기를 희생하여 타인을 돌본 진이가 된다. 그녀는 이승에서 허도령과 사랑을 이루지 못했지만, 마을의 수호신이 되어 더 큰 사랑을 행하게 된다. 이 작품은 나를 낮추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으리란 상생의 메시지를 보여준다. 즉 지금의 관객들에게 개인주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화해와 치유를 위해 어떤 방법을 선택해야 하는지 고민하도록 만든다.

지금의 방식으로 조정하기

음악극은 음악과 가사 둘 다 중요하다. 가락과 가사 전달 비중이 비슷해야 관객들에게 스토리도 잘 전달된다. <별난 각시>는 창을 교대로 하는 소리꾼 여럿과 피리, 태평소, 대금, 해금, 가야금, 거문고, 아쟁, 꽹과리, 장구, 대고, 피아노, 소리북 등의 기악단과 함께 무용단이 합쳐져서 가무악과 유사한 무대를 형성하였다.


사진제공: 국립민속국악원

인물들의 창은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이다. 기본적으로 ‘어단성장’(語短聲長; 노래할 때 낱말은 빨리 붙이고 소리는 길게 냄, 판소리 용어)에 유념한 발음, 의성어와 의태를 활용한 재담이 나오지만, 인물 간 대화창은 8~10구절 안에서 처리하여 스피드를 높였다. 또한 전적으로 현대어를 활용하여 가사가 쉽게 들릴 수 있도록 하였다. 그 외에도 이중창, 독창, 합창처럼 다양한 가창 방식을 활용하였으며, 반복되는 곡을 통해 등장인물의 변화를 드러내면서도 관객에게 각인이 될 수 있는 멜로디도 만들었다. 이렇게 <별난 각시>는 ‘창’을 서양 음악극 형태와 연결하여 최대한 지금의 관객들에게 스토리 전달이 되도록 하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동사, 양반댁, 단춘의 집은 간략한 형태이지만 각 장에서 꼭 필요할 때 등장한다. 배경 전체가 한지와 같은 부드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강하고 여린 조명의 색감을 조절하는 기능까지 하고 있었다. 배우들의 의상도 흰색에 포인트를 주는 방식이다. 간단하지만 상징적인 무대와 조명이 작품 전체 분위기와 어울렸다.


사진제공: 국립민속국악원

또한 무용단의 춤은 불안한 심리와 사회적 상황을 설명 없이 확연히 드러내는 기능을 하였다. 애끓는 정서를 기반으로 한 창은 죽음에 이르는 상황에서 감정을 터트리는 방식으로 활용되었다. 과거 창극은 소리를 위주로 하되, 무대 표현은 미묘하게 제시하였다. 하지만 <별난 각시>의 무대는 시각, 조명, 영상 모두 대형 음악극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이는 창극은 음악극의 한 형태로, 창은 다양한 음악 중 하나로 두고 지금의 관객들에게 공명하는 방법을 찾아낸 결과라 하겠다.

현대극과 전통극의 경계가 점차 흐려지는 중이다. 최근 ‘전통의 현대화’는 ‘퓨전’이라 지칭된다. 기존 장르 문법을 지키기보다 현대극에 전통 감각을 가미하거나 전통극에 현대극의 구성을 가져오는 등 공연이란 큰 틀 안에서 접점을 고려하고 있다. 이는 지금의 관객에게 우리 가락과 정서를 전달하면서도 장르 유지를 위한 각고의 노력이라 하겠다. 창극은 이렇게 진화 중이다. 이런 작품들이 관객과 지속적으로 만나지길 바란다.


사진제공: 국립민속국악원

  • 무료정기구독을 원하시는 분은 ohskon@naver.com으로 메일을 보내주세요.
  • 리뷰 투고를 원하시는 분은 ohskon@naver.com으로 원고를 보내주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