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십(幾十) 명이 연주하는 파우스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Faust)’

– 임야비(tristan-1@daum.net)

자유기고가, 서울 신포니에타 기획 및 연출

극단 듀공아 / 극단 외계공작소 연출부 드라마투르그

파우스트라는 높디높은 산. 2020년 10월부터 쉼 없이 등반하다 지난 4월과 5월 연재에는 산 중턱에서 잠시 쉬어 가는 시간을 가졌다. 이제 다시 몸을 일으켜 정상을 향해 힘찬 걸음을 이어 나가 보자. ‘기십(幾十) 명이 연주하는 파우스트’의 세 번째 연재는 프랑스의 작곡가 베를리오즈(H. Berlioz; 1803~1869)의 대표작 ‘환상 교향곡(Symphonie Fantastique)’의 제5악장 ’마녀들 밤의 꿈(Songe d’une Nuit de Sabbat)’이다.

<Hector Berlioz / Harriet Smithson>

프랑스의 작곡가 엑토르 베를리오즈는 세련됐고 과감했다. 그리고 뼛속까지 낭만주의자였다. 이런 성향은 그의 인생과 음악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27살의 낭만주의 청년은 셰익스피어 전문 여배우 해리에트 스미드슨(Harriet Smithson; 1800~1854)과 세련된 로맨스를 썼고, 베토벤이 완성한 교향곡에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다. 비록 여배우와의 로맨스는 비극으로 끝났지만, 청년 베를리오즈의 진폭 큰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환상 교향곡’은 ‘낭만주의 교향곡’, ‘표제 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불멸의 명곡이 되었다.

이 음악의 표제는 ‘환상 교향곡’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마약에 절을 대로 절은 ‘환각 교향곡’에 가깝다.

해리어트 스미드슨은 영국 셰익스피어 극단의 간판 여배우였다. 파리 공연에서 그녀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햄릿’의 오필리어 역을 맡았다. 곧바로 파리 시민들은 그녀의 미모와 연기력에 열광했다. 당시 학생이었던 베를리오즈도 연극을 보고 곧바로 열광적인 사랑에 빠졌다.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스미드슨에게 접근했지만, 콧대 높은 그녀는 풋내기 음대생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베를리오즈는 반쯤 미친 상태가 되었다.

좌절된 사랑, 들끓는 분노, 끝없는 절망은 작곡가 뇌 속의 어떤 스위치를 켰다. 혈기 넘치던 베를리오즈는 좌절과 추락의 가속도를 광기 어린 예술로 변환시킨다. 그리고 1830년, 그는 이 악마의 에너지를 이용해, 음악이지만 연극처럼 배우가 있고, 각 악장은 막 같은 효과를 내는 괴작을 완성한다.

반(半)음악이자 반(半)연극의 주인공은 정신착란 상태의 예술가인데, 바로 베를리오즈 자신이자, ‘로미오’이자 ‘햄릿’이다. 주인공이 동경하는 연인이자, 예술적 이상향은 ‘고정 악상(Idée fixe)’으로 연주된다. 1악장부터 5악장까지 주요 장면에 빠짐없이 출연하는 이 고정 악상은 바로 스미드슨이자 ‘줄리엣’이자 ‘오필리어’다.

환상 교향곡은 1막(악장) ‘꿈, 열정’, 2막(악장) ‘무도회’, 3막(악장) ‘들판의 풍경’, 4막(악장) ‘단두대로의 행진’, 5막(악장) ‘마녀들 밤의 꿈’으로 진행되는 비극이자, 광기의 축제극이다.

<Witches’ Sabbath – F. Goya 1798>

파우스트와 가장 관련이 깊은 악장은 제5악장이다. ‘마녀들 밤의 꿈’이라는 부제에서 곧장 ‘발푸르기스의 밤’이 연상된다. 베를리오즈는 5악장의 프로그램에 아래와 같은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 놓았다.

5악장 – 그(주인공)는 그를 매장하기 위해서 모인 무서운 유령, 마술사, 마녀 그리고 온갖 괴물들과 마주친다. 야릇한 소리, 신음, 오싹한 웃음 그리고 멀리서 들리는 고함. 이 고함에 또 다른 고함이 호응하는 듯하다. 연인의 선율(Idée fixe)이 다시 나타난다. 하지만, 예전의 고귀함은 온데간데없고, 천박하고 기괴한 선율로 변해버렸다. 그녀(주인공의 연인)가 이 밤 축제에 나타난다. 그러자 환호하는 요괴들… 그녀가 악마의 축제를 즐긴다… 장례의 종은 ‘Dies Irae(진노의 날)’이자, 광대의 풍자다. 밤 축제의 윤무(輪舞; Rondo). 윤무는 ‘진노의 날’과 하나가 된다.

베를리오즈는 제라르 드 네르발(G. de Nerval)이 프랑스어로 번역한 파우스트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파우스트 1부 중 가장 기괴한 장면인 발푸르기스의 밤은 교향곡의 주인공인 젊은 예술가의 정신 분열적 피날레를 장식하기에 적격이었다. 아마도 베를리오즈는 자신이 창조해낸 과대망상적 세계관을 단번에 몰락시킬 수 있는 거대한 충격을 원했을 것이다.

거인 괴테의 거대한 파우스트. 젊어진 파우스트.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공모하는 파우스트. 고결하고 순진한 여인 그레트헨을 버리고, 죄책감 하나 없이 마녀들과 음탕한 짓거리를 하는 욕정의 파우스트. 괴테가 브로켄산에 세워 놓은 이 세계관은 ‘연출가’ 베를리오즈의 연극 ’환각 교향곡’ 제5막 피날레에 딱 맞는 조합이었다.

(기십(幾十) 명이 연주하는 파우스트 –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 편은 8월호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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