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문을 두드리다!/ 류호선

극장 문을 두드리다!

 

류호선(동화작가, 초림초 교사)

제주도 학생들과 작가와의 만남을 위해 가는 비행기 안, 준비한 원고를 다시 한 번 검토하자마자 금세 비행기는 제주도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가까운 제주시에 위치한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학교에서의 평가가 객관식에서 서술형 평가로 점차 바뀌고, 수시 입학에 논술이 들어가고, 글쓰기에 대한 중요성이 팽배해지는 현 상황을 반영하듯이 4,5,6 고학년들의 질문은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쓰는지, 심지어 어떻게 하면 글을 써서 돈을 벌수 있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들로 이어졌다. 태어나서 처음 작가를 만났다는 제주도 어린이들과의 질의 응답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예정된 시간이 거의 마무리 될 즈음 한 친구가 질문했다.

“선생님은 공연을 자주 보세요?”

내가 쓴 책 중 ‘내 동생은 미운오리새끼’에 보면 발레를 배우는 주인공 지우 이야기가 나온다. 질문을 한 친구의 요지는 책 안에는 공연에 대한 이야기들 특히 발레나 무용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제주도에는 그러한 공연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이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니 여러 가지 문화적인 접촉이 지역적으로 어려운 건 사실이었다.

“제주도에도 재미있는 공연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학교 운동장에서 공연을 했으면 좋겠어요.”

바다가 보이는 학교 강당에서 글쓰기에 대한 질문이 아닌 여러 가지 자유로운 질문들이 오고갔다.

“작가 선생님은 공연을 좋아하세요?”

그렇다. 사실 나는 공연을 무척 좋아한다. 내가 어릴 적 어린이날에 보았던 지금은 나이 많은 가수가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초록색 모자를 쓴 윤복희가 하늘을 날았던 피터팬도 좋았고, 여의도 MBC에 가서 보았던 마당놀이도 좋았으며, 호두까기 인형의 발레도 좋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뮤지컬도 있고, 발레도 있는데 어린이 청소년 연극이 없었다. 딱히 기억나는 연극이 없다는 것이 매우 이상할 정도로 신기했다. 제주도에서 강연을 마치고 돌아와서 자료들을 찾아보았더니 예전에 내가 어렸을 때는 어린이 연극, 청소년 연극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랬구나! 그래서 내가 보지를 못했구나! 그럼 지금은 얼마나 다양한 어린이 청소년 연극이 있는지 궁금했고,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볼 공연들을 찾아서 공연을 보고 이야기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년부터 창의적 체험활동 교과 시수가 교육과정안에 있고, 또 공연 감상하기라는 단원도 있으니 수업시간을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매 학기 국어 시간에 교실 안에서만 배우는 희곡을 진짜 무대에서 배우들과 함께 만나본다면 정말 값진 시간일 것이라는 야심찬 생각으로 우리 어린이들이 볼 만한 공연을 찾기 시작했다.

“얘들아 선생님이 좋은 공연 찾으면 우리 같이 보러 나가자!”

아이들은 일단 ‘나가자’라는 말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지 신나서 대답했다. 날씨 좋은 가을에 재미있는 공연을 찾아 달라고 말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공연을 찾으면 찾을수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공연이 없다는 것이다. 설마 우리나라 안에 크든 작든 극장이 1000개가 넘었고, 수많은 극단이 공연을 만들고 있는데, 어린이 청소년이 볼 연극 하나 없겠어? 그런데 없다!

아이들에게 ‘공연 보러 나가자’라고 이야기 한 10월부터 학교 현장에 활용할 만한 아동 청소년극을 조사하기 시작했으나 적당한 공연이 없었다. 5월이나 12월 같은 특수한 시기를 제외하고는 따로 제작되는 어린이 청소년극은 매우 적었다. 조사하면 다 나온다. 얼마나 적은지.

가장 큰 난관 중 하나는 어린이 청소년 공연이 상시 공연되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기간 어린이날이 있는 5월이나 크리스마스와 연말 12월에 많은 작품들이(그렇다고 아주 많은 작품은 아니라 평소보다는 조금 많이) 나왔다가 썰물 빠지듯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나마 나머지 기간은 극단 측의 사정으로 지방 공연(그마저도 힘든 상황이었다. 학전의 부산 공연은 티켓 점유율이 낮아 최소되었다.), 그리고 어린이 집과 유치원에서 단체 관람을 하는 유아극(샘터 극장) 어린이 난타, 피터와 늑대(교육문화회관), 뽀로로, 로보캅 헬리, 가루야 가루야(체험놀이) 등이 공연되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유아극과 어린이 청소년 극은 엄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어린이 청소년 극을 만드는 극단에서는 충분히 심사숙고해야 할 점이다. 피터와 늑대의 경우 어린이극으로 만들었다고 하나, 극은 어린이들이 보기에는 너무 유아적인 요소들이 많아서 어린이들 입에서 유치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좋은 공연을 보지 못한다면 좋은 공연장의 극장 투어는 어떨까 하는 발상의 전환을 해 보았다. 그래서 극장 투어를 하고 있는 대형 극장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거대한 무대와, 무대 뒤, 내가 상상했던 공간 보다 훨씬 큰 세트들의 견학, 눈이 부실 정도로 번쩍이는 조명 불빛, 배우들의 의상들이 쫙 걸려 있는 분장실 등, 매우 세심한 극장 투어가 가능할 거라는 예상은 조용히 혼자 가 본 극장 투어로 다시 한 번 조용히 실망하고 말았다. 대형 극장의 극장 투어는 정해진 시간 정해진 인원만 받고 있었으며 어린이 단체 같은 경우는 안전상의 문제로(어떠한 안전상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받아 주지 않았다. 결국 평일 공연이 없는 대낮, 비어있는 극장을 어린이 청소년들이 극장 안을 돌아보기에는 그 문턱이 너무 높았다. 그렇다고 극장장을 직접 만나 교사의 원하는 바를 조목조목 이야기하기에 그분들이 너무 바쁘신지라 이렇게 글로서 의견을 대신할 뿐이다. 어린이 청소년들의 체험활동 시간에 많은 대형 극장들이 형식적인 극장 투어가 아닌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신나는 극장 투어를 했으면 한다. 미술관에 가면 전문 도슨트들이 있듯이 공연을 사랑하고 극장을 사랑하는 전문안내인을 통해 유럽처럼 몇 백 년의 극장은 아니더라도 극장의 역사나 공연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어보고 극장을 들어 보는 재미있는 시간들이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열려있었으면 한다. 배우들이 극장 홍보를 겸해서 함께 해도 좋을 것 같다. 무대감독이나 조명감독을 직접 만나서 학생들이 질문도 하고 학생들 눈으로 돌아가는 무대나 조명을 본다면 공연 못지않은 체험과 감동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공연장을 찾아본 어린이 청소년들이 커서 성인이 되었을 때 우리 문화 예술을 관람하러 공연장을 다시 찾을 것이다. 더 이상 안전상의 문제라든가, 인원수의 제한이 있어서 힘들다든가, 정해진 시간만 가능하다는, 늘 돌아오는 정해진 답변만 듣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제주도의 어린이들만 공연이 없는 바다에 막혀 있지 않았다. 한류의 열풍이 불고 있고, 문화라는 코드가 여기저기서 사용되는 지금 우리가 문화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자라나는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문화적인 자극을 쉴 새 없이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릴 적부터 경험하고 체험한 공연만큼 좋은 것이 없다. 어린이들이 볼 수 있는 좋은 공연들이 많아서 도대체 무엇을 보아야 하나? 라는 걱정이 아니라 어느 공연을 보아야 하나? 하는 선택을 위한 걱정을 하는 시기가 하루빨리 오기를 우리 연극을 사랑하는, 그리고 어린이 청소년 연극을 더 사랑하는 교사의 눈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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