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과 발성, 오해와 진실/ 우상전

호흡과 발성, 오해와 진실

우상전(연극배우)

연기학회가 연기교육에서의 호흡과 발성을 모색하는 자리를 가졌다. 실제로 현재 발행된 연기교재 중에 호, 발성에 관한 서적이 가장 많은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가장 미진한 게 호, 발성인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호흡과 발성에 대한 필요를 실제로는 못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모두가 다 잘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면 교육에 대한 효과가 별로라고 여겨서 그러는 것일까?

우리는 왜 호흡과 발성에 취약한가?
몇 해 전 SPAF의 축제에서 헝가리팀이 공연한 를 보면 작은 아르코소극장을 그나마도 객석까지 포함해 반절밖에 사용하지 않는다. 또 루마니아의 는 3분의 2 정도만을 사용했다. 좀 의아해서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그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하나같이 작품의 진정성을 살리기 위해서 작은 공간을 사용한다는 거다. 즉 배우들이 불필요하게 목소리를 높여 등장인물들의 정서와 심리를 훼손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마치 카페에서 대화를 하듯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란다.
또 올해의 개막작인 폴란드연극은 커다란 아르코대극장 무대에서 배우들이 작은 목소리로도 공연의 진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자그마치 2억 원이나 나가는 음향기기를 직접 가지고와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더욱 우리를 경탄케 한 것은 배우들이 ‘덧 마루’ 위에서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발자국 소리’까지 내어 표현하는 경이로운 연기를 보인 루마니아의 공연이었다. 그 후 러시아의 레프도진이 연출한 LG아트센터에서의 역시도 ‘발자국 소리’를 살려내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그에 비하면 우리 공연들은 목소리를 내든, 발소리를 내든 이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간에 대한 아무런 관심도 없고, 인물의 성격과의 상관관계에도 무관심 한 게 현실이다.
가장 난감한 게 ‘낭독공연’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공연들이다. 왜 그런 공연을 하는 것일까? 이런 식이라면 연극인 모두가 희곡을 읽기 귀찮아서 행하는 ‘변칙공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격식도 갖추지 못한 공간에서 속절없이 배우들은 머리를 대본에 처박고 읽어대기만 하는 공연, 우리는 이걸 통해서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일까?
경험에 의하면 배우의 머리 위에서는 끌 수조차 없는 극장의 공기정화기가 계속 돌아가 집중도 안 되는 곳에서, 심사위원이라는 사람들은 멀찍이 뒤편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다. 평론가협회장도 러시아유학파 배우인 대학교수도 ‘그래 내 귀에 들리게만 해다오’하는 태도로 일관하다가, 끝나자 오히려 배우를 보고 들리지 않게 작게 읽었다고 아우성이다.
희곡은 소리를 죽여 감정을 드러내도록 쓰여 있는데도, 우리들은 그런 것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저 작품의 분위기만을 알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배우가 대사를 외워 머리를 쳐들고 하는 공연도 아니고, 고개 숙여 대본을 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어떻게 널찍한 공간에서 대사를 전달하라는 것인가? 고개를 처박고라도 소리를 질러대라는 말인가? 아니면 순간순간 고개를 들어 들리게 하라는 말인가? 차라리 그럴 바에는 각자가 시간을 갖고 신경을 곤두세워 찬찬히 집에서 읽어보는 게 작가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밑천을 뽑겠다고 모노드라마를 1500석 체육관에서 관객을 모아놓고 공연하는 나라에서 연기자의 호흡과 발성이 안중에 있을 턱이 있겠는가?
그러니 ‘발자국 소리’까지 내면서 인물의 미세한 내면의 정서까지도 전달하고자 노력하는 유럽의 연극공연들과 배우들보고 무작정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고 아우성치는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거리가 멀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 호흡과 발성에 대한 개념이 없음을 증명하는 한 단면일 것이다. 솔직히 우리는 아직 청맹(聽盲)상태에 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무조건 들리기만 하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러다 보니 역설적으로 더 들리지 않게 된 게 작금의 우리 공연 현실이다.

호흡과 발성을 방해하는 무대발성
우리 연극배우들이 호, 발성에서 무력감을 드러내는 배후에는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무대발성이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객석에 전달을 목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게 오히려 호, 발성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사실 연극계는 무대발성이 배우들의 연기 전반에 미치는 심각한 부작용을 아직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실질적으로 무대발성은 오로지 육성으로 공연하는 연극배우들에게만 요구되는 것으로, 이로 인해 자칫 연극배우들이 삶이나 연기에서 희생(?)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르는데도 우리 연극계는 이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람들은 실생활에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작은 목소리로 언어생활을 영위한다. 그래서 커다란 무대를 사용해야 하는 연극배우들이 연기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당연히 위험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일로서, 이게 결과적으로 호, 발성과 연기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1. 우선 배우가 목소리를 높여 소리를 내려면 목에 힘이 들어가는 몸의 경직을 피하기 힘들다.
2. 목소리를 높이면 배우가 감정을 잡기 힘들어진다.
3. 호흡을 운용(컨트롤)하기 힘들어진다.
4. 두뇌를 작동시키기 힘들어진다. 즉 작은 목소리로 말할 때보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 어려워진다.
5. 발음도 잘되지 않는다.
6. 깊이 있는 연기가 힘들어진다.
7. 이로 인해 TV와 영화연기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렇게 많은 어려움에 시달려야 하는 게 무대발성을 위한 목소리의 높임이다.
그런데도 무대발성을 해야 하는 당사자인 연극배우들은 위험을 모르고 있고, 비연기자들 역시 사정을 몰라 배우가 무조건 크게 목소리를 내도록 독려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오죽하면 발성이 좋은 유럽배우들도 연기의 자연스러움을 얻고자 소극장을 절반만 사용할까?
그러니까 연기자가 좋은 호, 발성을 하려면 일상처럼 작은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연극배우들이 무대발성을 시도하다 되레 호, 발성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대사를 치면서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호, 발성을 하려면 외려 일상보다 더 작은 소리를 내야 한다. 왜냐하면 일상과 달리 복식호흡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현실보다 더욱더 이완된 상태를 유지해야만 여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게 화술이다. 따라서 무대발성에 호흡과 발성근육을 위한 신체의 이완이 급선무다. 그런데도 무작정 목소리를 높이려다 경직을 유발하고 있다.
또 무대발성이 두뇌와 호흡의 접촉을 방해하는 것이다. 말하기에서 호흡을 발생시키는 것은 말을 하고자 하는 욕구(충동)이다. 이게 호흡을 움직여 발성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다 보면) 자연히 충동이 약화되고 이게 호흡과의 접촉을 방해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호, 발성을 어렵게 하는 것이다. 가득이나 암기로 인해 충동을 일으키기 힘든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접촉마저 이루어지지 않으니 당연히 호, 발성은 물론이고 화술까지 억지스러울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일상에서 자기 말을 할 때는 충동이 명확히 작용해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도 호, 발성에는 무리가 따르지 않지만 화술은 등장인물의 말을 하는 것이어서 ‘충동’의 약화가 필연적이고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연기는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연습장에서 연극배우들이 흔히 듣는 “그래가지고 소리가 들리겠니!”하는 호통이 자신들의 호, 발성을 망치는 주범이 되고 있다는 것을 연극배우들은 인식하고 처음부터 큰소리를 내려고 덤빌게 아니라 먼저 (일상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시작해 자신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알고 난 후에 호흡과 접촉해야 호, 발성에 무리가 생기지 않는다. 그런 다음에 점점 목소리를 높여가 무대발성을 완성해야 한다. 따라서 연출가들도 배우들이 자기의 두뇌를 작동시키기 전에 먼저 전달을 목적으로 크게 목소리를 내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

배우는 자기 목소리를 잃지 않아야
연극배우들에게만 나타나는 특별한 현상이 또 하나 있는데, 이건 대본만 읽으면 자기 목소리를 버리고 딴 사람이라도 된 냥 목소리를 바꾸려 드는 것이다. 흔히 듣게 되는 “왜 자기 말을 하듯 소리를 못내니!”하는 핀잔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연극배우들이 쉽게 빠지는 왜곡현상이다.
특히 나처럼 나이든 오랜 경력의 배우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고, 또 이들로부터 지도를 받은 젊은 배우들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상대방과의 거리감이나 자기의 감정을 표출하기 위한 목소리의 조절력을 상실해 부자연스러운 연기를 하게 된다. 이게 심화되면 TV나 영화연기가 불가능해지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연극배우들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는 연극이라는 장르가 배우들에게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내도록 강요하는 데 있다. TV나 영화연기에서는 연기자가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면 인물이 되고 인물의 성격을 만들어 갈 수 있는데 반하여, 연극에는 등장인물의 성격이 두드러지므로 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특히 번역극의 경우는 더욱 심한데, 이는 배우들이 인물을 설정하도록 강하게 강요받기 때문이다. 이 상태가 악화되면 배우가 무대에서‘노랑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목소리를 바꿈으로 해서 자기 말을 할 때의 언어메커니즘(충동, 호흡, 어휘, 발성으로 이어지는)이 손상되기 때문인데, 다시 말해 설정된 인물의 목소리로 바꾸려다 일상에서 습관화된 자기의 언어메커니즘에 오류가 발생해 생기는 현상이다. 그리고 이게 자기 목소리의 조절력을 잃게 해 자연스러운 말하기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즉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내려다 호흡, 발성, 발음에 이르는 자기 자신의 언어메커니즘에 오류가 발생해 생기는 왜곡현상이다. 그리고 이게 무서운 게 습관화되면 설령 자기 목소리를 잃었다는 핀잔을 들어도 무슨 꾸지람인지조차 알기 어렵게 되는 – ‘귀가 마비돼’개선마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습과정에서 처음부터 섣불리 인물을 창조하겠다고 나설게 아니라 연극배우들이 흔히 범할 수 있는 오류임을 인식하고 자기 목소리를 고수한 후에 서서히 인물의 내면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래야 호, 발성도 화술도 자유를 얻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 연극배우치고 여기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다. 이것은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다른 장르와 마주치게 되면 연극배우들이 얼마나 이런 왜곡현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지금은 정치가가 됐지만 배우 문성근은 공개적으로 영화판에서 10년 동안‘연극대사 좀 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는데 이것도 이런 현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일상에서는 자기 말을 하는 것이어서 자기 충동에 따라 자신의 목소리를 그대로 낸다. 따라서 자기의 언어메커니즘이 그대로 작동해 호, 발성은 물론이고 말을 할 수 있게 돼 이런 왜곡현상은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연기에서도 이런 왜곡을 막기 위해서는 자기의 목소리를 고수한 채 등장인물의 내면에 접근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이게 평생 배우생활을 괴롭히는 주범이 될 수 있다.

결론
1. 일상처럼 자연스러운 호흡과 발성이 되도록 해야 한다.
2. 무대발성에 신중히 접근해 호, 발성이 왜곡현상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3. 인물창조로 목소리를 바꾸려다가 자기의 호, 발성과 화술을 망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현재 우리의 호, 발성교육은 이런 잘못된 접근방법만 바꾸어도 훨씬 좋아질 것이다.

지나치게 기능적인 설명만 하는 우리의 호, 발성
이런 우리의 왜곡된 관행을 도외시한 채 지나치게 교과서적으로 호흡과 발성에 접근- 신체훈련에만 매진하는 것은 자칫 호, 발성훈련을 따분하고 재미없는 지루한 훈련으로 인식시킬 우려가 크다. 실제로 많은 강사료를 들여 해외에서까지 교수를 초빙해 실시해도(연극원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이와 전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의 연기교육도 지나치게 이론으로, 또는 기능적인 훈련만으로 접근하려 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책으로만 호, 발성을 이해하려고 들어 흥미를 잃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런 현상은 연기학회의 세미나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너무나 분명한 것은 화술의 음성화를 위해서 호, 발성이 필요한 것이지 호, 발성을 위해서 화술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먼저 호흡과 발성을 교육하고 훈련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호흡과 발성을 효과적으로 교육하고 훈련할 수 있는가?
이게 실제 화술에서 어떤 효과를 내는가를 아는 게 급선무다.
현재 호, 발성교재들의 내용은 대체로 이렇다. 1) 신체의 이완 2) 호흡의 접촉 3) 호흡과 발성을 위한 훈련 4) 발음을 위한 훈련 5) 공명 등을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음성화와 연결된 설명이 부족한 게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신비주의에 빠져 있는 호흡
한국에서 특히 호흡은 ‘숨’ 또는 ‘기(氣)’라는 이름으로 신비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물론 이는 요가나 단전호흡 등의 영향에 의한 것일 수 있다. 또 동양의학적인 측면이 작용한 것일 수도 있다. 좌우간 연기에서도 호흡은 신비주의적인 냄새가 강하다. 특히 연기의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 의해서 의도되고 있는 분위기다. 그래야만 훨씬 학문적이고 이론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대사를 치기 위해서 연기자가 호흡을 운용하는 것이지 마치 호흡을 잘해야, 또 호흡을 하는 요령을 알아야만 말을 잘할 수 있는 것처럼 설명을 해서는 곤란하다. 물론 이런 현상은 자기 입으로 직접 대사를 내뱉는 연기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지 못하는데서 비롯할 수도 있다.
호흡(숨)은 일차적으로는 인체의 생존을 위한 생리적인 작용이다. 물은 마시지 못해도 상당기간 생존이 가능하지만 숨은 5분정도만 멈추어도 치명적일 정도로 밀착되어 있다. 그래서 인간이 말을 하는데도 호흡은 그야말로 기능적으로 밀착되어 있다.
흔히 신비하게 설명되는 복식호흡만 해도 잠잘 때는 누구나 하는 호흡이고, 인간이 무심한 상태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게 복식호흡이다. 또 심한 운동을 할 때는 많은 호흡을 필요로 해서 자동적으로 복식호흡을 하게 된다. 따라서 이런 밀착된 생리적 작용을 신비화하거나 지나치게 이론화하여 설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인이 되어 흉식호흡으로 말을 하게 되는 것도 언어생활에 편리함을 도모하고자 하는 방편이지 인간이 타고난 좋은 본성을 잃어서 복식호흡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화술에서 호흡이 중요시 되는 것은 글말을 음성화하는데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생리적 호흡
사실 일상의 생리적 호흡에서는 ‘날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들숨’만이 있을 뿐이고, 날숨은 그저 체내의 탄산가스를 배출하기 위한 들숨의 반작용일 뿐이다. 그러니까 생존에서 호흡이란 산소를 들이마시는 ‘들숨’을 지칭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무가치한(?) 날숨을 활용해 인간이 언어행위를 시도하고 노래 부르기를 도모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능을 더욱 확대해 예술적으로까지 재활용, 재생산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기능이 없는 ‘날숨’을 기능화 해서 이를 예술적 작업으로 승화시킨 게 바로 ‘화술’과 ‘노래 부르기’인 것이다.
따라서 ‘날숨’의 활용은 분명 인간의 의지의 산물이다. 즉 노래를 부르고 말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날숨을 활용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말하기나 노래 부르기에서 호흡은 인간의 의지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에 따라 호흡이 만들어지고 어휘의 길이가 결정되고, 자극을 받는 감성에 따라 호흡이 요동치게 되는 것이다.
‘들숨’만으로 생존을 유지하고 있던 인간이, 말을 해야겠다는 충동(욕구)이 용솟음치면 중추신경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발성을 위해서) 호흡을 자극, 작동시킨다. 그런 후에 어휘를 떠올려 성대와 발성기관을 움직여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말하기에서 호흡과 발성이야말로 ‘충동’의 발로인 것이다.

어째서 화술에서는 호, 발성이 중요한가?
따라서 말을 하고자 하는 ‘충동’(욕구)이 자신의 내면에서 발생하여 말을 하게 되는 일상의 소리 말에서 호흡과 발성은 자동적(본능적)으로 이루어져 전혀 걱정할 일이 못된다. 그래서 일상에서는 상대방한테 “잘 안 들려, 크게 말해!”하는 말은 들을지언정 “너 지금 호흡과 발성이 안 돼!”와 같은 말은 절대 듣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화술에서는 호흡과 발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는 것일까?
한마디로 1) 대사가 글말이라는 것 2) 암기해서 말을 해야 해서 ‘충동’이 잘 일어나지 않는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특히 ‘충동’이 일어나지 않는(암기한) 상태에서 목소리를 내야 하는 어려움이 호흡과 발성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글말이라 해도 자기 말을 하듯 ‘충동’을 일으켜 말을 할 수 있으면 호, 발성도 역시 전혀 어려운 일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연기자의 화술능력이란 따지고 보면 등장인물인 ‘남의 말’을 자기 말처럼 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해서 결정되는 셈이다. 대사를 평소의 자기 말처럼 인식해 목소리를 내는 능력만 있다면, 즉 자기 말을 하듯 ‘충동’을 일으켜 호흡을 자극하고 자연스럽게 어휘를 떠올려 말을 할 수만 있으면 호흡과 발성은 걱정할 일이 못된다. 또 이러한 현실적인 기능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훈련할 수 있으면 호, 발성은 그다지 따분하지 않게 교육에 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화술에서 호, 발성이 문제가 되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일단 일상에서는 짧게 말을 하게 되어 호흡량이 전혀 문제 되지 않지만 화술은 다르다. 따라서 길게 말을 하려고 들면 당연히 호흡량이 있어야 하고 이를 운용하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일상에서 길게 말을 하려고 할 때 어떻게 하는가를 잘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저,저,하면서·말을 더듬거리거나 침을 삼키면서(입맛을 다시면서) 호흡의 지지력을 확보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혀를 널름거리며 호흡의 변화(횡격막을 움직여)를 꾀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횡격막을 밑으로 내려 지지력을 확보하려는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심각한 말을 하거나 속 깊은 말을 하려고 할 때도 횡격막을 내려 복식호흡으로 전환 하는 것도, 또 목소리를 낮추려 드는 것도 다 이런 행위의 일환이다.
그래서 화술에서도 호, 발성을 지나치게 신비화할 게 아니라 생활 속의 무의식적인 호, 발성의 작동을 충분히 활용하는 게 훨씬 더 유용하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화술에서 일상처럼 호, 발성이 잘되지 않는 이유
하나, 등장인물의 말을 하는데 따른 ‘긴장’이다. 자기 말을 하지 않는데 따른 생경함과 기질적으로 쑥스럽거나 자신감을 갖지 못한데 따른 ‘긴장’이 발생해 자연스러운 호, 발성을 방해한다.
둘, 자기 말이 아닌 등장인물의 말을 하는데 따른 요령부득으로 일상처럼 ‘충동’을 일으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 말을 할 때처럼 ‘충동’을 일으켜 중추신경을 자극해 호흡을 접촉시켜야 하는데, 대사를 쳐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이런 요령을 잃게 되는 데 있다. 그래서 이게 화술(연기) 재능의 첫걸음이 되기도 한다.
셋, 글말은 일상의 소리 말과 달리 길다. 따라서 말이 길어지면 연기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다는 개념을 놓치기 쉬워(암기에만 몰두하게 되어) 두뇌의 기능을 잘 활용하지 못한다. 따라서 연기자가 자기가 해야 말의 개념을 빨리 파악하는 게 중요한 연기술이 되는 셈이다.
넷, 등장인물의 말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의해서 말을 하려고 들기보다 목소리를 바꾸거나 톤을 조절하는 데에만 전념하게 되는 것을 들 수 있다.
다섯, 사극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언어의 리듬 감각에 눌려 자신 있게 자기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런 경우에도 당연히 호, 발성이 난조를 이루게 된다.
여섯, 무대공연이라는 강박감으로 인해 목소리를 높이려고 들어 목과 입에 경직현상이 나타나도 호, 발성에 장애가 발생한다.
일곱, 일상에서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 전혀 사용하지 않는 어휘를 사용해야 하는 부담감이 원인이 될 수 있다. 특히 화법(특히 작가가 고약하게 쓴 말)이나 말투가 다를 때 더욱 심해진다.
이런 경우에 자기 말을 할 때처럼 자연스럽게 호, 발성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당연히 호, 발성이 연기의 기초교육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호흡과 발성을 지나치게 걱정할 것도, 그렇다고 지금처럼 지나치게 무시하거나 개념조차 없이 목소리를 내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복식호흡의 필요성
화술에서 복식호흡을 거론하는 것은 음성화를 위한 호흡의 지지력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사실 지지력은 성악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차용한 것인데. 가수의 가창력을 결정하는 것도 바로 지지력이다. 폭발적인 가창력운운 하는 것은 이를 말하는 것으로 노래 실력을 결정하게 되는 것 역시 지지력의 결과다. 화술에서도 샤우팅은 전적으로 지지력에 의존하게 된다.
일단 인간은 태어나면 복식호흡을 시작한다. 누워있는 아기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성장기를 벗어날 때까지 복식호흡을 하게 된다. 따라서 어렸을 때 복식호흡에 의한 발성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성인이 되면 흉식호흡을 하게 되고 말을 할 때도 흉식호흡에 의한 발성을 하게 된다.
이는 이러한 장점 때문일 것이다. 짧게 말하면서 순발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고 자기의 의사를 신속하게 상대에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일 것이다. 또 머리를 굴리면서 많은 말을 하려면 이게 편리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것은 심각한 이야기를 할 때나 자기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말을 할 때는 횡격막을 사용해 복식호흡을 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일상에서의 호흡은 편리함과 기동성을 갖춘 언어활동에 위한 운용의 결과라고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인간의 두뇌작용에 의해서 의도되는 게 확실하다.
따라서 화술에서 복식호흡을 하는 것도 음성화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기능성이 전부라고 해야 할 것이다.
1) 글말은 소리 말에 비해서 길다. 당연히 긴 호흡이 필요하다.
2) 소리 말에서는 감정이 격해지면 말을 안 하거나 외마디소리를 내는데 반하여 글말은 작가의 요구에 의해서 길게 말을 하면서 감정도 실어야 한다. 가령 일상에서는 감정표현을 대체로 감탄사를 통해서 한다. ‘아휴!’ ‘정말!’ 등으로 말이다. 그런데 글말인 대사에서는 목소리에 실어야 한다. 따라서 그렇지 못하면 연기자가 감정표현이 없거나 약하다는 말을 듣게 된다.
3) 소리 말은 신체의 움직임에 따라 자의적으로 편하게 말을 할 수 있는데 반하여 글말은 그렇지 못하다. 움직임이 많으면서 말도 많이 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따라서 호흡이 지지력을 갖지 못하면 움직임이 말하기를 방해한다.
4) 무대발성을 하기 위한 것이다. 연기자가 대사를 객석 깊숙이 침투시켜야 한다. 즉 에너지가 아랫배에 있어야 목소리에 힘을 실을 수 있어서 그렇다.
따라서 연기자가 복식호흡을 하지 못하면 지지력을 얻지 못해 당연히 발성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그 외에도
1. 글말을 일상처럼 발성을 하면(말하면) 우리말의 리듬을 얻을 수 없다. 억양(특히 어미처리- 핵 억양), ‘끊어 말하기’와 ‘찍어 말하기’가 잘되지 않아 우리말의 억양(리듬)이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말을 못하는 연기자로 취급된다는 말이다. 문어체가 강한 번역극 등에서 연기자가 ‘말을 못한다!’는 핀잔을 듣는 주된 원인은 우선 복식호흡에 의한 발성을 하지 못하는데 있다. 그리고 이것은 가슴에 울림이 없이 ‘목으로만’ 소리를 내는 것으로 식별할 수 있다.
2. ‘혀 짧은소리’를 낸다. 연기자가 혀가 짧지 않은데도 ‘혀 짧은 소리’를 내게 된다. 장음 발음이 되지 않는다.
3. 말의 단락을 바꿔야 할 때 리듬과 톤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지력이 없으면 단락에 따른 변화를 줄 수가 없다. 복식호흡에 의한 발성의 핵심은 호흡지지력을 얻는데 있다. 특히 긴 대사를 칠 때나 문어체가 강한 대사를 칠 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따라서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실천이 반드시 필요하다.
1. 처음부터 큰 소리를 내어 대사를 치면 안 된다. 그러면 자연히 목으로 소리를 내게 되는 데, 이는 복식호흡이 영원히 불가능해짐을 의미하게 된다.
2. 항상 가슴이 울리게 발성을 해야 한다.
3. 호흡의 근원이 몸의 중심의 하반부에 있다고 상상하라. 그래야 처음 대사를 내뱉을 때 목소리가 위로 뜨지 않고 횡격막에서 소리가 나오게 된다. (횡격막호흡이 되게 하라)
호흡이 지지되면

1. 어두가 부드럽고 어미가 쳐지지 않는다.
2. 말을 약간 장음으로 발음할 수 있어 발음이 명확해지고 전달이 잘된다.
3. 지지력이 생겨 ‘찍어 말하기’와 ‘끊어 말하기’를 잘할 수 있다.
4. 걸음걸이, 제스처, 표정연기가 가능해진다.
글말의 음성화는 복식호흡에 의한 지지력이 전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호흡 운용의 세 가지
무호흡’과 ‘찍어 말하기 : 말을 강조하기 위해서 단지 숨을 멈출 뿐, 호흡은 하지 않는 상태를 일컫는다. 말이나 구절을 강조하기 위해서 일시 숨을 멈추는 것을 가리킨다. 일상에서도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릴 때 강한 힘을 내기 위해서 잠시 숨을 멈추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강한 에너지를 낼 때에는 숨을 멈추는 생리작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반 호흡’과 ‘끊어 말하기’: 일명 ‘도둑 숨’이라고도 한다. 긴 문장의 (문어체)대사를 칠 때 계속 숨을 쉬어 주어야 하는데 이때 중간에 살짝 숨을 쉬어 주어야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이런 상태의 호흡을 ‘반 호흡’ 또는 ‘도둑 숨’이라고 한다. 이때 말의 의미단락에 맞게 숨을 쉬어 주어야 말에 의미를 전달시킬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숨을 쉬지 못하거나 아무 곳에서나 숨을 쉬게 되면 말에 의미가 전달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연기자가 호흡에 쫓겨 발음도 불안해지고 어미처리도 불확실해진다. 따라서 ‘반 호흡’을 정확하게 잘 할 줄 아는 연기자가 화술구사력도 뛰어나다. 왜냐하면 이게 화술에서 ‘끊어 말하기’의 핵심이자 호흡운용의 테크닉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 호흡’을 잘 구사하는 것은 연기자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는 말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반 호흡’에 의한 ‘끊어 말하기’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온 호흡’과 톤의 변화 : 말이 하나의 단락(의미가 완결되면)으로 마무리 되면 호흡도 일단 단락을 져야 한다. 그런 다음에 새롭게 호흡을 해서 다음 말을 이어가야 한다. 그래야 목소리의 톤에 변화가 유도된다. 따라서 이를 쉽게 터득하는 방법으로는 일단 단락이 끝나면 ‘침을 삼키도록’ 하는 게 좋다. 이를 통해 호흡을 조절한(고른) 다음에 대사를 치는 습관을 들이면 좋다. 일상의 언어행위에서도 얼마든지 목격되는 게 ‘침 삼키기’다.
이렇게 호흡의 운용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바로 강조구를 살리기 위한 무호흡, ‘끊어 말하기’를 위한 ‘반 호흡’과 단락마다 변화를 주기 위한 ‘온 호흡’이다.
화술에서는 대사암기에 치중하느라고(충동 없이 말을 하게 되어) 제대로 호흡을 하기 힘들다. 따라서 목소리에 톤과 리듬의 변화가 생기기 어렵다.

호흡은 발성을 위해서
화술에서 호흡을 거론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발성을 잘하기 위함이다. 호흡이란 결국 발성을 위한 에너지원일 뿐이다. 거기다 말하기에서 사람들이 인지할 수 있는 것은 호흡이 아니라 밖으로 드러나는 발성이어서 훈련도 발성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발성은 표현력
아무리 음감이 좋은 사람이라도 이를 목소리로 표현할 재능이 없으면 가수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언어감각이 좋아도 발성능력이 없거나 요령을 모르면 연기자가 되기 힘들다. 발성능력이 결국 표현력이자 연기력이 되기 때문이다. 또 발성능력이 있어야 글말에 정확한 리듬을 붙일 수 있다. 따라서 연기에서 가장 중요시 되어야 할 것은 연기자의 발성능력이다.

발성은 ‘악기의 성능’
음성화에서 발성능력은 바로 악기의 성능에 해당한다. 성능이 뒤떨어진 악기로는 아무리 연주자가 재능이 뛰어나도 표현력에 한계를 들어 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악기의 성능은 연주자인 연기자의 연주력을 높여주는 핵심이 된다.
그런데 화술에서의 악기는 바로 연기자 자신일 수밖에 없어 연기자 자신의 노력이 없이는 악기의 성능을 개선시키는 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악기의 성능이 바로 연기력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화술에서 악기의 성능의 결함에 의한 표현력(음성화에서)의 결핍은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1. 악기의 성능은 타고난 신체조건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
2. 성능의 개발은 연기자 자신의 몫이다. 그래서 호, 발성도 연기자가 책임져야 한다.

발성의 5원칙


연기자가 발성을 잘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5원칙을 지켜야 한다.
1. 긴장하지 마라!
암기한 말을 하려면 자기 말을 할 때와 달리 긴장이 쉽게 발생한다.
2. 생각을 하고 말을 하라! – 무슨 말인지 알고 소리를 내라!
암기한 대사는 자기 충동으로 하는 말이 아니어서 ‘생각’ 없이 소리를 내기 쉽다. 특히 경계해야 할 게 ‘용도’가 없이 말을 하는 것이다. 즉 ‘말을 하는 목적’이 없이 소리만 내면 안 된다. 이게 말의 억양(리듬)을 주도한다.
3. 가슴을 울려라
사람들은 목소리가 목에서 나온다고 여긴다. 목소리를 내는 성대가 목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소리는 가슴을 울려나온다. 왜? 가슴 밑에 있는 횡격막이 기능하기 때문이다. (횡격막의 기능 참조)
따라서 화술도 일상처럼 목으로 소리가 나오지 않고 가슴을 울려나오도록 해야 자연스러운 목소리가 된다. 횡격막에서 확장되어, 가슴을 거쳐 소리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목소리가 가슴을 울려 나오게 하려면 소리의 에너지가 몸의 아래쪽에 있어야 한다.
물론 흥분 상태에서는 목소리가 머리(두성)를 울려 나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화술은 가슴이 울려 나와야 한다. 이를 확인하려면 대사를 칠 때 자기 가슴에 손을 얹고 울림이 있는지(공명이 생기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또는 상대에게 기대어 등이 울리면 가슴이 울리는 상태다.
가슴이 울리면
* 목 눌림이 없어 음폭이 커진다. 그리고 울림이 좋아 목소리가 멀리 간다.
* 몸 전체에서 소리가 나오는 것처럼 느껴져 목소리의 톤에 안정감이 있다.
* 감정이 풍부한 소리가 된다.
* 두성과 달리 목소리에 깊이가 생긴다.
* 목소리에 진실성이 높아진다.
목에서 소리가 나면 감정을 낼 때 ‘목을 짜는’ 소리가 되거나 입공명이 강해져 입안에서 소리를 오물거리게 된다. 따라서 연기자는 항상 가슴이 울리도록 횡격막을 안정시키고 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이완 상태를 유지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발성법이다.
목으로 소리를 내면 간단한 대사를 칠 때는 별반 문제가 되지 않으나,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경우에는 당연히 목에 힘이 들어가게 된다. 따라서 무대발성을 시도할 때도 목소리만 커질 뿐 어미가 쳐지고 리듬에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4. 코에 걸리는 소리를 내라
내가 젊었을 때 선배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대사를 잘 치는 배우치고 코가 낮은 사람은 없다.” 이런 말이 있을 정도로 발성에서 코에 걸리는(울림이 있는) 소리는 연기자에게 좋은 발성과 발음을 선사한다. (단 ‘코 공명’과 ‘코에 걸리는 소리’를 구별해야)
왜냐하면 ‘코에 소리가 걸리면’ 일단 소리가 멀리 가고, 우아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물론 소리의 침투력도 좋아져 무대발성에도 이롭다. 성악가들이 무대에 등장하기 전 ‘미, 미, 미’하고 소리를 내는 것은 코에 적당한 울림을 살려내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코에 축농증이나 비염 등이 있으면 소리가 코에 걸릴 수 없어 좋은 소리를 낼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개개인의 코의 태생적 생김새가 화술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런 점에서 동양 배우들이 서양 배우들 보다 불리한 게 현실이다.
5. ‘윗니’를 통해 소리가 나가게 하라
목소리는 반드시 ‘윗니’의 뒤를 치면서 나오게 해야 한다. 그래야 몸(구강에서부터 전신에 이르기까지)에 공명이 살아나 발성도 좋아지고 발음도 명확해진다. 화술에서 칭찬받는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입 끝으로 소리가 나오게 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훈련을 통한 습관화가 아주 필수적이며, 따라서 무대배우를 꿈꾸는 연기자는 ‘이’의 성형(의치)을 해서는 안 된다. 이는 무대발성에 결정적인 흠결이 되므로 성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발성의 장애
1. 긴장으로 인해서
2. 비정상적인 신체 및 구강구조
3. 평소의 잘못된 습관
4. 발성에 대한 개념부족
발성이 되지 않거나 잘못된 발성을 하면
1. 발음이 되지 않아 전달기능을 상실한다.
2. 소리 말의 리듬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3. 목소리의 조절력을 상실해 현실감을 잃는다.
4. 공명이 되지 않는다.
5. 무대발성이 불가능해진다.
6. 인물창조가 힘들어진다.
7. 감정을 실지 못해 감정처리가 되지 않는다.
8. 극에 에너지가 없어 관객이 흥미를 잃는다.
9. 극의 양식(스타일)을 살려낼 수가 없다.
10. 움직임이 둔해져 신체표현력을 잃는다.

발성과 인물창조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 당연히 부드럽고 여유로운 인물의 창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인물창조는 전적으로 발성력에 의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발성이 비극도 코미디 같은 장르 연기도 가능하게 한다. 연기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물창조여서 발성능력이 좌우하게 된다.
감정이 풍부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도 실상은 연기자의 발성능력에 좌우된다. 더욱이 몸의 움직임- 제스처나 걸음걸이, 표정연기도 – 발성이 잘되어 몸이 이완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 따라서 발성이 좋다는 것은 한마디로 호흡이 원활하고 연기자가 이완상태에 있음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또 발성이 좋다는 말은 소리를 통한 호흡의 흐름이 좋아서 연기자가 자유자재로 자기의 목소리를 크고 작게 조절할 수 있는 조절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무대발성
먼저 와인의 코르크 마개를 잘라 이를 어금니에 (세로로)물고 말을 해 보면 복부근육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다. 즉 힘을 가해 목소리를 낼 때 어떻게 복부의 근육이 움직이는가를 알 수 있다. 따라서 무대발성을 잘하기 위해서는 먼저 화술에서의 발성법(요령)을 이해하고 공명을 이용해 소리를 증폭시켜야 한다.
1. 복부근육의 활용
2. 공명의 활용
연기자의 훈련과 경험이 만들어내는 게 무대발성이다.

공명의 중요성
화술에 공명이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가슴공명과 코 공명, 구강공명의 활용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다. 또 무대발성을 위한 필수요건이다. 듣기 좋은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것도 바로 공명이다.
인물창조에서 무거운 대사나 권위 있는 인물을 창조할 때는 가슴공명(흉성)을 키워 목소리에 무게를 실어야 하고, 가벼운 대사나 부드러운 인물을 창출할 때는 코 공명을 잘 활용해야 한다. 두성과 흉성을 적절히 잘 배합해야 인물의 됨됨이와 목소리의 분위기를 만들어내 한다. 그렇지 못하면 억지스러운 소리를 내거나 목을 짜는 듣기 싫은 소리밖에 낼 수 없게 된다.
무대발성의 요령과 공명의 활용방법은 추후에 훈련방법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One thought on “호흡과 발성, 오해와 진실/ 우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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