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과 이론] 인터뷰 / 오세곤

극단 지구연극의 <인터뷰>

오세곤(극단 노을 예술감독,  순천향대 교수)

작, 연출: 차태호

출연: 강력, 김영주

관람일시: 2012년 11월 24일 오후 3시

공연장소: 연우소극장

차태호 작, 연출의 <인터뷰>는 1992년 극단 신협에서 차태호 연출로 공연한 <사랑과 죽음이 만날 때>를 토대로 했다고 한다. 보험조사원을 자처하는 남자와 10억짜리 보험을 들었다는 술집 주인의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술집 주인은 과거 월남전 참전 병사로서 당시 겪었던 죽음의 공포, 죽은 동료에 대한 자책감, 현지에서 잠시 사랑하다 결국 버리고 떠난 여인에 대한 죄책감 등을 계속 안고 살아간다. 그는 라이따이한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수익자로 하는 거액 보험에 가입하였고 이제 그 보험의 만기 및 갱신 시기가 돌아왔다. 그런데 보험조사원의 인터뷰 결과에 따라 보험은 좋은 조건으로 연장될 수도 있고 중단될 수도 있다.

연극은 이런 배경에서 시작한다. 강력과 김영주, 두 배우가 벌이는 장면들은 대부분 거의 소극에 가까운 희극적 톤을 유지한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드러나는 사실은 대단히 무거운 것들이다.

이 역설의 의도는 무엇일까? 감당 불능의 무게를 견디려고 의도적 망각 상태에 빠지는 인간의 자구 본능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아니면 무거운 사실에 대하여 더 강한 페이소스를 느끼도록 하려는 일종의 대조법일까?

문제는 큰 상처를 안고 사는 인간에 대하여 가슴 속 깊이 공감하거나 연민을 느끼기보다는 무대에서 벌어지는 여러 행위를 보며 가볍게 웃다가 간간이 제시되는 무거운 사실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정도에 머물고 만다는 것이었다.

즉, 희극과 비극이 한 자리에서 만나 깊은 골을 이루며 서로를 부각시키는 효과는 얻지 못한 셈인데, 내용과 형식을 같은 톤으로 가지 않고 이른바 엇조로 하는 것이 무척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어려운 선택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 선택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일까? 꼭 그렇게 볼 수만은 없다. 흔히들 극작을 무대형상화에 있어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로 간주하지만 설령 극작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라 하더라도 연출과 배우의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더욱이 만약 극작의 선택이 옳은 것이라면 작품의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연출과 배우에게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소위 엇조를 더 강화했으면 어땠을까? 즉, 희극성을 극단으로 몰고 가는 방법으로 비극성을 한층 더 부각시킬 수는 없었을까? 사실 희극적 톤이라고는 하지만 그로 인해 창출되는 객석의 웃음은 시종 어중간한 정도에 그치고 있었다. 어떤 순간에도 연극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피에로의 희극적인 얼굴에서 오히려 강한 비장미가 발생한다는 그 역설을 실현하지는 못 한 것이다.

월남전은 잊고 싶은 우리의 역사이다. 라이따이한이라는 실체마저도 인정하는 데 지극히 인색하다. 그러나 그 상처를 직시하도록 일깨우는 것은 직접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떠들어서 될 일은 아니다. 자구책으로서 동원되는 의도적 망각의 껍질이 너무 단단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그 껍질을 열도록 하는 마음은 아마도 자신이 너무 크게 웃은 데 대한 민망함과 함께 안으로부터 서서히 배어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