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 극장의 권력/ 오세곤

극장의 권력

오세곤

대학로 학전 그린이 사라진다. 1996년부터 최근까지 <지하철 1호선>을 비롯하여 수많은 작품의 산실이었던 공간이다. 5000회 이상 공연에 다년간 관객도 7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런 극장이 없어지는데 연극계는 조용하기만 하다.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도 숨차게 돌아가는 공연 현실에 모두 지쳐 기력을 잃은 탓일 것이다.

대학로가 경제적인 수치로 계산되기 시작한 것이 어디 하루 이틀의 일인가? 사실 학전 그린도 그 경제 논리에 밀려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연극인들이 가장 취약한 것이 경제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미 경제에 의해 연극인들은 반죽음 상태가 되어 있는 터이다. 그러니 그 경제에 밀려 없어지는 극장에 대해 뭐라 말할 힘조차 없는 건 당연하다.

연극에서 극장은 필수 요소이다. 물론 그때는 극장이란 말 대신 무대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연극의 3대 요소로 배우, 관객과 함께 포함되는 무대는 배우와 관객이 만나는 장소 전체를 사용하기에 결국 극장을 뜻한다. 물론 이때의 극장이 반드시 건물로 이루어진 극장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배우와 관객이 만나서 뭔가를 보여주고 그걸 보며 이해하는 연극 행위가 일어난다면 하다못해 길거리 옆 작은 공터라도 극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극은 건물에 들어앉은 좋은 극장을 선호한다. 1970년대만 해도 서울에서 연극을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물론 극단의 수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 적은 수의 극단이 공연하기에도 극장은 턱없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공연 기간이 보통 며칠에 불과했고 길어야 1주일 정도였다. 서울연극협회 등록 극단이 200개를 훨씬 넘고 대학로 소극장 수가 150개를 넘는 현재의 상황을 생각하면 참으로 믿기 어려운 역사라 하겠다.

그러나 숫자만 많을 뿐 대학로의 소극장들은 대부분 환경이 열악하다. 원래 공연장을 염두에 두지 않은 지하실 등을 개조한 결과 천정이 낮고 무대 옆 공간도 거의 없다. 더욱이 환기가 잘 안 돼서 공기가 나쁘고 좁고 가파른 계단은 위험하기 짝이 없지만 화재를 대비한 비상구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공연을 하는 이들이나 공연을 보러 오는 이들이나 모두 불편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작더라도 공연 조건이 완벽하고 관극 환경이 쾌적한 극장은 우리에게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사정이 이러니 극단마다 모두 1년에 한두 번이라도 시설이 좋은 극장에서 공연하기를 원하지만 그것은 결코 만만치 않다. 우선 웬만큼 시설을 갖춘 극장은 대관료가 엄청나게 비싸다. 그러니 확실한 흥행 요건을 갖추지 않고는 그런 공연은 시도하기 어렵다. 그래서 시설이 좋으면서도 대관료가 저렴한 공공극장을 선호하지만 거기에 선택되려면 중요 연극제에 초청받는 정도의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결국 공공극장은 일종의 권력이 된다. 서울의 대표적인 공공극장은 한국공연예술센터이다. 아르코 대극장과 소극장은 오랫동안 문예회관 대극장과 소극장으로 연극인들의 사랑을 받았고 비록 그에는 못 미치지만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과 소극장도 연극인들에게는 꼭 서보고 싶은 무대이다. 이렇게 4개 극장 외에도 몇 개의 극장을 더 임대해서 연극 단체들에게 대관해 주고 있으니 한국공연예술센터는 서울 연극계에 활력을 제공하는 심장과도 같다.

그러다 보니 한국공연예술센터는 자체 기획 공연을 하지 말고 순수 대관으로만 운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꽤 높은 편이다. 예를 들어 대극장은 1주일, 소극장은 2주일 기준으로 대관을 할 경우 수리 등으로 휴관하는 일정으로 4주 정도를 빼더라도 대극장은 1년에 약 50단체, 소극장은 25단체에 기회를 줄 수 있으니 4개 극장을 다 합치면 적어도 150단체가 1년에 한 번씩은 시설 좋은 공공극장 공연을 시도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물론 각종 페스티벌과 무용이나 일부 음악 공연까지 수용해야 하는 입장이므로 이 수치가 그대로 연극 단체에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또한 이런 생각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도 많다. 우선 대극장 1주일, 소극장 2주일이라는 기간에 대해서 그래서는 결코 제작비 대비 수지를 맞출 수 없다는 기획 차원의 지적이 만만치 않다. 즉 그렇게 많은 단체들에 골고루 기회를 주기보다는 그래도 어느 정도 능력이 되는 단체들에 좀 더 긴 기간 대관해 주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더해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공공극장이기 때문에 엄격하게 능력을 검증해서 대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논리도 나름의 설득력을 지닌다.

그러나 아직 누구나 인정할 만한 선정 기준을 정립하지 못 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은 계속 불만의 원인이 되고 있으며, 아직 기획력과 지명도를 지니지 못 한 젊은 단체들의 경우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할 기회조차 얻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즉 시설 좋은 극장이 충분하지 못 한 상황에서라면 선택과 집중보다는 가능한 한 넓은 기회 부여로 만에 하나 사장될지 모르는 예술적 가능성을 살리는 쪽이 안전하지 않을까 싶다.

극장은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극장이 바로 작품은 아니기 때문이다. 극장이 작품에 큰 부담을 주는 까다로운 조건이 되기보다는 직품을 살리는 호의적인 요소가 될 수는 없을까? 한국공연예술센터 같은 공공극장이 많은 단체들에게 기회를 부여하며 가장 취약점인 기획력에 도움을 주는 상황은 기대할 수 없을까? 그래서 경제에 치이고 제도에 치인 연극인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는 없을까? 연극적 기량만 있으면 누구나 활짝 피어날 수 있는 연극인들이 행복한 그런 연극 동네를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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