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행/ 김창화

참으로 즐거운 연극인들의 ‘아름다운 동행’

 

김창화 (공연과 이론을 위한 모임 대표)

 

지난 2월 14일부터 24일까지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서 정말 의미 있는 공연이 있었다.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와 대학로 연극인이 함께하는 단막극 페스티벌 “아름다운 동행”은 연극이 혹은 연극인의 사회의 문제에 직접 참여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선동과 선전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연극적으로 접근한 아주 훌륭한 사례를 남긴 공연이다. 대학로에 본사를 둔 ‘재능교육 사태’가 벌써 6년째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공연이기도 하지만, 한국사회가 얼마나 자본의 이익을 향해 고속도로 질주해 왔는지, 그 고공행진 뒤에 어떤 희생을 담보로 했는지, 외치지 않고, 담화로, 혹은 상징과 은유로 정확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재능기부’의 형식으로 진행된 이 공연과 ‘재능교육’을 표방하면서도, 잘못된 사교육 시장을 바탕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희망을 가르쳐야 할 교육이 절망의 수단이 되어버린, 그 참담함과 긴 위악의 시간들이 공연을 통해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힘찬 외침으로 울려퍼지는 공명과 함께 울려왔다.

모두 7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번 공연은 네 편의 공연과 세편의 공연으로 나누어 진행되었으며, 주말에는 온전하게 7 편을 다 볼 수도 있었다.

오세혁 작 김한내 연출의 “한밤의 천막극장”은 불안감이 인간을 얼마나 왜소하고 비굴하게 만드는지 잘 보여주고 있으나, 그 위협으로 부터의 극복이 곧 새로운 희망이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으며, 같은 직장에 다니던 두 여성의 진솔한 우정과 연대감이 푸근한 인간미로 발전하는 과정을 아주 적절하게 연출했다.

김은성이 쓰고 김수희가 연출한 “다시 오적”은 작가의 언어적 표현이 걸출하고, 아름다웠으며, 한국적 공연양식의 연출방식이 아주 흥미로웠다. 이른바 현대적 감성과 고전적 표현법을 일필휘지로 내둘러대는 대담함과 절묘한 궁합의 조화를 꾀하는 재치가 아주 흥미로운 공연이었다.

김슬기 작 부새롬 연출의 “이건 노래가 아니래요”는 배우 이지혜의 모노드라마이며, 관객을 사로잡는 이지혜의 매력에 정신없이 한 눈을 팔지 못하게 만든 공연이었다. 서구적 광대의 표현양식을 빌어, 현대 사회의 억압과 종속의 형태를 노래라는 방식으로 재구성한 이번 공연의 성과는 전적으로 배우 이지혜의 몫으로 여겨진다.

혜화동 1번지 5기 동인이며 이번 공연의 예술 감독이자 314인의 연극인 동참자의 선언을 끌어내고, 이번 페스티벌의 발의문을 작성한 이양구가 연출한 “혜화동 로타리”는 작가 김윤희가 썼으며, 매우 상징적인 표현 법으로 남자와 여자의 부조리하면서도 사실적인 상황을 매우 극적으로 잘 풀어갔다. 해고 노동자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여기 등장하는 남자와 여자의 문제는 이미 보편적인 문제며, 한국적 부조리를, 부부라는 틀에서 서로를 믿지 않으며, 서로에게 적이 되고,거짓으로 삶을 위장하는 슬픈 우리들의 현실, 혹은 모습에 대한 자화상처럼 느껴져 매우 깊은 여운을 남겼다.

사실 이여진 작 김제민 연출의 “살인자의 수트케이스를 열면”을 앞의 네 작품보다 먼저 봤는데, 특이한 구성의 연출법과 이야기 전개의 방식이 독특해서, 전체 7편의 단편을 다 보게 됐다. 사회적 문제를 직접 다루기보다는 우회적으로 돌려서 드러내는 특이함이 이 공연에 담겨 있었으며, 단순한 분노의 표현과 외침과 아우성으로 기대했던 문제제기를 매우 높은 단계의 표현법으로 접근하는 세련됨이 다른 공연을 지켜보게 만들었다.

전체공연 가운데 가장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공연이 바로 원미진이 책임 집필하고, 공동창작의 방식으로 만든 김관 구성, 연출의 “잉여인간”이다. ‘재능교육’의 영향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극단적인 절망과 한국 교육의 이정표 없는 질주를 잘 살려냈다. 정소정 작가의 “비밀친구”는 윤한솔이 연출했는데, 발상의 신선함과 표현의 분방함이 매우 재미있었던 공연이었다.

이번 “아름다운 동행” 공연에 참가한 작가와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특색은 이들이 바로 미래의 한국연극을 책임질 혹은 이끌어 갈 젊은 세대들이란 점이고, 이 들의 생각과 행동이 매우 아름다우며, 개인적이고 또 이기적인 한국 연극인들의 구태의연한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 매우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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