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듣는 연극(3)/ 임야비

 음악으로 듣는 연극

임야비

 뮤즈를 울린 극작가

셰익스피어 (3)

4. 리어 왕

Pat he comes, like the catastrophe of the old comedy.

My cue is villainous menancholy, with a sigh like Tom o’ Bedlam.

– O, these eclipses do portend these divisions. Fa, so, la, mi.

큐 사인에 그가 오는군, 옛날 코미디의 파국처럼. 내 큐는 악한의 우울증이로다, 미치광이 시늉 거지 베들레헴의 톰처럼 한숨을 쉬는.

오, 정말 이런 일식 월식들이 이런 사회 붕괴를 예고하는구나. 음악의 악마처럼, 파, 솔, 라, 미.

– King Lear; Act 1 Scene 2

리어 왕은 4대 비극 중에 가장 음악화가 적게 된 작품이다. 아마도 관현악곡으로 만들기에는 원작이 뿜어내는 강력한 비극성에 상응하는 대비주제를 도출해 내기 힘들고, 오페라로 만들기에는 수 많은 등장인물과 5막의 프랑스와 영국간의 전투장면을 연출해내기 버겁기 때문일 것이다.

평생을 셰익스피어에 천착한 프랑스의 작곡가 액토르 베를리오즈는 1831년 대(大)서곡 ‘리어 왕’을 작곡했다. 대서곡이라고 제목을 붙였지만, 베를리오즈의 ‘과대망상적’인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오케스트라 규모도 보통이고 연주시간도 12분 정도로 비교적 소화하기 쉬운 곡이다. 문학작품의 음악화가 통상적으로 갖추고 있는 방법의 전형을 따르고 있다. 이 방법이란 중심이 되는 인물들을 제 1주제와 제 2 주제로 삼고 대비 시키면서, 음악의 흐름을 원작의 전개에 얹어 놓는 방법이다.

제 1 주제는 저음현에 의한 ‘리어 왕’의 주제이고, 제 2 주제는 청순 가련한 오보에로 연주되는 ‘코델리어’의 주제이다. 이 두 주제는 대비와 대화를 반복하며 리어 왕과 코델리어 사이의 안타까운 감정을 음악적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주제의 제시가 있은 후 음악은 원작의 전개와 보조를 맞추어 진행된다. 왕의 당당함이 일순간에 사라지고 분노가 포효한다. 왕의 탄식을 상징하는 듯한 우울한 부분을 넘어서는 폭풍우 장면과 같은 관현악이 몰아치고 왕의 광기를 상징하는 듯한 조롱이 곁들여진다. 이후 홀로 광야를 헤매는 듯한 분위기와 전투장면을 암시하는 듯한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총주로 곡을 마무리 하게 된다.

드뷔시가 1904년에 모음곡 ‘리어 왕’을 작곡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애써 찾아 들어 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숨겨진 보석과 같은 음악이다. 모음곡 자체가 ‘팡파레’와 ‘리어의 잠’ 2곡뿐인 미완성 모음곡이지만, 현대음악의 포문을 연 관현악법의 대가 드뷔시가 셰익스피어를 음악화 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라는 사실만으로도 커다란 음악적-문학적 유산이 아닐 수 없다.

이 두 곡의 가장 큰 매력은 이중적인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팡파레’는 왕의 근엄함과 당당함을 표현하지만 어딘가 삐걱거리고 우수꽝스럽다. ‘리어의 잠’은 고요하고 편안하지만 그 안에서는 불안과 불길의 징조가 꿈틀거린다. 드뷔시의 천재적인 발상과 그의 인상주의적 관현악법의 기가 막힌 조합이 원작 ‘리어 왕’이 선사하는 이미지에 바짝 접근한다. 드뷔시가 이 모음곡을 완성했다면 전편에 소개했던 프로코피에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베르디의 ‘오텔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명곡이 탄생했을 것이다.

쇼스타코비치는 1970년에 코진체프의 영화 ‘리어 왕’을 위한 모음곡을 작곡했다. (Op.137, 참고로 극부수 음악으로서의 ‘리어 왕’은 Op.38a 이다.) 쇼스타코비치는 당시 소련의 전설적인 연출과 메이예르홀드와 친했는데, 그로부터 계속 리어왕과 햄릿의 오페라를 써보라고 권유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소련 문화성의 ‘형식주의 비판’에 대한 두려움과 메이예르홀드의 처형으로 그 둘의 공동작업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쇼스타코비치의 다른 영화음악 또는 극부수 음악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타악기를 사용한 요란법석한 사운드와 자극적이고 날카로운 주제들로 가득한 세련된 모음곡이다. 영화 음악이기 때문에 음악성보다는 사운드에 치중해 있으며, 거의 대부분의 분위기가 굉장히 ‘파국적’이다. Prelude(March of Time), The Storm, Gloster’s Blinding 같은 곡은 여느 교향곡 못지 않게 강력한 인상을 남긴다.

당시에 쇼스타코비치가 작곡한 영화음악들은 해당 영화 이외의 다른 영화에도 삽입이 되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쇼스타코비치가 언급한 것이 재미있다.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리어 왕’이다. 나는 ‘왕자(햄릿을 의미함)’를 3번 만났고, ‘왕(리어 왕)’은 2번 만났다. 음악을 공동으로 사용한 경우도 한 번 있었다. ‘리어 왕’의 음악이 ‘햄릿’에서도 사용된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왕관을 쓴 인물들이 자기들끼리 잘 나눠서 쓰겠지.

솔로몬 볼코프 ‘증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회상록’ 중에서

위 글에서 쇼스타코비치의 냉소적인 웃음이 들리는 듯하다.

5. 맥베스

Macbeth: Will all great Neptune’s ocean wash this blood clean from my hands?

No, this my hand will rather the multitudinous seas incarnadine,

Making the green one red.

Lady Macbeth: My hands are of your colour, but I shame to wear a heart so white

 

맥베스: 거대한 넵튠의 온갖 대양이라면 씻어 낼 수 있을까, 이 피를 내 손에서 깨끗이?

아닐걸, 이 손이 오히려 광대한 바다를 물들일 거다, 붉게, 푸른색을 온통 붉게.

맥베스 부인: 내 손도 당신과 같은 색이죠, 그러나 수치스러워요, 당신처럼 하얗게 질린 심장은.

 

– Macbeth; Act 2 Scene 2

마성(魔性)은 맥베스 전체를 지배하는 분위기이다. 모든 배경과 상황이 이 마성을 우려내면, 악마적인 인물들(맥베스 부인, 맥베스, 마녀들, 망령들)이 이 잘 끓은 마성의 수프에 걸쭉한 건더기가 되어 작품의 심리적 맹독성을 배가 시킨다. 세 마녀들은 처절한 비극의 무대를 만들어 내고, 맥베스는 운명과 욕망에 한껏 휘둘린다. 가장 매력적인 인물인 맥베스 부인의 서슬퍼런 대사들과 몽유병 장면은 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날이 전혀 무디지 않다. 반면 정의와 선을 대변하는 맥더프는 폭주하는 악마의 행진을 저지하며, 이를 징벌하여 주인공들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 역할을 하지만 극의 전개 때문에 존재할 뿐 깊은 인상을 남기지는 못한다.

이렇게 악마적이고 강렬한 인물들의 심리적 혼동과 파국 그리고 뚜렷하게 일관된 음침한 분위기 설정으로 인해, 음악화 된 맥베스는 원작의 비극성과 거의 흡사한 정서와 감동을 만들어 낸다.

교향시 ‘맥베스’ Op. 23는 교향시(Tondichtung)의 대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첫 단악장짜리 교향시로, 정식 명칭은 ‘대(大)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시, 맥베스 (셰익스피어의 드라마에 의함)’이다. 이 기념비적인 첫 작품 이후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죽음과 변용’, ‘틸 오일렌슈피겔의 즐거운 장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돈키호테’ 등의 걸작 교향시들을 쏟아내게 된다. 1886년부터 작곡을 시작하여 수많은 수정을 거친 후 최종고는 1891년에 완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당시 가장 영향력 있던 지휘자 한스 폰 뷜로우가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었다고 한다.

이 곡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할 점은 곡의 핵심이 줄거리의 진행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의 심리상태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즉 맥베스의 개선 → 마녀 등장 → 왕 시해 → 반코우의 살해와 유령 → 다시 마녀 → 맥베스 부인의 죽음 → 파국 맥베스의 죽음을 표면적이고 단순한 줄거리 전개순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환희 → 갈등 → 충동, 죄의식 → 욕망 → 불안 → 공포 → 절망의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이 느끼는 심층적인 심리상태를 복합적으로 듣게 되는 것이다. 이는 교향시라는 음악적 장르에 좀 더 심오한 예술성을 부여하려 했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야심찬 시도인 것이다.

다수의 에피소드 주제가 삽입되어 있는 소나타 형식으로 맥베스의 심리 상태에 해당하는 제 1주제부, 맥베스 부인의 심리 상태에 해당하는 제 2 주제부를 거쳐 각 주제의 변형과 새로운 에피소드들이 삽입되는 긴 발전부를 거친다. 재현부에서 다시 제 1 주제가 등장하고 지금까지 제시-발전되었던 모든 주제와 에피소드들이 대위법적으로 격하게 얽히면서 클라이막스를 이룬다. 이후 고요하게 애처로운 분위기가 연출된 후 다시 거세게 몰아치며 처절한 비극을 마무리한다.

베르디의 10번째 오페라의 리브레토(Libretto; 오페라의 기본이 되는 연출-대본-가사집)로 당첨된 작품은 ‘맥베스’였다. 베르디의 초중기작에 해당되는 이 오페라는 4막 10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847년에 초연된 후 1865년 프랑스 공연을 위해 프랑스어로 개정되었다. 일반적으로 1865년도 프랑스어 개정판을 이탈리아어로 바꾼 판본이 가장 널리 공연 및 녹음되고 있다.

이 오페라의 주목할 만한 특징은 크게 3가지이다. 첫 번째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이다. 당시 베르디는 실러의 작품을 많이 오페라화 하였다. 오페라 ‘조반나 다르코(잔다르크)’는 ‘오를레앙의 처녀’를, 루이자 밀러는 ‘간계와 사랑’을 그리고 ‘군도’는 동명의 소설을 오페라화 한 것이다. 맥베스는 베르디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오페라화한 첫 시도이고, 이것은 그의 말년의 걸작 ‘오텔로’와 ‘필스타프’로 결실을 맺게 된다. (마찬가지로 실러의 희곡은 후기의 오페라 ‘돈 카를로스’로 예술성 작품성의 절정을 이루게 된다.) 두 번째는 ‘사랑-연애 구도의 부재’이다’ 베르디는 비극이든 희극이든 사랑이야기가 극의 주축이 된 오페라들을 썼다. 이는 아마도 당시 유럽의 오페라 관람 문화 및 대중의 취향에 맞춘 흥행성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베르디는 과감하게 ‘맥베스’를 리브레토로 선택함으로써 일체의 사랑이야기를 배제시키는 시도를 한 것이다. 당시로서는 굉장한 모험이었는데, 이러한 시도는 베르디가 자신만의 독자적인 오페라 세계관을 형성하기 위한 야심찬 결정이었다. 독일 오페라들 – 특히 바그너의 깊고 심오한 예술적 관념에 비해 너무나도 가벼운 이탈리아 오페라에 장중한 비극성을 부여하려는 시도로써, 이 시도 역시 후기의 명작들이 나오기 위한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세 번째는 기존의 작품과는 차별화된 오케스트레이션이다. 원작이 지닌 무거운 비극성을 표현하기 위해 저음현들과 금관들을 비중 있게 사용하며, 가수들의 아리아들도 광적이며 악마적인 면을 부각시키기 위한 창법을 요구한다.

스코틀랜드 악기인 백파이프의 음색을 이용하여 음산한 분위기와 비극적인 내용을 암시하는 효과를 연출한 Preludio(전주곡), 1막 1장에 바로 등장하는 마녀들의 합창, 2막 1장에서 반코우의 살해를 계획하는 악마적인 맥베스 부인의 아리아 La luce langue (햇빛이 쇠하여), 4막 2장의 몽유병 장면 Una macchina e qui tuttora! (아직도 이 저주스러운 얼룩이 있다!), 4막의 피날레에서 맥베스 가 죽어가며 부르는 회한의 아리아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사족으로 쇼스타코비치의 문제작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이 있는데, 이는 러시아의 작가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소설을 바탕으로 쓰여진 작품이고, ‘욕망에 눈이 먼 여성의 살인행위’라는 공통분모만 가질 뿐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 다음 호에는 ‘뮤즈를 울린 극작가 – 셰익스피어’ 비극 제 4편으로 ‘쥴리어스 시저’, ‘심벨린’, ‘코리올라누스’와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가 연재됩니다.

* 원문은 Stanley Wells, Gary Taylor의 ‘William Shakespeare The Complete Works Second Edition’ (Oxford), 번역본은 김정환 번역의 ‘셰익스피어 전집’(아침이슬)을 참조 인용하였다.

임야비(tristan-1@daum.net)
– 자유기고가, 서울 신포니에타 기획 및 연출
– 극단 듀공아 / 극단 동맹 연출부 드라마투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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