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듣는 연극
– 임야비
뮤즈를 울린 극작가
셰익스피어 (7)
1. 좋으실 대로 하시든지
Orlando: I would kiss before I spoke
Rosalind: Nay, you were better speak first, and when you were graveled for lack of matter you might take occasion to kiss.
올란도: 말하기 전에 입을 맞추고 싶소.
로잘린드: 아니죠, 먼저 말을 하는게 더 낫죠, 그리고 달리 말할게 없어 난감할 때 얼버무릴 겸 입을 맞추는 거예요.
– As you like it ; Act 4 Scene 1
좋으실 대로 하시든지를 모체로 음악화 된 작품은 굉장히 많다. 이 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영국의 작곡가 월튼이 작곡한 영화음악과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의 관현악 서곡 그리고 현대 작곡가들이 극 중의 유명한 운문을 성악화한 몇몇 가곡들이다. 재미있는 점은 좋으실 대로 하시든지를 음악화한 모든 작품이 그 음악형식에 상관없이 아주 흡사한 분위기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기분 좋은 희곡을 읽고 느껴지는 감정적 이미지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요란법석한 사랑의 화살표들, 숲 속의 정취, 재치만점의 캐릭터들, 모두가 행복해지는 흐뭇한 결말… 이 기분 좋은 무대를 그대로 오선지에 옮겨 놓은 몇몇 작품들을 살펴보자.
영국의 국민 작곡가 월튼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의 영화화할 때마다 배경음악을 도맡아 작곡했다. 햄릿, 맥베스, 헨리 5세, 리처드 3세와 같이 주로 비극과 사극들이 많은데, 희극으로는 좋으실 대로 하시든지가 유일한 작품이다. Prelude, Moonlight, Under the greenwood tree, The fountain, The wedding procession의 5곡으로 이 모음곡 판이 주로 녹음 및 연주된다. 제 2곡 Moonlight와 제 4곡 The fountain은 배경묘사와 극중 분위기 묘사를 동시에 표현하는 간주곡적인 역할을 한다. 주인공 로잘린드의 발랄하고 상쾌한 분위기를 기대했다면, 첫 곡과 마지막 곡은 많이 아쉬울 수 있다. 음악이 너무 남성적이고 조금은 장중하기 때문이다. 당시에 영화음악은 영상과 연출의 보조적인 수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첫 곡과 마지막 곡은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을 알리는 신호적인 역할을 담당해야만 했다. 이러한 이유로 원작 전체의 분위기와는 약간은 빗나간 장중한 음악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아쉬움은 제 3곡 Under the greenwood tree에서 말끔히 해소된다. 소프라노가 관현악 반주에 맞춰 2막 5장의 운문을 너무나도 평화롭게 노래한다. 시원한 바람이 목덜미를 스쳐 지나가는 듯한 상쾌한 기분을 선사해주는 청량음료와 같은 곡이다.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의 관현악 서곡 좋으실 대로 하시든지 Op. 166은 일명 ‘셰익스피어 연작서곡’의 가장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이다. 특이하게도 작곡가는 총보(악보)에다가 원작의 텍스트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 유명한 3개의 운문(Blow, blow, thou winter wind / It was a lover and his lass / Under the greenwood tree)은 물론이고, 재간둥이 터치스톤의 춤추는 장면, 공작의 난입 장면 등을 오선지의 여백에다가 비교적 상세히 적어 놓았다. 이는 연주가 되지 않는 총보상의 메모에 불과하지만 연극의 분위기를 음악으로 표현하려는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의 세심한 노력을 엿볼 수 있는 흔적이다. 아름다운 숲 속의 배경은 호른과 현악기로, 익살스런 한바탕 소동은 떠들썩한 금관과 타악기로 표현하고 있으며, 잉글리쉬 호른과 목관 파트의 유려한 울림은 올란도와 로잘린드의 발그레한 사랑처럼 부드럽게 퍼져나간다.
좋으실 대로 하시든지에서 빈번하게 음악화가 되는 것은 극중에서 노래 부르는 빼어난 운문들이다. 극의 진행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 2막 5장에서 아미앵이 부르는 ‘녹음 아래 즐겁게 (Under the greenwood tree)’, 2막 7장에서 역시 아미앵이 부르는 ‘불어라, 불어라, 너 겨울 바람 (Blow, blow, thou winter wind), 4막 2장에서 대신들이 합창하는 ‘사슴을 잡은 사람 무엇을 줄까? (What shall he have that killed the deer?), 5막 3장에서 두 시동이 부르는 ‘사랑에 빠진 총각과 처녀가 있었지 (It was a lover and his lass)’이 자주 음악화가 되는 운문들이다. 호더(Mervyn Horder 1910-1998), 요한슨(Sven-Eric Johanson 1919–1997), 부쉬(Geoffrey Bush 1920-1988), 퀼터(Roger Quilter 1877-1953),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 등의 무수한 현대 작곡가들이 이 운문들에 곡을 붙였는데 이중에서 가장 특이한 미국의 현대 작곡가 알버트 테퍼(Albert tepper 1921-2010)의 ‘A Shakespeare Garland (1984)’를 살펴보자.
총 9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셰익스피어의 희곡 중에서 유명한 운문들만을 모아 연가곡집 형식으로 묶은 것이다. 9 곡 중에 좋으실 대로는 제5, 제 6, 제 8곡으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 한다. 주목할 것은 보통 가곡의 편성은 가수 한 명과 피아노 반주가 통상적인데, 테퍼의 연가곡집은 소프라노와 피아노 그리고 클라리넷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추가된 클라리넷은 멜로디 파트와 반주 파트를 넘나들면서 음악적 표현을 풍성하게 해준다. 저음의 클라리넷이 마치 바리톤이나 베이스 가수를 연상시켜서인지 마치 절묘한 혼성 듀엣을 듣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로잘린드: (관객들에게) 여자가 에필로그를 하니 이상하지요. 하지만 남자분들이 프롤로그 하는 것보다 더 흉한 것도 없지요.
훌륭한 포도주는 선전이 필요 없다는 말이 맞다면, 훌륭한 연극에 무슨 에필로그냐 하는 말도 맞겠죠. (중략)
제 방식은 마법입니다. 여성분들 먼저 시작하지요.
제가 마법을 거나니, 오 여성분들, 부디 남성분들한테 품은 그 사랑을 위해 이 연극을 마음껏 좋아해 주셔요. (중략)
그리고 전 확신해요, 수염이 훌륭하신 분 혹은 얼굴이 잘생기신 분, 혹은 입김이 달콤한 분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저의 부드러운 제안에 대한 보답으로, 박수로써 저와 작별을 고하실 거라고 말이죠.
– As you like it ; Epilogue
사족으로 필자는 셰익스피어의 에필로그 중에서 좋을대로 하시든지의 에필로그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로잘린드가 직접 무대 앞으로 나와 방백을 하는 이 에필로그는 현명하고 당돌한 로잘린드의 캐릭터를 잘 살림과 동시에 관객들로부터 마무리 웃음과 열화와 같은 박수를 유도해 내는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이 잘 드러난 최고의 마무리라고 생각한다. 희곡으로 읽을 때는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연극으로 직접 볼 때는 로잘린드역의 배우에게 손바닥이 터지도록 박수를 쳐주고 싶은 에필로그이다. 그러다가 불현듯 재미있는 음악을 구상해 보았다. 이 에필로그에 음악을 붙이면 어떨까? 나레이션의 반주처럼 말이다. 그리고 로잘린드의 마지막 대사가 끝남과 동시에 음악은 신나는 춤곡으로 바뀌고 배우들이 모두 나와 춤을 추면서 연극을 막을 내리는 연출도 상상해 본다. (참고로 셰익스피어 시대에는 연극이 끝나면 모든 배우가 무대로 나와 Gigue(춤곡의 일종)에 맞추어 군무를 추며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나름 기가 막힌 아이디어라고 생각하지만 필자의 작곡능력 부재만을 한탄할 뿐이다.
2. 법에는 법으로
Duke: Unfit to live or die. O gravel heart! After him, fellows; bring him to the block.
공작: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없는 몰염치한 자로군! 뒤따라가서 단두대로 끌고 가게.
– Measure for measure; Act 4 Scene 3
바그너가 셰익스피어로 오페라를 작곡했다니! 바그너 광신도(일명 ‘바그네리안’)들도 셰익스피어의 애독자들도 갸우뚱 할 만한 일이다. 바그너와 셰익스피어는 정말 어색한 조합이다. 셰익스피어의 가벼운 희비극에 바그너 풍의 심각한 음악이 전혀 안 어울릴뿐더러, 바그너는 자신의 오페라 대본을 직접 쓰는 극작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음악 또한 아주 지루하고 밋밋하다. 게다가 3시간의 연주시간은 어지간한 인내력으로는 버티기 힘들 정도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찢어지게 가난한 23살의 떠돌이 지휘자 바그너가 생계를 위해서 쓴 작품이라 점 그리고 아직 심오한 총체예술의 철학이 완성되기 훨씬 전이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이 위대한 거장의 풋내기 시절을 기꺼이 용서 할 수 있을 것이다.
바그너가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읽고 직접 독일어로 번역하여 2막짜리 오페라 대본으로 완성하고 제목 또한 Das Liebesverbot(통상 ‘연애금제’로 번역된다.)로 바꾸었다. 음악 작곡까지 완성한 후 1836년 마그데부르크에서 자신의 지휘로 오페라 무대에 올렸지만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현재에도 서곡만이 아주 가끔 연주 될 뿐 오페라 전곡의 공연 및 녹음은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잊혀진 작품이 되어 버렸다.
‘영국 극작가의 영어 텍스트, 극의 배경은 비엔나, 전통적인 이탈리아 번호 오페라 형식, 독일 작곡가의 음악’이라는 이 다국적이자 무국적 작품은 바그너가 평생을 바쳐 주장한 ‘총체 예술의 철학’에 정반대 지점에 위치한 실패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위대한 총체 예술가 바그너가 산고 끝에 출산한 오페라라는 사실은 이 작품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없게 만드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훗날 노년의 바그너는 오페라 ‘연애금제’에 대해 ‘젊은 시절의 조잡한 작품’이라고 일축했다고 전해진다. 바그너의 말이라면 복음처럼 떠 받드는 바그네리안을 자청하는 필자 역시 이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Take, O take those lips away / That so sweetly were forsworn,
And those eyes, the break of day / Lights that do mislead the morn;
But my kisses bring again, bring again, / Seals of love, but sealed in vain, sealed in vain.
가져가요 가져가, 그 입술을 가져가요 / 달콤한 말로 거짓 맹세한 거지.
가져가요 가져가, 그 눈빛도 가져가요 / 아침을 알리는 여명인 줄 알았지.
돌려줘요 돌려줘, 나의 키스를 / 헛되이 포갰던 사랑의 키스를.
– Measure for measure; Act 4 Scene 1
법에는 법으로의 음악에는 소화하기 힘든 바그너의 오페라보다는 4막 1장의 운문에 음악을 붙인 짧은 가곡 두 곡을 추천한다.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의 가곡은 유행가 가사와 같은 원문의 느낌을 잘 살린 달콤쌉싸름한 분위기가 일품이다. 프랑스 작곡가 쇼숑의 ‘3개의 셰익스피어 가곡 Op. 28’의 두 번째 곡 역시 같은 텍스트를 사용하고 있지만 원문의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부른다. 그래서인지 달콤쌉싸름한 맛보다는 부드러운 넘김의 맛이 더 나는 듯하다.
* 다음 편은 ‘뮤즈를 울린 극작가 – 셰익스피어’ 제 8편이자 희극의 제 3편으로 ‘십이야’,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연재될 예정입니다.
* 원문은 Stanley Wells, Gary Taylor의 ‘William Shakespeare The Complete Works Second Edition’ (Oxford), 번역본은 김정환 번역의 ‘셰익스피어 전집’(아침이슬)을 참조 인용하였습니다.
임야비(tristan-1@daum.net)
– 자유기고가, 서울 신포니에타 기획 및 연출
– 극단 듀공아 / 극단 동맹 연출부 드라마투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