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듣는 연극(8)/ 임야비

음악으로 듣는 연극

– 임야비

뮤즈를 울린 극작가

셰익스피어 (8)

 

4.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

Sir John: Take away these chalices. Go brew me a pottle of sack, finely.
Bardolph: With errs, sir?
Sir John: Simple of itself. I’ll no pullet-sperms in my brewage

폴스타프: 이 잔들을 가져가거라. 셰리주를 2쿼트 더 준비해, 제대로 말이다.

바아돌프: 계란도 넣을까요, 나리?

 폴스타프: 순결하게 해 와. 암탉 좆물 같은 거 내 술에다 넣지 말라고.

– The Merry Wives of Windsor; Act 3 Scene 5

존 폴스타프 경.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2회 연속 출연할 정도로 인기몰이를 한 캐릭터이다. 헨리 4세에선 왕세자 할(이후 헨리 5세)과 어울려 저속한 장난과 방만한 범죄를 일삼는 불량노인으로 등장하며,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에서는 유부녀를 탐하는 파렴치한 늙은 색마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 뚱뚱하고 무식하며 허풍을 일삼는 이 뻔뻔한 범죄자를 우리는 결코 미워 할 수 없다. 우스꽝스러운 외모, 거의 욕설에 가까운 재치 만점의 대사 그리고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극적인 상황이 삼위일체가 되어 우리에게 한편의 시트콤과 같은 큰 웃음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오텔로 이후 작곡을 접고 한적한 시골에서 은둔 생활을 하던 만년의 베르디에게 다시 한번 오페라 작곡의 불씨를 지핀 캐릭터는 심각한 햄릿도, 비참한 리어왕도 아닌 존 폴스타프 경이었다. 베르디는 폴스타프라는 캐릭터를 아주 좋아해서 그의 부인에게 자주 이 뚱보 흉내를 내며 장난을 치곤 했다고 한다. ‘내가 웃기 위해서 가벼운 희극을 오페라화 하겠다’ 라는 베르디의 말처럼 그의 최후의 오페라는 무거운 짐 따위는 던져 버리고 허리띠를 풀고 편하게 앉아서 한바탕 웃을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

총 3막으로 이루어진 오페라 ‘팔스타프(Falstaff; 폴스타프의 이태리어식 발음)’의 1막은 따로 서곡이 없이 카이어스와 팔스타프의 실갱이로 떠들썩하게 시작된다. 2장에서 펜튼과 나네타(원작의 앤 페이지)와의 아름다운 2중창이 돋보인다. 피날레에서는 팔스타프를 혼내주기 위해 모인 9명의 등장인물들이 떠들썩한 9중창을 부르며 즐겁게 마무리한다. 2막에서는 함정에 빠진 줄 모르고 잔뜩 멋을 내고 허풍을 떨며 부인을 유혹하는 팔스타프의 아리아 ‘내가 노포크 공작의 시종이었을 때는 가녀린 미남자였지(Quand’ero paggio)’가 아주 재미있다. 이후 바구니에 담겨진 팔스타프는 템스강에 내동댕이 쳐지고 부인들이 크게 웃어대며 2막을 마무리 짓는다. 3막에서는 요정의 여왕은로 분한 나네타가 부르는 아리아 ‘비밀 동굴에서 나타난 요정들아 리듬에 맞춰 춤을 추자(Sul fil d’un soffio etesio)’가 가장 돋보인다. 한바탕 소동이 마무리되고 용서와 화해 그리고 사랑과 축복의 해피엔딩을 앞두고 팔스타프의 선창에 따라 각 등장인물들이 대위법적으로 음을 쌓아 올려간다. 마치 엉망진창으로 얽힌 실타래가 술술 풀리듯 베르디와 셰익스피어의 절묘한 조합의 코미디오페라가 즐거운 웃음소리와 함께 끝을 맺는다.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창설자이기도 한 독일의 지휘자 겸 작곡가 오토 니콜라이는 1849년에 베르디보다 먼저 3막의 오페라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을 작곡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흥행을 의식하여 시대적인 요구에 맞춘 오페라인지라 현재에는 그 음악적 생명력을 잃고 거의 상연 되지 않으며, 경쾌함이 일품인 서곡만이 종종 콘서트 프로그램으로 연주될 뿐이다.

아서 설리반이 무대 상연을 위해 1874년에 작곡한 극부수음악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은 합창과 성악을 포함한 5곡의 모음곡 형식이다. Prelude, Dance, Melodrama, Song, Dance with Chorus 등의 2-3분 가량의 짧은 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유명하지 않은 작곡가의 거의 안 알려진 작품이기는 하지만 머릿속으로 연극 무대를 떠올리며 부담 없이 듣기에 안성맞춤인 너무나 흥겹고 사랑스러운 음악이다. 강력하게 일청을 권한다.

셰익스피어와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작곡가 윌리엄 코킨은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에서 가사를 따와 ‘Come live with me’를 작곡했다. 류트(기타와 비슷하게 생긴 르네상스 시대의 악기) 반주에 맞춰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아득한 목소리가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글로브 극장에 와 있는 듯한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덧붙여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는 5막 5장에서 요정으로 변장한 등장인물들이 폴스타프를 에워싸고 꼬집으며 부르는 노래를 ‘Roundel’이라는 제목으로 가곡화 했다. 음악은 통쾌하고 익살스러운 분위기일 것 같지만 예상과 정반대로 조금은 심각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이다.

5. 십이야, 혹은 그대의 바람

Olivia: A murd’rous guilt shows not itself more soon than love that would seem hid. Love’s night is noon. …
But rather reason thus with reason fetter: Love sought is good, but given unsought, is better.

올리비아: 살인의 죄도 더 빨리 드러나지는 못하리, 숨은 것처럼 보이고픈 사랑보다는. 사랑의 밤은 대낮같이 밝다. …

그렇게 말고 이렇게 곰곰 생각해 주셔요, 구하여 얻은 사랑이 좋지만, 구하지 않았으나 주어진 사랑은 더 좋다구 말예요.

– Twelfth Night, or What You Will; Act 3 Scene 1

소녀풍 연애물 ‘십이야’가 오페라나 관현악곡으로 음악화가 된 것은 스메타나의 미완성 오페라 ‘비올라(십이야의 여주인공의 이름)’와 카스텔누오보 테데스코의 관현악 서곡 ‘La dodicesima notte’ Op. 73 두 작품뿐이다. 반면 수 많은 작곡가가 십이야의 여러 텍스트를 이용하여 가곡 형식으로 작품을 남겼는데 작곡 시대 또한 르네상스 – 바로크 – 고전 – 낭만 – 현대로 이어지는 서양 음악사 전반에 걸쳐 있고 언어 또한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로 다양하다. 그럼 이 가곡 작품들을 원작에서 많이 인용되는 구절 별로 살펴보기로 하자.

O mistress mine / where are you roaming?

 O stay and hear / your true loves coming, / That can sing both high and low.

Trip no further pretty sweeting. / Journeys end in lovers meeting, / Every wise man’s son doth know.

 

What is love? ’Tis not hereafter, / Present mirth hath present laughter. / What’s to come is still unsure.

In delay there lies no plenty, / Then come kiss me sweet and twenty. / Youth’s a stuff will not endure.

오 내 사랑 어딜 헤매나?

오 길을 막고 들어라, 네 진짜 낭군 가신다. 고음도 저음도 능란한 네 님이로다.

가던 걸음 멈추어라, 내 이쁜이, 여행의 끝은 사랑의 만남이란다, 똑똑한 애비 밑에 바보 아들 모두 알지.

사랑이 무엇이더냐? 나중이란 없는 게 사랑이란다. 오늘의 환락과 오늘의 웃음. 장차란 늘 불확실하지.

질질 끌면 쪼들리는 법. 그러니 키스해 줘, 이쁜이 스무 배 이쁜이, 젊음이란 오래 못 가는 물건.

– Twelfth Night, or What You Will; Act 2 Scene 3

영국의 작곡가 토마스 몰리는 셰익스피어와 동시대를 살았던 – 서양 음악사적으로 – 르네상스 시대 작곡가이다. ‘O mistress mine’처럼 그의 음악들 중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가곡들이 있는데 아마도 실제 연극 상연 중에 연주되었을 것이라고 강력하게 추측하지만 그 관련 자료나 증거는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은 형편이다. 음악은 전형적인 르네상스 시대의 마드리갈풍이다. 자칫 밋밋하고 지루할 수 있는 형식이지만, 고풍스러운 선율과 함께 원작의 내용을 곱씹다 보면 400년 전 고예술의 향취를 어렴풋이 나마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너무 고색창연한 연주가 지겹다면 톡톡 튀는 현대 작곡가들의 음악을 들어 보자. 스웨덴의 작곡가 스벤-에릭 요한슨은 독어로 번역된 텍스트를 사용하여 곡을 작곡했으며, 로져 퀼터,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의 가곡은 영어 원문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Come away, come away death, And in sad cypress let me be laid. / Fie away, fie away breath, I am slain by a fair cruel maid.

My shroud of white, stuck all with yew, O prepare it. / My part of death no one so true Did share it.

Not a flower, not a flower sweet Oh my black coffin let there be strewn.

Not a friend, not a friend greet My poor corpse, where my bones shall be thrown

A thousand thousand sighs to save, Lay me O where / Sad true lover never find my grave, To weep there

오라, 이리 오라, 죽음이여, 슬픈 사이프러스 관에 나를 뉘어 다오. / 지겨워, 지겨워, 나의 숨결, 예쁜 잔인한 처녀 나를 죽였네.

새하얀 내 수의, 주목 가지 장식의 수의를, 오 준비해 다오. / 나만큼 사랑의 죽음에 값하는 자 더는 없도다.

한 송이 꽃, 향기로운 한 송이 꽃도 뿌리지마라, 내 검은 관 위에.

한 명의 친구, 단 한 명의 친구도 맞지 마라, 내 불쌍한 관을, 내 뼈가 놓일 그 관을.

천의 천의 한숨을 마다노니, 내가 누울 곳은, / 오 슬프고 진정한 사랑이 결코 찾지 못할 곳, 내 무덤 앞에 울지 못할 곳.

– Twelfth Night, or What You Will; Act 2 Scene 4

‘Come away death’는 위의 ‘O mistress mine’과 함께 가장 많이 음악화가 된 운문이다. 프랑스작곡가 쇼숑은 프랑스어로 이 아름다운 만가를 가곡화했다. (개인적으로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를 영어 이외의 언어로 음악화 할 때는 독어보다는 프랑스어가 더 어울리는 듯 하다.) 비통함에 눌린 무겁고 느린 걸음걸이가 텍스트의 어두움을 더욱 짙게 한다. 영어 원문으로 작곡된 작품으로는 로져 퀼터, 도미니크 아르젠토,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가 있다. 이중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의 곡은 무거운 가사의 내용과는 반대의 분위기로 진행되는 밝고 경쾌한 피아노 리듬이 인상적이다.

If music be the food of love, play on / Give me excess of it, that, surfeiting, / The appetite may sicken, and so die.
That strain again! it had a dying fall / O, it came o’er my ear like the sweet sound,
That breathes upon a bank of violets, / Stealing and giving odour! Enough; no more, / ‘Tis not so sweet now as it was before.

음악이 사랑의 양식이라면, 계속 연주하라, 과도하게 다오, 물릴 정도로, 하여, 입맛이 시들고 없어지도록.

그 곡조를 다시 치게, 종지부가 있구만. 오, 이 음악은 내 귀를 달콤한 소리처럼 덮친다,

바이올렛 핀 둑에 숨을 내뿜으며 향기를 훔치고 또 내어주는. 됐다. 그만하라, 이젠 전처럼 달콤하지 않도다.

– Twelfth Night, or What You Will; Act 1 Scene 1

셰익스피어보다 약간 뒤 세대를 살았던 영국의 작곡가 퍼셀은 한여름 밤의 꿈(요정의 여왕), 아테네의 타이먼 등의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많이 음악화 했다. 하지만 그 작곡 경위나 텍스트의 출처 등의 관련 자료가 전무한 처지라 그 정확한 연관성을 밝혀내기는 쉽지 않다. 뭐가 됐던 간에 연극의 1막 1장 오시노의 첫 대사를 음악화한 이 작품은 지금까지 열거하고 열거 할 여러 작곡가의 모든 가곡 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추천하는 아름다운 곡이다. 피아노 반주 보다는 쳄발로 반주로 듣는 것이 더 옛날 옛적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데 유리할 것이다. 4세기 전의 사람들은 짝사랑의 넋두리를 이렇게 아름다운 글과 음악으로 담아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She never told her love, / But let concealment, like a worm i’ the bud, / Feed on her damask cheek she pined in thought,
And with a green and yellow melancholy / She sat like patience on a monument, / Smiling at grief.

내게 한 번도 말해 주지 않았죠, 하지만 그 숨김이, 봉오리 속 한 마리 벌레처럼, 파먹었죠, 그녀의 다마스크 장미빛 얼굴을.

파리해졌죠, 상념으로, 그리고 초록색 노란색 우울의 자태로 앉아 있는 거예요, 환자 기념상처럼, 슬픔에 미소를 지으면서.

– Twelfth Night, or What You Will; Act 2 Scene 4

고전파 음악을 완성한 하이든이 작곡한 가곡들은 그의 교향곡과 현악사중주에 비해 잘 안 알려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작(多作) 작곡가인 하이든은 가곡 또한 많은 수를 남겼는데 그 중에서 Original Canzonettas라는 가곡집이 그나마 하이든 가곡의 위신을 세워 주고 있다. 이 중 Book 2의 제 4곡 ‘She never told her love’ Hob.XXVIa:34는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를 사용한 가곡인데, 사랑의 감정을 감추려는 조신한 여성의 우아한 자태를 차분하고 우아하게 표현한 곡이다.

When that I was and a little tiny boy, / With hey, ho, the wind and the rain,

A foolish thing was but a toy, / For the rain it raineth every day.


But when I came to man’s estate, / With hey, ho, the wind and the rain,

‘Gainst knaves and thieves men shut their gate, / For the rain, it raineth every day.


But when I came, alas! to wive, / With hey, ho, the wind and the rain,
By swaggering could I never thrive, / For the rain, it raineth every day.


But when I came unto my beds,/ With hey, ho, the wind and the rain,
With toss-pots still had drunken heads, / For the rain, it raineth every day.


A great while ago the world begun, / With hey, ho, the wind and the rain,
But that’s all one, our play is done,/ And we’ll strive to please you every day.

내가 있고 내가 어린 꼬마였을 땐, 헤이, 호, 바람 불고 비 오고,

어리석은 짓을 해도 장난이었네, 왜냐면 그 비가 날마다 내렸어.

하지만 내가 어른의 사유지로 왔을 땐, 헤이, 호, 바람 불고 비 오고,

악당과 도적을 막느라 사람들이 대문을 걸어 잠갔어, 왜냐면 그 비가 날마다 내렸어.

하지만 내가, 아아, 마누라를 얻게 되었을 땐, 헤이, 호, 바람 불고 비 오고,

약한 자 겁주는 일 망조 들었네, 왜냐면 그 비가 날마다 내렸어.

하지만 내가 자리 보존하게 되었을 땐, 헤이, 호, 바람 불고 비 오고,

여전히 고주망태 머리는 곤드레만드레, 왜냐면 그 비가 날마다 내렸어.

아주 오래전 세상은 시작되었네, 헤이, 호, 바람 불고 비 오고,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 우리의 연극은 끝났네, 그리고 앞으로도 노력해야지, 매일매일 당신을 위해.

– Twelfth Night, or What You Will; Act 5 Scene 1

필자가 As you like it의 로잘린드의 에필로그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에필로그 이다. 원작에서는 따로 에필로그의 장으로 분리되어 있지는 않고, 5막 1장에서 모든 등장인물들이 퇴장하고 광대 페스테만 혼자 남아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으로 연출된다. 2행과 4행이 반복되는 총 5연의 운문으로 마지막 제 5연의 4행만 살짝 변형되어 멋지게 노래로 연극 전체를 마무리 짓는 너무나도 멋진 연출이다.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만이 이 멋진 연출을 눈치챘는지 유일하게 이 에필로그에 곡을 썼다. 요란스러운 코미디 연극 하나를 마무리 짓기에는 조금 썰렁한 부분이 있는 음악이지만, 반복되는 행인 2행과 4행의 유려한 멜로디는 처음 듣고도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면서도 중독성이 있다. 아마도 작곡가는 막을 내리며 흥을 돋구는 신나는 춤곡보다는 차분한 독백적 마무리를 염두해 둔 것 같다. 단아한 형식과 애잔한 선율이 잘 어우러진 느린 곡으로 들으면 들을수록 매력이 우러나오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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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은 Stanley Wells, Gary Taylor의 ‘William Shakespeare The Complete Works Second Edition’ (Oxford), 번역본은 김정환 번역의 ‘셰익스피어 전집’(아침이슬)을 참조 인용하였습니다.

임야비(tristan-1@daum.net)
– 자유기고가, 서울 신포니에타 기획 및 연출
– 극단 듀공아 / 극단 동맹 연출부 드라마투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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