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듣는 연극(9)/ 임야비

음악으로 듣는 연극

– 임야비

뮤즈를 울린 극작가

셰익스피어 (9)

 

뮤즈를 울린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제 9편이자 희극으로서는 4번째 연재인 이번 편에서는, 사극(史劇)의 성공으로 한껏 기가 오른 셰익스피어가 차기작으로 의욕적인 도전을 했던 2개의 희곡(사랑의 헛수고Love’s Labour’s Lost, 베로나의 두 신사The Two Gentlemen of Verona)의 음악화에 대해 살펴보겠다.

 

 

6. 사랑의 헛수고

Armado: I say lead is slow.
Mote: You are too swift, sir, to say so. Is that lead slow which is fired fron a gun?
Armado: Sweet smoke of rhetoric! He reputes me a cannon, and the bullet, that’s he. I shoot thee at the swain

Mote: Thump, then, and I flee. (Exit)

아르마도: 내 말은 납덩이는 둔하다는 거야.

모트: 주인님,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너무 재빠릅니다. 총에서 발사된 납덩이가 둔하던가요?

 아르마도: 그럴싸한 연막 수사법이군! 나를 대포로, 자신을 포탄이라고 하는 거야. 촌놈을 향해 네 녀석을 발사.

모트: 쿵, 날아간다. (퇴장)

– Love’s Labour’s Lost; Act 3 Scene 1

먼저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가 1953년에 작곡한 Four Dances from ‘Love’s Labour’s Lost’ Op.167 모음곡이 아주 재미있다. 연재하면서 여러 번 소개했듯이,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는 셰익스피어의 거의 전 작품을 소재로 11개의 관현악 서곡과 수많은 가곡을 만들어낸 작곡가이다. 단악장의 형태로 작곡된 그의 수많은 작품과는 달리 사랑의 헛수고는 모음곡의 형태로 출판된 점이 특이한데, 이는 아마도 극의 특성과 인물들의 개성을 좀 더 부각시키기 위한 작곡가의 의도일 것이다.

제 1곡은 주인공인 나바라의 왕 페르디난드에 해당하는 사라방드Sarabande이다. 고풍스럽고 느린 춤곡인 사라방드가 엄숙한 궁정의 분위기와 잘 들어 맞는다. 2악장은 프랑스 공주에 해당하는 가보트Gavotte이다. 목관의 사뿐사뿐한 움직임과 귀여운 멜로디가 인상적인 곡으로 일명 ’밀땅’의 고수인 공주의 앙큼함을 표현하는 듯하다. 제 3곡은 익살꾼 돈 아드리아노 데 아르마도에 해당하는 스페인 춤곡Spanish dance이다. 캐스터네츠와 함께 스페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플라멩코 풍의 곡이지만, 너무 덩치가 큰 관현악의 둔중한 움직임 때문에 흥겨움과 익살스러움을 갉아 먹는 것 같아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곡이다. 제 4곡은 원작의 극중극이자 가면극Masque인 ‘아홉 영웅들’에 해당하는 러시아 춤곡Russian dance이다. 러시아 특유의 투박하고 흥겨운 리듬에 웅장한 저음을 효과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극과 모음곡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곡이다.

다음으로 소개 할 작품은 루이스 애플바움이 연극 상연을 위해 작곡한 Mote’s Song과 When Daisies pied라는 곡으로 거의 무명에 가까운 작곡가의 아예 안 알려진 작품이지만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기까지 한 곡이라 독자들에게 소개와 더불어 꼭 일청을 권하고 싶다. 무대상연을 목적으로 작곡해서인지 대사의 전달이 확실하고 심지어는 연극 무대 고유의 음장감마저 느껴질 정도이다.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야무지게 읊어대는 Mote’s Song도 매력만점이지만, 5막 2장의 극중극에서 ‘봄-뻐꾸기’과 ‘겨울-올빼미’가 부르는 운문을 음악화한 When Daisies pied가 압권이다. 하프가 동원된 오케스트라와 소프라노, 테너 그리고 합창단이 셰익스피어의 텍스트에 음악을 덧칠한다. 화려함 일색인 작금의 뮤지컬 무대 위에 억지로 쥐어짜낸 서정적인 장면을 만들어낸 연출자와 작곡가는 애플바움의 이 음악을 듣고 깊이 있는 반성을 해야 한다. 하프의 반주에 맞추어 합창이 분위기를 잡아주는 도입부에서부터 듣는 이의 공감각을 자극한다. ‘봄-뻐꾸기’는 소프라노가 부르는데 잔잔한 현과 목관의 청랑함이 따스하고 차분한 봄의 안정감을 표피의 온각 수용기로 전달해준다. 중간에 목사 나타니엘이 끼어드는 ‘Cuckoo! (뻐꾸기 울음소리)’ 부분은 극의 현장감을 살려주면서 입가에 웃음을 짓게 하는 익살스러운 부분이다. ‘겨울-올빼미’는 현의 트레몰로 위에서 테너의 목소리로 전달 되는데 겨울 밤의 추운 스산함보다는 도란도란한 모닥불 앞의 따스함에 더 가깝다. 여기서도 ‘봄-뻐꾸기’와 마찬가지로 교장 올로페르네스가 ‘Tu-whit, tu-whoo! (올빼미 울음 소리)’를 어색하게 삽입한다. 이후 솜이불처럼 포근한 합창이 봄 부분을 반복하면서 극과 곡의 차분한 마무리를 하는데, 텍스트와 음악이 시너지는 원작의 위대함과 음악의 아름다움을 뛰어 넘는 감동을 선사한다. 셰익스피어의 대표적인 말장난 희곡인 사랑의 헛수고에서 음악적 감동을 넘어 총체적인 미학적 감동을 창출해낸 루이스 애플바움에게 아낌 없는 찬사를 보낸다.

이 외에 사랑의 헛수고에 해당 되는 음악은 가곡들로 모두 5막 2장의 ‘봄-뻐꾸기’와 ‘겨울-올빼미’의 텍스트에 멜로디를 얹은 곡들이다. 알버트 테퍼는 ‘Shakespeare Garland’라는 소프라노, 클라리넷, 피아노를 위한 연가곡집의 제 2곡에 봄을 그리고 마지막 곡인 제 9곡에 겨울을 텍스트로 곡을 썼다. 도미니크 아르젠토는 ‘Six Elizabethan Songs’에서 ‘겨울’을 가곡화 했는데 빠른 템포의 재미있는 가곡이지만 루이스 애플바움이 창조해낸 분위기에 비하면 텍스트와 극의 분위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졸작이다. 앞서 모음곡으로 소개한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 역시 이 아름다운 운문으로 가곡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관현악 모음곡이나 애플바움의 작품만큼의 예술성은 지니지는 못하고 있다.

7. 베로나의 두 신사

Who is the Silvia? / What is she, That all our swains commend her? / Holy, fair, and wise is she.

The heaven such grace did lend her / That she might admired be.

 

Is she kind as she is fair? / For beauty lives with kindness.

Love doth to her eyes repair / To help him of his blindness, / And, being helped, inhibits there.

 

Then to silvia let us sing / That Silvia is excelling.

She excels each mortal thing / Upon the dull earth dwelling. / To her let us glarlands bring.

실비어 아가씨는 누구일까? / 젊은이들의 가슴을 불타게 하는 / 그녀는 아름답고 현명해.

하늘의 은총을 받았는가 / 찬미는 그치지 않네.

실비어 아가씨는 아름답듯이 상냥하던가? / 아름다움은 상냥함을 동반한다오.

사랑의 신 큐피트도 그대의 눈을 찾아 / 감은 눈이 뜨여지고 / 도움을 받아 그곳에 살지요.

다 같이 실비어를 찬미해요. / 실비어는 뛰어난 미인이어라

천한 이 땅의 인간은 / 따를 수 없는 그대 / 그대에게 마음의 꽃다발을 드리리.

– The Two Gentlemen of Verona; Act 4 Scene 2

‘베로나의 두 신사’의 음악화는 모두 위에서 인용한 4막 2장에서 여관 주인이 부르는 운문에 집중되어 있다.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 스벤 에릭 요한슨이 이 운문을 가사로 노래를 만들었으며, 애플바움이 ‘실비아’를 포함한 총 6곡에 관현악 반주의 극부수음악을 만들었다. 하지만 ‘실비어’에 관해서는 ‘멜로디 메이커’이자 ‘가곡의 왕’인 슈베르트가 만들어낸 3분짜리 가곡에 아무도 감히 명함을 내밀 수 없을 것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 슈베르트는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를 바탕으로 총 3곡의 가곡을 작곡했다. 앞서 비극에서 살펴본 바 있는 심벨린Cymbeline에서 가사를 따온 Ständchen(세레나데) ‘Horch, horch! die Lerch’ D.889 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에서 가사를 따온 Trinklied(권주가) D.888 그리고 이번에 소개할 ‘An Silvia’ D.891 이다.

슈베르트의 유명한 연가곡집(겨울 여행, 백조의 노래,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이외에 단독으로 연주되는 가곡 중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곡 중에 하나인 ‘An Sylvia’는 1826년에 작곡되었다. 3절의 유절 형식으로 부드러운 성악의 멜로디와 감칠 맛나는 피아노 반주가 극중에서 여신(女神)으로 추앙 받는 실비어의 고귀함을 설레임 가득히 노래한다. 슈베르트는 악보에 A장조, 4/4박자, Mäβig(보통 빠르기)라는 기본적이고 단순한 표기를 해놓았지만, 셰익스피어의 극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곡이 A장조 보다 더 밝게, 4/4 박자 보다 더 유연하게 그리고 보통 빠르기 보다 더 벅차게 들릴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베로나의 두 신사를 모르더라도, 슈베르트 가곡의 예술성을 모르더라도 오디오에 올려 놓고 듣고 있노라면 절로 기분이 좋아져서 박복 청취하게 되는 매력적인 곡이다. 위대한 예술은 그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자세한 해설이나 문헌 따위는 전혀 필요치 않은 것 같다. 슈베르트가 이 곡을 작곡한지 200년이 지났지만 아직 까지도 이를 능가할 ‘실비어’는 없을 뿐더러 앞으로 200년의 시간 속에서도 셰익스피어의 텍스트에 찰싹 감기듯이 작곡된 슈베르트의 ‘실비어’를 능가할 작품의 탄생은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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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은 Stanley Wells, Gary Taylor의 ‘William Shakespeare The Complete Works Second Edition’ (Oxford), 번역본은 김정환 번역의 ‘셰익스피어 전집’(아침이슬), 신정옥 번역의 ‘셰익스피어 전집’(전예원)을 참조 인용하였습니다.

임야비(tristan-1@daum.net)
– 자유기고가, 서울 신포니에타 기획 및 연출
– 극단 듀공아 / 극단 동맹 연출부 드라마투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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