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공연 총평/ 박정기

박정기의 공연산책 2013년 9월 공연총평

 – 박정기

 

 

1, 서울남산국악당에서 극단 여행자의 셰익스피어 원작 양정웅 각색/연출 <한여름 밤의 꿈>을 보고

 

서울남산국악당에서 극단 여행자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양정웅 각색/연출의 <한여름 밤의 꿈>을 관람했다

 

1826년 17세의 멘델스존(독일)은 피아니스트인 누나와 함께 당시 독일에서 공연된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 밤의 꿈>을 처음으로 관람하고, 감동을 받아, 피아노곡으로 그 인상을 옮겼고 다시 관현악곡으로 바꿔 <한 여름 밤의 꿈>의 서곡을 만들었다.그로부터 16년 후 1843년에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 앞에서 스케르초를 비롯한 12곡을, 이미 완성되어 있는 서곡과 함께 포츠담 궁에서 <한 여름 밤의 꿈>의 극중 음악으로 발표를 했다. 서곡과 본 곡과의 사이에는 16년의 시간차가 있지만 그 차이를 느낄 수 없도록 작곡되어 멘델스존의 천재성을 감지할 수 있는 곡으로 평가된다. 오늘날에는 이들 13곡 중에서 서곡·스케르초·간주곡·녹턴(관현악곡)·결혼 행진곡의 5곡이 <한여름 밤의 꿈(관현악곡)>의 음악으로 자주 연주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연극 <한 여름 밤의 꿈>의 공연 음악으로 멘델스존의 이 곡이 사용된 적은 없다.

 

1995년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한양레퍼토리극단 대표인 최형인 교수의 번역과 연출로 보여준 <한 여름 밤의 꿈>과 2002년 예술의 전당 뒷산의 야외공연장에서의 극단 미추의 <한 여름 밤의 꿈>이 탁월한 공연으로 필자의 기억에 남아있고, 특히 미추의 공연에서는 공연 중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는데, 극단이 제공한 비옷을 입고, 필자의 어린 두 딸이 자리를 뜨지 않고 끝 까지 공연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모습이 잊혀 지지를 않는다.

 

2005년 연세대학고 재학생과 동문 합동공연으로 <한 여름 밤의 꿈>이 8000명이 앉아 관람할 수 있는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공연되었는데, 원로 임택근, 오현경 선생을 비롯해 서승현, 김종결, 박정국, 지영란, 노미영, 이대연 등 연희극예회 동문연극인들의 열연과, 공연 대단원에 무대 위로 높이 떠오른 하늘의 보름달이 공연효과를 상승시켜, 8000명의 관객이 환호하며 갈채하던 모습은 큰 감동으로 필자의 기억에 남아있다. 2010년에는 같은 장소에서 <피가로의 결혼>이 연희극예회 동문합동공연으로 이루어졌다.

 

극단 여행자의 <한 여름 밤의 꿈>은 2005년 영국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발(Edinburgh Fringe Festival)에서 세계인들의 각광을 받았다. 금년 9월에 중국 지난시(濟南市에)서 개최되는 제18회 베세토연극제 참가작이기도 하다.

 

극단 여행자의 <한 여름 밤의 꿈>은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의 줄거리를 차용했다고는 하지만, 연출가 양정웅의 창작이나 다름이 없다. 원래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사랑으로 눈이 멀듯, 한 여름 밤의 꿈도 사랑에 눈이 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고, 그것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이 다를 바 없다. 양정웅은 이 작품을 한국국적이 명확하고, 풍속과 습관을 비롯하여, 무속과 음악, 분장과 의상, 동작과 정서, 이러한 모든 부문을 한국적 고유의 특성이 돋보이도록 재창작해 냈다. 원작의 라이샌더, 허미어, 드미트리우스, 헬레나, 오베론 등 그 외의 작중인물도 가비, 아주미, 두드리, 벽, 루, 항, 돗, 익으로 이름을 바꿔, 각자 주술에 걸려 사랑에 미쳐 숲속을 방황하도록 만들었고, 한그루의 나무가 없이도 관객은 무대전체를 숲으로 느낄 수 있도록 연기자의 동작으로 무성한 숲을 창출시켰다. 관객 모두는 연기자와 더불어 사랑에 눈이 먼 인물이 되어 사랑을 찾아 꿈처럼 환상처럼 사랑의 향에 이끌리어 2시간 남짓한 공연시간을 연기자와 함께 울고, 웃고, 즐기고, 연극 속에 동참하며, 열광과 환호와 갈채를 퍼 부었다.

 

정해균, 장현석, 박하진, 김지연, 김진곤, 조찬희, 박정민, 정우근, 남승혜, 이진경, 최경훈, 김상보, 이현균, 이화정 등 출연자 전원의 열연과 김은정의 음악, 여국군의 조명, 이은규의 무대, 이명아의 의상, 강미선의 안무, 채송화의 분장, 음향감독 이범훈, 조연출·무대감독 이대웅, 극단기획 김경진, 기획·홍보 코르코르디움 등 스텝전원의 노력이 합하여, 극단 여행자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양정웅 각색 연출의 <한 여름 밤의 꿈>을 원작을 뛰어넘는 걸작연극으로 창출해 냈다.

 

 

2, 극단 관악극회 제2회 정기공연 아서 밀러 작 김윤철 역 이순재 연출의 시련을 보고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극단 관악극회의 아서 밀러 작, 김윤철 역, 이순재 연출의 <시련>을 관람했다.

 

아서밀러(Arthur Miller)는 1915년 뉴욕에서 출생, 미시간대학교 연극과를 졸업했다.

재학 중에 쓴 몇 편의 희곡으로 상을 받고, 졸업 후 라디오 드라마를 쓰고, 희곡 창작을 했는데, 제2차 세계대전 중의 군수산업의 경영자와 아들의 대립을 다룬, 전쟁 비판적인 심리극 <모두가 나의 아들 All My Sons>(1947)로 비평가와 관객의 칭찬을 받았다.

이어 <세일즈맨의 죽음 Death of a Salesman>(1949)으로 퓰리처상 및 비평가 상을 받고, 브로드웨이에서 2년간의 장기공연에 성공했다. 이 작품은 평범한 샐러리맨의 꿈과 현실과의 괴리(乖離)에 부자(父子)간의 사랑을 곁들여, 회상형식의 교묘한 무대처리로 현대의 불안을 강렬하게 그려낸 걸작이다. 밀러는 이 작품으로 전후 미국 연극계의 제1인자의 지위를 획득했다.

 

<도가니(가혹한 시련) The Crucible>(1953)는 리얼리즘의 수법을 버리고, 17세기 뉴잉글랜드에서의 마녀재판(魔女裁判)을 주제로, 그 당시 미국전체를 휩쓸었던 매카시 선풍을 풍류(諷喩)한 희곡이다. 그 후 여배우 M.먼로와 두 번째 결혼을 했으나 이혼했다(1960). 그밖에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 A View from the Bridge>(1955, 퓰리처상 수상), 먼로를 모델로 한 <전락(轉落) 후에 After the Fall>(1964) 등의 희곡과 소설·라디오 드라마·평론이 있다. 그는 T.윌리엄스와 함께 미국 연극의 발전과 실험에 크게 이바지했으며, 그의 희곡은 대부분 미국인의 공통된 비극적 생활을 주제로 삼아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작품으로<행운을 잡은 사나이>(The Man Who Had All the Luck, 1944)<모두 내 아들>(All My Sons, 1947)《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 1948)<도가니> (The Crucible, 1953)<다리에서의 조망>(A View From The Bridge, 1955)을 썼고, 이어서 M.몬로의 일대기<전락 이후>(After the Fall)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잔혹상을 묘사한<비시에서 생긴 일> (Incident at Vichy)을 썼다. 1968년 봄에는 <프라이스>(The Price) 1972년 가을에는 <천지창조와 다른 일들> (The Creation of the World and Other Business)을 완성 공연했다.

 

<시련>(1953)은 1692년 메사추세츠 주 세일럼에서 실제로 있었던 전대미문의 ‘마녀 재판’사건을 모티브로 1950년대 미국에 몰아친 메카시즘의 집단적 광기와 폭거에 의해 자행되었던 개인의 인권유린을 신랄하게 비판한 문제작이다.

실제로 아서 밀러는 주인공 존 프락터와 마찬가지로 매카시 광풍의 희생자였다. ‘非 미 활동 조사위원회 (The House Committee on Un-American Activities)의 조사를 받으러 청문회에 소환되어 다른 혐의자의 이름을 댈 것을 강요받았으나 거절했고, 그 결과 1차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세일럼의 ‘마녀 재판’은 아주 사소한 사건에서 출발한다. 인간 본능이 철저하게 통제받는 청교도적 신권통치의 작은 마을인 세일럼에서 어느 날 밤 숲 속에서 어린 소녀들이 발가벗고 춤을 추며, 주술을 외우고 혼령을 불러내는 금기된 놀이를 벌인다. 패리스 목사에게 발각된 소녀들은 처벌이 두려워서 악마에 사로잡힌 듯 연극을 하게 된다. 거짓 연극을 하고 있는 소녀들을 본 주민들은 이성을 잃고 정말 마을에 악마가 있다고 믿어버린다. 억제된 청교도적 규범 속에서 거친 환경을 상대로 투쟁하듯 살아야 했던 마을 주민들에게는 서로에 대한 오랜 앙금과 현실적 이해관계가 폭발 직전에 다다라 있었다. 오랫동안 억압되어 온 욕구불만은 악마와 대항해서 싸운다는 명분으로 추악한 속내를 드러내며, 잔인하고 비열한 복수심은 정당화된다. 소녀들의 금기된 장난으로부터 시작되어 마녀 색출이라는 명분으로 위장한 고소, 재판, 급기야 교수형에 치닫는 극한의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평소에 품고 있던 욕망과 질시, 불만, 이기심 등 악의 요소를 드러내 보인다.

초기의 희생자는 거지나 술주정뱅이처럼 힘없고 평소 마을의 골칫거리들이었으나, 점차 집단적 광기가 가열되며 개인적인 이권이나 원한에 얽힌 사람들이 고발되기 시작한다. 이미 명분은 복수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재판 또한 공정하게 이뤄질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죄를 묻는 재판이 아니라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하는 재판으로 변질되고, 정의를 상실한 힘은, 누구라도 처형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을 얻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죄 없는 사람들이 처형되었고, 권력의 편에서 폭거를 자행하던 자들마저 공포에 휩싸인다. 그래서 이번에는 피소된 사람을 구명하려는 명분을 다시 날조하려 들지만, 무릇 정의의 편에 섰던 인간상들이 보여주었듯 그들은 타협을 거부하고 정의로운 증인으로서 명예로운 죽음의 길을 택하게 된다.

 

<시련>의 서두 작가 노트에서 아서 밀러는 “이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역사상의 역할과 유사한, 어떤 경우에는 아주 똑같은 역할을 한다”며, 그래서 관객들은 “이 연극 속에서 인류역사상 가장 괴이하고 또 가장 무서운 사건들 중의 하나가 갖는 본질을 찾아내리라 믿는다.”고 말한다. 적어도 이 작품을 쓴 작가의 의도 중 하나는 인간사회에서 시대나 상황에 따라 빌미가 되는 명분은 다를지라도 정의가 없는 힘의 폭거는 저질러져 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의 환기이며 양심에의 부르짖음일 것이다.

 

무대는 서두에 스크린에 영상으로 숲 장면이 드러나고, 처녀들의 벌거벗고 춤추는 모습이 한 동안 지속된다. 그러다가 돌연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고, 처녀들은 비명을 지르고 쓰러지는 광경에서 장면전환이 된다.

향후 장면별로 영상이 투사되고, 대도구와 탁자 의자 그리고 법정 장면까지 대소도구를 적절하게 배치함으로써 극의 신속한 진행을 꾀한다.

 

연극은 도입에 세일럼의 숲 장면에서 출발해, 패리스 목사의 집 거실장면,

프락터의 집과 법정장면 등으로 구분되어 배경에 영상이 투사되면서 대단원까지 계속된다.

프락터로 김동범과 정태민이 출연해 호연을 보인다. 특히 정태민은 훤칠한 키와 잘 생긴 모습으로 여성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댄포스 역의 심양홍은 그의 중후한 연기력을 유감없이 과시하며 무대를 가득 채우는 연기로 관객을 압도한다. 해일목사 역의 최종률은 그의 출중한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에서 보인 연출력에 대비되는 호연으로 그의 기량을 드러낸다. 패리스 목사 역의 김인수는 각종 뮤지컬과 연극에서 보인 기량을 이번 시련에서도 잘 나타내 연극의 버팀목이 된다. 애비게일 역의 윤소연은 놀라운 호연으로 기량을 드러내고, 엘리자베스 역의 박혜성 김선애, 최선영, 메어리워렌 역의 태영 등이 출연해 호연을 보이며 관객의 시선을 연극에 고정시킨다. 가일즈 역의 정창옥의 호연은 극적 분위기를 상승시키고, 프랜시스 김일호, 하쏘온 백영호는 연극의 주춧돌 역할을 해낸다. 푸트남 역의 박찬빈은 그의 당당한 체구와 두발삭발 모습에서 이 극에서의 악역을 완벽하게 연기한다. 푸트남 부인 역의 나호숙도 호연으로 무대를 장식한다. 레베카 역으로 이기원과 유성신, 치이버 영그로 박영주, 티튜바 역으로 문경해가 출연해 호연으로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해릭으로 황도원, 사라굿으로 김은자가 출연해 깜짝 놀랄 기량을 보이고, 수잔나 이채은, 머시 당가민, 베티 김하림, 소녀들 나아름 유혜민이 출연해 호연을 보인다.

 

제작총괄 윤완석, 이태식, 제작책임 김은상 설경수 이현숙, 기획총괄 한승우, 기획 김종완 박진우 김정욱, 홍보총괄 김은자, 홍보디자인 김석환 이인숙, 홍보 김윤경, 진행총괄 김승주, 진행 안태진, 협력연출 박경일, 조연출 차주영, 무대감독 문원섭, 무대조감독 손한성, 무대디자인 최종률, 조명디자인 박원근, 조명오퍼 이현구 강인정, 음향감독 이 호, 작곡 미셸K, 음향오퍼 이희원, 의상 정소진, 보이스코치 김선애, 안무 홍세정, 영상 이남훈, 분장감독 조성환, 분장팀 박윤행 이연재 김나현 이현지 정선화, 사진 윤준섭 등 스텝 전원의 기량과 호흡이 일치되어, 관악극회 제2회 정기공연 아서 밀러 작, 김윤철 역, 이순재 연출의 <시련>을 고품격, 고수준의 우수연극으로 창출시켰다.

 

3, 극단 76의 샤롯테 키틀리 작 최영주 역 김국희 연출의 엄마가 절대 말하지 말랬어,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극단 76의 샤롯테 키틀리 작, 최영주 역, 김국희 연출의 <엄마가 절대로 말하지 말랬어,>를 관람했다.

내용은 어머니를 언니로 알고 자란 처녀의 이야기다. 어머니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할머니에게 자신에게서 태어난 어린 아이를 맡기고 떠났기 때문에, 후에 다시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면서 모녀는 자매처럼 호칭되며 여아의 성장을 보게 된다. 이들 가족에게는 60대의 증조할머니도 생존해 있다. 어머니로 여아가 알고 자란 할머니가 위암으로 일찍 저 세상으로 떠나자, 증조모를 할머니로 여기고 살며 여아는 성년을 맞는다. 그간 언니로 행세하던 실제 어머니는 참 어머니로서의 도리와 역할을 다한다. 대단원에서 위암으로 일찍 저세상으로 간 할머니의 유품과 서류를 통해 여아는 비로소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샤롯테 키틀리(Charlotte Keatley)는 1960년에 런던에서 태어난 극작가 겸 시나리오 작가다.

맨체스터(Manchester)의 빅토리아 대학교(Victoria University)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퍼포먼스 매거진(Performance magazine), 욕샤이어 포스트(Yorkshire Post), 파이낸셜 타임즈(Financial Times) 그리고 BBC 등에서 기자로 활약을 했다.

샤롯테 키틀리의 처녀작인 <엄마가 절대 말하지 말랬어,(My Mother Said I Never Should>는 1985년에 집필하고, 1987년에 맨체스터의 컨텍트 시어터에서(Contact Theatre, Manchester) 공연이 되어 로열 코트 죠지 디바인 상(Royal Court/George Devine Award)과 맨체스터 이브닝 뉴스지 (Manchester Evening News)의 최우수 연극상 (Theatre Award for Best New Play)을 수상한다. 이 작품은 1989년에 재공연되어 1990년에 로렌스 올리비에의 최우수 기대되는 연극인상(Laurence Olivier Most Promising Newcomer Award) 후보에 오르기도 한다.

 

무대는 피아노가 있는 방, 담장이 넝쿨과 라벤더 꽃이 담장에 심어진 정원, 어린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마당 등 몇 장면으로 이루어진다.

연극은 도입에 어린 여아들이 즐겁게 뛰어노는 장면에서 출발해, 피아노를 서투르게 연주하는 어머니와 딸의 장면으로 이어지고, 딸이 성장해 성숙해 지면서 남자와 사귀어 아기를 임신하게 되고, 아기가 출산하지만 어떤 연유에서인지, 남자와 헤어져 혼자만의 일자리와 삶을 위해 아기를 어머니에게 맡기고 떠난다. 어머니는 할머니와 함께 산다. 그런데 할머니는 아직은 60세 안 된 젊은 나이다. 아기는 할머니를 어머니로 알고 성장한다. 그런데 생모가 귀가한다. 그런데 생모는 자신이 친 어머니임을 밝히지 못한다. 여아는 생모를 언니로 알고 성장한다. 실제는 할머니인 어머니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여아는 증조할머니를 할머니로 알며 산다. 그동안 생모는 언니가 아닌 친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다한다. 증조할머니는 가슴속에 늘 감춰둔 두 여인의 자매관계가 아닌 모녀관계임을 밝히려 하지만 수십년간 감춰둔 사실을 쉽게 밝히기가 여간 어려운 노릇이 아니다. 어머니로 알고 자란 할머니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증조할머니와 모녀가 살게 되면서 대단원에서 이사짐을 싸는 장면과 함께 한 장의 서류가 날라들면서 여식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윤예인이 할머니와 어린이 역을 능숙하고 노련하게 연기해 갈채를 받는다. 이정미가 어머니 역과 어린이 역을 역시 발군의 기량으로 연기해 연극의 대들보 역할을 완벽하게 해낸다. 정재은이 시종일관 호연으로 언니 역할을 해 갈채를 받는다. 노현주가 아역과 딸 역을 생동감이 넘치게 연기해 젊은 남성관객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킨다.

 

예술감독 기국서, 음악 강석훈, 조명 송훈상, 무대미술 박미란, 분장 최 선, 의상 김정향, 조연출 김성현 이정욱, 무대감독 사진 박상현, 안무 라키아, 음향오퍼 김경미, 조명오퍼 김현지, 영상 문소은, 소품 서응식 문미영 등 스텝 모두의 기량이 일치되어, 극단 76(대표 기주봉)의 샤롯테 키틀리 작, 최영주 역, 김국희 연출의 <엄마가 절대 말하지 말랬어,>를, 무대 위의 라벤더 꽃 향이 객석까지 전해지는, 한편의 우아하고 아름답고 감미로운 음악을 감상하는 듯싶은 서정적인 공연으로 탄생시켰다.

 

4, 국립극단의 아리스토파네스 작 박근형 극본 연출의 개구리를 보고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국립극단의 아리스토파네스 원작, 박근형 극본 연출의 <개구리>를 관람했다.

원작은 연극의 신 디오니소스가 괴이한 복장으로 헤라클레스를 찾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조국 아테네가 전쟁에서 패배하려는 때, 젊은이들의 정신과 신체를 단련시키기에는 연극만한 수단이 없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러나 디오니소스의 판단에 유리피데스 이후 시인들의 극은 부족함이 많기에, 죽은 유리피데스를 환생시켜 아테네로 데려오기 위해 하데스로 가겠다는 것이다.

디오니소스가 헤라클레스에게 하데스로 가는 길을 묻자, 헤라클레스는 비웃으며 하데스로 가는 길을 알려준다. 디오니소스는 뱃사공 카론의 나룻배를 타고 ‘바닥을 알 수 없는 거대한 호수’를 건넌 다음, 떡갈나무만한 뱀들과 수많은 끔찍한 괴물들과 마주쳐야 하고, 지상에서 온갖 죄를 지은 자들이 빠져 허우적거리는 오물의 강을 건너야 한다. 그 강만 건너면 기쁨에 차 피리불고 손뼉 치며 지상에서처럼 행진하는 비교 입문자들을 만나게 될 것임을 알려준다.

뱃사공 카론은 시종일관 퉁명스럽고 인색하고 괴팍하다. 노예의 승선을 금한 아테네의 법이 하데스에도 적용되어 디오니소스만 배에 오른다. 칸티아스는 먼 길을 돌아 와야한다.

헤라클레스가 열거한 ‘온갖 죄지은 자들’ 대신에 배 주변으로 갑자기 개구리 떼가 나타나 극의 진행과는 무관하게 개구리 합창이 시작되고 디오니소스는 이 소리를 못견뎌하고 맞고함 친다. 개구리들은 퇴장하고 디오니소스는 노를 젓는다.

디오니소스가 하데스의 신 플루토의 거처에 당도하고 문지기 아이아코스가 문을 열어준다. 헤라클레스는 아이아코스의 애완견을, 플루토의 허락을 얻어 지상으로 납치해, 개 주인이었던 아이아코스는 복수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디오니소스를 헤라클레스로 여긴 아이아코스가 디오니소스에게 소름끼치는 위협을 가한다. 공포에 전율하던 디오니소스가 세 번째 옷에 방뇨하며 기절한다.

디오니소스는 칸디아스를 꾀어 옷 바꿔 입는다. 디오니소스는 칸티아스 대신 짐도 진다. 그 순간 하녀가 등장해 하데스의 여왕인 페르세포네가 헤라클레스를 만찬에 초대하려 한다는 뜻을 전한다. 칸티아스는 처음엔 주저하지만 “산해진미와 무희가 대기 중”이라고 하자 만찬장에 가려하니, 디오니소스가 다시 한 번 옷 바꿔 입자고 한다.

헤라클레스의 복장으로 만찬 상에 향하는 디오니소스를 두 명의 주점 여인이 붙잡는다. 헤라클레스가 지난 번 이 여인들의 주점에서 엄청난 양의 음식과 술을 갈취했기 때문이다. 두 여인이 이 신을 고발하려고 후견인을 데려오기 위해 나가자 디오니소스가 칸티아스에게 세 번째로 옷 바꿔 입기를 간청하며 다시 노예의 신분으로 위장한다. 아이아코스가 경찰관과 함께 등장해 헤라클레스(칸티아스)를 포박해 버린다. 고문당할 위험에 처한 디오니소스는 자신이 신임을 밝히고, “신을 고문하면 보복이 따를 것”이라며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 칸티아스가 신들은 육체적 고통을 느끼지 않는 부류임을 아이아코스에게 주지시킨 후 ‘채찍 맞기 경쟁’을 통해 고통을 호소하지 않는 진정한 신을 가리자고 제안하고 아이아코스가 이를 수락한다. 아이아코스로부터 교대로 채찍질을 당하지만 둘 다 이를 견뎌내니, 경쟁은 무승부로 끝나고, 아이아코스는 둘을 플루토와 페르세포네에게 데려간다.

아이스킬로스와 유리피데스가 플루토의 집에서 분쟁을 벌인다. 하데스의 법은 예술의 각 분야에서 으뜸인자가 플루토의 옆자리에 앉아 무료로 식사 할 수 있는데, 비극의 경우 아이스킬로스가 왕좌를 차지하고 있던 것이다. 분쟁은 유리피데스가 하데스로 온 것에서 시작된다. 연극의 수호신 디오니소스가 재판관으로 선출된다. 하지만 이 수호신도 플루토 못지않게 시에 대해 문외한임은 이를 것도 없다.

문학사에 있어 최초의 비평 작업이 개시된다. 쟁점은 둘 사이의 글쓰기 방식의 차이이다. 유리피데스는 아이스킬로스의 영웅시적인 과장법을 공격한다. 그리고 자신이 아테네 시민들에게 수사법을 가르쳤다고 주장한다. 시민들에게 건전한 사고의 습관이 배도록 했고 무대에 논리를 심어 놓았다. 그의 극은 ‘말하는 자들’을 양산해 낸 것이다.

아이스킬로스의 반격은 그가 유리피데스에게 넘긴 아테네의 청년들은 지금처럼 나약하고 패기 없는 오합지졸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연극의 영향을 받아 기개 당당했고 충성심에 차 있었지만 유리피데스의 연극으로 인해 젊은이들이 역경을 피하고 안락과 궤변만 추구하는 쓸모없는 존재로 바뀐 것이다. 무엇보다 유리피데스는 “시련에 빠진 여인”들과 “오빠와 잠자리를 한 여인” 등을 무대에 등장시킨 반면, 아이스킬로스 자신을 무대에 등장시켰다는 것으로 만으로도 당당하다.

아이스킬로스는 국가의 병폐를 적시하고, 유리피데스가 그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두 사람은 연극의 프롤로그까지 비판의 대상으로 삼으며 경쟁은 막바지에 이른다.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의 서두 몇 줄을 유리피데스가 공격한다. 동어반복에 불분명한 단어로 되어있다며 공격당한 아이스킬로스가 유리피데스에게 “그대의 모든 극의 프롤로그를 ‘기름단지’로 격파하겠노라”며 반격한다. 기름단지란 흙으로 빚은 좁고 긴 목을 가진 작은 병으로 마사지용 기름이나 향료를 담는데 쓰였다. 아이스킬로스는 유리피데스가 프롤로그를 낭송하는 중에 인명이 나오면 바로 그 뒤에 “기름 단지를 잃었노라”로 행을 마무리 지으며 유리피데스의 극의 모든 등장인물들을 희화화시킨다. 하지만 뜻 모를 “기름 단지”와 괴기한 시작법 놀음에 지친 디오니소스가 경쟁의 종결을 선언한다.

그리고 단어나 의미의 무게로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전대미문의 시합이 시작된다. 결국 아이스킬로스가 승리한다.

경쟁의 마지막 주제로 펠로포네시아로 망명했던 아키비아데스의 재 등용 여부에 대해 두 경쟁자는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 유리피데스는 알키비아데스가 적국으로 망명해 이적행위를 한 사실을 의식해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에는 더디고 해를 끼치는 일에는 신속했던 자를 용납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반면, 아이스킬로스는 “국가가 사자를 키워서는 안 되지만 일단 키웠으면 사자와 더불어 사는 법도 익혀야 한다”고 그가 아무리 윤리적으로 일탈된 삶을 살고 많은 적을 두고 있어도 그의 지휘에 따라야 한다며, 알키비아데스를 옹호한다. 디오니소스가 플루토의 독촉에 밀려 처음 의도와는 달리 아이스킬로스를 승자로 선언한다.

패배한 유리피데스는 퇴장하고 아이킬로스의 주장에 따라 왕좌는 소포클레스에게 넘겨진다. 플루토는 아테네를 구제하라며 아이스킬로스를 격려하고 칼과 목 매달 밧줄, 독 당근 무더기를 준다. 아네테에 득이 되지 않는 자들에게 한시바삐 자결하라고 종용하라는 것이다. 만약 자결하지 않으면 플루토 자신이 지상으로 올라가 하데스로 끌고 올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는 디오니소스 일행이 이승으로 가는 길을 횃불로 밝히라고 명하며 퇴장한다.

그 뒤를 사자 가죽을 벗은 디오니소스와 아테네를 부활시킬 아이스킬로스, 칸타이아스가 뒤 따르며 극은 마무리가 된다.

 

무대는 배경 막에 여러 개의 휘장을 얼기설기 가려놓고, 두자(2尺) 높이의 말굽 형 무대를 객석방향으로 경사지게 만들어 놓고, 그 안의 빈 공간 역시 비스듬한 널판으로 덮어놓았다. 이 널판을 들어 올리면, 저승으로 가는 배가 되기도 하고, 주렁주렁 매달린 거미줄 망사더미와 함께 개구리들의 은신처가 되는가 하면, 염라대왕의 옥좌가 되기고 한다.

 

연극은 도입에 목탁소리와 함께 무대가 밝아지면 신부, 동자승이 배경의 휘장을 들치고 등장해 삼보 일 배를 하며 말굽 형 무대를 내려와 다시 오른다.

신부는 나라의 위기를 구하려고, 저승으로 가 그분을 다시 모셔오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친구인 오이의 도움으로 저승 가는 길을 알아내고, 기량이 출중한 악사 두 사람을 동행자로 얻게 된다. 네 사람은 저승으로 건너는 나룻배의 사공을 만나 안내를 청한다. 그러나 사공은 완강히 거절한다. 그러자 신부가 품에 늘 넣고 다니는 소주를 권하고, 실향민인 사공의 마음을 다독이니, 사공은 드디어 저승의 강을 건너주고, 그들과 일행이 된다. 저승의 문턱에서 그들은 개구리 떼의 습격을 받는다. 개구리는 죽은 사람은 고통을 느끼지 못 한다며, 일행을 두드려 패기 시작한다. 그들은 이를 악물고 견딘다. 그러나 견디는 데도 한계가 있다. 그들이 비명을 울리기 시작할 즈음 이 지역의 터주 대감 격인 어르신이 등장해 개구리들을 퇴장시킨다. 그리고 그들에게 저승길을 가리키고 퇴장한다.

저승에 도착한 일행은 도깨비들의 제지를 받지만, 염라의 출연으로 도깨비들은 사라진다. 한편 저승에서는 춘향전 공연이 진행된다. 이몽룡과 방자가 등장하고, 성춘향의 옥중고통, 그리고 변학도의 비행에 관해 상세히 듣게 된다.

이몽룡은 옥중 춘향과 대면한다. 털북숭이 남자배우가 춘향으로 등장해 발군의 기량으로 열연을 한다. 변학도의 생일잔치가 시작되고, 걸인분장의 이몽룡이 등장해 명시를 읊는다.

금준미주 천인혈(金樽美酒 千人血) : 금동이의 좋은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옥반가효 만성고(玉盤佳肴 萬姓膏) : 옥반위의 맛있는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촉루낙시 민루락(燭淚落時 民淚落) : 촛불눈물(촛농)떨어질 때 백성눈물 떨어지며

가성고처 원성고(歌聲高處 怨聲高) : 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또한 높도다

곧이어 암행어사 출도 소리와 함께 어사인 몽룡이 등장을 한다. 그런데 따르는 수행원은 한 사람도 없고 방자만 모습을 보인다. 결국 민중의 호응을 얻지 못한 어사는 변학도에 의해 제압당하고 만다. 변학도는 의기양양해 춘향까지 자신의 음욕의 희생물로 만들며, 저승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염라대왕은 공연에 만족을 표시한다. 그리고 신부와 동승 일행의 소망을 듣는다. 신부가 나라의 위기를 구하겠다며 그분을 이승으로 데려갈 수 있도록 해달라며 염라대왕에게 청한다. 그분은 방자로 출연한 훤칠한 키에 늠름한 체격과 잘 생긴 얼굴의 미장부다. 그러나 염라대왕이 주저하고, 방자 역시 이승으로 가기를 원치 않는다. 그러자 몽룡으로 출연했던 인물이 라이방을 꺼내 쓰고, 자신이 가겠다며 나선다. 과거 자신이 나라를 다스렸고, 현재 내 딸이 칼자루를 쥐고 있으니, 위기에 도움이 되겠다며 가슴을 펴고 나선다. 그러자 신부가 거절을 한다. 당신의 재등장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염라대왕이 이야기를 한다. 저승에서 사람이 빠져나가면, 그 빠져나간 사람의 수대로 비운 자리를 메워야 한다고. 악사며, 사공이며, 신부까지 자신이 남겠다고 염라대왕에게 제의한다. 동사승도 나선다. 그러자 어린 아이에게는 어머니의 사랑이 필요하다며, 동자승의 어머니를 데려오라 이른다. 염라대왕의 배려로 동자승과 어머니의 재회가 이루어진다. 모자의 재화가 어찌나 감동적인지 객석에서 훌쩍이는 소리와 여지저기에서 손수건을 눈으로 가져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드디어 신부가 저승에 남기로 결심을 하고, 동자승과 어머니, 악사 두 사람, 그리고 저승의 강에서 이승으로 건너 줄 뱃사공이 저승사람들과 작별을 한다.

대단원에서 동자승과 어머니 그리고 악사 두 사람이 사공의 배에 몸을 싣고

저승의 강을 건너 이승으로 향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박윤희, 김동곤, 윤부진, 유승일, 이종윤, 임진웅, 권 혁, 박주용, 태항호, 우정원, 심원석, 김동원, 허유미, 심재현, 강기둥, 한기장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은 관객을 시종일관 연극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들의 출중한 연기는 한국연극의 앞날이 밝다는 예고를 하는 듯싶다.

 

무대디자인 최슬기, 조명디자인 고희선, 의상디자인 김우성, 음악 박소연, 안무 금배섭, 음향디자인 김숙희, 조연출 이은준, 무대감독 변오영, 무대감독보 신지혜, 음향오퍼 나영범, 조명오퍼 윤지수, 소품진행 이가현, 의상진행 이은경, 무대제작 빅벨 박대종, 예술감독 손진책 등 모두의 노력과 열정이 집중된 국립극단의 아리스토파네스 원작, 박근형 극본 연출의 <개구리>를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5, 한국연극연출가협회의 일재 조중환의 장한몽 이수일과 심순애 100주년 기념공연을 보고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한국연극연출가협회(회장 김성노)의 일재 조중환의 <장한몽> 1부 김정숙 재구성 이종훈 연출의 <이수일과 심순애> 2부 오일영 각색 김태훈 연출의 <이수일과 심순애> “첫사랑 반환소송” 재판을 관람했다.

 

1897년에서 1899년 사이에 일본의 국민적인 작가 오자키 고요(尾崎紅葉)의 신문 연재 소설인 ‘곤지키 야사(金色夜叉)’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원작이다.

금색야차(金色夜叉)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배금주의에 희생당하는 인간성에 대해 고발하는 소설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칸이치(貫一)는 자신이 의탁하고 있는 집안의 외동딸인 미야마(宮)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성실하고 착한 칸이치의 성격에 호감을 갖고 있던 미야의 부모는 칸이치가 대학을 졸업하는 때를 맞추어 결혼을 시켜줄 것을 약속한다.

그러던 어느날 미야가 소식도 없이 사라졌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칸이치가 수소문을 한 결과 미야는 거부인 토미야마(富山)의 구애를 받아 그를 따라 떠난 것이었다. 캉이찌는 미야를 찾아 나섰다. 비록 자신이 재력에 있어서는 비견할 바가 아니지만, 그는 자신과 미야 사이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토미야마의 재물에 마음이 혹한 미야는 결국 칸이치를 외면하고 만다.

이 사랑의 실패로 인해, 칸이치는 사람이 변하고 만다. 순수하던 청년이던 칸이치는 괴로움을 잊지 위해 오직 돈을 버는데만 현혹이 된다. 육년 후,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괴로워하던 미야는 칸이치를 찾아가지만,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칸이치는 그녀를 차갑게 외면한다.

그러나 완고했던 그의 마음도 어느 순간부터인가 풀어진다. 미야가 측은하게 생각된 그는 그동안 뜯어보지도 않았던 미야의 편지를 돌아본다.

소설은 여기서 중단이 된다. 작가인 오자키 고요가 이 대목을 쓰는 도중에서 사망했기 때문이다.

 

일재(一齋) 조중환(趙重桓)은 오자키 고요의 금색야차를 번안하여 매일신보에 ‘장한몽(長恨夢)’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연재하였다.

원작은 일본 소설이지만 다수의 독자들에게 친숙할 수 있도록 이야기의 큰 줄기를 제외한 다른 부분을 독자들의 구미에 맞게 각색을 한다. 즉, 일본인인 칸이치가 조선인 학생인 ‘이수일’로, 이수일의 애인인 미야가 미모의 조선인 여성인 ‘심순애’로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 역시 일본이 아닌 조선의 평양으로 설정이 된다. 그리고 또한 큰 줄기가 되는 내용이 아닌 부분은 내용상에서도 손질을 한다. 장한몽에서 유명한 대목인 대동강 변에서 이수일이 심순애의 마음을 확인한 이수일이 보름달을 보며 절규하고, 그런 이수일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심순애의 모습은 사실 원작이 아닌 조중환 자신의 창작물인 것이다.

다른 번안물과 다르게 ‘장한몽’이 한국인에게 친숙한 것도 이런 조중환의 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일재(一齋) 조중환(趙重桓)은 소설내용은 주인공 이수일이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아버지의 친구인 심택의 집에서 자라나 고등학교까지 마친 뒤 심순애와 혼인을 약속한다.

어느 정월 보름날, 심순애는 김소사의 집으로 윷놀이를 갔다가, 거기에서 대부호의 아들인 김중배를 만난다. 심순애에게 매혹된 김중배는 다이아몬드와 물질 공세로 심순애를 유혹하였고, 심순애의 마음은 점점 이수일로부터 멀어져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수일은 달빛 어린 대동강가 부벽루에서 심순애를 달래보고 꾸짖어도 보았으나, 한 번 물질에 눈이 어두워진 여자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울분과 타락 끝에 고리대금업자 김정연의 서기가 된 이수일은 김정연의 죽음과 함께 많은 유산을 받게 된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과오를 뉘우친 심순애는 대동강에 투신자살하려다가 이수일의 친구인 백낙관에게 구출된다. 결국, 두 사람은 백낙관의 끈질긴 설득으로 다시 결합하여 새 출발을 하게 된다.

참고문헌『신소설연구(新小說硏究)』(전광용, 새문사, 1986)

 

1부 장한몽 김정숙 재구성, 이종훈 연출의 <이수일과 심순애>에서는 이수일과 심순애를 원작과는 달리 재결합시키지 않고 두 사람이 자살로 연극을 마무리 한다.

무대는 배경 막에 그림영상을 투사해 낡은 정자처럼보이는 가옥과 개울처럼 보이는 대동강, 그리고 구름이 흘러가는 화면을 장면변화마다 효과적으로 제공한다. 대소도구는 초반에는 소파 하나로, 후반에는 책상과 의자를 배치해 사용한다.

 

오영수가 이수일, 이현숙이 심순애, 김재건이 김중배로 출연해 연극을 이끌어 간다. 이수일의 친구인 백낙관으로 고인배, 전대준으로 김봉환, 심순애 어머니로 임일애, 여인으로 진아라, 순사로 이종열이 출연해 호연을 보인다.

전대준 역의 김봉환의 출중한 연기와 열창, 어머니 역의 임일애의 열창은 극의 분위기를 상승시킨다.

 

음악 최종혁, 의상분장 손진숙, 조연출 진수아, 조명 이인연, 음향오퍼 김동수, 무대 이엄지, 영상 이남훈, 대소도구 김재범 등 모두의 노력이 하나가 되어 김정숙 재구성, 이종훈 연출의 <이수일과 심순애>를 성공작으로 만들어 냈다.

 

2부 오일영 각색, 김태훈 연출의 <이수일과 심순애> “첫사랑 반환소송 재판”은 원작의 이수일과 심순애가 재결합한 이후의 내용을 현대감각에 맞도록 각색한 내용이다.

이수일의 의처증이 심순애를 괴롭히고, 심순애가 어쩔 수 없이 김중배를 만난 사실로, 두 사람은 이혼법정에 서게 된다.

무대는 법정장면에서 시작된다. 배경 가까이 가로놓인 긴 탁자와 의자가 판사와 배석판사의 자리가 되고, 바로 그 앞에 법원서기의 테이블과 의자가 배치되어 있다. 하수가 원고석 상수가 피고석이 되어 이수일과 심순애의 자리로 지정된다. 관객은 배심원 역할을 맡는다. 남녀 경찰공무원이 질서유지에 힘을 쓰고 판사가 등장할 때 관객을 기립시킨다.

이혼법정에 이수일과 심순애가 등장하고, 경찰이 관객을 기립시키면, 기괴한 행동과 걸음걸이로 판사와 배석들이 등장해 좌정한다.

판사는 이수일과 심순애가 법정안에서 티격태격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자중하라고 이르면서 판사 자신은 비속어와 상 욕설을 남발한다. 이수일과 심순애의 이혼의 사유로 되는 발언내용을 영상물을 통해 재확인하기도 하고, 이수일 입장에서, 또는 심순애의 입장에서 편집한 영상물을 살펴보다가, 배심원석에 최종판단을 요구한다. 배심원은 두 사람의 이혼으로 재판을 마무리 짓지만, 마지막 이수일과 심순애의 영상은 두 사람의 키스로 연극이 종결된다.

 

김중배와 법정경찰로 정의갑, 판사로 박수용, 심순애로 이하나, 순애모와 법정경찰로 신소영, 이수일로 김홍기, 배석판사로 우진우와 오택조, 기록원으로 오미란이 출연해 호연으로 객석의 갈채를 받는다.

 

제작감독 이재성, 예술감독 최재오, 드라마터기 최서은, 무대감독 서철, 영상디자인 이남훈, 무대디자인 이엄지, 음향디자인 김정수, 조명디자인 이주환, 움직임지도 이영일, 의상 김인옥, 분장 이은선, 조명오퍼 안정민, 음향오퍼 김동수, 소품 김양희 강지원 홍보 김보미 등의 힘이 일치되어 오일열 각색, 김태훈 연출의 2부 <이수일과 심순애> “첫사랑 반환소송 재판”을 성공적인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6, 서울시극단의 김경주 작 작사 김혜련 예술감독 연출 데오도라 스키피타레스 협력연출의 나비잠을 보고

 

세종문화회관 M 씨어터에서 서울시극단의 김경주 작/작사, 김혜련 예술감독/연출, 데오도라 스키리타레스(Theodora Skipitares) 협력연출의 <나비잠>을 관람했다.

이 연극은 서울의 도성축성과 연관된 이야기를 동양화적 색감과 시적언어, 그리고 한국풍의 음악에 자장가를 담아 그려낸 담채화 같은 총체극이다.

 

서울의 성곽은 서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의 도성(都城)이다. 태조 4년(1395)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하고 한양을 방위하기 위해 성곽을 쌓도록 하였다. 석성과 토성으로 쌓은 성곽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대문은 동의 흥인지문 ·서의 돈의문 ·남의 숭례문 ·북의 숙정문이고, 4소문은 동북의 홍화문 ·동남의 광희문 ·서북의 창의문 ·서남의 소덕문을 말한다. 동대문에만 성문을 이중으로 보호하기 위한 옹성을 쌓았고, 북문인 숙정문은 원래 숙청문이었는데 이 숙청문은 비밀통로인 암문으로 문루(門樓)를 세우지 않았다.

세종 4년(1422)에 대대적으로 고쳤는데, 흙으로 쌓은 부분을 모두 돌로 다시 쌓고 공격 ·방어 시설을 늘렸다. 숙종 30년(1704)에는 정사각형의 돌을 다듬어 벽면이 수직이 되게 쌓았는데 이는 축성기술이 근대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서울 성곽은 여러 번에 걸친 수리를 하였으나, 쌓는 방법과 돌의 모양이 각기 달라 쌓은 시기를 구분할 수 있다. 일제시대에는 도시계획이라는 구실로 성문과 성벽을 무너뜨렸고,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더욱 많이 파괴되었다. 현재 삼청동 ·장충동 일대의 성벽 일부와 남대문 ·동대문 ·동북문 ·홍예문만이 남아있다.

 

무대는 정면에 성곽축성중임을 나타내는 구조물이 무대장치로 세워지고, 중앙에 등퇴장 로와 계단이 만들어지고, 그 위로 건널목이 사람 키 높이로 연결되고, 연결 목을 건너면, 왼쪽에 천정에서 늘어뜨린 밧줄에 매달린 사각의 나무 곽 속에 남녀 이중음성의 파수병이 활을 무기삼아 지키고 있다. 성벽 오른편으로 돌계단이 나있다. 무대 하수 쪽으로 각목을 역어 기둥을 세우고 봉을 가로 매달아 붉은색이 감도는 천을 봉에 늘어뜨리고, 그 앞에는 시신의 머리카락을 담아두는 항아리가 여러 개 가지런히 놓여있다.

무대 오른편에는 도성축성을 관장하는 대목장의 도구를 쌓아둔 이동조형물이 있고, 장면이 바뀌면 천정에서 거대한 석벽과 엄청난 굵기의 미루나무가 무대좌우로 하강해 그 위용을 드러낸다.

 

연극은 도입에 오케스트라 박스로 연주자가 좌정을 하면, 무대 앞쪽으로 실크 스크린이 내려오고, 곧이어 영상으로 동양화적 풍경영상과 함께 폭포수의 물결이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영상이 사라지면 실크 스크린이 상승을 하고, 축성하는 성곽 앞에 갓난아기를 안은 여인과 남편이 등장한다. 아낙과 지아비는 연이은 기근과 가뭄으로 굶주려, 아낙은 아기에게 줄 젖까지 나오지 않는 형편이라, 어미는 기진해 쓰러져 잠이 들고, 아비는 어미 품에서 아기를 꺼내 안고, 어미 몰래 내다 버린다. 이 아기는 광대의 손을 거쳐, 시신의 머리칼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파는 여인이 데려다 기르게 된다. 이 아기처럼 유기되는 아기는 당시로서는 부지기수이고, 아기의 부모들까지 굶어죽는 경우가 많다는 내용이 승려와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소개가 된다. 조선시대에는 승려들의 도성출입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연극에서도 승려를 푸대접하는 광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도성축성의 책임을 맡은 대목장이 무대 오른편에 자리 잡고, 왕 못지않은 거드름을 피우고, 무대 왼편에는 맹인처럼 보이는 제사장이 정좌를 하고 엄숙한 모습으로 주문을 외운다. 담당 군졸들은 어린아이 같은 형상의 병사들뿐이고, 성벽 위의 파수병은 남녀 이중음성을 소유한 기이한 인물이라, 관객의 시선이 인물 하나하나에 집중되기도 한다.

떼도적을 피해 도망을 온 악공이 가발 만드는 여인 앞에 등장을 한다. 여인은 그를 구해준다. 향후 가발 만드는 여인이 데려다 기른 여아는 달래라는 이름으로 성장한 것으로 소개가 되고, 달래는 심장이 약한데다가 잠을 푹 자지 못하는 증세로 머리칼이 보통 여아들보다 길고 무성하게 자라는 것으로 역시 소개가 된다.

기근과 가뭄이 도성축성에 극심한 방해요인이 되니, 대목장은 제사장에게 기우제를 하자고 한다. 기우제에 제물이 될 순결한 처녀로 수소문 끝에 달래가

지목이 된다. 가발 만드는 여인이나 승려, 그리고 악공의 반대와 항거에도 불구하고, 달래는 제물로 끌려온다.

순결한 처녀를 제물로 바쳐야 하는 대목장의 인간적인 고뇌가 시작되고, 그가 늘 함속에 간직하고 있던 여인인형을 꺼내,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인형에게 표하면서 어머니의 자장가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 과정에 헤어진 아우가 회상 속에 떠오르고, 그 아우가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악공이라는 것을 관객은 짐작하게 된다.

대단원에서 대목장은 아우인 악공과 승려의 만류와 어머니의 자장가로 인한 깨우침으로 제사장의 반대에도 불고하고, 달래를 기우제의 제물로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다. 달래는 살아난 듯싶다는 생각을 관객이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순간, 파수병의 화살이 달래의 심장에 꽂힌다. 등장인물이 놀라는 속에서 결국 달래는 자장가와 함께 절명을 한다.

휘날레는 현재 서울 성곽 부근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어머니와 딸의 모습이 등장하면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이창직, 강지은, 강신구, 김신기, 주성환, 최나라 등 시극단 단원과 특별출연한 무세중, 그리고 객원출연으로 이재희, 이두성, 최광덕, 나자명, 박신운, 노상원, 김대현, 박익준, 강보미, 인혜선, 이민주, 그리고 아역으로 안채은이 출연해 호연을 보여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드라마투르기 양윤석, 작곡 신나라, 안무 이두성, 무대미술 임일진, 미술어시스트 오미연, 무대영상 조 상, 모션그래픽 이정직, 조명디자인 이중우, 조명감독 조현권 설정식, 조명크루 조세현 진진동 유태림 박상현, 음향디자인 채소영, 어시스트 김성훈, 의상디자인 홍정희, 한지의상 전양배, 한지의상디자인 전양배, 의상제작 김정하, 소품디자인 서현석, 제작 장유경, 허수안, 김진우, 분장 통미 김선미 현새롬 신미영 하우연, 인형제작 및 그림자 연극 Theodora Skipitares Jane Catherine Shaw, 무대감독 김종문, 무대조감독 장연희, 음악조감독 남궁유진, 연주앙상불 아인클랑 김봉수, 임길용, 강리정, 최혜림, 홍지혜, 고안나, 조연출 이강선, 홍보 김희철, 이재인, 진행 김바우, 인턴 노상보 우태식 이수민, 기획 박진아 등 모두의 노력이 돋보여, 서울시극단의 김경주 작/작사, 김혜련 예술감독/연출, Theodora Skipitares 협연출의 <나비잠>을 성공적인 총체극으로 만들어 냈다.

 

7,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극단 죽죽의 김낙형 작 연출의 밤의 연극을 보고

 

서계동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극단 죽죽의 김낙형 작/연출의 <밤의 연극>을 관람했다.

이 연극은 야간 지하철 안에서 4인의 남녀 등장인물이 벌이는 퍼포먼스다.

 

무대는 극장 입구에서 세로로 전철차량1실 내부를 만들어 놓았다. 차창 세 개와 긴 철봉에 매달린 손잡이, 차량과 차량으로 통하는 문. 그리고 승강대의 둥근 손잡이, 그리고 승객의자가 객실 양쪽으로 다섯 개씩 놓여 있다. 그 주위로 극장 4면 전체가 관객석이다.

 

연극은 도입에 남녀 승객 2인이 늦은 시각에 전철을 탑승하는데서 시작된다. 여인이 좌석에 앉으려는데 남자승객이 바로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여인은 자리를 빼앗긴 것에 항의를 하는 듯 다른 빈 좌석에 앉았다가 남자승객 가까이 다가가 선다. 그 서있기를 반복하니, 남자승객은 자리를 양보하려는 듯 일어선다. 여자승객은 그 자리에 냉큼 주저앉는다. 그러나 다시 일어서 자신이 자리를 잡았던 좌석으로 되돌아온다. 남자승객도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가 착석한다. 여자승객이 남자승객에게 던지는 말인지 독백인지 “내 위에 올라타고 싶지?”라고 떠벌인다. 그 소리가 남자승객에게 전달되지는 않는다. 남자승객은 책을 펴들고 읽는다. 다음 정류장에서 남녀승객 2인이 탑승을 한다. 남자승객은 두꺼운 안경과 가방을 들었고, 여자승객은 빨간 하이힐을 신었다. 마주앉은 두 사람도 상대에게 말을 하지만, 방백처럼 되어 전달되지는 않는다.

안경쓴 남자승객은 빨간 하이힐을 신은 여자승객에게 “발가락이 눈에 띄니 구두 속에 집어넣으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그 얘기도 방백인지 상대에게 전달되지는 않는다. 향후 4인의 승객이 각자 의사표시를 하고, 각자 나름대로의 생각을 내뱉지만, 다른 승객에게 전달되지는 않는다. 책을 꺼내 읽는 남자승객은 독서인다운 사색적인 발언을 하고, 나름대로의 동작을 펴지만, 혼자만의 퍼포먼스일 뿐 어느 누구도 동조를 않는다. 두터운 안경을 쓴 남자승객도 화공약품이나 약품을 취급하는 직종에 종사하는지, 가끔 독백처럼 약품명을 늘어놓고, 퀴리부인이 라듐을 연구하다가 손이 뒤틀린 것처럼, 이 남자승객도 안면 가까이 뒤틀린 손을 자주 가져가는 기이한 행동을 반복하지만, 자신만의 퍼포먼스일 뿐 다른 승객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빨간 하이힐의 여자승객은 내릴 역을 지나쳤는데도 계속 전철을 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별로 할 일이 없는 여인임이 분명하다. 이들의 소통 없는 퍼포먼스는 1시간 20분간 지속이 된다. 현재 전철 탑승객 대부분은 노인 석을 제외하고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십중팔구는 고개를 숙이고 있고, 노인 석 탑승객은 타기가 무섭게 눈들을 감고 있으니, 염불을 외우는지, 잠을 청하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승객이 지하철에서의 의사표시라든가 생면부지의 상대와 의사소통은 엄두도 못 낼 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느끼는 일이다. 그리고 2, 3분마다 전철이 역에 서고, 새로운 탑승객이 승하차를 하기에, 한 시간이 넘도록 4인의 승객만 전철에 탑승하고 있다는 설정이 엉뚱하기는 하지만, 늦은 시각 전철 안인데다가, 또 4인의 퍼포먼스를 위해서는 부득이한 설정이라고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4인의 의사표시가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는 상황에서 관객에게까지 전달된다는 것은 어려운 노릇이라 하겠다.

종반부에 도입에서의 자리 빼앗김 때문이었는지, 처음 탑승한 여인이 독서를 하는 남자승객의 배를 칼로 찌른 후 하차해 모습을 감춘다,

쓰러진 남자승객에게 남은 남녀 승객은 여전히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전철은 계속 달려간다.

대단원에서 쓰러진 남자승객이 힘을 다해 일어서면, 굵은 빗방울이 창을 힘차게 두드리며 흘러내리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이자경, 무 정, 안창환, 장미향이 출연해 각자 다양한 퍼포먼스와 열연으로 객석의 갈채를 받는다.

 

무대디자인 손호성, 조명디자인 주성근, 음악감독 김동욱, 의상디자인 이명아, 조연출 이인석, 기획 박연주, 무대감독 이인석, 조명오퍼 이인석, 음향오퍼 안연주, 영상오퍼 신성환, 조명크루 백진철 최영환, 무대제작 TAF, 사진 이강물, 섭외 허성수, 그래픽디자인 다홍디자인 노운, 콜센터슈퍼바이저 전성애, 티켓매니저 홍수연, 하우스매니저 서예진, 프로듀서 김미선, 어시스턴ㅌ트 프로듀서 이형재, 국립극단 예술감독 손진책 등 스텝 모두의 힘이 꽃을 피워, 극단 죽죽의 김낙형 작/연출의 <밤의 연극>은 한편의 실험극으로, 국립극단 소극장 판의 무대 위에 그 열기를 펼쳐보였다.

 

8, 극단 TNT 레퍼토리의 페르난도 아라발 작 김미라 역 이지훈 연출의 장엄한 예식을 보고

 

노을 소극장에서 극단 TNT 레퍼토리의 페르난도 아라발 작, 김미라 역, 이지훈 연출의 <장엄한 예식>을 관람했다.

페르난도 아라발(Fernando Arrabal 1932~)은 에스파냐령 모로코에서 태어난 에스파냐 국적의 프랑스 극작가다. 마드리드에서 법률을 배운 후, 소설과 극작에 뜻을 두었다. 1958년 우선 두 권의 희곡집이 파리에서 출판되었다. 1959년 <전쟁터의 피크닉>이 상연되었고, 그 후 <3륜차> <환도와 리스> 등을 계속 발표했다. 칼데론이나 로르카뿐 아니라 사드와도 통하는 그들 작품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혼(魂)의 희생이 잔혹하게 그려져 있다. 최근에는 팝아트 등을 받아들인 새로운 연극을 모색하고 있다.

<장엄한 예식>은 파리의 노트르담의 주인공이나, 리처드 3세처럼 꼽추로 태어난 남자와 어머니의 이야기다. 어머니는 아들을 가두어 놓고 성장시킨다. 아들이 나이가 들어 성에 눈을 뜨면서 성적욕망을 처리할 여성을 찾지 못하니, 여자인형을 갖고 욕망 처리를 한다. 남자는 자신의 방에 사람크기의 커다란 여자인형을 가져다 놓고, 채찍을 휘두르거나, 철 줄로 묶거나, 목을 자르거나 하여 사디스트 적 성적욕망을 충족시킨다. 그의 어머니는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의 장애아들에 대한 모성애로, 마치 고슴도치가 자신의 새끼가 곱다는 속담 이상으로, 자식을 감싸고 아들의 성적취향에 묵과를 하고 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요구한다. 아들은 인형이 아닌 실제 여자를 사귈 때도 있었는지, 희생된 여자의 시체가 침대 속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어느 날 아들은 또 한 처녀를 사귀게 되고, 그 처녀를 자신의 방으로 초대하면서, 그의 가학적인 성도착증이 처녀에게 표출되고, 마침 그 처녀는 피학적인 성도착증을 갖고 있는 여성이기에 두 사람의 궁합은 잘 맞아 떨어진다. 아들은 처녀를 철 고리로 묶고 채찍을 휘두르고 목을 조르기도 하면서, 침대로 가 침대에 있던 시체를 침대 밑으로 옮기고, 변태적인 가학적 성행위로 즐기기 시작할 때 돌연 처녀의 남자친구가 들이닥친다. 처녀의 남자친구는 이 기괴한 광경에 놀라, 처녀를 그 상황에서 구해내려고 한다. 그러나 그 상태를 즐기던 처녀는 남자친구의 도움을 완강히 거절한다. 아들과 처녀는 오히려 처녀의 남자친구를 철 줄로 묶고, 가죽으로 만든 채찍을 휘두르며, 남자친구의 목을 조르기도 한다. 그리고 침대로 그를 데려 간다. 그런 과정에 경찰차의 경적 음이 들려오고, 아들과 처녀는 침대 밑에 시체를 치우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시체는 보이지를 않는다. 침대 위에서 남자친구에 대한 가학행위가 격렬해질 때, 어머니가 모습을 드러낸다. 처녀의 남자친구는 구사일생 격으로 겨우 몸이 자유롭게 돼 밖으로 도망한다. 향후 어머니와 아들, 그리고 처녀의 삼각관계가 기이한 형태로 시작되고, 삼인의 애정대결이 시작된다. 그리고 묶인 처녀에게 채찍질을 가하기 시작한다. 그 때 밖에서 경찰차의 경적 음이 다시 들려온다. 어머니는 묶인 처녀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간다. 그동안 아들은 자신의 인형에 채찍질을 하면서 가학증을 부채질한다. 처녀를 가두고 내려온 어머니가 아들을 독점하려는 듯 가까이 다가가고, 아들은 어머니의 기세에 눌려 어머니의 품에 머리를 기댄다. 그 때 처녀가 철 줄을 끊고 아들의 방으로 되돌아온다. 어머니와 아들, 그리고 처녀의 싸움이 다시 시작된다. 그리고….

 

권남희가 어머니로 출연해 서양장기의 여왕처럼, 기괴한 애정을 체스를 하듯 풀어나가며, 때로는 잔잔한 물처럼 때로는 격랑처럼 감정표출을 해 극적 분위기를 상승 하강시키며 관객을 극 속에 몰입시킨다. 아들로 이제웅이 출연해 독특한 성격창출로 여성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처녀로 김지영이 출연해 역시 독특한 성격창출로 남성관객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남자친구로 김준삼이 출연해 호연으로 극의 주춧돌 역할을 해낸다.

 

음악 양용준 김광섭, 조명 강경호, 인형제작 및 의상 김민우, 기획 및 홍보 갈라, 드라마터그 김미경 이민영, 웨딩드레스 협찬 김장미(드레스 블랑) 등 스텝 진의 기량이 잘 드러나, 극단 TNT 레퍼토리의 페르난도 아라발 작, 김미라 역, 이지훈 연출의 <장엄한 예식>을 초가을에 활짝 핀 양귀비 꽃밭 같이 요염하고 기묘하면서도 독특한 연출력이 감지되는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9, 극단 완자무늬의 이만희 작 강영걸 연출의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극단 완자무늬의 이만희 작, 강영걸 연출의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를 관람했다.

이 연극은 깊은 산속 한 사찰에서 초파일을 앞두고 미술대학 출신의 한 승려가, 친구이자 동료인 승려의 권유로 불상조각을 하면서 벌이는 갈등과 번뇌와 깨우침으로 인해 새로운 불상을 만들어낸다는 이야기다.

 

무대는 배경전체에 심산유곡이 풍경으로 펼쳐지고, 커다란 못이 호수처럼 자태를 드러낸다. 무대 두자(2尺) 높이의 단이 객석 가까이 연결되고, 그 끝에는 작은 연못을 만들어 놓았다, 배경 가까이 단의 중앙에는 오른손을 들어 올린 불상이 원형의 대위에 안치되어있고, 조각도와 조각을 하는 작업도구가 대위에 흩어져 있다. 대 앞과 옆에는 의자가 몇 개 놓여있다. 무대 상수 객석 가까이는 방장스님의 골방으로 사용이 되고, 하수는 주지 탄성스님의 방이다. 초파일에 등을 만들 때에는 대 전체가 사용된다.

 

연극은 도입에 한쪽 손을 들고 있는 불상을 바라보며 주지 탄성스님이 불상을 제작한 도법스님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미술대학 출신의 조각가 도법이 아내가 외간남자에게 겁탈을 당하자, 아내와 집을 버리고 친구가 주지로 있는 사찰에 은거한다. 마침 사찰에서는 초파일을 삼사 개월 앞두고, 불상을 새로 만들 계획을 세우도 있던 터라, 도법이 오자, 그에게 불상제작을 맡긴다. 도법은 어느 절에서나 볼 수 있는 자비로운 모습의 불상을 만든다. 그러자 탄성스님이 불만을 토로한다. 절마다 모신 똑같은 모양의 자비로운 불상이 아니라, 고통과 번뇌를 이겨낸 부처님의 모습이어야 한다고 도법에게 이야기한다. 그러한 부처의 상을 만들 수 없으면 절에서 떠나라고 호통을 친다.

실은 현재 대영제국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부처님의 초상은 현재의 부처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부처님의 5대 제자 중 한 사람인 부르나 존자가 그린 부첨님의 상은 흐트러진 머리칼에다가 더부룩한 수염의 흡사 원시인 같은 모습이기에, 일반관객에게 공개하기를 꺼린다. 그리고 원래 실제 성자의 모습을 그린 초상은 부처님 초상 뿐 아니라, 예수의 초상도 일반 공개가 금지되어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예수의 그림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도법은 자신의 부처상의 얼굴을 떼어 버린다. 망가진 부처상을 보고, 탄성은 방장 스님을 찾아간다. 새로운 불상의 모습의 조언을 듣기 위해서다. 그러나 방장스님은 불상이야 어떤 형태로 만들어지건, 그것은 실제 부처상이 아니라 돌덩이일 뿐이라며, 외형이 아니라, 불성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설법으로 탄성을 깨우친다. 탄성은 도법에게 깨우침 속에서 불상을 제작하라고 이른다. 초파일이 다가오고, 절의 스님들은 초파일에 달 등을 만들기에 열중한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젊은 스님, 여인네 같은 말과 행동을 보이는 중년스님이 모여앉아 등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탄성과 도법도 함께 등을 만든다. 그러나 도법은 새로운 부처상을 만들기 위해 착상에 골몰한다. 그래서 그런지 망가뜨린 부처상에서 한 망령이 출몰을 한다. 도법은 기절을 한다. 기절한 도법을 탄성이 발견하고 깨워놓는다. 향후 망령은 도법에게 자주 출몰하여, 도법의 과거를 들춰내고, 겁탈당한 아내를 도법 앞에 등장시킨다. 아내를 다시 외면하려는 도법에게, 망령은 도법의 아내의 옷을 벗기고 도법이 보는 앞에서 아내를 범하려 한다. 도법은 참다 못 해 그만두라고 소리를 지른다. 아내의 모습은 곧 사라진다. 도법과 망령은 머루주를 마시며 의사소통을 한다. 그리고 망령에게 본심을 털어놓고, 망령과 소통을 한다. 그러자 망령은 불상을 제작하는 대위에 올라가 스스로 부처모습의 형태를 취한다. 한 손을 들어 올린 모습으로….. 도법의 불상은 그래서 탄생한다.

 

방장스님으로 오현경 예술원 회원이 출연해 탁월한 성격창출로 관객의 시선을 고정시킨다. 최종원이 망령으로 출연해 능숙한 탈춤과 함께 불상탄생의 매개체가 된다. 동양 제일의 매력적인 저음을 지닌 이문수가 이번 작품에서탄성 역으로 출연해 발군의 기량으로 연극을 이끌어간다. 박팔영이 미술대학 출신답게 도법으로 출연해 독특한 성격창출로 불상조각가 역을 연기해 낸다.

민경진이 여성스런 말투와 동작으로 객석에 웃음꽃을 피우고, 배수백이 젊은 승려로 출연해 순발력과 호연으로 극의 분위기를 상승시킨다. 무용가 박민정 반야예술단 단장이 특별출연해, 도법스님의 아내 역을 환상적으로 연기한다.

 

음악 정대경, 무대디자인 김인준, 조명디자인 이상근, 분장 박팔영, 의상 이신혜, 조연출 정현아 강윤경, 무대감독 박정범, 영상 나정인, 제작 문광인, 드라마트루그 김태수 등 스텝 모두의 기량이 잘 드러나, 극단 완자무늬의 이만희 작, 강영걸 연출의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를 성공작으로 창출시켰다.

 

10, 극단 숲의 피터 쉐퍼 작 이한섭 역 임경식 연출의 타인의 눈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극단 숲의 피터 쉐퍼 작, 이한섭 역, 임경식 연출, 최정일 예술감독의 <타인의 눈>을 관람했다.

 

피터 쉐퍼(Peter Shaffer1926- )는 존 오스본(John Osborne), 해롤드 핀터(Harold Pinter), 존 아덴(John Arden)보다는 나이가 서너 살 위지만, 그의 첫 희곡 Five Finger Exercise를 내놓은 것이 1958년이고, 뒤이은 그의 극작 활동 역시 두드러져 1950년 이후의 영국 신예 극작가의 한 사람으로 부각되었다. 그의 작품의 형식이나 수법 또한 영국 연극의 전통적 흐름을 이어받아 그 바탕 위에서 새로운 표현 기법상의 실험을 쌓아 독특한 경지를 이룩하고 있다.

Five Finger Exercise는 사춘기의 고통을 다루고 있는데, Harrington 집안의 열아홉 살 난 아들 Clive를 중심으로 열 네 살 난 그의 누이동생 Pamela와, 자신들의 잘못된 결혼 생활에 대한 분노와 불만으로 늘 싸우고 있는 아버지 Stanley와 어머니 Louise, 그리고 자신의 출신을 감추는, 나치 독일인의 아들이며 Pamela의 프랑스어 가정 교사인 스물 두 살 난 Walter Langer 등 다섯 인물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을 엮은 가정극으로, 철저하게 연극적인 이른바 전통적 기교극(Well-Made Play)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어서 음악에 미친 몽상가 Bob과, 그가 음악회에서 우연히 만난 아가씨 Doreen과, 그들의 사랑을 도와 주려는 친구 Ted 사이에 벌어지는 삼각관계를 다룬 The Private Ear(1962)와, 중년 회계사가 10대인 아내의 행실을 탐지하기 위해 고용한 사설 탐정의 이야기로 부부간의 의사 소통의 파탄을 다룬 The Public Eye(1962) 등 두 편의 단막 희극을 낸 다음, 16세기 스페인 군의 페루 정벌을 소재로 한 The Royal Hunt of the Sun(1964)을 발표한다.
이어서 나온 Black Comedy(1967)는 영국을 순회 공연한 중국 극단의 배우들이 밝은 조명 아래에서 어둠을 시늉으로 창조해 내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어 쓴 작품이다. 거의 모든 액션이 어둠 속에서 이루어지면 무대 조명은 실재로 일어나고 있는 일과는 정반대로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등장 인물들이 완전한 어둠 속에서 더듬고 다녀야 할 때는 무대가 전적으로 밝아지고, 정녕 조명이 밝아져야 할 때는 무대가 어두워지는 것이다. 가구들도 인물들이 암중 모색하느라고 마구 부딪쳐 자주 옮겨 대야 하고 인물들도 어둠 속에서 서로를 보지 못하니까 상대방을 앞에 두고 마구 욕을 하거나 헐뜯게 된다. 따라서 주로 소극이라 할 이 극은 은퇴한 육군 장교 출신의 보수적인 아버지와 사교계의 딸과 그녀의 약혼자이며 극의 중심 인물인 실험적 젊은 조각가 Brindsley Miller 사이에 일어나는 충돌과 계략을 다루고 있다. 이 극의 뉴욕 공연의 부대 작품으로 썼다는 White Lies(1967)는 The White Liars(1968), White Liars(1976) 등의 제목으로도 공연되고 있지만 내용은 Baroness Lamberg란 가명으로 위장한 어느 바닷가의 점장이를 중심으로 역시 자신의 신분과 감정에 관해 세상 사람들을 속이려 드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The Battle of Shrivings(1970)는 4년 뒤에 고쳐 써져 Shrivings(1974)란 제목으로 출판되었는데, 이 극은 만만찮은 두 인격 사이의 충돌을 다루고 있다. 저명한 노(老) 철학자요 평화주의자인 Sir Gideon Petri는 Shrivings란 이름의 시골집에 은퇴하여 섹스와 고기를 멀리하고 세계 평화 연맹(World League of Peace)이란 것을 만들어 비폭력과 동포애를 설교하고 있는데, 그의 옛 제자요 저명한 시인이며 냉소적이고 자유 분방한 Mark Askelon이 의도적으로 찾아와 이 집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뒤집어 놓는다.
Shrivings가 철학과 심리학을 멜로드라마와 결합시킨 작품이라면, Equus(1973)는 순전히 심리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1960년대에 Shaffer는 철학과 심리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대표 작품이라 할 이 극은 중년의 정신과 의사 Martin Dysart와, 마굿간에서 여섯 마리의 말의 눈을 찔러 멀게 한 정신 이상의 10대 소년범 Alan Strang 사이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Dysart는, 여자 치안판사 Hesther가 그에게 치료를 부탁하면서 인도한 Alan에게서 최면술 등으로 설명을 얻어 내고, 그것을 갖가지 수법으로 짜맞추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엮어 낸다. 소년의 아버지는 사회주의자요 무신론자로 TV에 반대하고 종교를 미신으로 보고 있는데, 광신적인 어머니는 아들에게 빠져 몰래 이웃에서 TV도 보게 하고 종교를 믿도록 종용하기도 하였다.

Alan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에 쇠사슬에 묶여 매맞고 있는 그림을 가장 좋아했었는데 아버지는 그 그림도 찢어 버렸었다. Alan은 대신 말(馬)의 실물 정면 사진을 걸어 놓았었다. 그는 어릴 적 어느 바닷가 모래밭에서 어떤 낯선 승마 자가 그를 말 등에 태워 달려 준 일이 있었는데, 그것이 말에 대한 첫 경험이었다. 그 때 부모님은 크게 노하여 그를 말에서 끌어내렸지만, 그는 뭔가 성적인 흥분을 느꼈으며, 사슬에 묶인 그리스도에 대해서 그랬듯이 재갈을 물린 말에 대해서도 동정을 느꼈었다. 그리하여 그는 점차, 모든 말에 깃들어 있을 뿐 아니라 그에게 황홀감을 안겨 준다고 그가 믿고 있는 신령 Equus에 대한 숭배로 전향해 갔다. 마굿간에 일자리를 얻은 그는 밤마다 몰래 말을 끌어 내어 그들과 속삭이며 알몸으로 타고는 성적 쾌감의 절정(오르가슴)을 맛보곤 하였다. 마침내 같은 마굿간에서 일하던 아가씨의 유혹으로 음란 영화를 보게 되는데, 여기서 그는 난생 처음으로 알몸의 여인을 보았던 것이다. 흥분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는 갑자기 그 영화관에 아버지가 있음을 보게 되었다. 말하자면 아버지는 이제 세 번째로 그가 성적으로 각성하는 결정적인 순간을 방해했던 것이다. 그가 아직도 그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자기가 절대적으로 존경하던 아버지가 실은 위선자였다는 사실을 실감하려고 애쓰고 있을 때, 아가씨는 그를 마굿간으로 데려가 성교를 하려 들었다. 그에게 있어서 마굿간은 일종의 신전이었으며, 따라서 그 성 행위는 신성 모독이 되는 것이다. 그는 말들이 지켜 보고 있는 것이 두려워 성교 불능이 되며, 수치심에서 아가씨를 몰아내고, 미친 듯이 말들의 눈을 찔러 멀게 한 것이었다.
이상으로 Shaffer의 작품을 대체로 훑어보았다. 한 마디로 그는 Terence Rattigan 등의 기교극의 전통을 이어받아 자신의 기발한 발상들과 여러 가지 심리적 관계들을 다루면서 언어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연극적으로나 놀라울 만한 효과를 만들어 내는 탁월한 솜씨를 지닌 작가라 할 것이다.

 

<타인의 눈>은 20년의 나이차가 있는 회계사와 그의 아내와의 사랑과 불신을 다룬 연극이다. 신혼시절이 지나자마자 40대의 남편은 20대 초반의 아내에게 의처증을 느끼고, 아내의 불륜을 탐지하기 위해 탐정을 고용해 아내를 미행시킨다. 그러나 아내는 순결하기 그지없는 여인이다. 오히려 남편이 성매매 여인의 집을 출입하면서, 아내의 행실을 의심하게 되고, 탐정까지 고용해 아내의 뒤를 밟게 하지만, 불륜을 행할 까닭이 없는 아내는 탐정인줄은 모르지만 한 남자가 자꾸 자신의 뒤를 밟는다는 것을 감지하게 되고, 우연히 들른 남편의 사무실에서 그 사나이와 맞닥뜨리게 된다. 그래서 남편이 자신의 행실을 의심해 탐정을 고용한 사실을 알고는 분노와 허탈감에 빠진다. 부부는 결별하기 직전까지 가는가 싶도록 감정이 격해진다. 결국 탐정이 나서서 그동안 타인의 불륜사실을 파헤쳐 그 행위로 보수를 받고, 부부간의 이혼을 시킨 일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번에는 두 사람의 사랑을 재확인시키고 ,부부간의 신뢰를 복원시키고, 부부를 재결합 시키는 작업으로 탐정 일을 마무리하게 된다는 해피엔딩 코미디다.

 

무대는 회계사의 서재 겸 사무실답게 옷 칠을 한 장롱처럼 갈색바탕으로 실내를 고풍스럽게 칠해 관객의 마음을 안정시킨다. 정면에 커다란 창이 달린 문이 열려있고, 문을 나서면 엘 그레코의 그림인 듯한, 여인의 초상화가 벽면에 걸린 좁은 복도가 있고, 복도 오른편 끝에 출입구가 있다.

정면의 문 왼쪽 벽에 원형의 벽시계가 걸려있고, 그 왼쪽에도 문이 있는데, 비상문처럼 외부로 통하도록 되어있다, 무대왼쪽 벽면에는 위로 밀어 올리는 창문이 두 개가 달려있고, 벽 앞에 술병과 잔을 올려놓은 낮은 탁자가 있다. 탁자와 조금 떨어져 원형의 테이블과 의자가 무대 중앙을 향해있고 그 다음으로 무대중앙에 소파와 탁자가 비치되어 있다. 그 오른 쪽에는 의자가 놓였다. 무대 오른쪽 벽면에는 책장이 창문과 창문 사이, 그리고 창문 건너 로 세 개가 벽면 안쪽으로 움푹 들어가 세워져 있고, 책장의 책마다 금박을 입힌 글자가 눈에 띈다. 정면 벽과 왼쪽 벽 사이에 옷걸이가 세워져 있고, 옷이 걸려있다.

 

연극은 도입에 바바리코트를 입은 한 사내가 사무실에 앉아 가방에서 견과류 병을 꺼내, 테이블 위에 손수건 펼쳐 그 위에 쏟고, 품에서 건포도 병을 꺼내 견과류 위에 입맛을 다시며 쏟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러자 문이 열리고, 중년의 회계사가 등장하고, 오늘은 토요일이라 고객을 받지 않는다며, 자신은 정리할 일이 있어 잠시 사무실에 들른 거라며, 사나이에게 가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나 사나이는 아랑곳 않고, 이번에는 요구르트를 꺼내 먹기 시작한다. 회계사가 퇴실할 것을 거듭 요구하자, 사나이는 나갈 수 없노라고 한다. 그리고는 절대로 나가지 않겠다며, 회계사가 자신에게 이리로 오도록 요구했다며, 황당하게 여기는 회계사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힌다. 탐정이라는….

40대의 회계사가 20대 초반의 아내에게 의처증을 품게 되고, 아내의 불륜을 탐지하기 위해 탐정까지 고용해, 바로 그 탐정노릇을 한 사나이가 결과 보고 차 회계사를 찾아왔다는 사실이 전해진다.

탐정의 말로는 며칠 동안을 회계사의 아내를 미행했지만 불륜은커녕 비행 사실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남편이 의처증을 거두지 않으니, 탐정은 젊은 남자가 늘 아내 주변을 배회하고는 있었지만, 그 남자와 회계사의 아내가 어떤 이상한 낌새를 보인적은 없었노라 이야기를 한다. 마침 그 때 회계사의 아내가 남편의 사무실을 방문한다. 노크소리와 음성에 놀란 회계사는 비상문으로 탐정을 내보낸다. 다음 화요일에 다시 방문하라며…

아내가 꽃다발을 들고 들어와 꽃병에 꽂는다. 그동안 남편은 아내를 빈정거리듯 주시하며 질문을 퍼붓는다. 미켈란젤로 광장 커피숍에 간일이며, 그 밖의 행적을 본 듯이 꿰어 맞추며, 아내의 행적을 열거하고, 늘 같이 있던 젊은 사나이가 누구냐고 질문을 한다. 아내는 놀라면서도 솔직하게 사실대로 이야기를 한다. 미켈란젤로 커피숍은 친구여인들과 늘 상 다니던 장소이고, 최근에 전혀 생면부지의 남자 한 사람이 자신의 뒤를 쫓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지만, 아직 대화한번 나눈 적이 없노라고 털어놓는다. 그 남자는 가방에서 요구르트를 꺼내 먹는다는 이야기와 함께.

남편이 계속 아내를 추궁하려하자, 비상문 밖에서 인기척과 기침소리가 들리고, 비상문을 연 남편이 사나이를 발견하고 당황해 하자, 사나이는 문을 밀치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다.

아내는 자신을 따라다니던 사나이가 남편이 자신을 못 믿어 고용한 탐정임을 알게 되고, 배신감과 절망감에 쌓여 남편과 결별을 할 의사를 나타내려 한다. 그 때 탐정이 나서 두 사람의 관계를 수습하려 한다. 탐정은 우선 남편을 밖으로 잠시 내보내고, 아내에게 설득작업을 편다. 우선 견과류와 건포도를 권하면서, 아내는 남편이 탐정을 고용해 자신의 행적을 알아내듯 자신도 우연한 기회에 친구인 여인으로부터 남편이 젖가슴이 크기로 소문난 여인의 성매매업소에 출입한다는 사실을 털어놓으며, 남자는 가끔 그렇게 기분전환을 해야 아내에게 더 잘해준다는 이야기까지 한다. 젊은 여인답지 않게 남편에 대한 이해와 배려심을 가진 여인을 불행한 길로 가도록 해서는 아니 된다는 탐정의 작전이 펼쳐진다. 탐정의 지시를 부부가 따르기로 하면서, 영화 희랍인 조르바의 주제음악인 테오도라키스의 음악과 함께 연극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를 한다.

 

김동찬이 회계사로 출연해 훤칠한 키에 잘 생긴 모습에 어울리는 품격 높은 연기로 극의 기둥역할을 한다. 강민호가 희랍인 탐정으로 출연해 발군의 기량으로 호연을 펴, 관객을 극에 몰입시킨다. 김수경이 아내로 출연해 산뜻 발랄한 모습과 품위를 갖춘 연기로 남성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예술감독 최정일, 무대디자인 김만식, 조명디자인 김명남, 의상디자인 박은정, 제작감독 오선경, 연습감독 이은미, 조연출 김희정, 조연출보 정가영, 무대작화 이소영, 그 외 스텝진의 노력과 열정이 합하여, 극단 숲의 피터 쉐퍼 작, 이한섭 역, 임경식 연출의 <타인의 눈>을 품격높고 고수준일 뿐 아니라, 연출력이 돋보이는 우수걸작 희극으로 탄생시켰다.

 

9월30일 박정기(朴精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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