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하루/ 김태희

현실과 환상의 이미지 변주 : <그의 하루>

 

김태희

작, 연출: 조현산
단체명: 예술무대 산
공연일시: 2014/03/05 ~ 2014/03/16
공연장소: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솔직히, 인형극은 생소하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만 하루에도 수십 편의 연극이 공연되지만 그 중에서 인형극은 손에 꼽을 정도다. 게다가 인형극은 아동용, 혹은 백번 양보해서 가족용 연극의 하나쯤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나마 <춘천인형극제>가 1989년 시작되어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 나가고 있긴 하지만, 인형극을 위한 기반은 열악하다. 출품되는 작품들 역시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들이 압도적이며 레퍼터리도 아동들에게 익숙한 전래동화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에게도 전통 인형극이 존재하긴 한다. <꼭두각시 놀음>을 중심으로 한 전통 인형극의 계승 내지 현대화 작업은 최근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막상 극장을 찾아보면 전통 인형극의 대중화는 멀게만 느껴진다. 인형극의 특성상 좁은 지하 소극장을 선택했으나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꽹과리와 태평소 소리로 인해 관극 자체에 방해를 받는 상황도 왕왕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여러 연극제에 초청을 받고 있는 예술무대 산의 작업은 우리연극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예술무대 산은 인형과 오브제를 통한 연극적 문법을 발견하는 것을 목표 2001년 창단되었다. 이들은 현재 다양한 인형극 레퍼터리를 선보이고 있으며, 인형극 공연뿐만 아니라 인형극 발전을 위한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 인형전시회, 국내외 예술가와의 교류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최근 무대에 올린 <그의 하루>의 경우 지난 레퍼터리인 <夢>에 이어, 아이들을 위한 인형극에서 어른들을 위한 인형극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그들의 행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해볼만 하다. <그의 하루>는 현대인의 하루를 압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교통 체증에 시달리며 출근하고, 하루 종일 상사 눈치를 보며 일하다가 퇴근하는 일반적인 직장인의 하루가 서사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는 이 인형극이 성인 관객들을 주된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서사를 메우는 이미지의 힘 

 

일반적인 연극에서, 서사가 인물들의 대화와 행동으로 진행이 되는 것과 달리 <그의 하루>에는 대사가 없다. 대신에 이 작품의 이야기 진행은 전적으로 인형과 배우의 마임, 소도구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그의 하루>는 마치 시(詩)와 같다.

무대 위에서 인형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가장 효과적으로 서사를 전달할 때는 주인공의 회사 생활을 보여주는 대목에서다. 지친 몸을 이끌고 회사에 도착한 주인공을 맞아주는 것은 거대한 상사 얼굴의 가면이다. 심술보가 들러붙은, 어딘지 그로테스크한 상사의 얼굴은 거대한 입을 들썩거리고 툭 튀어나온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공포감을 형성한다. 이 거대한 상사의 얼굴은 수시로 주인공을 노려보고, 위협하면서 그 자체로서 회사원들에게 체감되는 자본주의의 이미지를 구현해 낸다. 하나의 이미지가 여러 마디의 말보다 더 효과적으로 관객들에게 서사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의 효과는 환상성이 더 해질 때 극대화 된다. 상사의 얼굴이 서커스 단장의 모자를 쓰자, 무대는 서커스 장으로 바뀐다. 상사의 손짓 하나에 주인공은 구르고, 뛰고, 울부짖는다. 이어 상사와 한통속으로 보이는 광대가 주인공을 상자에 가두고 몸을 절단하는 마술을 보이려고 하자 주인공은 공포에 질린다. 역설적이게도, 서커스의 이미지는 과장된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주인공을 위협하는 채찍만큼이나 폭력적인 것이 이 사회의 구조고 자본주의일테니 말이다.

이 작품에는 다양한 종류와 크기의 인형들이 동원된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주인공 인형일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인 ‘그’는 총 두 종류의 인형으로 형상화되기도 하고, 배우가 직접 연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작품에는 배우가 직접 연기하는 ‘그’, 손으로 움직이는 인형 ‘그’, 손가락 인형으로 등장하는 ‘그’, 총 세 층위의 ‘그’가 등장하는 셈이다. 같은 인물의 형상화를 위해 이렇게 많은 노력을 들이는 까닭은, 이미지의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서다. 가령 각기 다른 크기의 주인공은 때에 따라서 카메라와 같이 줌 인과 아웃의 기능을 무대 위에 실현시키기도 한다. 이 효과가 눈에 띄게 활용되는 것은 주인공이 출근하는 장면에서이다. 버스를 기다리는 그는, 손으로 움직이는 인형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미 줄을 서있는 한 무더기의 사람들은 힘없는 그를 밀어내고 때에 따라서는 밟고 지나가기도 한다. 이어 멀리서 인형 크기의 버스가 난폭하게 달려오는 모습이 연출된다. 그가 버스를 기다리고 버스에 올라타기까지의 과정을 마치 카메라가 줌-아웃해서 보여주는 것과 같은 앵글로 전달을 하는 것이다. 인형이었던 그가 힘들게 버스에 올라타고 무대 밖으로 사라지면 이제 무대에는 배우가 연기하는 그가 등장한다. 버스 창틀에 매달린 그는 다른 승객의 핸드폰을 함께 쳐다보며 웃거나, 앞자리에 서 있는 여자 승객에게 음흉한 남자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이 때 배우의 섬세한 표정 연기는 카메라가 줌-인을 해야 볼 수 있는 장면으로,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버스의 분위기를 관객들에게 실감나게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이렇게 카메라가 줌-인을 해야 볼 수 있는 섬세한 표정 연기는 실제 배우가 수행하고, 카메라가 줌-아웃을 해야 볼 수 있는 넓은 시야의 장면은 인형이 담당함으로써 ‘힘든 출근길’이라는 이미지 연출의 효과를 극대화 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의 하루>의 서사는 빈틈이 많다. 우리가 너무 익히 알고 있는 서사이기도 하거니와, 인형극의 특성상 복잡다단한 갈등을 작품 속에 숨겨놓을 수도 없는 탓에 갈등마저 단순하고 뻔하다. 이런 서사의 빈틈을 메우는 것은 이미지들이다. 적절한 음악과 어울러지는 경쾌한 배우의 마임, 인형의 움직임은 다채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관객은 이미지 그 자체를 즐기게 되는 것이다.

 

 

 동화적 세계로의 귀환, 위로의 여정

 

관점에 따라 인형극의 한계는 명확해 보이기도 한다. 인형극은 복잡한 서사적 장치를 시도하기에는 많은 한계를 노정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발전해 올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인형극의 전통이 빈약한 우리 인형극의 경우, 아동 관객들에게 단순히 움직이는 대상을 보는 즐거움을 주고 전래 동화의 줄거리를 전달하는데 그치고 말았던 것이다. 과거에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했던 인형극이 아동용, 가족용으로 치우쳐진 오늘날의 상황은 우리가 등한시 했던 인형극의 강점에 대해 되돌아보아야만 하는 필연성을 제공한다. 예술무대 산의 활동이, 이를 위한 좋은 전형 중의 하나임은 물론이다.

인형은 묘하게도 어린 시절을 상기시키는 측면이 있는데, 예술무대 산은 이를 무대 위에 환상적 이미지로 구현해낸다. <그의 하루>에서 술에 취한 그가 집에 들어와 침대에 몸을 묻으면 그가 덮은 이불이 바다로 변하면서 손가락 인형들이 등장한다. 아마도 이 장면들은 지친 그가 꾸는 꿈일 텐데, 그와 친구들로 분한 손가락 인형들은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놀던 장면, 할머니와의 추억들을 되살려낸다. 이들과 같이 등장한 물고기 인형은 크기를 달리하며 여러 장면에서 등장하는 데, 마지막 장면에서는 어른이 된 그와 어린 시절의 그가 함께 물고기를 타고 다니며 지친 그의 하루를 위로한다. 마찬가지로 이들의 대표작인 <달래 이야기>에서도 비슷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전쟁이 나서 부모가 죽고 혼자 남은 달래는 혼자 놀다 지치면서 잠이 드는 데, 그 꿈속에서 강아지 인형과 즐겁게 노는 장면이 연출된다. 이 둘의 놀이는 평화로웠던 시절 아버지와의 놀이를 상기시키는 기능을 하면서 달래를 위로한다. 예술무대 산의 인형극이 갖는 강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무대 위에 펼쳐지는 평화로웠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은 관객들에게도 평화로웠던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이때의 어린 시절은 개별적 기억으로서의 어린 시절이라기보다는, 무대 위의 환상과 결합한 일종의 전형으로서의 어린 시절에 가깝다. 어른들의 세계를 가로지르는 동심의 세계는, 등장인물들에게만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에게도 위로와 일종의 치료를 제공한다.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형극이 생소한 우리나라에서, 예술무대 산의 작업이 일정부분 유효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 위안이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무대가 시작하자마자 가슴 속에 품고 다니던 사직서를 꺼내 확인하고 자조적인 표정으로 이를 다시 양복 주머니에 고이 넣어 두는 행동을 한다. 무대의 첫 장면처럼, 어떤 현대인이 가슴 한 구석에 사직서를 품고 다니지 않을 수 있을까. <그의 하루>는 정확히 이 지점을 꿰뚫고 있다. 우리를 피로하게 만드는 사회를 다양한 이미지로 유희하는 한편, 아기자기한 동화의 세계를 통해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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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극의 발전이 뒤쳐져 있는 우리나라에서, 어른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무대 산의 작업은 반가운 시도였다. 다만 주제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앞으로의 행보가 걱정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이들의 레퍼터리 중 본격적으로 성인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夢>과 <그의 하루>인데, 일상에 지친 현대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측면에서 상당부분 유사한 포맷과 주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성인 관객을 대상으로 한 인형극이 등장하고 있는 이때에, 이들에게 서양 인형극처럼 복잡한 갈등과 형이상학적 주제를 다루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보다 다양한 주제와 형상화를 위해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이들의 다음 작업에 기대를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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