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한국여성연극협회 세미나: <굴원> 독회
작가 곽말약
번역 강영매
연출 류근혜
일시 2014년 2월 13일 오후 2시~4시
장소 예술가의 집 다목적 홀
예술가의 집 다목적 홀에서 2014 한국여성연극협회의 세미나, 곽말약(郭沫若)의 굴원(屈原) 독회를 참관했다.
곽말약(郭沫若 꿔모러1892~1978)의 본명은 곽개정[郭開貞]이다. 중국 사천성[四川省]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난폭하고 다루기 힘든 성격의 소유자였다. 전통적인 교육을 받은 후, 1914년 중매로 결혼한 중국인 아내를 버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의학을 공부했다. 그곳에서 일본 여인과 사랑에 빠져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외국어와 문학에 열중했고, 스피노자, 괴테, 벵골의 시인 타고르, 휘트먼 등의 작품에 심취했다. 그의 초기 시들은 쉴러나 휘트먼을 연상시키는 매우 정감적인 자유시의 형태를 띠었다.
그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Sorrow of Young Werther>을 번역했고, 2년 후에는 자신이 번역한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 가와카미 하지메의〈사회조직과 사회혁명 Social Organization and Social Revolution>에서 사상적인 영향을 크게 받아 마르크스주의의 신봉자가 되었다.
그의 작품경향은 시와 산문에서 여전히 낭만적 분위기를 띠고 있기는 했지만, 개인주의적인 문학을 거부하고 프롤레타리아에 동조하는 사회주의 문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1926년 장제스[蔣介石]가 군벌들을 몰아내고 중국을 통일하고자 벌인 북벌(北伐)에 정치인민대표위원으로 참가했다. 그러나 1927년 장제스가 공산주의자들을 국민당에서 숙청하자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난창[南昌] 봉기에 가담했고, 봉기가 실패로 끝나자 일본으로 피신했다. 그 후 10년간 중국 고대유물에 관한 학술연구를 계속했다. 1937년 중국으로 돌아와 항일운동에 참여했으며, 정부의 요직을 두루 맡았다.
곽말약은 모든 장르에서 대단히 많은 작품을 남겼다. 시와 소설 외에도 희곡과 9권의 자서전적인 저작이 있으며, 괴테·쉴러·투르게네프·톨스토이·업튼 싱클레어 및 다른 서구작가들의 작품도 많이 번역했다. 역사와 철학에 관한 논문들도 남겼으며 이 중 가장 큰 업적은 〈은주청동기명문연구 殷周靑銅器銘文硏究〉(1935, 1957)라는 논문이다. 이것은 청동기와 신탁용(神托用) 갑골에 새겨진 명문에 관한 연구가 집대성된 것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공산주의 이론에 따라 고대 중국의 본질을 ‘노예사회’로 논증하려고 했다. 그는 서예가로도 이름을 떨쳤는데, 그의 행서(行書)는 굴원 기념관이나 곳곳의 현판글씨로 남아있다.
1949년 이후 중국 과학학술원장 등 중화인민공화국의 여러 주요공직을 맡았다. 1966년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이 일어나자, 첫 번째 비판대상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모택동 사상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으며, 자신의 작품들은 모두 태워버려야 한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그러나 다른 많은 동료들과는 달리 직책을 모두 빼앗기지는 않았다.
1970년대에 다시 높은 지위에 올라 1978년 사망할 때까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대단한 권력을 누렸다.
번역을 한 강영매 한국여성연극협회 부회장은 충남 예산 출생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중문과 졸업하고, 국립대만사범대학교 중문학 석사과정, 대만문화대학교 일문학 석사과정, 연세대학교 중문학 박사.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겸임교수이며 언어교육원 주임강사다. 광운대학교 연구교수와 간행물윤리위원회 심의위원을 역임했다. 동아시아의 인문학과 문화를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한·중·일의 연극에 관심이 많다. 오랜 유학 생활과 수십 군데에 이르는 중국 박물관 견학 및 유적지 답사, 그리고 국사편찬위원회에서의 국외사료연구가 본서의 번역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논문으로는 [탕현조 모란정 연구], [이노우에 야스시의 중국 역사소설 연구], [모란정 시공간 구조 분석], [모란정과 파우스트의 합창의 의미], [춘향전과 모란정의 천자문 수용 양상], [모란정 언어 기교의 해학성], [모란정에 나타난 화신의 의미와 상징성 고찰], [한중 공연문화 교류 현황] 등 다수가 있다. 저·역서로는 [강영매의 한자여행], [한자특강], [동양 고전극의 재발견], [춘향 예술의 양식적 분화와 세계성](공저), [고사성어 문화답사기](전 2권), [중국통사](전 4권), [중국역사박물관](전 10권), [중국의 성문화], [굴원], [채문희], [백록원](전 5권), [선월], [중국인의 꾀주머니](공역), [주룽지 기자에 답하다](공역) 등 다수가 있다.
<굴원(屈原)>은 곽말약이 1942년 2월 2일부터 쓰기 시작하여 불과 열흘 만에 완성한 역사극이다.
굴원(屈原 BC340~278)은 양쯔 강[揚子江] 중부 유역의 큰 나라였던 초나라의 왕족으로 태어났다. 그의 친척이었던 회왕(懷王)의 신임을 받아 20대에 벌써 좌도(左徒:侍從)라는 중책을 맡고 있었다. 법령입안(法令立案) 때 궁정의 정적인 상관대부(上官大夫)와 충돌해 그의 중상모략으로 면직당하고 국왕 곁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굴원은 제(齊)와 동맹해 강국인 진(秦)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진의 장의(張儀)와 내통하고 있던 정적과 왕의 애첩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왕은 제와 단교했으나 결국 진에게 기만당하고 진의 포로가 되어 살해당하고 말았다. 회왕이 죽은 뒤 큰아들인 경양왕(頃襄王)이 즉위하고 막내인 자란(子蘭)이 영윤(令尹:재상)이 되었다. 굴원은 회왕을 객사하게 한 자란을 백성들과 함께 비난하다가 또다시 모함을 받아 양쯔 강 이남의 소택지(沼澤地)로 추방되었다. 〈어부사 漁父辭〉는 그때 쓴 작품이다.
그는 유배지에서 무속적 민속의식을 관찰하고 그의 작품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전설들을 수집했다. 맨처음 회왕에게 내쫓기어 유배되었을 때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장편 서정시 〈이소 離騷〉를 써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이’는 ‘만나다’의 뜻이고 ‘소’는 ‘근심’이라는 뜻이니 이소란 곧 ‘근심을 만나다’라는 뜻이다. 〈이소경 離騷經〉이라 하는 것은 후세 사람들이 높여 부르는 이름이다.
“이것은 위로 당우(唐虞) 3후(三后)의 성왕을 법을 들어 말하고, 아래로는 걸(桀)·주(紂)·예(羿)·요(澆)의 패망함을 들어 말함으로써 군왕이 깨닫고 정도(正道)로 되돌아가 다시금 자기를 불러줄 것을 기원한 것이다.”
위의 글은 왕일(王逸)과 주자(朱子)의 〈이소경〉 서문의 한 토막이다. 굴원은 그토록 애타게 자기의 충정을 노래하다가 한 번 용서받은 바 있었으나, 다시금 참소를 받아 경양왕에 의해 멀리 양쯔 강 남쪽 강남지방으로 내쫓기는 몸이 되었다. 애국시인 굴원은 유배에 대한 절망감으로 강가를 하염없이 거닐며 시를 읊조리다가 〈회사(懷沙)의 부(賦)〉를 마지막으로 고결한 성품을 그대로 간직한 채 돌을 안고 미뤄 강[汨罷江:지금의 汨水]에 몸을 던졌다. 중국에서 음력 5월 5일에 벌어지는 유명한 용선(龍船) 축제는 이 애국시인의 유체를 찾던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굴원의 작품들은 고대 중국의 명시선집인 〈초사 楚辭〉에 실려 있다. 이 시집은 후세 시인들이 굴원의 전설적인 삶에 대해 쓴 글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한부(漢賦)에 큰 영향을 주었고, 후대에 높이 평가되고 있다.
희곡 굴원의 내용은 제나라와 연합하여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진나라에 대항하자는 주장을 편 애국시인 굴원이 왕비 남후와 간신들이 진나라 사신 장의와 결탁하여 벌이는 반대와 모함에 빠져 겪게 되는 비극적인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극 전체의 구성은 매우 탄탄하고 갈등관계가 첨예하며 작품 분위기는 비장하다. 또한 역사적 사실에 허구성을 절묘하게 결합하여 작가의 주제의식을 밀도 있게 전달하였다. 뿐만 아니라 작품 곳곳에 적절하게 시를 삽입하여 작품의 서정적 분위기를 살렸다. 이 작품은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갈등이 가장 증폭된 형태로 나타났던 ‘환남사변(晥南事變)’이 일어난 뒤에 창작된 작품으로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하여 당시의 시대상황을 묘사하고자 하였다.
전 5막으로 구성된 《굴원》은 곽말약 역사극의 대표작으로 곽말약의 작품답게 타인의 관점에서 기록되고 정리된 사실(史實)에서 벗어나 희곡적 허구와 낭만주의 색채를 대담하게 사용하여 초나라의 충신 굴원을 이상적인 영웅의 모습을 지닌 인물로 재창조하였다.
이 작품 속에서 시적 정서가 풍부한 고상한 인물로 등장한 굴원은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바탕으로 악한 자들과 싸우지만, 결국 이러한 큰 뜻을 품었던 지식인들의 운명이 그러하듯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된다. 특히 굴원의 이렇듯 비극적인 삶은 극중 단 하루 동안에 벌어지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개괄되어진다.
극의 기본구성은 사건이 발생한 시간 순서에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되며 그 과정에서 감정의 내면세계가 흐르게 하고 있다. 그러나 극중에서의 시간은 단 하루 동안으로 농축되어 있다. 그렇기에 장면의 변화가 많지 않고, 갈등 충돌이 고도로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폐쇄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곽말약은 자신의 작품 속에 가무(歌舞) 장면을 많이 삽입하고 있는데, 이중 대표적인 것이 본문 2막 중에서 남후가 장의를 환송하기 위하여 대규모의 가무를 준비하는 장면과 <초혼가> 등이 그것이다. 특히 제2막의 <뢰전송(雷電訟)>은 시와 극을 융합하여 굴원의 이상과 품격을 집중적으로 체현해 내고 있으며 강렬한 서정성까지 구비하고 있다.
윤여성, 박태환, 권남희, 박례영, 이용재, 김다경 등이 열과 성과 기량을 다해 독회에 참여함으로써, 2014 한국여성연극협회(류근혜 대표)의 세미나, 곽말약 작, 강영매 역, 류근혜 연출의 <굴원>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2월 13일 박정기(朴精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