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화합의 진정한 의미/ 우상전

               

‘소통과 화합’의 진정한 의미

우 상전(연극배우)

‘세월호’가 수학여행 떠나는 학생을 싣고 가다 전복되어 목숨을 잃은 학생들로 지금 온 나라가 비통에 잠겨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른들이 어린 학생들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해 탈출을 막아 죽음에 이르게 하곤, 책임의 정점에 있는 자그마치 69세나 된 선장은 자기 혼자 살그머니 빠져나와 살아났으니 온 국민이 ‘멘붕’이 된 상태다.

그래서 ‘직업의식’에 대한 회의가 일고, 정부에 위기에 대처하는 ‘매뉴얼’이 없다는 장탄식이 나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와중에 지금 우리에게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은 ‘어른의 말을 잘 들으면 죽는다는’ 비도덕적 현실이다.

거기다 학생을 인솔해 간 ‘교감선생’마저 살아남은 죄책감으로 자살을 했으니, 결과적으로 지금 한국은 ‘어른(선배, 스승)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야기를 바꿔보자. 국립극단 예술감독의 소란 속에서 크게 등장한 게 바로 연극계의 ‘소통과 화합’이다. 그런데 역시 여기서도 바로 젊은 연극인들의 연극계 어른들을 향한 ‘신뢰’에 대한 불만이 숨어있다는 현실이다.

사실 소통은 상호 간에 ‘진솔한 생각’을 서로 교환하는데 있다. 그리고 화합은 이를 통해 ‘이해와 승복’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 정치판부터 이게 없으니, 한마디로 보고 배울 게 없는 게 우리의 전반적인 사회 현실임을 숨길 수 없다.

그래서 협회 임원들이 부르짖는 ‘소통’이라고 하는 것도 자기들의 위신을 확보하려는 기제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지금 연극계의 폐쇄성과 리더십, 그로 인한 소통부재가 세대 간, 계층 간의 갈등으로 잠재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또 하나, 국립극단의 ‘예술감독직’이 아니었어도 연극인들이 이렇게 많이 소통에 관심을 가졌을까 하는 의문이다.

거액의 연봉, 그리고 연출과 배우를 오디션할 수 있는 권한에 50억의 예산을 집행하는 직책이 아니어도 과연 소통과 화합을 내세워 연극계가 이렇게 소란스러웠을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진정한 소통과 화합은 무엇일까? 여기 좋은 사례가 있기에 소개한다.

중공군의 교훈

얼마 전에 아주 흥미로운, 모택동(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공군에 관한 글을 읽었다. 먼저 소통을 논하게 앞서 그의 사례를 소개하는 게 순서일 것 같아 여기에 소개한다. 특이하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커서 그렇다.

사실 내가 군에 입대할 무렵이 막 월남전이 끝난 직후였다. 그래서 월남전에서 비정규전인 게릴라전에 고전을 면치 못했던 한국군과 미군은 월맹군과 비정규군인 베트콩들이 구사한 그들의 전술, ‘모택동 전술’에 기초한 그들의 독특한 전술에 무척 관심이 많았던 때였다.

그래서 입대 후 내가 ‘특전사령부’에서 받은 교육은 ‘모택동 전술’에 관한 게 대부분이었다. 흥미로워서, 그 후 나는 ‘모택동’에 관한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관심을 갖고 읽는 버릇이 생겼다. 특히 그가 소수의 공산군을 이끌고 중국을 통합하던 때의 일화라면 놓치지 않고 읽곤 한다.

그런데 얼마 전에 노장인 백선엽장군이 6. 25때 참전한 ‘모택동 군대’의 흥미로운 일화를 소개했다.

글에 의하면 “6.25전쟁 당시 중공군은 일개 사병임에도 불구하고 포로를 잡아 심문하면 그들로부터 상세한 고급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해를 못하다가 나중에야 그 궁금증을 풀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너무나 간단했다.

중공군 지도부는 싸움에 임하는 모든 장병들에까지 작전에 관한 고급정보를 다 알려줘 계급에 상관없이 모두가 다 모든 정보를 함께 공유토록 했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 전술상 중공군의 커다란 단점이라고 했다. 사병이 포로로 잡히면 고급정보가 상대방에 넘어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공군은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정보를 공유케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중공군은 모두가 하나로 묶여 있었다고 백장군은 술회했다. “그래서 그들은 강한 동료의식으로 묶였으며. 중공군은 이를 통해 자기 군대에 강력한 결집력을 보일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중공군도 물론 적에게 ‘기밀’이 새나가면 모든 군사작전이 무산되는 치명상을 입을 거라는 걸 충분히 인식했을 것이다. 전쟁에서 이보다 더 두려운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보다 더 중요한 게 부하들의 ‘단합된 힘’이라는 걸 인식하고 과감히 이를 실천에 옮긴 그들의 용기와 뛰어난 예지력에 경탄을 금할 수 없다.

결국 전쟁도 ‘인간’이 하는 것이기에 승리를 위해서는 모두가 ‘주인의식’을 갖고 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거다.

우리 연극계에서도 소통과 화합을 위해 절실한 게 바로 이거다. 모두가 ‘주인의식’을 갖고 자신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일 거다. 그런데도 졸병이 ‘고급정보를 공유’하므로 해서 적에게 노출될 위험성도 전혀 없는 연극판에서 어째서 모두가 정보를 공유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일까?

중공군은 이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화력과 보급을 앞세운 미군을 한반도의 협소한 국지전에서도 궁지에 몰아넣어, 결국 남한에 의한 ‘한국의 통일’을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진정한 ‘소통과 화합’은 바로 모두가 주인이라는 소속감을 갖도록 ‘정보’를 공유하는데 있는 것이다. 즉 모두를 정신적으로 ‘참여’시켜 단합된 힘을 발휘케 하는데 있는 것이다.

처지가 좋지 않을수록 가장 중요한 게 ‘단합된 힘’일 것이다. 이건 공동체를 이루어 공연을 해야 하는 우리의 연극계가 본받을 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정부나 지자체와의 연관성(지원체계)이 연극의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이 날로 증대되고 있는 현실에서는 이는 더욱 중요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규모도 크지 않은 연극계가 이런 사소한 것에서조차 상호 교류와 소통된 힘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니, 자신이 참여하지 못한 것에 불만이 쌓여 마냥 ‘내가 참여하지 않은 모든 것을 악’으로 간주해 ‘비소통과 비화합’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모택동은 이런 전술로 열세한 군대를 가지고, 막강한 미군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오합지졸을 면치 못하던 장개석군대를 대만으로 몰아내고 그 방대한 땅덩어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좌파들은 ‘백선엽’을 민족반역자라 칭하니 그의 글을 읽었을 리 만무하고, 우파인 대통령은 우리 자신마저도 통합시키지 못하면서 그저 앉아서 ‘통일은 대박’만을 외치고 있으니 어느 세월에 ‘통일’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저 옹색함과 옹졸함만이 판치는 정말 한심하기 그지없는 게 지금 우리들의 세상이다.

‘사람’과 ‘시스템’이 핵심

연극동네가 소통과 화합이 가능한 조직이 되려면 먼저 ‘사람’과 ‘시스템’에 대한 고찰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왜? 인간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은 ‘사람들의 의지’이고, 그들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에 의해 매사가 굴러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조직이나 사회가 먼저 소통과 화합을 이루려면, 단적으로 이를 확인할 기회를 가져다주는 ‘다툼’이 선행되어야 하는 역설(?)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연극계가 이런 중요한 화두를 꺼낼 수 있었던 것도 역설적으로 ‘좋은 직책’을 통한 다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그동안 연극에 소통과 화합이 힘들었던 것은 연극판에 진정한 ‘다툼’이 존재할 직책(?)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일깨워 준 사건이기도 하다.

좌우간 ‘다툼’이 없다는 것은 인간사회에 사고(생각)의 ‘다양성’이 사라졌다는 말이 될 것이다. 또 이런 방식의 ‘다툼’이 사라졌다는 것은 연극이 점점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또 이는 폐쇄성과 획일성이 연극판을 짓누르고 있었다는 말이 될 것이다. 동시에 누구도 자기의 의견을 내세우려 들지 않고 ‘튀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그동안 ‘침묵과 무관심’으로 일관했다는 말이 될 것이다.

나를 향한 질문

내가 이런 글을 쓰면서 후배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냉소의 말은 “그래서 연극계가 달라져요!”하는 말이다. 정말 가슴이 저려오는 저주(?)이자 뿌리 깊은 패배의식이다.

어쩌면 연극은 진즉부터 ‘나부터 힘드니’ 남에게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는 ‘무력증’에 빠져있었던 게 사실이다.

내가 국립극장에서 월급을 받고 있을 때는 술자리에서조차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던 게, 이때마다 나를 향해 던져지는 한마디, “형은 월급을 받으니 그렇게 말할 수 있죠!” 그래서 되도록 사람 만나는 걸 기피했었다.

솔직히 말하면, 연극계를 지배하고 있는 모든 것의 배후는 ‘돈’이다. 이를 부정하면 안 된다. 즉 ‘월급’을 통한 안정된 수입원의 확보가 연극인들 모두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연극계의 풍경이 확실히 바뀌기 시작한 것은 (역설적으로) 연극대학이 많아지면서 안정된 ‘고정급’을 받는 교수직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연극인들에게 명예와 보수, 그것도 65세까지 안정된 수입이 확보된 ‘좋은 자리’가 늘어나면서 연극인들은 엄청난 혼돈을 겪었고, 이 과정에서 스스로 ‘침묵’을 선택하는 영리함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내 글에 반론이 있으면 제기해도 좋다.

단적으로 ‘떠들면 떠들수록’ 자신에게 다가올 행운이 멀어진다는 생각 때문에 연극인들은, 특히 젊은 연극인들은 아예 ‘다툼’을 포기해 버린 것이다.

‘조롱당한’ 정대경소극장연합회장

대수롭지 않다고 내치기에는 너무나 코믹한(?) ‘다툼’이 대학로 연극촌에서 벌어졌다고 정대경회장이 ‘호소문’을 올렸다.

대학로의 야전사령관이자 문화예술위원인 정대경소극장연합회회장이 ‘포르노성 연극’의 제작자에게 길을 가다가 (그의 소극장 앞을 지나다) 모멸(조롱)을 당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전혀 발언권(?)이 없어 보이는 ‘제작자’가 정회장을 향해 대로에서 “20년간 삐끼하나 해결을 못하는 무능한 연극인들!”이라고 정회장을 향해 능멸의 돌을(?)던진 사건이다. 솔직히 꽤 흥미로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아마 그는 정회장으로 상징되는 ‘예술가인척’하는 연극인들을 향해 마음먹고 조롱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의 눈에는 항상 굉장한 예술가인척, 고상함이나 떨면서, 좋은 자리가 생기면 ‘아귀다툼’을 벌이고, 극단에 돌아오면 지원금에 목을 매어 ‘거지궁상’(?)을 떠는 연극인들을 조롱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연극인들 역시도 그들이야말로 ‘삐끼’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여기고 있었을 뿐인데, 그가 우리를 향해 조롱을 하다니 어처구니없는 코믹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한 월간지를 보면 (연극판의 현실을 다룬 기사에서) 그가 자신의 솔직한 내심을 들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극계는 노출을 했다는 이유로 내 작품을 외설이라 비난했고, 티켓 판매 사이트는 배너를 띄어주지 않는다.” 연극인들에게 소외성 적개심을 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그가 자기의 공연물이 관객들에게 식상함을 줘 외면을 받게 되자, 이에 대한 분노를 동네 책임자인(?) 정회장을 향해 폭발시킨 사건인지도 모른다.

‘노이지 마켓팅’으로 재미를 볼 때는 ‘소외’를 몰랐다가, 아니 ‘소외’마저도 즐겼을지 모를 그지만, 자신의 공연이 외면을 받자, 이제는 위치가 바뀐 소외자로서 ‘남 탓’으로 자신을 합리화하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관객들이 ‘내 작품을 보게 해달라’,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라’고 들고 일어날 때까지 한국 관객들에게 공연을 보여주지 않거나 아주 비싼 값에 보게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기사는 그들의 저질성이 관객들을 식상케 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가 5월부터는 식상한 국내 관객들을 버리고 중국관광객을 상대로 12만원의 입장료를 받아 재기를(?) 꿈꾸고 있다고 정회장이 호소문으로 전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누구든 ‘수입’이 없으면 ‘소외자’가 된다는 것, 그리고 이는 견디기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더구나 ‘관객의 외면’을 받는 것은, 그것도 받다가 받지 못할 경우에 이를 ‘남 탓’으로 돌려 폭행도 감행할 수 있다는 현실을 목도하기에 충분한 사건이다.

항상 고상함을 연극인의 진면목인양 떠들어대는 교수(평론가)들도 직장을 잃으면 하루아침에 이런 정신상태가 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는 이른바 ‘상업극’마저도 지속성을 가지려면 끊임없이 ‘변신’을 시도해 관객들의 ‘변심’을 막아야 한다는 교훈을 남기고 있다. 대학로에서의 연극의 ‘위기’에는 항상 관객의 ‘식상함’이 도사리고 있으며, 이게 ‘변심’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섹스소재’의 공연물을 통해 깨닫게 해주는 사건이다.

즉 ‘변신’을 못해, 관객이 식상함을 느끼면 어떤 연극이든 외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좋은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우리 연극이 허덕이는 것은 다 ‘남 탓’이 아닌 ‘자기 탓’임을 알게 해주는 좋은 예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덧붙여 대학로에 ‘삐끼’가 없어지지 않는 것은 공권력의 무능 때문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정말 한국의 공권력은 무능하기 짝이 없다.

세월호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해운사 못지않게 국민들을 열 받게 하는 것 역시 공권력이라는 사실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정회장도 가만있지 말고, 매월 마지막 수요일 ‘문화의 날’에 맞춰 많은 연극인들과 함께 관할 파출소 앞에서 모형 파출소를 만들어 이를 때려 부수는 ‘퍼포먼스성 이벤트’를 행해 무능한 공권력을 성토해 보면 어떨까싶다.

그럼 20년 묵은 ‘삐끼’도 하루아침에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삐끼’에 경찰이 무관심한 게 유착관계(?) 때문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어서 하는 말이다. 아니면 귀찮다고 내팽개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런 사소한 ‘다툼’들마저도 우리에게는 좋은 교훈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럼 우리는 왜 소통하기가 힘들까?

1. ‘주인의식’이 없어서

2. 연극계는 ‘오피니언 그룹’이 없다.

3. 연극이 개인예술이 아닌 공동체에 의한 역설이 외려 이를 어렵게 하고 있다.

4. 연극판에서의 생존이 너무나 힘들어서 이미 열정을 잃어서 그렇다.

‘주인의식’이 없어서

먼저 우리는 그저 말로만 소통을 외치고 화합을 도모할 게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연극은 문학처럼 ‘개인예술’이 아닌데다, 날로 정부나 지자체의 의존도가 높아지는 현실에서 그들과의 ‘갈등’이 빈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거기다 연극은 모두가 힘을 모아 무대에서 공연을 해야 하는 ‘공동체 예술’이다. 그것도 다수의 사람들이 매일 밤 모여서 공연을 해야 하는 별스러운(?) 작업이 바로 ‘연극공연’이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중요시해야 할 덕목이 바로 ‘주인의식’의 발로다. 모두가 자신을 협회장으로 여기고, 후배를 거느린 나름 책임을 가진 주인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하지 않으면 난국을 헤쳐 나가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러니까 우리 연극판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우리 연극인들이 스스로 ‘주인의식’을 갖도록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단지 몇몇의 선배들이 연극계의 기득권을 내세워 정보교환은커녕 권위주의와 폐쇄성을 앞세우며 국외자를 만들어 내서는 응집된 힘을 기대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오피니언 그룹’의 부재

어느 조직이나 사회에는 여론을 주도하는 리더그룹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연극판에는 이게 없다. 즉 여론을 주도해갈 리더십이 부재하다. 있어도 자기들의 이권을 챙기는 데만 더 골몰할 뿐이어서 항상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

어느 대학이 ‘연극과를 없앤다’고 하면 와글거리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또 많은 권한과 연봉을 받는 예술감독 자리가 빌 때마다 난리를 피워서는 안 된다. 또 협회장 등의 이권이 생기는 선거철에만 관심이 폭발해서는 안 된다. 즉 이런 식이서는 소통과 화합은 어려워진다.

물론 이걸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이권(?)에만 개입해 목소리를 높이면 궁극적으로 리더십에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기 힘들어져 리더십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려워질 뿐이다.

공동체 작업의 역설

공동체 작업인 연극에서 소통이 더 잘되어야 하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현실적으로는 그 반대의 현상에 더 짓눌려 있다는 것이다.

왜? 우리가 오랫동안 ‘경로사상‘과 권위에 의한 ‘일사분란’함을 더 선호해 왔기 때문이다.

사회학자들도 공동체가 권위주의를 앞세워 개인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억압할 가능성에 대해 많이 지적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외려 공동체여서 약자인 후배들은 선배들에게는 아무 말도 못하게 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소통을 주장하기는커녕 여차하면 대화를 나누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처럼 공동체를 이루어 행해지는 예술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상호소통과 합의인데, 오히려 공동체여서 소통을 하기가 더 어려운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우리 모두가 한번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복지가 없어서

현재 많은 연극인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누구도 자신감 있게 자신의 의견이나 의사를 표현하기 힘들어 질 것이다.

혹 동료나 선배들로부터 반화합적(?) 인물- 사실은 자신들의 개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사람을 칭하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이런 명칭으로 찍히면(?) 그 당사자는 그나마 연극판에서 살아남기 힘들어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스스로 몸을 사리게 마련이다.

나는 이를 국립극단에서 생활하면서 너무나 익히 보아 왔다. 단원들이 고정된 수입을 잃을까봐 자기 자신의 존재감을 잃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사에 소극적이었다. 밉보이면 배역도 받기 힘든 현실을 목도하고 되레 공동체가 가하는 압박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어쩌면 대학교수들도 취업률을 따지는 대학당국의 눈치를 살피느라, 자신들의 존재감을 들어내 보이기 점점 힘들어질 것이다.

고령화 사회

나는 여러 분야를 – TV, 영화, CF 등에서 활동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런데 우리 연극계만큼 80세에도 여전히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곳은 (연극 외에)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대개 일반적인 마지노선(?)이 놀랍게도 ‘45세’라고 보면 좋을 정도다. 그런데 연극은 세상을 등지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나름 권위를 갖는 철저한 ‘초고령화’ 사회를 유지하고 있다.

나는 이걸 은퇴가 없는 ‘원로사회’라고 칭한다. 마치 교회에 초고령의 ‘당회장’이 있고, 절 골방에 ‘방장스님’이 존재 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연극판에서는 50세를 넘겨도 아직 애 취급을 받는 게 현실이다.

여기서 배우인 남명렬 서울연극협회부회장의 절규부터 들어보자. (www.ttis. kr 참조)

“형님! (나에게 하는 소리다) 상의(예술감독에 관한)라는 게 당신들 입맛에 맞는 사람들과 ‘만’ 한다는 것이죠. 문제는 입맛에 맞는 사람들에게만 은밀히 사담(私談)하듯이 묻고, 마치 연극인 전체에게 물은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략)

제 생각에는 문제는 연극계 결정의 헤게모니를 쥔 세력이 너무 노쇠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술가는 나이에 관계없이 천진난만하고 젊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젊은이들이 많은 부분 결정을 하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작금의 연극계는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연극은 50대도 어린 연극인인 시대입니다. 행시 패스한 20대 약관이 사무관으로 군림하는 한국 사회인 데도요.”

왜 이런 처지가 된 것일까? 한마디로 정리하면 연극계의 권위의식과 발언권이 ‘공연(예술)의 성과’를 통해, 즉 ‘흥행’을 통해 관객들로부터 나오지 못하는데 있다.

방송이나 영상매체가 ‘시청률’과 유료관객 동원능력(흥행)을 통해서 그때그때 나이에 상관없이 나름의 권위가 생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동적으로 은퇴(?)나 세대교체가 이루어진데 반하여, 연극판은 흥행이 아닌 협회장 같은 감투, 또는 지원금과 시상을 담당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권위가 만들어지고 있어서 실질적으로 ‘퇴출’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극판에서의 권위란 자연히 ‘고령화 사회’의 결과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세대 간의 불만과 시각차이, ‘상호소통불가능’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많은 젊은 연극인들의 무의식에는 선배들에게 밉보여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불만이 있어도 아무 말도 못하기 일쑤다. 이런 면에서 남부회장의 발언은 우리 현실에서 내뱉기 힘든 절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면 후배들이 앞장서 이런 식의 관행을 깨려고 용기를 내야 하는데, 이들마저도 ‘몸조심’으로 일관하니, 점점 더 ‘고령화’되어 가는 현실에서 이에 의한 권위와 소통부재를 해소하기는 당분간 쉽지 않을 듯싶다.

지원금의 부작용

중국의 어느 ‘포럼’을 취재한 기사가 눈길을 끈다. 그곳에서 한 베이징대학 교수가 이런 주장을 펼치더란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이 정부지원으로 성공했느냐? 정부가 뭘 지원한다고 나설 때. 바로 그때 ‘혁신’은 끝나는 것이다. 기업은 정부 자금을 받으려 줄을 설 것이고, 그러면 경쟁과 자율이라는 ‘혁신 상태계’는 망가지게 되어 있다.” 마치 우리 현실을 말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또 어느 중국기업가는 이렇게 외치더란다. “정부 관리들과 관시(관계)를 쌓은 게 훨씬 더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고 (혁신보다는) 그들의 구미를 맞추는데 더 열심일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혁신이 가능하겠는가?”

물론 이는 기업의 ‘혁신’에 관한 것이어서 연극의 경우와 일치시키기는 좀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도 귀담아 들을 게 적지 않다.

따라서 우리가 명심할 것은 매사에 누군가에게 ‘지원’을 받으면 그에 대한 ‘정신적 대가’도 동시에 치러야 한다는 명확한 사실이다.

즉 경쟁과 자율, 노력이 저절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런 풍토에서는 경쟁에 의한 탈락이 없어 ‘흥하는 사람도 없고 망하는 사람도 없는’ 괴상한 ‘평균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극판에는 ‘탈락’이 존재하지 않는다. 죽는 순간까지 예술외적인 것으로도 충분히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어서 그렇다. 따라서 살아있는 순간까지 예술가로서의 신분을 유지가 가능해져, 사라져야 할 공연이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영원히 지속되어 ‘변신’이 정지되는 부작용이 유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긴 안목으로 보면) 후배들이 ‘뮤지컬’을 하려고 나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수도 있다. 그곳에서는 지원금이 없어 노령에는 ‘예술가’의 신분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장은 힘들어도 긴 안목으로 보면 뮤지컬보다는 ‘연극’을 하는 게 점점 노후가 불안해지는 ‘고령화 사회’를 지탱하는 좋은 수단이 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인식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너무나 벗어나기 힘든 현실

연극인들을 이런 고착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어디 이런 것들뿐이겠는가? 이를 알기 위해 우선 연극인으로서의 출발에서부터 입신에 이르는 과정까지를 한번 점검해보자.

먼저 대학에 입학하려면 ‘입시전형’으로, 하고나면 ‘성적’으로, 그 다음에는 ‘학위’로, 나오면 ‘지원금’으로, 또 오디션으로, 그 다음에는 ‘시상’과 ‘평가’를 통해서 자존감을 얻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연극인들의 인생역정(?)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객관성을 가진 관객들의 ‘흥행’을 통한 판단이 존재할 자리가 없다. 오로지 존재하는 것은 이 연극판에서의 ‘판단’뿐이다.

지금 대학에서 교수를 하지 않는 연출자가 배우를 모아서 공연하기는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다. 왜? 그나마 기댈 게 없으면 배우조차 모이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다 교수들의 정년은 자그마치 65세다. 그러니 제자들이 그들의 권위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교수와 제자의 연령차가 보통 20년 미만이니 한번 형성된 인간관계에서는 교수님이 80세가 되면 제자도 이미 60을 넘게 된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한번 사제지간이 지속되면 ‘관계’가 영원할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미국대학에서는 자기 대학출신 교수가 50%를 넘지 못하게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고 한다.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 제자가 스승을 거역(?)하지 못하는 인간사의 관행을 유지시키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대학이 아니어도, 우리 연극계처럼 연출가 선배로부터 현장에서 직접 연기를 배우고 익히게 되면 원초적으로 ‘배우와 연출가’라는 대등한 입장보다는 스승과 제자- ‘내가 키운 애’가 되어서 이런 ‘관계’에서 벗어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이런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어느 날 80이 되신 이해랑 선생이 60이 넘은 장민호 선생에게 “이봐 민호! 민호가 이제 마흔 댓 됐나?”하고 묻더란다.

그러니 연극인의 인생은 (우리 현실에서) 한 평생을 ‘스승과 제자’라는 사제지간에서 한발도 벗어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연극인 상호 간의 자유로운 발언도 꺼리며, 친목단체인 협회도 자기들의 구미에 맞지 않으면 ‘왕따’를 시키는 게 예사다. 가령 협회가 자기들의 구미에 맞지 않으면 아예 글을 올려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협회 아고라’는 협회의 구미에 맞는 발언과 선전물(?)로만 도배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실정에서 어떻게 ‘상호소통’이 이루어지겠는가? 그러면서도 문화부를 향해서는 ‘소통’하라고 윽박지른다. 그래서 이런 외침을 들으면 문화부가 ‘연극인들’과 소통하라는 말이 아니라, 문화부는 이사장인 ‘자신’과만 소통하라는 말과 다름없이 들리는 것이다.

한마디로 연극판은 젊은 시절에는 ‘눈치’보느라고 세월을 보내고, 장성하면 천신만고 끝에 얻은 기득권을 지키려고 폐쇄성과 권위주의를 앞세워 몸부림치는 게 우리의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배반의 사회학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조직이나 사회에서 ‘분위기 파악’ 못한 채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왕따’를 당하게 마련이다. 18세기에 영국의 어느 정치가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충고는 좀처럼 환영받지 못한다. 왜? 충고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 충고를 가장 경원시하기 때문이다.”

공자님도 논어에서 “임금을 섬기는데 간언이 잦으면 욕을 보게 되고, 친구와 사귀는데 조언이 잦으면 사이가 멀어진다.”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참 명언이다!

따라서 듣기 싫은 소리를 자꾸 하면 자신에게 이로울 게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한마디로 ‘튀면 죽는다!’가 일반적인 사고와 분위기를 이끌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국 사회와 조직이 위태로워지는 게 문제”라고 한탄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현실이다.

쉬쉬하는 사이에 조직이나 사회가 병들어가기 때문일 거다. ‘세월호 사건’처럼 말이다. 그러니 ‘바른말’을 하는 것은 결국 개인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일이 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개인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제도가 바로 ‘언론’이라는 시스템이다. 즉 언론이 ‘고발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개인들의 불이익을 극복하고 여론을 주도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연극판처럼 언론은커녕 오피니언 그룹마저 존재하지 못하는 현실에서는 자연히 불만과 부조리가 만연할 수밖에 없다.

기업이나 사회공동체에서 이를 대행하는 시스템이 바로 공식적인 합법성을 갖는 ‘노동조합’이다. 그래서 노조가 ‘고발자’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친목단체’만이 존재하는 연극판의 경우는 이마저도 불가능해 당연히 언로가 막혀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공동체 예술인 연극에서는 당연히 충고나 간언, 거슬리는 주장을 하는 것은 개인이 스스로 ‘왕따’를 자초하는 일이 될 뿐이다. 따라서 이런 현실에서는 모든 게 침묵으로 일관하고 불만은 뒤로 ‘잠복’해버리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런 판에서 존재 가능한 것은 오로지 어느 개인의 ‘배신’이나 ‘배반의 사회학’ 뿐이다.

있다면 유일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바로 비평가나 평론의 기능인데, 이마저도 우리는 기대하기 힘들다. 왜? 고작 ‘공연평’만 쓰기 때문이다. 그것도 일단 일반학과가 아닌 연극과에서 ‘교수직’을 하게 되면 그만 두어야 하는 ‘직책’이다.

따라서 이런 조직에서는 조직의 ‘건강도’를 측정할 수 있는 게 바로 ‘쓴 소리’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그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는 게 유일한 판단근거가 될 뿐이다.

북한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100%가 투표해서 100%가 찬성하는 그들의 사회야말로 자신들이 아무리 훌륭한 사회라고 외쳐도 아무도 믿어주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싸움이 아닌 건강한 ‘다툼’이다. 이런 ‘다툼’을 통해서 그나마 건강을 유지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스승’과 ‘선후배’로 얽혀있는 한국의 예술계. 거기다 그들의 심사와 지원, 시상에 이르기까지 스승과 선배가 관여되지 않는 게 없는 현실에서 유일한 극복방법은 건강한 ‘다툼’ 뿐이다.

지금 말썽이 많은 모 대학 성악과에서 ‘어째서 교내에서 성추행이 발생하는가’ 하는 기사에 이렇게 쓰여 있다. “교수에게 밉보이면 그 학생은 한국에서의 활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감수해야 한다”고 적혀있다.

이런 기사를 읽으면 연극계는 상대적으로 낙원(?)이라는 생각을 금치 못하게 된다. 따라서 연극계야말로 모두가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얼마든지 ‘소통과 화합’이 가능한 좋은 조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전망

연극대학은 세월이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인구의 감소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현재 안정된 교수직은 시간이 갈수록 위태로운 자리가 될 것이다. 다시금 ‘불안한 고용’이 연극판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지 모른다.

당장 2017년이면 고교졸업생 수가 대학입학정원을 밑돌 것이며, 2024년에는 전문대를 포함한 현재의 대학 수가 3분의 1로 줄어들 거라는 통계가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이는 단순한 통계일 뿐이고, 이런 현실은 더욱 빨리 가속화될 것이다.

왜? 대학이 생존을 위해서 스스로 구조조정을 서두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용불안은 좀 더 일찍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이런 ‘우울한 현실’은 서서히 연극계에 또 다른 변화를 야기할 것이다.

어쩌면 작금의 연극을 지탱해온 연극대학에 엄청난 변화가 야기될지도 모른다. 이로 인해 지금과 같은 ‘권위’가 엄청난 도전을 받아 어쩌면 연극자체가 내부적으로 커다란 위기를 맞게 될지도 알 수 없다. 부정적인(?) 변화일지 몰라 미리 구체적으로 예측하는 것은 삼가는 게 좋을 것이다.

좌우간 우리는 연극판이 또다시, 어떻게 변화할지를 관심을 갖고 지켜보지 않을 수 없는 게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불안한 현실일수록 가장 소중한 게 바로 소통과 화합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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