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살면/ 오민아

역사를 전하는 방식: <아버지와 살면>

 

오민아 (공연과 이론을 위한 모임)

 

 

작: 이노우에 히사시

각색/연출: 임세륜

번역: 김탄일

단체: 극단 ‘다 Da’

공연일시: 2014.05.20 ~ 2014.06.01

공연장소: 선돌극장

관극일시: 2014.05.27 화요일

 

 

임세륜의 <아버지와 살면>은 2012년 ‘2인극 페스티벌’, 2013년 ‘100페스티벌- 근현대사 100년을 만나다’를 거쳐 2014년 다시 한 번 관객과 조우했다. 배우 윤상호와 서혜림의 호연이 돋보였던 <아버지와 살면>은 일본작가 이노우에 히사시의 작품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황에 맞춰 각색한 작품이다. 그러므로 각색의 과정에서 연출가 임세륜이 예각화하고자 했던 지점이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 지점이 관객과의 소통을 유효하게 했던 지점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무대는 기본적으로 정숙의 집을 재현한다. 정숙의 집을 둘러싼 낮은 담벼락은 안과 밖의 경계가 된다. 이 경계의 밖은 보따리로 싸인 상자들이 켜켜이 놓여 있는 공간으로 무언가를 담는 상자와 이를 포장하고 있는 보따리라는 오브제가 연극 초반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경계 안은 천막으로 된 간이옷장과 식탁, 화장대, 의자 등 정숙의 사적인 오브제들로 채워진 공간이다. 연극이 진행되며 이러한 오브제들은 정숙의 내면상태를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간이옷장에서는 죽었던 아버지가 되살아나고 식탁에서는 경호가 건넨 찐빵을 음미해보기도 한다. 자기 몸집보다 작은 의자를 두고 아이들에게 전해줄 구연동화를 연습하기도 한다. 완전히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담벼락 안과 밖의 세계는 극이 진행되면서 점차 허물어진다.

 

정숙은 미군부대에서 빼돌린 물건을 몰래 파는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어머니가 부재하기에 정숙과 아버지의 관계는 유독 끈끈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 일’로 대변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가 되면서 정숙은 홀로 남겨진다. 정숙은 ‘행복해지면 안 돼.’라는 생각을 강하게 하고 있다. 이는 ‘그 날’, 자신의 단짝친구 소연과 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했음에 불구하고 혼자 살아남아 살아가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계엄군의 진압봉에 맞아 죽어가던 아버지의 모습은 이를 먼발치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어린 정숙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사회적 트라우마‘라고 불리는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은 소연의 어머니가 ”왜, 왜 네가 살아 있는 거야? 우리 소연이가 아니라…… 왜 네가 살아 있는 거야……“라는 원망에서 한층 심화된다. 이후 정숙은 현기증과 환청, 가슴 답답함의 증상을 겪어왔으며 ‘우르르 쾅쾅’ 천둥치는 소리만 들어도 과민한 반응을 해왔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정숙에게 경호라는 인물이 호감을 표시하면서 죽었던 아버지가 정숙 앞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애정하는 딸의 연애를 응원하기 위해 아버지가 등장하는 것이 표면적 이유이지만 이러한 아버지 등장의 배후에는 경호가 ‘그 일’에 대해 끊임없이 조사하고 기록하려 한다는 이유가 있다.

경호는 사학과 출신이지만 4년 전, 이 도시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는 사학도로서 정확한 진상 파악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인물이다. 그는 정숙에게 자신이 수집한 자료들을 보관해줄 것을 요청한다. 경호는 정숙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에 한 줄기 희망을 건네는 인물이기도 하면서 정숙의 과거를 소환하는 인물이기도 한 셈이다. 정숙에게 건네진 보따리로 싸인 상자 안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생생한 증거물인 피 뭍은 교련복, 시민을 향한 계엄군의 경고문, 시체 싼 비닐, 진압봉 등이 들어있다. 이 보따리로 싸인 상자는  후대에 전해져야 하는 이야기로 경호에 의해 정숙의 집 담벼락 밖에서 안으로 이동한다.

보따리에 싸인 상자를 계기로 정숙은 그동안 은폐해왔던 기억들을 되새겨보게 된다. 당사자로서 ‘그 일’을 필사적으로 잊으려고 했던 정숙은 ‘그 일’에 대해 “학문이 될 이야기도 아니고 예술이 될 이야기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정숙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구연동화를 연습한다. 이 때, 정숙이 가장 가치를 두는 것은 ‘이전 세대가 남겨준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 그대로 전해주어야만 한다.’는 구연동화 정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다음 세대에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는 역사성이 결여되어 있다. 이런 정숙에게 경호는 “끔찍했던 체험과 자신만의 자료를 활용해서 이야기를 만들면 어때요?”라고 제안한다. 그러나 정숙은 “이야기를 건들면 안 된다는 게 우리들의 근본방침”이라며 이를 거절한다. 정숙의 이러한 태도는 아직 ‘사회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숙과 대조적으로 정숙의 아버지는 구연동화가 좀 더 현실적인 문제와 결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홍길동전의 뒷부분을 변형하고자 한다. 홍길동이 활빈당을 조직해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한다는 이야기까지는 동일하나 이 활빈당이 터를 잡은 곳이 남도의 어느 지역이며, 조정에서 자신들의 정당성 획득을 위해 남도의 신흥세력을 토벌하고자 한다는 점이 다르다. 아버지는 “넌 단지 이야기를 할 뿐이지만, 바람이 너의 이야기를 전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경호가 우리 아이들을 더 좋은 세상에서 살게 해주자고 정숙을 설득하는 데 힘을 싣는다.

 

경호를 비롯한 정숙 아버지의 태도는 역사를 체험한 세대가 후속세대에게 어떻게 이를 전할 것인가라는 연출의 근본적인 문제의식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명백히 역사의 비극임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특히 역사적를 현실로 체험하지 못한 후속세대들 사이의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상식은 그 의미와 가치를 폄하하는 지경까지 이른 실정이다. 이 지점에서 임세륜의 <아버지와 살면>은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이를 어떠한 방식을 통해 전달할 것인가.

임세륜 연출은 역사를 전하는 방식으로 연극을 선택했다. 마치 경호 세대가 아버지 세대를 호출하고 이를 후속 세대에 전달하려고 시도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호출과 전송의 방식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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