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기의 공연산책] 2014년 7월 공연총평/ 박정기

박정기의 공연산책 2014년 7월 공연총평

 

폭염과 폭서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활발한 편이었고, 각 지역의 연극잔치, 그리고 명작의 초연과 1세대 여류작가의 작품독회, 그리고 서울연극협회 지부의 창단공연이 시작되어 더위를 잊도록 했다.

 

1, 명동예술극장의 김의경 작, 이윤택 연출의 <길 떠나는 가족>

 

명동예술극장에서 김의경 작, 이윤택 연출의 <길 떠나는 가족>을 관람했다.

 

이 연극은 화가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의 일대기이다.

 

이중섭의 호는 대향(大鄕).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이희주(李熙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오산고등보통학교(五山高等普通學校)에 들어가 당시 미술 교사였던 임용련(任用璉)의 지도를 받으면서 화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1937년 일본으로 건너가 분카학원(文化學院) 미술과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독립전(獨立展)과 자유전(自由展)에 출품하여 신인으로서의 각광을 받았다.

분카학원을 졸업하던 1940년에는 미술창작가협회전(자유전의 개칭)에 출품하여 협회상을 수상하였다. 1943년에도 역시 같은 협회전에서는 태양상(太陽賞)을 수상하였다.

 

이 무렵 일본인 여성 야마모토(山本方子)와 1945년원산에서 결혼하여 이 사이에 2남을 두었다. 1946년 일시 원산사범학교에 미술 교사로 봉직하기도 하였다.

 

북한 땅이 공산 치하가 되자 자유로운 창작 활동에 많은 제한을 받았다. 친구인 시인 구상(具常)의 시집 『응향(凝香)』의 표지화를 그려 두 사람이 같이 공산주의 당국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6·25 사변이 일어나고, 유엔군이 북진하면서 그는 자유를 찾아 원산을 탈출, 제주도를 거쳐 부산에 도착하였다.

 

부인과 두 아들은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으며, 이중섭은 홀로 남아 부산·통영 등지로 전전하였다. 1953년 밀항하여 가족들을 만났으나 굴욕적인 처가 신세가 싫어 다시 귀국하였다. 이후 줄곧 가족과의 재회를 염원하다 1956년 정신이상과 영양실조로 그의 나이 40세에 적십자병원에서 절명한다.

화단 활동은 부산 피난 시절 박고석(朴古石)·한묵(韓默)·이봉상(李鳳商) 등과 같이 만든 기조전(其潮展)과 신사실파에 일시 참여한 것 외에 통영·서울·대구에서의 개인전이 기록되고 있다. 살아있는 동안에 많은 인간적인 에피소드와 강한 개성적 작품으로 1970년대에 이르러 갖가지 회고전과 재평가 작업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1972년 현대화랑에서의 유작전과 화집 발간을 위시하여, 평전(評傳)의 간행, 일대기를 다룬 영화·연극 등이 상연되었으며, 많은 작가론이 발표되었다.

 

그가 추구하였던 작품의 소재는 소·닭·어린이〔童子〕·가족 등이 가장 많다. 불상·풍경 등도 몇 점 전하고 있다. 소재상의 특징은 향토성을 강하게 띠는 요소와 동화적이며 동시에 자전적(自傳的)인 요소이다.

 

「싸우는 소」·「흰소」(이상 홍익대학교박물관 소장)·「움직이는 흰소」·「소와 어린이」·「황소」(이상 개인 소장)·「투계」(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등은 전자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닭과 가족」·「사내와 아이들」·「집떠나는 가족」(이상 개인 소장)과 그밖에 수많은 은지화(담뱃갑 속의 은지에다 송곳으로 눌러 그린 일종의 선각화)들은 후자를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극작가 김의경(金義卿) 선생은 1936년 9월 13일 서울 출생. 1960년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70년 미국 브랜다이스 대학원 연극학과를 수료하였으며, 1983년 미국 하와이대학 연극학과에서 수학하였다.

 

국제극예술협회(ITI) 한국본부 사무국장‧부위원장을 거쳐 1994년 3월 이후 회장을 맡았으며, 한국연극협회에서는 상임이사‧부이사장‧이사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극단 실험극장 창립동인 및 대표,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장, 국립극장 공연과장 등을 지냈다. 1976년 9월 극단 현대극장을 창설하고 동 대표를 역임하였다. 그는 한국연극의 국제 교류에 노력한 연극인으로서, 1967년 이후 국제극예술협회 총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고 있으며, 기타 국제교류에서도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단막극 「애욕(愛慾)의 우화(寓話)」(실험극장 초연, 1963)가 문공부 주최 신인예술상 연극부문에서 단체상을 수상하여 인정을 받고, 『문학춘추』에 「갈대의 노래」(1964), 「신병후보생」(1964)이 추천 완료됨으로써 극작가로 데뷔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남한산성」(1973), 「논개」(1975), 「함성」(1976), 「원효대사」(1976), 「북벌」(1978), 「삭풍의 계절」(1982), 「식민지에서 온 아나키스트」(1984),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985), 「조국은 외롭지 않다」(1986), 「처용무」(1987), 「길 떠나는 가족」(1991) 등이 있다. 1975년 희곡 「남한산성」으로 제11회 백상예술상 희곡상을 수상하였고, 1986년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로 제22회 백상예술상 희곡상을 다시 받았으며, 1991년엔 「길 떠나는 가족」으로 제15회 서울연극제 희곡상을 수상하였다. 그 외 1989년엔 문화훈장 ‘관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희곡집 『남한산성』(1977)이 있고, 그 외 번역서로 『세계 신경향 희곡선』(1976), 『연극론 12장-아더 밀러 연극론집』(1978), 『스즈키 연극론』(1993), 『경극과 매란방』(1993) 등이 있다.

 

무대는 이중섭의 움직이는 화폭으로 재현된다. 이중섭이 즐겨 그렸던 작품의 소재인 소, 게, 새, 물고기, 어린이 인형이 천재적인 설치미술가 이영란의 손길로 되살아나 등장한다. 오케스트라 박스에 앉은 연주자들의 연주음은 극의 분위기를 절묘하게 이끌어 가고, 출연자들을, 움직이는 소조상(塑彫像)으로 연출해낸 연출가 이윤택의 예술혼은, 명동예술극장무대를 한 폭의 역동적인 조형예술적 연극작품으로 그려낸다.

 

극중 일제의 패망은 히로히도 일본왕의 육성방송을 통해 전달되고, 6 25사변은 북한군의 복장으로 등장한 출연자를 통해 식별이 된다. 이중섭이 일본으로 건너간 장면은 일본전통의상을 입은 출연자들에 의해 구별되고, 동란시절의 어려운 모습은 지게를 진 이중섭과 길거리 주막을 통해 전달된다.

 

도입과 대단원에서 배경 쪽의 가리개가 열리면 마치 동화 속의 생명체 같은 한지종이와 나무로 제작된 인형들이, 출연자들의 작동으로 춤추듯 무대를 가득 채우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2인 또는 3인의 출연자가 이중섭 작품 속의 생명체를 마임으로 표현하거나 캔버스의 이젤형상으로 서있는 모습도 인상적이지만, 이중섭으로 출연한 연기자가 이젤에 화판을 놓고 잠시 소의 머리를 그리는 장면은 연극의 백미(白眉)라 하겠다. 대단원에서 출연자들에 의해 움직이는 인형들이 이중섭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듯 퇴장하는 장면은 기억 속에 영원히 아로새겨질 듯싶은 명장면이다.

 

지현준, 문경희, 전경수, 한갑수, 김은진, 김동완, 장재호, 이기돈, 배보람, 신경혜, 변민지, 안연주, 이재훈, 이승우,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성격창출 그리고 노래는 물론, 인형과 함께 벌이는 움직임은, 무대를 이중섭 화백의 그림의 세계로 창출시키는 충분한 역할을 해낸다.

 

특히 지현준의 열연과 회화작업은 물론, 이중섭 화백과 방불한 모습에서, 이 극을 통해 실제 이중섭 화백의 생환이나 부활을 접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예술감독 이영란, 조명 영상 조인곤, 안무 김운규, 작곡 vann 전상민, 의상디자인 김경인, 분장디자인 최유정, 연습감독 이승헌, 음악감독 김시율, 무대제작 김경수, 인형제작 이영란, 작화 조소예, 소품제작 김은진, 조연출보 김태현, 연주자 윤현종, 전상민, 김시율 등의 연주와 제작진의 기량이 어우러져, 명동예술극장(대표 구자흥)의 김의경 작, 이윤택 연출의 <길 떠나는 가족>을 기억에 길이 남을 명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2, 제2회 한국여성극작가전 이지훈 작, 정안나 연출의 <히스테리카 파쇼>

 

학전 블루소극장에서 제2회 한국여성극작가전 이지훈 작, 정안나 연출의 <히스테리카 파쇼>를 관람했다.

 

이지훈 창원대학교 영문과 교수는 문학박사이자 작가 겸 연출가다. 극단 TNT 레퍼토리의 대표이기도 하다.

<말레우스 말레피까룸> <빠뺑 자매는 왜?>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 <운전배우기> <장엄한 예식>을 번역 연출하고 <진흙>과 <방>도 연출했다.

극작으로는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었다><13인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러오>와 희곡집 <기우제>가 있다. 제6회 여성문학상을 수상했다.

 

연출을 한 정안나는 서울예술대학과 프랑스 파리8대학 공연예술과 학사와 석사과정을 수료한 기대되는 연출가다. 현재 극단 수수파보리 대표이기도 하다.

 

<히스테리카 파쇼(Hysterica Passio)>는 “치밀어 오르는 울화통아!”라고 외치는 리어왕의 대사다.

 

이지훈 교수의 희곡 <기우제>를 이번 공연에서 제목을 <히스테리카 파쇼(Hysterica Passio)>로 바꿔 공연을 한다. 한국초연이다.

 

무대는 배경 가까이 1m 높이의 단이 무대좌우로 연결되어있고, 무대 왼쪽에 의자형태의 조형물과 무대 오른쪽에는 한 사람이 누울 정도 크기의 프로펠러 형태의 백색 입체조형물이 있다. 배경에 드리워진 커튼에 리어왕 모습의 그림과 시각의 혼란을 부추기는 영상을 투사해 극적효과를 높인다.

 

리어왕과 왕의 세 여식 거너릴과 리건 그리고 코딜리어가 등장하고, 원작의 악역인, 배신자이자 바람둥이 에드먼드가 등장한다. 코딜리어가 1인 2역으로 하녀 역까지 연기한다.

 

내용은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의 내용을 따른다. 세 여식에게 재산을 분배하는 장면에서 시작되고, 막내 코딜리어의 진정을 이해하지 못한 리어의 분노와 실망이 부각되고 리어가 퇴장하면, 거너릴과 리건이 극중 인물이 아닌 제3자적 입장에서 리어의 심정과 자신들의 입장을 분석, 제시한다. 추방된 코딜리어는 하녀로 변신을 하고, 관객도 그녀를 하녀로 인식한다.

 

장면이 바뀌면 결혼세월이 오래되고, 남편과의 관계가 처음 같지 않은 대부분의 여인들의 불만처럼, 거러릴과 리건이 충족되지 않는 욕망을 에드먼드라고 하는 매력남에게서 채우려 한다. 종교나 도덕심과는 관계없이 단지 육체적 기아(飢餓)를 공복(空腹) 채우듯 충족시키려는 모습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뵌다.

 

대단원에서 코딜리어의 진심을 깨달은 리어가, 가시 면류관을 쓴 성자 예수의 최후처럼, 가시 면류관을 쓰고 딸의 시신을 끌어안고 절명하는 장면은, 이 땅의 모든 아비의 모습으로 느껴지는 명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

 

리어왕으로 김세동이 출연해 출중한 연기로 관객의 시선을 끈다. 거너릴 역의 오아랑이 지성적 미모와 이지적 연기로 자신의 역을 최대한 부각시킨다. 리건 역의 김지은은 본래 연기파이지만, 이 극에서는 에드먼드와의 열정적 장면을 적나라하게 연기해 남성관객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코딜리어 역의 박경옥은 하녀 역까지 1인 2역을 완벽하게 연기해 갈채를 받는다. 에드먼드 역의 이요성도 호연으로 여성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제작 극단 수수파보리, 조연출 김형용, 드라마투르그 주소형, 무대 이학순, 사운드디자인 전광표, 영상디자인 손우경, 종명디자인 송훈상, 그래픽 손승오, 의상디자인 (주)앨리스 고홈, 사진 이지락, 분장디자인 박수진 등 제작진의 기량이 드러나, 제2회 한국여성극작가전 이지훈 작, 정안나 연출의 <히스테리카 파쇼(Hysterica Passio)>를 성공작으로 창출시켰다.

 

3, 극단 두비춤의 바츨라프 하벨 작, 현은영 역, 류주연 연출의 <청중>

 

서강대 메리홀에서 극단 두비춤의 바츨라프 하벨(Vaclav Havel) 작, 현은영 역, 류주연 연출의 <청중>을 관람했다.

 

바츨라프 하벨(Vaclav Havel)은 1936년 프라하에서 출생하였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1948년 체코에 공산정권이 수립된 후에는 부르주아적인 배경 때문에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택시운전기사 등 노동을 하였다. 그 후 프라하예술아카데미를 졸업, 작가의 길로 매진하였으며, 1963년 희곡<뜰의 축제 Zahradní slavnos>로 국제적인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공산당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고, 검열을 거부하여 국내에서는 20여 년 동안 작품발표가 금지되었다.

 

1968년 소련군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후에는 트로트노바 근처의 외딴 농촌에서 은거하며 양조장 직원으로 일하였으며, 수많은 동료 반체제 운동가들이 투옥 등으로 활동에 제한을 받는 가운데 반정부운동을 전개하였다. 1977년 8월 ‘인권헌장77’을 공동 기초하여 투옥되었고, 1979년 공화국 전복기도 혐의로 4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그러자 그의 희곡을 읽지 않은 체코슬로바키아인들도 그를 반체제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받아들였다.

 

1989년 11월 그는 반체제연합 ‘시민포럼’을 조직, 공산당의 권력독점 폐지 등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주도하여, 40년 동안 군림해 온 공산독재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어 12월 29일 체코슬로바키아의회에 의해 비공산당 출신으로 임시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분립 이후인 1993년 1월 말 실시된 선거에서 5년 임기의 대통령에 재선되었다. 1995년 체코의 실업률은 3.3%로 유럽 최저이며, 인플레율도 10%로 중앙 유럽국가 중 최저로, 박식한 지식과 균형 잡힌 이념을 가진 하벨은 정치면에서의 경험미숙을 훌륭한 통찰력으로 잘 극복했다. 2011년 타계하였다.

 

무대는 한 양조장의 감독관 실이다. 삼면 벽이 크고 작은 사각의 창문형태의 조형물로 만들어지고, 유리는 끼어있지 않다. 탁자와 의자가 놓이고, 바닥에는 수많은 맥주병이 놓여있다. 맥주상자도 있어 그것을 차례로 들어다 마신 후 포개놓는다. 탁자 위에도 빈 맥주병이 잔뜩 놓여있다. 오른쪽에 방문이 있고, 문밖이 등퇴장 로다. 문 안쪽에 흑인여인의 사진이 걸려있다.

 

연극은 도입에 탁자에 엎드려 자고 있는 감독관의 모습이 보이고, 사내 한 사람이 등장해 문을 두드린다. 감독관이 그 소리에 일어나고, 사내가 방 안으로 들어선다. 감독관은 탁자 왼쪽의 의자에 앉도록 권하면서, 맥주병 두 개를 가져다 뚜껑을 따서 맥주잔에 붓고, 사내에게 권한다. 감독관은 단숨에 맥주를 들어 마시지만, 사내는 입에 대었다가 잔을 내려놓는다. 감독관은 자신의 빈 잔을 다시 채우고, 그런 동작이 연극이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사내는 평소 술을 잘 마시지 않는지, 감독관이 화장실을 갈 때 술을 쓰레기통에 쏟아버린다. 별로 대수롭지 않은 대화가 계속되고, 감독관의 입버릇 같은 욕설도 계속되면서, 사내는 권한 술을 감독관이 화장실로 갈 때마다 쓰레기통에 쏟는 행동이 반복된다. 감독관은 문을 닫을 때마다 흑인여인의 사진을 보고 미소를 짓는다. 사내는 희곡을 쓰는 인물로 소개가 된다. 그리고 비판적인 안목으로 작품을 쓴다는 것도. 감독관은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희곡에 별로 흥미가 없는 듯싶다. 사내에게 이 양조장에서 지내는 게 어떠냐는 물음을 반복할 뿐이다. 그러면서 상당한 양의 술을 들이킨다. 사내가 작업실로 되돌아가겠다는 의사를 표시해도, 그냥 앉아 있으라며, 술을 권하고, 자신은 계속 술을 들이킨다. 술 상자가 비면, 다른 술 상자를 들어다 놓고 마시기를 계속한다. 물론 화장실로 가는 빈도도 높아진다. 감독관이 술에 취해 탁자에 엎드리자, 사내는 감독관의 얼굴을 팔로 잘 받쳐 주고,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잠시 암전되었다가 조명이 다시 들어오면, 사내가 방문을 두드리고, 감독관이 탁자에서 얼굴을 들고 “네.”하면 사내가 다시 들어와 의자에 앉고, 감독관이 맥주잔에 술을 부으면서 요즘 어떠냐고 물으면, 사내가 맥주를 단숨에 들이키고, 감독관이 늘 상 지껄이던 비속어로 대답을 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감독관 역에 문일수, 희곡작가 역에 이상홍이 출연해 2인의 출연자의 독특한 호연이 좌중을 웃음으로 몰아간다.

 

무대·무대디자인·소품디자인·제작 이희순, 연기지도 김선영, 의상 현은영, 사진 홍덕기, 그림 이상홍, 조명 박성희, 조명오퍼 이지혜, 조명팀 문동민 김용호 김보라 김명식, 음악 이상옥, 영상 이용상, 기획 김지한 김은정 강선영 등 제작진의 기량이 드러나, 극단 두비춤과 산수유의 바츨라프 하벨 작, 현은영 역, 류주연 연출의 <청중>을 성공작으로 만들었다.

 

4, 극단 체의 안톤 체홉 작, 강태식 역·연출 <이바노프>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극단 체의 안톤 체홉 작, 강태식 역·연출의 <이바노프>를 관람했다.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러시아어 Анто́н Па́влович Че́хов, 영어 Anton Pavlovich Chekhov,1860~1904)체호프는 흑해 위에 있는 아조프 해연안의 항구 도시 타간로크(Taganrog)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고대 그리스어를 가르치는 예비학교를 다닌 후, 타간로크 인문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성적 불량으로 3학년 때 유급하고, 3년 뒤 고대 그리스어 시험에 낙제하여 다시 5학년에 유급해 원래 5년이면 졸업하는 학교를 8년 만에 졸업한다.

 

그런 후 모스크바 대학의 의학과에 진학한다. 그러나 이 때부터 체호프는 의학공부를 하는 한편 타간로크에서 받는 장학금과 상트페테르부르크나 모스크바의 잡지에 유머 단편을 써서 그 원고료로 부모와 세 동생의 뒷바라지를 한다.

 

1887년 연극 이바노프의 첫 공연이 있기까지 체호프은 문학잡지 <귀뚜라미(Strekoza)>, <파편(Oskolski)>, <자명종(Budilnik)>, <페테르부르크 신문> 에단편과 수필을 기고한다. 특히 1883년에는 <Oskolski>에 모스크바의 일상을 스케치하는 컬럼을 맡는다. 체호프의 글은 호평을 받았으며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이미 신진 소설가로서의 명성이 높았다.

 

1883년 의과대학을 졸업한다. 그러나 23세 때 걸린 폐결핵이 체호프의 건강을 위협하게 된다. 그 해 11월에 처음 결핵 증세로 요양한다.

 

톨스토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체호프는 시베리아, 사할린 섬 여행을 계획하고 1890년 모스크바를 출발, 사할린에 도착한다. 사할린 섬에 유배된 수인(囚人)들의 비참한 생활은 체호프의 마음에 강렬한 인상을 새긴다. 그는 1899년, 건강상태가 악화되자 얄타를 마주보는 크림 반도로 옮겨간다.

1900년에는 러시아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나, 사임하고 1904년에 폐결핵으로 44년의 생애를 마친다.

 

체호프의 만년은 연극, 특히 모스크바 예술극단과의 유대가 강했고, 1901년에 결혼한 올리가 크니페르는 예술극단의 여배우다.

 

체호프는 직접 무대에 서기도 했으며, 19세기 말의 러시아 사회상태를 배경으로 하여 반항적이지만 능력 없는 인물을 극에 등장시킨다.

 

1887년에 집필된 <이바노프>는 모스크바 및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기교로도 <프라토노프>보다 앞선 작품이었고, 차기작인 <숲의 정(精)>에서 실패를 하기는 했으나, 단편 <곰>(1888)이나 <청혼>(1889) 등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1896년의 <갈매기>를 비롯해 <바냐 아저씨>(1899), <세 자매>(1901), <벚꽃동산>(1903) 등을 집필해 새로운 형태의 회화극(會話劇)을 확립한다.

 

무대는 배경에 자작나무 숲이 펼쳐있고, 무대 중앙에 소형 피아노가 한 대 놓여있다. 무대 오른쪽에 작은 책상과 의자가 있다. 장면이 바뀌면 숲 대신 이바노프의 거실이 되고, 다시 장면이 바뀌면 도지사 저택의 응접실이 된다.

 

배경막이 열리면 무대 뒷부분까지 등퇴장 로가 되고, 대단원에서는 객석을 향해 조명이 정면으로 투사되면서 마무리를 한다. 베토벤의 “월광곡”이 피아노로 연주되고, 영화 “일요일은 참으세요.”의 주제가, 또는 오페라 아리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 플라맹고 음악 등 귀에 익은 음악이 극적효과를 높인다.

 

연극은 도입에 신부복을 입은 여인과 이바노프의 첫날밤 장면이 실크 스크린 안쪽에 그림자로 묘사되고, 흑색착의의 인물군상이 무대를 가로 세로 질주를 하거나, 이합집산을 하며, 희미한 조명 아래서 형광을 발하기도 하면서 신혼부부의 암울한 장래를 예고하는 듯싶은 동작을 연출해 낸다.

 

극이 시작되면 이바노프는 사랑 없는 결혼을 한 인물이라는 오해를 산다. 아내가 결핵을 앓고 있기에 남편으로서 할 도리를 다해 치료를 하지만, 좀처럼 병세가 호전되지 않는다. 주치의는 이바노프에게 아내를 요양원으로 보내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이바노프에게는 금전적 여유가 없는 것으로 설명이 된다. 게다가 이바노프는 관리자를 비롯한 주변의 도지사 댁 마님에게 급료요구나, 빚 독촉을 받는 입장이다. 그러니 요양원을 보낼 수 없다는 게 이해가 간다. 글을 쓰는 이바노프….어쩌면 체호프 자신일 수도 있지만, 이바노프는 함께 살고 있는 삼촌까지 부담스럽지만, 60이 지난 삼촌은 어디 놀러갈 장소만 있으면 이바노프에게 데리고 가 달라고 보채는 게 일쑤다. 도지사 부인에게 약속한 날짜에 빚을 갚을 수 없으니 기일을 연기해 달라는 부탁을 하러 갈 때, 이바노프는 삼촌과 동행을 한다. 이바노프의 부인도 의사의 권유로 의사와 함께 도지사의 집으로 향한다. 부인이 자신의 뒤를 따르는 것을 이바노프가 알 리가 없다.

 

도지사 집은 무슨 유곽기분이 난다. 운집한 사람들도 그렇고, 음주와 함께 즐기는 분위기가 열정적이고, 연주되는 음악이나 노래가 사람의 가슴을 끓어오르게 한다. 이바노프와 삼촌이 방문하자, 도지사나, 부인의 환대가 쌀쌀맞은 느낌이다. 물론 이바노프의 빚 연기 이야기가 원인일 수도 있다. 삼촌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손님으로 와 있는 젊은 미망인에게 눈독을 들인다. 어쨌건 모두 어울려 즐기면서 불꽃놀이를 한다고 도지사 집 마당으로 나가자, 도지사의 아름다운 딸이 이바노프에게 달려온다. 이바노프야 아내 병수발 하랴, 빚 갚으랴, 다른 여인에게 눈을 돌릴 여유가 없지만, 안톤 체호프처럼 잘생긴 이바노프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가진 여인이 접근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도지사의 딸의 연정이 이바노프에게 은연중에 노출이 된다. 이바노프는 거부의사를 나타내지만, 열정적으로 몸과 마음을 밀착시키는 도지사의 딸을 밀어내기는 부처님이 아닌 바에야 보통 힘이 드는 게 아니다. 이바노프와 도지사 딸의 입맞춤과 포옹이 절정에 이를 때 이바노프의 아내가 등장해 이 장면을 보고 주저앉는다.

 

장면전환이 되면 이바노프의 아내는 충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설정이 되고, 주치의는 이바노프에게 아내대신 복수를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삼촌은 미망인과 함께 사는 것으로 소개가 되고, 장면전환과 함께 이바노프와 도지사 딸의 혼례 날로 객석에 전해진다. 모두 결혼준비로 떠들썩한데, 맨발의 이바노프가 등장한다. 자신의 불륜행실로 아내가 죽었으니, 양심의 가책으로 이 결혼을 하지 못하겠다는 의사표명을 한다. 도지사 내외 뿐 아니라, 주위사람들이 결혼날짜를 받아놓고, 바로 혼례 날, 어찌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떠들어 댄다. 신부될 사람도 달려와 항의를 하고, 주치의가 등장해 죽은 이바노프의 아내를 위해, 이바노프에게 결투신청을 한다. 그러자 이바노프는 권총을 꺼내 자작나무 숲을 향해 달려간다. 잠시 후 총성이 들리고, 배경 막이 열리면, 강한 조명의 역광과 함께 연극은 마무리를 한다.

 

남성진이 이바노프로 출연해 놀라운 호연으로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마치 1950년대의 명배우 황 철의 현신을 대하는 느낌이다. 권성덕, 이주실, 장보규가 능숙한 기량으로 연극의 버팀목이 된다. 전국향, 손종학, 배해선이 호연으로 극의 주춧돌 노릇을 한다. 김홍택, 김태한, 서숙영, 문지영, 박그리나, 김수현, 우주원, 정유진, 안민호, 김수미, 김아진, 김진욱, 윤석민, 진성웅, 장준현, 자두리, 박상희 등 출연자들의 열연과 호연이 극의 수준을 상승시킨다.

 

예술감독 박상규, 드라마투르크 송현옥, 조연출 문아영, 기술감독 최관열, 무대디자인 표종현, 무대제작 타프무대, 안무 하정오, 조안무 조주연, 음향감독 김대영, 조명감독 정진철, 분장 김다인, 의상 장주영, 사진 신귀만, 조연출보 나동욱, 음향 프로그래머 정주리, 조명어시스트 이은주, 무대감독 신은철 포스터 김유미, 홍보 드림컴퍼니 오해선, 서혜란 등 제작진의 열정과 노력이 드러나, 극단 체의 안톤 체홉 작, 강태식 역·연출의 <이바노프>를 고품격 예술 지향적 연극으로 창출시켰다.

 

5, 제7회 남해섬 공연예술제, 극단 신협의 루트비히 홀베르크 작, 백광수 윤장권 역, 안치용 연출의 <변해버린 신랑>

 

남해 국제탈공연예술촌(촌장 김흥우) 실험극장에서 극단 신협의 루트비히 홀베르크(Ludvig Holberg) 작, 백광수·윤장권 역, 안치용 연출의 <변해버린 신랑>을 관람했다.

 

루트비히 홀베르크(Ludvig Holberg; 1684 – 1754)는 덴마크-노르웨이의 작가이며 희곡작가이다. 노르웨이의 오슬로에 있는 국립극장에 그의 이름이 있다. 노르웨이와 덴마크가 서로 자국 문학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루트비히 홀베르크는 어렸을 때 고아가 되어 베르겐에 있는 친척집에서 살았고, 1702년 대화재로 시가 파괴되었을 때 코펜하겐대학교로 보내졌다. 세상을 보고 싶은 열망으로 학위를 딴 후 네덜란드로 떠났으나(1704), 아헨에서 병이 났고 노르웨이로 돌아갔다. 프랑스어 가정교사로 일한 다음 1706년에 다시 런던으로 떠났고 옥스퍼드에서 2년 동안 공부했는데 이때 플루트와 바이올린 교습으로 학비를 벌었다. 그 시기에 〈지도적인 유럽 국가들의 역사 입문(Introduction til de fornemste Europœiske rigers historie)>을 썼으리라 추측되지만, 이 저술은 그가 덴마크에 돌아온 1711년에 출판되었다. 이 글로 공부와 여행을 할 수 있는 왕실의 하사금을 받게 되었다. 1714년 주로 걸어서 유럽의 큰 도시들을 여행했고, 1716년 덴마크로 돌아와서는 자연법과 자연권에 관한 저작 〈Introduction til naturensog folke-retten〉을 출판했다. 재정적인 어려움은 1717년 코펜하겐대학교 교수로 임명되었을 때 마침내 해결되었고 1720년에는 범 대학 수사학회 회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문학적인 감정이 복받쳐’ 한스 미켈센이라는 필명으로 전혀 새로운 계통의 해학문학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덴마크어로 씌어진 최초의 고전인 진지한 희극 서사시 〈페데르 포르스 Peder Paars〉는 1719년에 출판되었다.

 

1722년에는 덴마크어로 공연하는 최초의 극장이 코펜하겐에서 문을 열게 되었는데 홀베르는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끊임없이 희극들을 써내 ‘북유럽의 몰리에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이 작품들은 매우 신선하여 아직까지도 다수가 공연되고 있다. 가장 알려진 작품으로는 〈정치사상가 Den politiske kandestøber〉·〈언덕의 예페 Jeppe påbjerget〉·〈이타카의 율리시스 Ulysses von Ithacia〉·〈에라스무스 몬타누스 Erasmus Montanus〉 등이 있다. 등장인물은 흔한 유형으로, 플라우투스의 밀레스 글로리오수스(허풍선이 병사)라든가 몰리에르의 오쟁이 진 남편 스가나렐에 바탕을 둔 인물들이지만 풍모가 덴마크식이며, 당대를 풍자 대상으로 하면서도 보편성을 띠고 있다. 그가 즐겨 풍자의 목표로 삼는 것은 식자(識者)들의 허세·은어·현학성이었다. 1727년 자금이 부족하여 극장이 마지막 공연을 하게 되었을 때 이를 위해 〈덴마크 희극의 장례식 Funeral of Danish Comedy〉을 썼다. 1731년 공연된 희곡들에 희곡 5편을 더해 출판하는 것으로 극작가로서의 경력을 마감했다. 이후 방향을 바꾸어 다른 형식의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상상의 여행을 그린 〈니콜라이 클리미의 지하여행 Nicolai Klimii Iter Subterraneum〉(1741)이 유명하다. 1747년 홀베르크 남작작위를 받았다. 볼테르를 예외로 한다면 홀베르크는 당대 최초의 범 유럽적인 작가였다.

 

무대는 의자 한 개만 덩그렇게 놓여있다. 주인공이자 미모의 중년 미망인인 테렌티아는, 대도시 여행을 다녀온 뒤에, 다소곳하던 성격의 변화를 보인다.

그 까닭은 젊고 활발한 기병대 장교를 보고 홀딱 반했기 때문이다.

 

테렌티아는 능글능글한 중매장이 키르스텐 영감에게, 그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젊은 기병대 장교에게 중매를 서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테렌티아에게는 결혼 적령기가 된 아름다운 딸이 있다. 딸을 결혼시킬 생각보다, 자신이 먼저 짝을 찾을 생각을 하니, 테렌티아의 부풀어 오른 심정을 이해할 만도 하다. 물론 딸은 어머니의 이런 생각과 행동에 아연실색한다. 테렌티아의 가족상황을 잘 알고있는 중매쟁이 키르스텐은, 테렌티아를 골려주기 위해, 엉뚱한 계획을 세운다. 기병장교 행세를 할 멋진 남장여인을 등장시킨다. 테렌티아는 그녀 눈앞에 등장한 기병장교가 남장 여인 줄을 알 리가 없다. 첫눈에 그 기병장교에게 반한 테렌티아는 꿈이 이루어지는 줄 알고 호들갑을 떤다. 그리고 혼약을 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중매쟁이 키르스텐이 혼례일을 눈앞에 두고 부랴부랴 나타난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테렌티아에게 이야기 한다. 기병장교가 돌연 여성으로 성전환을 했노라고…

 

대단원에서 이 가족의 할아버지가 등장을 해, 테렌티아를 깨우쳐 주기 위해 모든 게 꾸민 일이었음을 밝히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미망인으로 권남희, 중매쟁이로 박기산, 할아버지로 최대웅, 그리고 박선정 외 2인이 출연해 열연과 호연으로, 제7회 남해섬 공연예술제 극단 신협의 루트비히 홀베르크 작 백광수·윤장권 역, 안치용 연출의 <변해버린 신랑>을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6, 연희단거리패의 토마스 베른하르트 작, 류은희 역, 이윤택 연출의 <리어를 연기하는 배우 미네티>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연희단거리패의 토마스 베른하르트(Thomas Bernhard) 작, 류은희 역, 이윤택 연출의 <리어를 연기하는 배우, 미네티>를 관람했다.

 

이 연극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독어권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고 있는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찰츠부르흐 희곡집”에 실린 <미네티, 어느 늙은 예술가의 초상>이다.

토마스 베른하르트는(Thomas Bernhard)는 1976년에 이 희곡을 존경하는 배우이자 스승인 베른하르트 미네티 (Bernhard Minetti 1905~1998)에게 헌정했다.

 

이윤택 연출가는 자신의 스승이신 오순택(1933~) 교수를 주인공으로 <리어를 연기하는 배우, 미네티>라는 제목으로 바꿔, 윌리엄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 기념공연 겸 오순택 교수를 위한 헌정공연으로 연희단거리패와 함께 충무하트홀 블랙에서 막을 올려, 한국 연극사의 귀감이 되는 공연이 되었다.

 

토마스 베른하르트(Thomas Bernhard, 1931~1989) 는 오스트리아의 소설가이자 극작가다. 네덜란드의 헤를렌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작가였던 외조부의 영향 아래서 성장한 그는 현대 독일어 문학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어린 시절은 사생아로 태어난 것에 대한 상처와 굴욕, 전쟁과 빈곤 등 뿌리 없는 삶으로 점철되었다. 빈 예술학교와 잘츠부르크에 있는 모차르테움에서 연극과 음악 수업을 받았으며 신문사에서 자유기고가로서 법정 관계 기사, 르포, 도서,연극,영화 평론을 쓰면서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 70년대에 이르러 독일 문단에서 높이 평가받았다. 질병, 혼란, 고독, 파멸, 죽음, 정신착란 등을 주요 테마로 삼은 그의 작품들은 다양하고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하였다. 인간 세계에 대한 극도로 부정적인 시각, 인간 상호간의 속박을 거부하는데서 오는 고독과 고립 등 인간 존재의 부정적인 면을 강렬하게 반영하고 있다. 사람을 싫어하는 우울증 환자이며 절망의 명수인 그는 사랑했던 조국, 그러나 기구와 반목해왔던 오스트리아 땅에서는 자기 작품의 각종 출판과 무대 공연을 일체 불허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5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주요 작품으로는 소설 <STRONG><혼란> <바텐>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희곡 <사냥클럽>, 시집 <이 세상과 지옥에서><STRONG> 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오순택(1933~)교수는 한국계 미국인배우이다. 그는 <쿵후>와 <Magnum, P.I> <007 황금의 총을 가진 사나이>를 비롯하여 수많은 영화와 텔레비전 쇼에 진출하였다. 1970년대에는 오태석 연출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윤정희와 함께 주인공 역을 했다.

오순택 교수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서 자랐다. 그는 아직 10대였을 때 그의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남캘리포니아 대학교에 들어가 UCLA로부터 미술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65년에 건립된 Asian American theatre 그룹인 이스트 웨스트 플레이어의 초기 일원 가운데 한 명이었다. 1995년에 그는 한미 씨어터 그룹을 창설했다

 

무대는 한 호텔의 로비다. 정면에 호텔 엘리베이터가 있고, 무대 왼쪽에 프론트 데스크가 있다. 데스크 옆에 커다란 기둥시계가 있고, 시각은 아홉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프론트 데스크 뒤로 술 진열장이 벽면에 부착되어 있다. 무대 오른쪽 벽에는 꽃그림이 걸려있고, 콘트라베이스를 켜는 여인의 조소상이 세워져있다. 그 앞에 원형 테이블과 의자가 놓이고, 그 왼쪽에 등받이 없는 의자가 네 개 나란히 놓여있다.

 

연극은 도입에 의젓하게 생긴 호텔 프론트 담당자가 무대 오른편에서 등장해 프론트 데스크로 다가가 선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의 이중문이 열리며 샴페인 병을 든 여인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등장해 무대중앙에서 취한 모습을 보이다가 원탁 옆 의자에 가 앉는다. 잠시 후 호텔 보이가 여행용 트렁크 두 개를 들고 왼쪽 계단 위에서 등장해 아래로 내려온다. 트렁크가 무거운지 안간힘을 쓴다. 보이는 트렁크를 무대 중앙에 가져다 놓는다. 여인이 술을 더 청하면, 보이는 진열장에서 술병을 꺼내 여인이 요구하는 대로 그녀가 앉은 테이블에 가져다 놓는다. 객석방향에서 노신사 한명이 긴 코트에 우산을 들고 등장한다. 밖에는 눈보라가 친다는 설정이다. 노신사는 자신은 미네티(Minetti)라는 이름의 배우이고, 12월 31일인 밤 아홉시 반에서 자정까지 바로 이 오스텐데(Oostende)라는 도시의 시립극단 단장과 만날 약속을 했다는 설명을 한다. 그리고 자신은 리어왕으로 출연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오스텐데는 북해연안 벨기에의 동부지역 끝의 도시다. 여인은 노신사에게 다가가 친근감을 표한다. 향후 호텔 숙박 객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고, 객석사방의 계단을 내려와 등장한다, 그런데 모두 가면을 썼다.

 

원래 오스텐데는 <리어 가면>으로 유명한 판화가 제임스 앙소르(James Ensor1860-1949)의 고향이라, 가면설정을 한 것이리라.

 

노배우는 가끔 <리어왕>이 광야를 헤매며 하는 대사를 간헐적으로 읊어댄다. 그의 독백은 무대중앙에서 정면을 향해 내뱉지만, 그가 비록 돌아선 모습으로 연기할 때까지도 감흥이 객석 맨 뒤에까지 전달된다. 가끔 바지 멜빵이 풀어져 바지가 흘러내리면, 그와 담소하던 취한 여인과 프론트 데스크 담당자가 다가와 바지를 올려주는 모습에서 객석은 흐뭇함을 느끼게 된다.

 

장면이 바뀌면 미네티는 호텔로비 의자에 앉은 17세된 여인에게 젊은 시절 <리어왕>역을 하던 공연사진을 보여주며, 고국의 전통적인 고전이나 문학작품을 거부해 고향에서 추방된 소송사건을 이야기한다. 젊은 여인은 미네티를 위해 휴대용 소형 라디오의 음악 볼륨을 높여주면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 여인은 남자친구가 모습을 보이자, 라디오를 그대로 미네티 곁에 놓아두고 남자친구와 떠난다.

자정이 지나도록 시 극단 단장은 나타나지 않고, 미네티는 호텔로비에 자신의 트렁크를 남겨둔 눈보라가 몰아치는 호텔 밖으로 나가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오순택 교수가 미네티로 출연해 중후함과 안정감, 그리고 독특함으로 극장전체를 가득 채우는 연기를 보인다. 김소희가 취한 여인으로 등장해, 한 송이 꽃으로 그 체취와 향기를 역시 무대 끝까지 전한다. 이승헌, 이민우, 박경찬, 양동탁, 이두성, 백현주, 엄옥란, 임근아, 김경민, 선명균, 김동완, 김준호, 레지나, 이종무, 김여진, 김시정, 권태건, 이상은, 이명행, 양세윤, 미경, 주혜원, 손상규, 최다연, 최솔희, 박현정, 김수연, 김나라, 김선아, 하재성, 김신혜, 조우현, 등 출연자 전원의 열연과 호연이 객석을 감동으로 이끈다.

 

무대 김경수, 조명 조인곤, 안무 김윤규, 가면제작 이지원 김종식, 유혜미, 분장디자인 이지원, 분장 유혜미, 홍보디자인 황유진, 진행 이재현 감아영, 섭외도움 진경 최다연, 진행도움 이연규, 이윤화 조한철 문형주 등 제작진의 노력과 열정이 드러나, 극단 연희단거리패(대표 김소희)의 토마스 베른하르트 작, 류은희 역, 이윤택 연출의 <리어를 연기하는 배우, 미네티>를 한국연극역사에 길이 남을, 아름답고 예술지향 적이고, 스승존중의 미덕을 보인 한 편의 귀감적인 공연으로 탄생시켰다.

 

7, 극단 로가로세의 염지영 작, 이재윤 연출의 <냄새 풍기기>

 

혜화동 동국소극장에서 극단 로가로세의 염지영 작, 이재윤 연출의 <냄새 풍기기>를 관람했다.

 

이 연극은 홀로 사는 노인의 죽음과 그 시신이 방치되어 부패해 악취가 날 때까지 주변 거주자들은 낡은 건물과 주변 환경 탓으로 돌리다가, 결국 노인의 시신을 발견하고, 악취의 원인을 알게 된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는 고령화 사회에 빠르게 진입하고 있음과 동시에 독거노인도 지속적인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독거노인에 대한 질적인 조사를 통해 독거노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의 확충과 서비스가 개발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서비스체계에서 고립되거나 소외되지 않도록 지역사회의 관심이 절실하다.

 

21세기는 아마 노인의 세기가 될지도 모른다. 인구고령화는 개인과 가족과 사회에 많은 부담과 문제점을 안겨주게 될 것이고 국가와 사회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많은 노력을 집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21세기 동안 고령화 사회와 고령사회를 거쳐 초 고령화 사회로까지 진전할 것이기 때문에 노인은 다른 어느 대상보다도 계속적으로 더욱 큰 정책적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노인문제를 노인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정책적으로 해결하고 나아가서는 예방할 수 있는 정책도 수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누적되는 노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차원의 정책적인 대안과 실천이 뒷받침되어야겠지만 정부의 참여와 정책만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가족, 지역사회, 국가의 삼위 일체적 배려가 필요하다.

 

결국 현대화의 결과 증가하고 있는 노인 단독가구의 노인들을 위한 전문적 보호정책이 실시되기 위해서는 노인이 살고있는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보호의 연속체 개념에 입각한 재가 및 시설서비스가 확대되고 정비되어, 다양한 의료와 보건, 복지서비스들이 장기보호의 체계 속에서 통합적이고 연속적으로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노인과 관련된 모든 의사결정과정에 노인들의 견해가 반영될 수 있도록 참여 민주주의가 제도화되어야 할 것이며, 나아가 노인 자신 또한 스스로 배우고 노력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독거노인들이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외로움이고 고독감이다.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찾아가는 사람은 사회복지 봉사자들과 기타 소수인들 뿐이다.

 

신문 기사를 보면 독거노인의 고독사와 폭염으로 인한 사망 등에 관한 내용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노인 고독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빨리 과학적인 노인 안전 점검 시스템이 있어야겠다.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제 우리사회는 노인문제를 위해 더욱 더 깊이 있게 체계화된 시스템을 연구 개발해야 할 것이다.

 

 

무대는 오래된 연립주택의 입구 공간이다. 반 지하층의 창문이 보이고, 무대 좌우에 허리를 구부려야 출입을 할 수 있는 통로가 나있다. 통로 입구에는 비닐을 늘어뜨리거나, 파손되기 쉬운 물건을 공기가 주입된 비닐로 포장을 한 상품이 유행인데, 바로 그 공기 비닐 포장을 길게 오려, 주렴처럼 출입구에 길게 늘어뜨려 놓았다. 무대 정면 출입구는 열려있고, 복도에 사각의 마분지를 여러 개 줄에 꿰어 천정으로부터 늘어뜨려 달아놓았고, 보통의 여닫이문보다 더 넓은 문짝을 달았기에, 마치 벽이 열리고 닫히는 듯하다. 벽 앞에 평상형태의 조형물이 놓이고, 무대 왼쪽의 상자 곽 속에는 왁스 통이 놓여있고, 뒤쪽에는 폐지더미가 보인다. 왁스상자 앞쪽에는 호수가 달린 수도꼭지도 보인다. 무대 오른쪽 벽 중앙의 낮은 통로 옆에는 상자 곽 몇 개를 접어 기대어 놓았다.

 

연극은 도입에 출연자들이 연립주택 앞 공간에 등장해 무대를 우왕좌왕하며 각자 음악에 맞춰 독특한 몸놀림을 한다.

 

장면이 바뀌면 출연자들의 신상이 하나하나 밝혀진다. 60이 넘은 택시회사 소속 운전자, 경마에 골몰하는 남편과 지역사회 일에 앞장서는 아내, 열정적으로 회사 일을 했지만 정리해고 대상이 된 청년, 일정한 인원의 학생이 수강신청을 해야, 강의를 맡아 할 수 있는 대학 강사, 그리고 폐지를 주워 생활을 하는 고령의 여성 독거노인 등, 저소득층이나, 빈곤층을 대변하는 모습들이다.

 

이들 각자의 생활과 생업이 소개가 되고, 낡고 오래된 연립주택에서 뿐 아니라, 주변에 쓰레기 소각장이 있어 악취로 고생을 한다는 것이 설명이 된다.

 

악취에 대한 대책으로 주변에 락스를 뿌린다거나, 숯을 잔뜩 가져다 여기저기에 놓아두고, 벽에 악취제거용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백색 테이프를 문짝 주위에 바르기도 한다.

 

이들 생활이 극의 내용으로 펼쳐지면서, 여자노인이 폐지를 주워 유모차처럼 생긴 손수레에 싣고 등장한다. 이 여자노인은 독거노인으로 묘사가 된다. 자세히 보니, 여노인은 젊은 시절에는 배우 못지않은 미모를 지녔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거주자들의 악취로 고통을 받는 모습과 각종 생활고와 취업난, 그러면서도 발전적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모습들이 남의 일 같지 않기에, 관객과의 공감대가 일찌감치 형성된다.

 

물론 거주자들 간의 크고 작은 다툼이 생활풍경으로 묘사가 되면서, 자신들도 모르게 공동체 의식을 감지하게 된다. 그리고 악취문제도 공동체적으로 대처하려 하지만, 직접 나서서 앞장을 서는 것에는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감을 상실하고 사는 인물로 설정이 된 까닭일까?

 

대단원에서 악취의 원인이 지하방에서 사는 여성 독거노인의 사망과 시신의 부패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관객의 침통한 한숨소리와 더불어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박태경이 60대 택시기사, 배소이가 여성 독거노인, 최희정과 이현화가 남편과 아내, 황무영이 대학강사, 손명구가 청년사원으로 출연해, 각자 독특한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프로듀서 최무성, 무대디자인 이태원, 음악감독 구본웅, 포스터사진 김 솔, 스튜디오사진 박주혜, 분장 송지수, 움직임지도 손명희, 조연출 김준석·김태호·최민영, 진행 최윤정, 홍보·마케팅 한강아트컴퍼니 등 제작진의 노력이 드러나, 극단 로가로세의 염지영 작, 이재윤 연출의 <냄새 풍기기>를 시사성이 높고 시의적절한, 누구나 보아야 할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8, 제2회 여성극작가전 유진월 작, 이현정 연출의 <연인>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극단 C 바이러스의 유진월 작, 이현정 연출의 <연인>을 관람했다.

 

유진월(1962~) 작가는 경희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한 문학박사로, 현재 한서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다. 1995년 세계일보 신춘문예희곡으로 등단하고,

2000년 올해의 한국연극 베스트 5, 동아연극 연출상, 2004년 국립극장 장막희곡 당선, 2009년 동랑희곡상을 수상한 미모의 여류작가다. <불꽃의 여자 나혜석> <누가 우리들의 광기를 멈추게 하랴> <헬로우 마미> <푸르른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외 많은 희곡작품을 발표했다.

 

무대는 하수 쪽 객석 가까이에 대문이 있고, 텅 빈 무대에 상수 쪽 배경 가까이에 벽장 같기도 한, 조그만 옷장이 한 개 놓여있다.

건반악기의 연주음과 출연자의 나지막한 노래가 극 분위기에 조화를 이루고

무대 바닥에 가설된 각광조명, 천정에 달린 작은 조명 몇 개와 커다란 각광조명을 적절하게 사용한다.

 

연극이 시작되면 훤칠하고 잘생긴 청년이 간편한 옷차림으로 운동화를 신고 등장, 대문을 들어서며 안에 대고 이름을 부른다. 잠시 후 옷장 문이 열리면서 흰 실내복차림의 아리따운 여인이 얼굴을 내민다. 옷장 속에 청색 셔츠가 걸린 게 보인다. 청년이 다가가면, 여인도 장롱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낸다.

 

두 젊은이는 과거 연인이었던 것으로 묘사가 되고, 한 동안 헤어져 있다가 재회하는 것으로 설정이 된다.

 

처음에는 멀찌감치 떨어져 대화를 하다가, 다가가 몸을 가까이 하는 것을 보면, 과거에 몸과 마음을 밀착시켰던 관계인 듯싶기도 하다. 두 사람의 상대에 대한 정감이 상승되면서, 포옹의 농도가 열정적으로 바뀌고, 흡사 정사장면 같은 움직임이 연출되기도 하면서 관객은 어느 결엔가 연극에 몰입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모든 연인들의 만나고 헤어짐이 저마다 같지는 않겠지만, 별반 다르지도 않다. 이 연극에 등장하는 여인이 작가 자신을 그려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는 것이, 장롱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사색하고 생활하고, 연인을 그리고, 집필을 하는 모습이 작가를 연상하도록 만든다.

 

이 극에 등장하는 미남청년 뿐 아니라, 대부분의 젊은 남성들이 어찌 작가의 생각과 세계 속에 접근할 수 있으랴? 하물며 사랑을 주고받기에 이르려면 보통 힘이 드는 게 아니다.

 

여하튼 과거 연인이었던 두 사람의 상봉이, 신선한 바람과 애틋한 향기가 되어 무대 전체에 흩날리고, 관객도 자신의 사랑과 연관 지어 관극을 하게 되면서, 과거의 사랑했던 인물이나, 현재 사랑하는 상대를 떠올리며, 자신이 주인공인 듯한, 착각에 빠져, 두 출연자의 감정에 편승해, 갈등과 열정, 그리고 일희일비를 공유할 지경에 이른다.

 

대단원에서 연인들이 결합하지 못하고 결국 원상태대로 헤어지는 장면으로 마무리를 할 때까지, 관객은 두 출연자와 감정, 감성은 물론 호흡의 일치를 보이다가 극이 끝나서야 비로소 정신을 가다듬는다.

 

구시연과 염순식이 여와 남으로 출연해, 혼신의 열정으로 호연과 열연을 한다.

 

드라마트루크 오세곤, 조명디자인 송훈상, 무대디자인 신승렬, 의상디자인 조현정, 음악디자인 임대환, 기획 이문원 홍보 최기웅 장 선 김선희, 연출부 김경덕 김지혜 서다영 임예지 백수희 등 제작진의 기량이 드러나, 제2회 여성극작가전, 극단 C 바리러스의 유진월 작, 이현정 연출의 <연인>을 독특하고 창의력이 돋보이는 연극으로 창출시켰다.

 

9, 극단 골목길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박근형 각색 연출의 <로미오와 줄리엣>

 

게릴라극장에서 극단 골목길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박근형 각색·연출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관람했다.

 

무대는 얇은 일정한 크기의 나무판자를 벽면과 등퇴장 로 옆에 촘촘히 붙인 것 외에는 텅 빈 채로 사용한다.

 

등장인물도 대부분 원작을 따랐으나, 영주를 아름답고 단아한 여인으로 설정을 하고, 극의 해설자 역을 겸해서 한다. 그리고 캐플렛의 부인을 환자이동의자에 몸을 싣고 다니도록 한다. 그리고 로렌스 신부(神父)가 등장할 때 수사를 동반시킨다.

 

연극은 도입에 여성 영주 겸 해설자가 등장해, 몬테규 가와 캐플렛 가의 숙적이자 원수관계를 우리의 동서갈등과 남북분단과 비교해 해설을 한다. 곧이어 양가의 청년들이 대결을 하는 장면과 영주가 등장해 싸움을 진정시키고,화해를 권한다. 양가의 대표들은 영주 앞에서 잠시 손을 잡을 뿐 영주가 자리를 떠나면, 다시 원수지간으로 돌아간다.

 

장면이 바뀌면 캐플릿 가의 가장과 부인에게, 딸 줄리엣과의 결혼승낙을 받으려는 패리스 백작의 등장과, 딸의 의사를 타진한 후 확답을 하겠노라는 캐플렛 가장과 부인의 화답과 함께, 성혼을 위한 축하잔치를 하도록 지시한다.

 

잔칫날 모테규 가의 청년들이 가면을 쓰고 몰래 참가한다. 그러나 줄리엣의 오라비 티볼트가 알아차리고, 이들을 혼내려고 하니, 캐플렛 가장이 제지한다.

이 잔치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운명처럼 상면한다. 두 사람은 첫 눈에 상대에게 이끌리고 사랑에 빠진다. 잔치가 끝날 때 쯤 두 사람은 원수지간의 딸과 아들임을 확인한다. 그러나 사랑은 그것을 뛰어넘는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밀리에 로렌스 신부 주례 하에 결혼을 한다.

 

그러나 잔치에 몰래 참가한 것을 이유로, 티볼트는 로미오에게 싸움을 걸고, 로미오는 싸울 의사가 없음을 밝히지만, 벤볼리오와 머큐쇼가 로미오 대신 티볼트를 상대로 싸움을 벌이고, 로미오가 전력을 다해 싸움을 말리는 사이, 티볼트는 단검으로 머큐쇼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로미오는 머큐쇼의 죽음을 보고 분노로 티볼트를 살해한다.

 

이 일로 로미오는 살인죄로 사형선고를 받아야 마땅하지만, 영주의 배려로 영지 밖으로 추방을 당하게 된다.

 

오라비의 죽음과 로미오의 추방으로 놀란 줄리엣을 유모가 진정시려 애를 쓰고, 줄리엣의 부모는 패리스 백작과의 결혼을 한시바삐 성사시키려고 서두른다. 그러나 줄리엣은 몬테규 가의 로미오를 사랑하고 있음을 아버지 어머니에게 고백한다. 당연히 줄리엣은 아버지에게 매를 맞고 실신한다.

드디어 패리스 백작과 줄리엣의 결혼식이 있기 직전, 로렌스 신부는 계략을 꾸민다. 그러나 그 것은 독약을 매체로 하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계략이다. 줄리엣은 신부의 권고를 받아들이지만, 로미오에게 알리러 간 젊은 수사가 그 내용을 전달하지 못해, 그 계략은 참담한 비극으로 끝이 난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죽고야 마는….

 

대단원에서 몬테규 캐플렛 양가의 화해가 영주 앞에서 이루어지는 듯싶지만, 영주가 퇴장을 하자, 갈등은 증폭되어 심한 싸움과 칼부림으로 양가가 몰살되는 장면이 펼쳐지고, 마지막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양가의 죽음의 현장에서 떠나 화합과 평화의 세계로 나란히 걸음을 옮기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김동원이 로미오, 심재현이 줄리엣으로 출연해, 더할 나위 없는 호연을 보인다. 신덕호가 로렌스 신부로 출연해, 성직자보다 더 성직자다운 풍모로 호연을 보인다. 김도균이 캐플렛의 가장, 정희경이 부인으로 출연해, 인물이나 성격창출 면에서 완벽에 가까운 기량을 나타낸다. 이봉련의 유모…. 이토록 출중한 연기력을 가진 여배우가 있었다니… 이 비극에서 그녀의 연기는 웃음을 선사하는 유일한 숨통이 된다. 우정원의 영주 역 또한 원작의 영주역을 200% 살려내는 단아한 미모와 연기, 그리고 차분한 해설자 역으로 연극을 이끌어 가는 모습이, 흡사 세계 각국의 여성 지도자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티벌트 역의 김은우의 연기가 인상 깊게 기억되고, 곽현석의 몬테규 가의 가장, 나영범 패리스 백작, 이호열의 벤볼리오, 최영재의 머큐쇼, 이경호의 밸더자, 김태훈의 존 등 출연자 모두의 호연은 관객의 갈채를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한다.

 

조연출 이은준, 무대감독 권 혁, 무대디자인 정헌조, 조명디자인 성노진, 소품 김병건, 의상 김민희, 움직임지도 권영호·김가빈, 진행 안소영, 오퍼 류왕주·남수현, 작곡 아트모스피어, 음향 박민수, 사진 E.NU, 홍보 김지은 인쇄 복사광장 등 제작진의 기량과 열정이 조화를 이루어, 극단 골목길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박근형 각색·연출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출력이 돋보이고, 우리의 정치현실을 반영한 듯싶은 걸작 재창작물로 탄생시켰다.

 

10, 인천극단 십년후의 고동희 작, 송용일 각색·연출의 <소문>

 

스타시티 예술공간 SM에서 인천극단 십년후의 고동희 작, 송용일 각색·연출의 <소문>을 관람했다.

 

<소문>을 집필한 고동희(50) 작가이자 한국연극협회 이사는 금년 3월 인천부평아트센터 2대 관장으로 취임했다.
고동희 관장은 인천시립극단의 기획실장, 문화의 달 행사 추진위원회 사무국장, 인천연극협회 부회장, 한국연극협회 이사, 극단 십년후 기획실장 등을 역임했다.
고동희 관장은 “부평아트센터가 문화예술을 매개로 부평 구민과 함께 공감하고 소통하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나아가 내부 구성원의 업무 만족도를 높여 부평아트센터가 수요자와 창작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부평아트센터를 위탁운영하고 있는 부평문화재단 관계자는 “지역문화진흥법 제정 등 문화예술 환경 변화를 고려해 현재의 부평문화재단과 부평아트센터 그리고 문화사랑방 등을 통합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통합 후에는 현재의 재단 사무국장과 부평아트센터 관장 체제를 2개의 본부장 체계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연극 <소문>의 대학로 공연은 고동희 관장의 취임 후 첫 서울 나들이 공연이다.

 

무대는 철거대상지역의 오래된 주택이다. 슬레이트 지붕이 연결되어 있고, 중앙에 한지를 바른 문에 쪽마루가 놓인 주인아주머니와 젊은 아들이 사는 방이 있고, 방 왼쪽으로

이 집으로 들어오는 통로가 있다. 방 오른 쪽에는 부엌과 광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있고, 기역자로 꺾어져 방이 있는데, 그 방에는 결혼한 지 4년인데도 아기가 없는 젊은 부부가 살고, 그 다음 방은 입구 벽에 기이한 문양의 철제 조형물을 걸어놓았는데, 거기에는 뚱보 무녀가 살고 있다. 다음은 통로만 보이고, 그 안쪽에 현재 감방에 들어가 있는 오라비와 어린 여동생이 살고 있는 것으로 설정을 했다. 무대 왼쪽에는 마당으로 들어오는 통로 옆에 한지바른 창문이 있고, 그 옆으로, 그러니까 객석 가까이에 변소가 있다.

마당 왼쪽에는 조그만 평상도 있고, 마당 오른편 객석 가까이에 수도가가 있고, 마당 왼쪽 객석 가까이에는 직사각의 꽃 화분 세 개가 놓여있다.

 

연극은 도입에 정박아인지 정신이상자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소녀티를 벗지 못한 예쁘디예쁜 처녀가 아기인형을 업고 냅다 소리를 지르며 등장해, 관객을 놀라게 하더니, 관객을 상대로 술래잡기를 한다.

 

관객 중 남성 한 명이 상대가 되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반복하면서 연극이 시작된다.

 

결혼사년에 출산을 못한 젊은 부인이 처녀와 말상대를 하고, 바로 이 다가구주택의 주인아주머니가 가운데 방에서 나와, 주택철거 문제를 걱정스럽게 이야기한다.

 

변소에서 젊은 부인의 남편이, 여자 못지않게 예쁘게 생긴 모습으로, 화장지 두루마리 다발을 들고 나와 시끄럽다며 자신들 방으로 향하고, 잠시 후 뚱보 무녀가 빨갛고 파란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등장해,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계속 주문을 외우듯 떠벌이며, 아기를 업은 젊은 처녀와 어울려 문밖으로 나간다.

 

잠시 후 주인아주머니의 아들이 술이 몹시 취해 들어오며, 수돗가에서 쉬를 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아주머니가 질색을 하며 말린다. 여기에 박주사라고 하는 이 지역의 철거관련담당 직원이 서류가방을 들고 등장한다. 그리고 젊은 처녀를 찾으며 객석 가까이에 있는 통로를 기웃거린다.

 

이 다가구주택의 거주자들이 모두 박주사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기울인다. 박 주사는 곧 철거통보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로, 거주자들의 빈축을 산다. 박 주사와 거주자들의 대화로, 젊은 처녀의 오라비는 철거반대 시위를 하다가 감방으로 들어간 것으로 객석에 알려진다.

 

이 지역의 철거주민들은 합당한 보상금액을 받지 못한 채 철거를 당해야 할 처지에 놓인듯하고, 박주사도 처음에는 이 다가구주택에서 함께 거주하다가, 이사를 한 인물로 소개가 된다. 감옥의 들어간 봉학이라고 하는 젊은 처녀의 오라비가, 출감을 하면, 아마 박 주사에게 앙갚음을 하리라는 예측을 거주자들은 하는 듯싶다.

 

그러던 어느 날 뚱보 무녀가 “금년 안에 이집에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릴 것이다.”라는 예언을 하자마자, 젊은 처녀애가 마치 임산부모양 수돗가에 엎드려 헛구역질을 하고, 이 모습을 본 거주자들은 저마다, 누가 젊은 처녀를 건드려 애를 배게 한 것이라고, 그 상대가 누구인가를 찾기 시작한다.

 

젊은 부부의 미남 남편이 일순위로 그 상대로 혐의를 받게 되고, 미남 남편을 질문을 받을 때마다 딸꾹질을 심하게 해 그 혐의가 집중된다. 주인아주머니의 아들도 평소 젊은 처녀에게 다정하게 대해, 의심을 사게 된다. 그리고 젊은 처녀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박 주사도 혐의대상에 오른다.

 

주인아주머니의 아들과 젊은 처녀는 비눗방울 뿜는 기구로 하늘 높이 비눗방울을 날리며, 다정하게 노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처녀가 실신을 하자, 박주사가 처녀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간다. 거주자들은 박주사가 아마 임신중절을 시키려고 병원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라는 상상을 하며, 처녀 오라비 봉학이가 출감하면 동생을 임신시킨 장본인을 찾아 아마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며, 모두 그 대책을 세우라는 이야기를 한다.

 

장면이 바뀌면 출소한 봉학이 방 마담의 주점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봉학은 키가 훤칠하고, 눈이 부리부리한 미남이다. 구레나룻 수염 때문에 다소 험상궂은 인상이기는  하지만, 잘생긴 모습이다. 방 마담은 평소 봉학을 좋아했는지 두부를 가져다주며, 다정하게 봉학에게 두부를 들라고 권한다. 방 마담이 잘 들지 않는 식칼을 들고 숫돌에 갈아보려고 애를 쓰자, 봉학이 식칼을 대신 갈고 그 칼날을 들여다본다. 그 때 이 장소에 젊은 남편이 등장해, 봉학의 출감사실과 식칼을 날카롭게 갈아 손에 들고 들여다보고 있는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주인여자도 담 너머로 봉학의 모습을 보게 된다.

 

장면이 바뀌면 거주자들이 봉학의 출감사실과, 동생임신문제, 그리고 봉학의 앙갚음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느라 법석이다. 삽과 빗자루, 그리고 하수도 뚫는 압착 기구까지 가져다 들고, 봉학을 때려잡을 무기를 각자 하나씩 들고 대기 자세를 취한다.

 

드디어 봉학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뒤따라 방 마담도 등장한다. 그런데 거주자들의 예상과는 달리, 봉학은 적개심이나 원망하는 눈빛이 아니라, 반가운 내색으로 거주자들을 대한다. 봉학은 자신의 방쪽 출입구에서 동생을 찾는다. 그러자 거주자들이 임신중절을 하러 병원으로 데려갔다고 말한다. 봉학은 놀라며 누가 임신을 시켰느냐고 묻는다. 모두 박 주사를 그 대상인 듯 이야기한다.

 

그 때 젊은 처녀를 업고 박 주사가 등장한다. 봉학은 박 주사의 멱살을 쥐고, 동생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에 분노를 표하며 주먹을 막 휘두르려 한다. 그 때 동생인 젊은 처녀가 울며 오빠를 말린다. “오빠, 왜 그래?”하며. 봉학이 “네게 아기를 배게 한 놈이 누구냐?”하며 묻는다. 그 때 박 주사가 이야기한다. “아기라뇨? 선이 배에 물이 차서 헛구역질을 하니, 당분간 안정을 취하면 괜찮아진다고 의사가 그러셨어요.”

 

이 말에 모두 놀란다. 선이가 임신을 했다는 생각으로, 모두들 별의별 상상과 의심을 품었던 사실이 헛소문이라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는 순간이다.

 

대단원에서 박 주사가 “이 지역의 철거가 보류가 되었다.”는 소식을 알리면서 거주자들이 모두 환호성을 지르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정의갑, 최부건, 허초혜, 권혜영, 황미선, 황태호, 신혜정, 박주연, 공민규, 박설희, 정휘태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은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기획 이애라, 엘앤케이 펠리시타, 홍컴퍼니 (이득세·홍근숙·장윤선), 연기감독 오진호, 무대디자인 서울무대미술, 조명디자인 박진수, 음향다지인 차미경, 음향오퍼 채재명, 사진 류재형 등 제작진의 열정과 기량이 돋보여, 인천극단 십년후의 고동희 작, 송용일 각색·연출의 <소문>을 폭소와 흥미 만점의 명품연극으로 창출시켰다.

 

7월 31일 박정기(朴精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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