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노프/ 김창화

이성과 감성의 불안한 갈등을 무대 위에 구체적으로 제시한 공연 “이바노프”

김창화 (상명대 연극학과 교수)

 

작 : 안톤 체홉

번역/연출 : 강태식

드라마터그 : 송현옥

단체 : 극단 체

공연일시 : 2014/07/10 – 07/20

공연장소 :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관극일시 : 2014/07/20 오후 3:00

 

 

러시아에서 유학한 연출자 강태식은 우리 모두가 알던 체홉을 아주 다른 옷을 입혀 무대 위에 세웠다. 이 지구상에서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가장 자주 무대 위에 오르는 체홉의 희곡은 그동안 “갈매기”, “세 자매”, “벗 나무 동산”, “봐냐 아저씨” 이렇게 4작품에 집중되었다. 좋든, 싫든, 체홉은 한국에 백년 가까이 소개되었고, 러시아의 저명한 극단, 연출, 배우들에 의해, 체홉은 끝없이 한국의 관객들과 얼굴을 맞대었다. 그동안 러시아에서 연극을 공부하고 돌아온 많은 연극인들이 체홉에 도전했고, 나름대로 완성된, 결정적인 ‘체홉공연’을 보여주기 위해 엄청 많은 노력을 해왔다. 미국에서 연극을 공부하고 돌아온 연극인들도 체홉을 즐겨서 소개했는데, 아마도 미국연극인들의 체홉에 대한 충성심을 많이 따랐던 것 같다. 체홉의 4대 희곡 외에도, 단막극 “곰”과 “청혼”도 자주 공연되었다.

“이바노프”는 1887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고, 대성공이었다. 1884년 모스크바 대학의 의학부를 졸업한 체홉을 대변하는 인물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젊은 의사 리보프(김태한)와 지방관청의 공무원인 이바노프(남성진)의 머리와 심장(이성과 감성)의 대립, 갈등이 축을 형성하고 있는 이 희곡은 놀랍게도, 유태인과 기독교인의 종교적 이질감과 미국이민이라는 새로운 발상, 결혼지참금과 같은 구시대의 관습에 대한 비판, 관리인과 지주와의 평등한 사회적 관계라는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인 주제를 담아내고 있다. 9년 뒤, 1896년에 발표한 “갈매기” 초연이 참담한 실패로 끝났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바노프”의 성공적인 공연은 이례적인 것이었다. 강태식 번역/연출의 “이바노프”도 1887년 러시아에서의 초연 못지않은 성공적인 결과를 2014년 한국공연에서 보여주었다.

흔히 체홉작품을 연출할 때, 연기에 집중하거나, 작품의 해석에 몰두하게 된다. 한국에서 공연된 대부분의 체홉공연은 둘 중 하나라도 건지기 위해 헌신했다. 그러나 둘 다 성공적으로 표현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강태식은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화학반응의 공식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체홉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희곡의 문학적 텍스트에 집중하지 말고, 배우의 연기에 집중해야한다. 그래야 작품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작품의 ‘울림’이 보인다.

“이바노프”는 한국과 다른 관습, 전통, 문화, 종교,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바탕을 하고 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생각과 행동, 결정이 주를 이루는 공연이다. 그래서 대부분 한국에서의 체홉공연은 러시아의 문화적 ‘코드’를 생략하거나 무시해 버린다. 그래서 결론은, 의미 없는 외침과 헛손질, 발길질이 생겨나게 된다. 배우의 연기는 과학적이며 동시에 희곡의 생리적, 물리적 흐름과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극의 ‘리듬과 템포’를 배우가 이끌어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강태식은 연기의 호흡과 흐름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연출자 가운데 한명임에는 틀림이 없다. 거기에 덧붙여서, 희곡의 무대화를 위한 ‘형상의 상상력’이 아주 뛰어난 연출자이다. 체홉의 희곡을 구성하고 있는 무거운 격자 틀 구조, 대부분 추상적이거나 실존적인 혹은 부조리한 인습과 환경으로 인한 장애물을, 강태식은 “이바노프” 공연의 도입부에 ‘무용극’과 같은 집단적인 움직임의 표현으로, 결혼이라는 기억의 형상적 이미지를 구체화했다. 결혼에 대한 이바노프(남성진)의 악몽과도 같은 기억으로, 혹은 사회적 관계에 대한 상징으로 표현된 이 움직임은 매우 극적이며, 동시에 충분히 설명적이었다. 이렇게 절충적이며 동시에 연극과 무용, 마임의 혼합적인 표현양식은 관객들로 하여금 희곡의 ‘의미구조’에 대한 호기심을 미리 열어놓는 순기능을 하게 된다. 그래서 곧이어 진행되는 사건의 전개, 체홉식의 스토리라인, 러시아식 관념에 쉽게 빨려들게 만든다. 그리고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이바노프의 현 존재, 우울, 지루함, 알 수 없는 분노를 설명하기 위한 대립적 존재로, 젊은 의사인 리보프(김태한)를 등장시켜, 갈등의 원인을 밝힌다.

체홉의 희곡에는 복잡한 심리적 관계로 얽힌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런 인물의 거의 대부분은 체홉의 작품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자기 진단의 심리학’을 꽃 피운다. 안나(서숙영)와 싸샤(박그리나)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리보프의 공격을 받는 이바노프는 ‘자기변명’에 가까운 ‘자의식’의 표현을, ‘자기 진단의 심리학’으로 완성한다.

체홉은 나르시시즘이 강한 작가다. 이바노프를 공격하는 리보프의 논리는 ‘정의’이며, 동시에 체홉의 ‘자의식’이다. 리보프의 머리와 이바노프의 심장은 체홉이라는 작가의 불안한 내면에서 오랫동안 발효를 기다려 온 ‘감성’을 무대 위에다 펼친다. 리보프의 이성과 이바노프의 감성은 사실 대립적이기 보다는 상호보완의 관계로 읽혀진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이바노프의 우울함은 리보프와의 갈등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리보프는 계속해서 이바노프를 공격하지만, 이바노프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감정과 고통으로 방황한다. 그에게는 아버지를 죽이고, 삼촌과 결혼한 어머니가 없으며, 죽은 아버지의 혼령이 나타나지도 않는다. 결코 ‘햄릿’이 될 수 없는 이바노프는 체홉의 다른 희곡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유가 분명하지 않은 행동으로,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관점에서 멈춰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바노프의 알 수없는 우울함과 불안한 심리는 이성과 감성의 갈등 때문이며, 강태식 연출의 “이바노프”는 이 갈등의 감정과 정서를 무대 위에 아주 구체적으로 잘 펼쳐 놓았다. 무대미술과 극적 표현이 다소 어울리지 못했고, 그 외의 인물로 표현한 남성 등장인물들의 의상이 지나치게 ‘농노’같았던 것이 옥에 티였던 것을 제외한다면, 최근 공연 가운데 가장 큰 목소리로 ‘브라보’를 외쳐주고 싶었던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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