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석과 이윤택과 장대비와 관객들의 광기 4중주 / 오세곤

오태석과 이윤택과 장대비와 관객들의 광기 4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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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곤(순천향대 교수, 공연과 이론을 위한 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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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미친 짓이다. 2014년 8월 2일 밀양연극촌에서는 그런 미친 짓이 실증적으로 벌어졌다. 하는 사람도 미치고 보는 사람도 미쳤다. 아마도 그 광기의 체험은 너무도 깊이 각인되어 결코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태풍 나크리의 예보가 있는 가운데 오태석과 극단 목화가 <템페스트>를 갖고 밀양연극촌에 도착했다. 오태석의 일성은 “관객만 있으면 비가 와도 합니다.”였다. 그리고 배우들에게는 “마이크 없이 한다.”는 정말 괴로운 선언이 전해졌다. 1000석이 넘는 야외극장에서 비오는 날 마이크도 없이 공연을 하겠다니 그게 미친 짓이 아니고 뭐겠는가?

여기에 이윤택은 또 하나의 미친 선언을 한다. “밀양 관객들은 옵니다. 비가 와도 안 갑니다. 두고 보세요. 작품이 <태풍>인데 뭐 어떻습니까?” 기의 세기로 치자면 세상 누구한테도 안 질 법한 두 연출가가 마치 광기를 갖고 대결을 벌이는 것과 같은 심상찮은 분위기가 연극촌을 감쌌다.

그리고 8월 1일 밤 10시 꾸물거리는 하늘 아래 첫 공연이 이루어졌다. 공연 중 간간이 비가 왔지만 잠시 우비를 입느라 부스럭거리는 정도 말고는 관객들은 철저히 무대에 집중했다. 오태석과 이윤택 둘다 일단 성공이었다.

그러나 다음 날은 정말 큰 비가 예고되고 있었다. 관객들이 아예 출발부터 포기할 가능성이 컸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오태석은 하루 종일 실내와 야외무대를 오가며 배우들을 붙들고 연습을 하였다. 저녁이 되면서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다.

그런데도 관객은 객석을 가득 채웠고 공연은 시작되었다. 배우들은 이미 전 날 경험이 있던 터라 아예 마음을 비우고 나온 듯 여유롭기까지 했다. 자연히 관객들도 그게 당연한 양 비와 친해지고 있었다. 빗소리가 커지면 오히려 더 집중하는 듯했다. 비는 계속되었다. 강해졌다 약해졌다 반복되는 빗줄기는 전혀 방해거리가 안 되었다.

극이 중반을 넘어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빗줄기도 따라서 강해졌다. 마치 연출된 것 같았다. 아니 연극의 일부인 것 같았다. 연극과 비가 강도를 높이자 관객들의 열기도 더해졌다. 후끈 달아오른 객석을 식히려는 듯 장대비가 쏟아졌다. 그리고는 객석과 무대와 하늘은 서로 경쟁하듯 강도를 높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기를 얼마나 했을까? 강자와 강자가 있는 힘을 다해 대결을 벌인 뒤 하나가 되는 이치일까? 무대와 객석이 장대비 속에 합일되어 어느새 하모니를 이루어내고 있었다. 과연 이러한 조화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장대비 없이 무대의 힘만으로 과연 이 정도 뜨거운 객석의 반응이 가능했을까? 빗줄기와 빗소리가 없었다면 과연 이렇게 엄청난 배우들의 에너지가 발휘됐을까?

연극은 일상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 벗어남의 극치는 미치는 것이다. 그 미침의 강도가 세면 셀수록 더욱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다. 2014년 8월 2일 밀양연극촌의 관객들은 일생 못 잊을 카타르시스의 경지를 맛보았다. 아마 배우들도 스태프들도 모두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관객은 연극의 필수 구성요소이다. 그 관객 문화가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밀양연극촌과 밀양연극제는 연출가 이윤택의 작품이다. 물론 수많은 이들이 함께 했겠지만 그 원천으로 이윤택을 지목하는 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밀양의 관객 문화 역시 이윤택의 연극관과 상당히 큰 관계가 있을 것이다.

꽤 오랜 시간 튼튼하게 축적된 관객 문화에 오태석이라는 또 다른 거대한 에너지가 충돌했고, 그것은 단순 합계가 아닌 일종의 핵융합 같은 효과를 발생시켰다. 그렇게 해서 하는 이나 보는 이나 모두 미쳐버리는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분명 미친 짓이고 광기였다. 그러나 세상을 망치는 광기가 아니라 건강을 회복시키는 고마운 광기임에 틀림없다.

이날 밤, 오태석과 이윤택과 장대비와 관객들이 만들어낸 엄청난 광기는 우리 연극의 갈 길을 예시해 준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미칠지, 어떻게 미치도록 만들지 연구해야 한다. 그 광기 속에 우리 연극의 미래가 있음을 확신한다. 이런 확신을 준 두 연출가들과 배우들과 스태프들과, 또 그 훌륭한 관객들과, 그리고 무엇보다 장대비로 작품을 완성시켜준 하늘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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