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대하는 두 가지 시선- 2014년 하반기 두산아트랩/ 오민아

청춘을 대하는 두 가지 시선- 2014년 하반기 두산아트랩

 

오민아

 

 

‘별일없이 화려했던’-오쿠다를 오리자 시리즈1

 

작/연출: 윤석현

드라마터그: 하정진

단체: 이파리드리

공연일시: 2014/08/21-08/23

공연장소: 두산아트센터 Space111

관극일시:2014/08/22 8pm.

 

‘이런 꿈을 꾸었다’

원작: 나쓰메 소세키 『몽십야』

작: 윤성호

연출: 전진모

단체: 프로젝트 모호(MOHO)

공연일시: 2014/08/28-08/30

공연장소: 두산아트센터 Space111

관극일시:2014/08/30 4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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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아트센터는 매 해마다 ‘두산아트랩’을 통해 만 40세 이하 예술가들의 새로운 실험을 지원해왔다. 실제로 성기웅, 김은성, 이경성을 비롯한 젊은 연극인들이 ‘두산아트랩’을 출발지점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공고히 해나가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이러한 ‘실험’의 무대는 완성도 측면보다 가능성 측면에서 충분히 주목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두산아트센터가 2014년 하반기 ‘두산아트랩’을 통해 선보인 작품들에 대한 가능성과 그 한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하반기 ‘두산아트랩’을 통해 관객을 만나는 작품은 ‘별일없이 화려했던’, ‘이런 꿈을 꾸었다’, ‘타토와 토’ 총 세 작품이다. 이 중 ‘별일없이 화려했던’과 ‘이런 꿈을 꾸었다’는 연극, ‘타토와 토’는 다원장르이다. 필자는 이 세 작품 중 연극작품만을 선정하여 소박한 평가를 내려 보고자 한다. 두 작품을 선정한데에는 연극이라는 장르 구분의 용이성도 작용했지만 두 젊은 창작집단이 공교롭게도 청춘이라는 공통 소재를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두 작품의 소재는 같았지만 연극 내에서 발견되는 청춘에 대한 시각과 이를 구현해내는 방식이 몹시 달라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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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파리드리의 ‘별일없이 화려했던’은 2013년 ‘프린지페스티벌’ 자유참가작으로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두산 빅보이 어워드’로 선정되었다. 이 작품의 부제목인 ‘오쿠다를 오리자1’에서 찾아볼 수 있듯 이 작품은 오쿠다 히데오식의 이야기를 히라타 오리자의 연극론에 기반 해 재구성해보고자 하는 시리즈물 중 하나이다. 이러한 발상이 몹시 흥미롭게 느껴졌다. 또한 앞서 언급된 두 작가의 흔적은 물론, 미약하게나마 이파리드리만의 감각이 발견된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 했다.

‘별일없이 화려했던’은 30대가 된 두 친구가 자신들의 ‘청춘을 돌아보는 것’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따라서 장면 구성도 그들이 처음 만난 19세의 하숙집에서 시작해 대학입학과 졸업, 그리고 취업과 결혼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누구나 겪었거나 겪고 있을, 또 겪어야할 20대 청년들의 성장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이러한 구성에 영화나 대중가요와 같은 대중 문화적 코드가 더해져 이를 경험한 관객들에게 추억을 제공하기까지 한다. 김경남, 정호진이라는 두 배우의 과장되지 않은 연기 자체도 ‘별일없이 화려했던’ 우리의 청춘의 모습, 혹은 삶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젊은 배우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데 성공했음은 부인할 길 없다.

두 친구의 20대는 찌질하고 우스꽝스러웠지만 이 공연에서 작가나 연출이 청춘을 대하는 시선은 부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청춘 되돌아보기’를 통해 그들의 건강한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미래를 향한 두 친구의 발걸음이 희망차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공연이 단지 청춘의 스케치에 머무르고 있다는 문제점도 발견되었다. 그들의 20대를 통해 그 청춘이 놓여있던 사회를 진단하고 이에 대한 대안이나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을 찾아보긴 힘들다. 그래서일까? 극장을 나올 때, 커다란 울림이나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

깔끔한 이야기 구성과 연출이 ‘별일없이 화려했던’의 장점이 되기도 했지만 신선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동시에 단점이었다. ‘두산아트랩’이 작가들의 실험실인 만큼 좀 더 파격적인 시도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이 못내 아쉬웠다.

 

반면 ‘이런 꿈을 꾸었다’에서는 청춘이 ‘뒤 돌아보는 것이 금기시된 일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앞을 향해 달려 나가야만 하는 청춘은 ‘돌아보는 순간 굳어버린다.’ 끊임없이 퇴보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청춘은 진정한 의미의 성장을 하지 못하고 잊혀져간다. 이러한 문제제기가 좋았다. 문제의 청춘은 결국 주인공의 무의식 속에서만 그 생명력을 확보하는데, 작가의 이러한 사유 또한 몹시 흥미롭다.

청춘을 대하는 작가의 사유는 극의 구조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작가는 깨진 거울을 통해서만 대상을 바라볼 수 있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이 깨진 거울 조각들을 나열하는 것이 극의 구조 자체가 되어 전체의 거울, 즉 공연을 이룬다. 그리고 완성된 거울을 통해 비로소 우리들의 청춘이라는 대상을 목도하게 된다. 이러한 시도 자체는 몹시 과감했으나 기술적인 측면에서 본의를 충분히 표현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공연에서 깨진 거울이란 주인궁의 파편화된 무의식이다. 극의 구조가 보편성과 개연성을 담아내기 위한 도구로 작동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단순한 무의식의 나열에 그치고 만다는 점이 몹시 아쉬웠다. 그 원인은 파편적인 장면들 사이의 긴밀한 내적 연결의 실패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관념적인 대사들로 관객을 설득하는 방식을 찾지 못했다. 언어가 관념적일수록 언어에는 구체적인 몸이 존재해야 한다. 이는 배우에 의해 만들어 진다. 따라서 배우들은 심도 있는 화술 연구를 통해 ‘이런 꿈을 꾸었다’의 감각적이고 깊은 언어를 구체화시켜주어야 한다. 그러나 작품 초반부에서부터 배우가 관객을 설득시키는 힘이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극이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극적 긴장감이 형성되긴 하지만 그 긴장감이 정점에 오르지 못한다는 한계점도 발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작가와 연출의 진지하고도 실험적인 접근을 높이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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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하반기 ‘두산아트랩’을 통해 만났던 이파리드리는 세련된 연출 감각과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력이 돋보였지만 젊은 세대의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정신이 부족했다. 반면, 프로젝트 모호의 경우, 진지하고 깊은 사유와 그 사유를 극의 구조로 연결시킨 실험성은 높이 사야 마땅하나 이러한 사유와 구조의 긴밀한 내적 연결에 실패했다. 이러한 장점을 살리되 단점을 극복하여, ‘두산아트랩’을 통해 배출된 실력 있는 연극인들의 뒤를 잇는 두 창작집단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완성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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