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 김태희

현실의 영역으로 내려온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

 

김태희

 

작 : 셰익스피어

각색 : 박근형

연출 : 박근형

단체 : 극단 골목길

공연일시 : 2014/7/11~27

공연장소 : 게릴라극장

관극일시 : 2014/7/23

 

올해는 셰익스피어 450주년이다. 덕분에 한동안 체홉 공연에 열을 올렸던 연극계가, 올해에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올리는 데 열중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기존의 축제들도 올해 유난히 활기를 띄고 있다. ‘450’이라는 숫자가 애매한건 사실이지만 어찌되었건 고전을 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셰익스피어 텍스트 중에서도 늘 같은 텍스트들이 반복되어 공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맥베스>, <리어왕>, <햄릿>이 그동안 주로 공연되는 텍스트였고 올해 <로미오와 줄리엣> 정도가 더 눈에 띌 뿐이다. 체홉에 비하면 셰익스피어의 경우 원작 텍스트를 많이 각색해서 올리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비슷한 양상을 되풀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미리 밝히자면, 박근형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동화 같은 사랑이 주는 교훈을 현실적인 감각으로 비틀어 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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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작품들을 살펴보면, 박근형 연출이 우리 근현대사에 관심(내지는 흥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70년 전>, <만주전선>에서 그는 우리 근현대사의 굴곡진 국면들을 무대 위로 소환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아픈 역사의 시간들은 박근형 연출 특유의 풍자적 유머와 만나 블랙코미디로 완성된다. 이런 관심의 그림자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해설자가 자주 등장한다. 해설자의 등장은 극에 대한 이입을 방해하고 거리를 두기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에도 해설자이자 극중 영주 역할을 맡은 인물이 등장한다. 막이 오르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서사들, 가령 두 가문의 오랜 반목의 역사가 해설자의 입을 통해 객석으로 전달된다. 서술자의 배치, 현대적 의상을 입은 배우들, 지나치게 엄숙한 조명들까지, 무대 연출은 그의 연극을 조금만 눈여겨 본 관객이라면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움직이다. 하지만 초반부 해설자의 해설 끝에 조금은 예상을 깨버리는 대사가 등장한다. 해설자는 두 가문의 반목을 설명하면서 “마치 남과 북처럼”, 이라는 대사를 흘린다. 세련되지 못하고 직설적인데다가 극이 진행되면서 희미해지는 대사이긴 하지만, 동시에 이 작품이 현실과 어떻게 맞닿게 될 것인지를 강력하게 예고하는 대사다.

사실상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이긴 하지만, 결말 때문에 아름다운 동화와 같은 이야기로 느껴진다. 오랜 시간을 서로 죽이며 싸워온 가문이 고작 한 연인의 사랑 때문에 화해를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꿈같은 이야기고 민담에나 나올법한 이야기다. 오늘날 감각으로 생각해본다면 줄리엣이 순진한 로미오를 꾀어냈다든가, 로미오가 줄리엣을 강제로 데려갔다든가, 서로를 헐뜯으며 죽일 듯이 싸우는 것이 더 현실적이지 않은가. 조금 과장된 상상력이긴 하지만, 이 작품에서 언급하고 있는 남과 북의 관계를 떠올려 봐도 오랜 반목을 거듭해 온 두 집단의 화해는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우린 한두 명이 죽어나가는 게 아니라 이미 수많은 목숨을 빼앗아간 전쟁을 거치지 않았는가. 오랜 시간 갈등을 일으킨 두 가문 사이의 화해란 역시 동화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시종일관 원작의 서사를 무난하게 따라가던 극은 마지막 순간 반전을 선보인다. 사랑을 지키려다가 목숨을 잃은 젊은 연인을 위하여, 살아남은 두 가문의 사람들이 모인다. 원작처럼 두 가문은 서로의 잘못을 빌고 화해의 눈물을 흘리는데, 이를 흡족히 여긴 영주가 퇴장하자 기다렸다는 듯 끔찍한 살육이 시작된다. 무대 위에 있었던 일곱 명 남짓의 사람들이 순식간에 서로를 찌르고 고통스럽게 죽어간다. 여기까지가 현실적인 미움과 증오의 투사라면 그 다음 장면은 그 이후의 이야기다.

모두가 죽고 난 뒤 로미오와 줄리엣은 용암이 흐르는 강을 건넌다. 두 손을 꼭 잡은 젊은 연인은 다리가, 가슴이 뜨거운 마그마에 닿을 때 까지 걷고 또 걷는다. 그들이 헤치고 가는 뜨거운 용암은 모든 미움과 증오의 부산물들을 휩쓸고 가버리고, 이제 남는 것은 자유를 얻은 젊은 영혼이다. 비록 재가 될지라도 말이다.

미움과 증오는 끝이 없다. 그것은 단순히 사랑만으로 해결 될 문제도 아니고 전천후의 변화가 따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기도하다. 하지만 동시에 상당한 희생을 필요로 하는 것일지라도, 용서와 화해가 중요한 가치임은 분명하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박근형 연출은 그만의 유머감각을 발휘한다. 고전에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유머들이 작품 곳곳에서 돌출한다. 가장 압권은 단연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덤을 찾아가는 장면이었다. 무덤을 지키는 무덤지기들은, 로미오를 쉽사리 무덤 안으로 들여보내주지 않으려고 한다. 절망에 빠져 있는 로미오를 대신해, 그의 친구 벤볼리오가 그들에게 돈을 건넨다. 받지 않으려는 무덤지기들과 돈이 정말 많아서 나눠 쓰고 싶다는 벤볼리오의 어이없는 실랑이는, 현실 속의 상황들을 여실히 투사한다. 무대 위에는 2014년의 한국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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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도 좋고, 체홉도 좋다. 물론 고전을 고전 그대로 공연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고전이 괜히 고전은 아니다. 요컨대 흔히 정전으로 꼽히는 작품의 깊이는 다층적인 것이기에, 그 결 하나하나에서 찾아낼 수 있는 현대적 의미가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고전을 현대화한 모범적인 사례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골목길의 색깔이 잘 묻어나는 블랙코미디로 완성되긴 했지만, 이 작품에도 전형적인 설정 덕분에 쉽사리 예상되거나 다듬어져야 할 대목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고전을 현실적인 시각으로 비틀어 보는 자세는 의미 있는 시도다. 이런 과정의 반복을 통해 고전의 내용도 분명 풍성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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