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전선/ 이주영

사쿠라 아이들의 신념 – <만주전선>

 

이주영(연극평론가)

 

작/연출 : 박근형

드라마터그 : 김윤정

단체 : 극단 골목길

공연일시 : 2014/06/13-29

공연장소 : 소극장 시월

관극일시 : 2014/06/20

일제말기, 고도의 국방국가 건설을 위한 제국일본의 움직임은 광기에 다름 아니었다. 전쟁이 본격화됨에 따라 제국으로서의 완전체를 위해 일제는 조선, 만주, 남방 등 감시와 관리의 영토를 확장해갔다. 멸사봉공(滅私奉公) 아래 일제의 자장 안에서 작동하는 모든 가치들은 제국일본으로의 흡수를 강요당했고, 이 강요에는 외지/지방으로 분류된, 개인성이 소거된 국민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특히 조선인에 대한 일제의 폭력은 주도면밀했다. 내선일체의 주창으로 조선인들은 신민으로서 제국이 제출한 의무를 마땅히 이행해야 했고 이 의무에는 식민/피식민의 약분불가능성, 동화/차별의 논리가 존재했다. 일제가 역설한 동화는 포즈이자 차별로 인한 식민지의 균열을 봉합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만주전선>(박근형 작,연출)은 일제가 주창한 동화의 포즈에 함몰된, 일본인이 되고자 하는 1940년대에 만주에 사는 조선인 여섯 명의 이야기다. 이들은 일제의 신민화 정책 이면에 깔린 폭력성과 잔혹성을 보지 못한 채, 오족협화(五族協和), 왕도낙토(王道樂土)로 이상화된 만주국에서 조선인이지만 일본인이 되기를 꿈꾼다. 하지만 주지했듯 일제의 동화정책은 허상이었다. 일제가 원한 건, 일본인으로 동화된 조선인이 아닌 그들의 말을 잘 듣는 2등 국민이었다. 2등 국민이 되기 위한 이들의 자격은 충분하다. 여섯 명의 조선인들은 제국일본이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혹은 불온함으로 비춰지는 야만∙미개의 식민지민이 아닌, 의사, 문학자, 신학자, 군인 등 제국이 구축한 제도 안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이다.

이들의 철저히 내면화된 친일 의식은 조선인이라는 종족성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기 위함이다. 이들은 이 공포감을 떨쳐내기 위해 조선을 타자화함으로써 극복한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지 못하는 나약함과 나태함”으로 점철된 조선인. 즉 일본이 조작한 스테레오타입화된 조선인 표상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자신들을 나약함과 나태함으로 그려진 조선인들과는 유리된 제국의 신민으로 분류하고, 다시 제국의 프레임 안으로 안착한다. 이들은 믿었다. 자신들이 일본인이 될 수 있을 거란 사실을. 그러나 이들이 조선인으로 호명되는 순간, 이들의 공포는 현실이 된다.

직장에서 일본인 상사와 불륜관계를 맺은 요시에. 상사의 부인에게 모든 사실이 발각되자, 직장 상사는 그녀를 외면한다. 문제는 외면이 아니다. 이제부터 그녀가 요시에가 아닌 정옥순, 즉 조선인으로 호명된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부정했던 조선이란 종족성은 이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난다. 이제 그녀는 일본인이 아닌, 피지배자인 조선인이다. 동화정책에 대한 제국의 태도가 이러하다. 허상인 동화는 결정적 순간에 동화를 차이로, 그리고 이 차이를 차별로 이동시킨다. 이 사실을 요시에는, 그리고 여섯 명의 조선인들은 몰랐던 것이다. 아니, 그들은 조선인이란 사실을 은폐시키기 위해, 완벽한 일본인이 되기 위해 그토록 발악했던지 모른다.

제국의 비열한 패는 모두 드러났다. 이제 조선인들은 이에 대처할 행동을 강구해야 한다. 이들은 식민자와 피식민자 사이의 낙차와 균열을 목도했다. 그러나 이 균열은 애석하게도 이들의 의식을 일본으로 향하게 함으로써 봉합된다. 저항은 없고, 제국에 대한 맹신만이 있을 뿐이다. 이들에게 제국일본은 국가이자 신앙인 셈이다. 요시에는 일본인 상사의 애를 임신했다. 낙태는 부정되고 출산이 선택된다. 일본인다운 일본인으로 키우기 위해, 차별이 아닌 동화를 위해 요시에의 아이는 출산을 기다린다. 그리고 이 아이는 사쿠라 문양을 몸에 새긴 채 세상 밖으로 나온다.

사쿠라 문양의 아이는 여전히 지금도 이곳에 존재하는 듯하다. <만주전선>이 의도하지는 않았겠으나, 절묘한 타이밍에 모 총리후보가 그릇된 식민사관의 발언으로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분노케 했다. 작가의 선경지명은 정확했다. 그래서 작품의 태도는 분명하다. 여전히 이와 같은 사쿠라의 아이들이 현 시대에 존재하고 있음을 경계한다. 그래서인지 작품은 몰입을 차단하고, 현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극 중간 중간 가네다의 내레이션을 통해 환기시킨다. 이 아이가 잘 자랄 수 있었던 그 역사성과 작업들에 대해서 말이다. 반면 문제의식이 분명하기에 작품이 놓치고 간 것도 분명 존재한다. 지엽적이긴 하나 혼인이 사치라는 대사는 당시의 시대상과 맞지 않다. 성대하고 화려한 결혼식이 부정되었던 것이지, 당시 혼인 자체는 제국의 입장에서 권장사항이었다. 혼인은 출산으로 이어지고, 출산된 아이들은 전쟁 병사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만주란 곳을 작품의 배경으로 끌고 왔으나, 이상화된 공간 외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점도 아쉽다. 만주는 조선인에게 일본인다운 일본인은 물론이거니와 만주의 선주민들과의 권력관계로 인해 2등 국민도 되기 어려웠던 공간이었다. 그만큼 만주는 조선인들에게 차별의 차별이 존재했던 공간이었다. 창작 과정에서 ‘제국-조선-만주’ 사이의 긴장 관계를 고려했다면 서사와 문제의식의 층위가 더욱 풍성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주전선>의 작가이자 연출인 박근형은 <70년전>에 이어 다시 한 번 조선의 근대를 무대화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문제의식과 언어는 직설적이다. 은유라고 하기에는 무대에서의 그의 주장은 매우 명백히 읽힌다. 아직도 대한민국 사회가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세련된 은유를 사용하지 못하는 작가의 한계 때문일까. 작가의 한계다. 그리고 이는 필자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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