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다른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 양근애

불행을 살아가게 하는 동화

<색다른 이야기 읽기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

 

양근애(연극평론가)

 

작 : 최치언

연출 : 이우천

공연일시 : 2014/09/18-27

공연장소 : 이해랑예술극장

관극일시 : 2014/09/19 pm 8:00, 09/27 pm 4:00

 

 

신장병을 앓던 엄마가 손톱으로 벽을 긁어가며 고통스럽게 죽어간 후, 하늘과 맞닿은 옥탑방에서 홀로 살아가는 청년, 춘복이 있다. 엄마가 죽고 난 후 춘복에게는 불가해한 신체적인 증상이 나타난다. 온몸을 뒤틀며 겨우 움직이고 일그러진 표정으로 침을 흘리는, 타인의 눈으로 보기에 뇌성마비 환자의 고통 그 자체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춘복의 불행을 살아가게 하는 행위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야기를 짓는 일이다. 춘복은 그것을 동화라고 부른다. 춘복이 써내려가는 동화에는 왕자와 공주와 마녀와 천사가 나오지만 이야기는 구중중하고 해피엔딩은커녕 비극만이 예견될 뿐이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박수미라는 여자가 찾아온다. 춘복은 처음 보는 그 여자를 애자라고 부르며 그녀를 혼란스럽게 한다. 여기는 왕자가 갇혀 있는 성탑이라고, 마녀가 십자가에 부딪쳤다고, 당신은 여기에 있으니 애자씨라고, 내 뺨을 때려달라고. 사실 박수미는 죽어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춘복의 콩팥을 떼러 왔다. 춘복은 그것을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체하며 여자를 자신의 동화 속으로 안내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계속 된다. 무엇이 동화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선명하게 가늠되지 않는 상태로, 아니 어쩌면 현실에서도 동화 속에서도 결국 불행이 스스로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만 선명할 뿐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 상태로, 얼마간은 모두 뒤틀리고 일그러진 채로.

2014 공연예술 창작산실 지원사업 우수작품제작지원 선정작 첫 번째 작품인 <색다른 이야기 읽기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애자의 대사대로 “어쩔 수 없는 벽 앞에 어쩔 수 없이 서 있는” 불행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춘복이 써내려가는 동화와 춘복과 얽히게 된 사람들의 불행을 교차시키고 두 세계를 겹쳐 읽게 하면서 ‘색다른 이야기 읽기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라는 제목을 붙였다. 춘복, 그리고 애자가 동화를 쓰다가 결국 동화 그 자체가 되었듯이 이 극을 보는 사람들도 결국 알게 되리라 믿은 것일까. 우리가 삶을 읽고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곧 삶이라는 것을. 동시에 우리가 보고 느낀 것은 타인의 삶이 아니라 그저 한 편의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춘복이 쓰는 동화는 세계의 은유이자 춘복을 둘러싼 현실을 재구성하는 무의식이다. 마녀가 되어버린 이모가 있고 불바다가 되어버린 서울에서 굴뚝을 찾아다니는 이모부가 있고 백수청년으로 냉장고에 웅크리고 들어가 있는 사촌도 있지만 그들은 동화 속에서나 존재할 뿐, 춘복의 생활을 개선시키기 위한 어떠한 개입도 하지 못한다. 춘복은 이 세계의 불행을 ‘마법’에 걸렸다고 표현한다. 그가 하루아침에 뇌성마비 환자가 된 것이 마법에 걸린 것이듯, 달수의 여동생인 영희의 병도, 애자의 아들도 마법에 걸린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선한 자’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동화를 써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애자는 속다짐을 해가며 일부러 이악스럽게 굴지만 어느새 춘복의 동화를 읽으며 동화의 세계로 걸어 들어간다. 선한 자는 여기에 올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릴 수밖에 없는, 불행의 자가증식과 원환 속에서 춘복도 애자도 결국 동화를 붙잡을 수밖에 없다.

연극은 이 이야기를 묵직하게 그러나 탁하지 않게 그려내기 위해 노력한 듯 보인다. 춘복 역의 정우준과 애자 역의 이지하는 이들의 불행을 통속화하지 않는다. 애자의 내면이 현실과 뒤섞이는 부분이나 춘복이 영희의 마법을 풀어주기 위해 춤을 추는 장면은 강렬하고 아름답다. 최치언의 전작들이 그랬듯 이 연극에서도 현실과 환상이 서로를 비추고 개입하고 방해하고 뒤섞이지만 <색다른 이야기 읽기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에는 전작에서 찾아보기 힘든 온기 같은 것이 느껴진다. 선한 자는 쉽게 찾아오지 않고 ‘검은 남자’만이 잔인한 대가를 집행하기 위해 찾아오는 것이 삶이라 해도, 스스로 선한 자가 되어 “고통 속에서 간절히 바라면서 울면서 사는 게 착하게 사는 거”라는 믿음이 이 연극에 있다. 관객들이 공감하며 울고 웃을 자리가 마련되었다는 것이 이 연극의 미덕이다. 제목이 호명한 그 사람들이라면 이 연극에서 춘복과 애자의 불행에 편견을 입히지 않고 그들의 ‘살아감’ 자체를 볼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고립된 옥탑방의 바깥이자 극장 바깥의 현실을 직시하게 해야 할 동화 부분이 날카롭게 드러나지 않은 것과 이 연극에 딱 들어맞지 않고 시선이 분산되는 무대 활용이 아쉬웠지만 춘복과 애자가 써내려간 이야기가 그들만의 동화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마치 마법에 걸린 것만 같은 이 세계의 불행을 끝까지 지켜보게 한 힘이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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