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아시안게임 개막식에 대한 한 연극인의 소회/오세곤

(제48호 편집인의 글)

인천 아시안게임 개막식에 대한 한 연극인의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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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드라마틱(dramatic)”이라는 말을 한다. 무슨 뜻인가? 쉽게 “극적(劇的)”이라 하면 될 것이다. 극은 특별한 것이다. 아무리 일상에서 쉬이 볼 수 있는 일도 극으로 선택되고 나면 특별해진다. 그러나 그 선택은 대단히 전문적인 식견과 능력을 필요로 한다. 물론 선택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선택한 재료를 어떻게 가공해서 펼쳐놓느냐에 따라 보는 이에게 결코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재미와 감동, 나아가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도 하고, 아니면 지리멸렬 허전함과 지루함으로 시간 낭비 정신 낭비만 시키기도 한다.

인천아시안게임 개막식을 보았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지만 끝내 드라마는 찾을 수 없다. 선택한 재료도 쉽게 수긍이 안 가고 전개되는 그림도 빈약하다. 도대체 무엇을 왜 보여주려는지 의도가 안 보인다. 내로라하는 영화감독 둘이 총지휘를 맡았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초라한 결과이다.

최초의 철도, 우정국, 우리가 그걸 무작정 자랑할 수 있을까? 아마 많은 국민들이 고개를 갸우뚱했을 것이다. 물론 인천공항은 우리의 힘으로 일군 세계적 자랑거리일 수도 있다. 그래서 전세계가 모여 하나 되는 만남과 화합의 장으로 인천을 내세울 수는 있다. 그러나 비운의 비류왕자는 신중했어야 했다. 실패조차도 현재를 가능하게 한 중요한 역사로 부각시키려면 더 세심한 고민과 수준 높은 극화(劇化)가 필요했다. 심청도 그렇다. 내용을 아는 우리만 관객이 아니다. 그런데 불쑥 효녀 심청을 비류 왕자와 함께 각국의 손님을 맞이하는 인천의 상징으로 내세웠다.

물론 대부분 설명이 따라붙었다. 그러니 내용을 이해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좋은 드라마는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보고 들으며 느끼고 감동하고 즐기는 것이 극이고 드라마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장내 멘트건 TV의 해설이건 모두 군더더기일 뿐이다. 다만 문제는 그런 설명이 없다면 과연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스포츠 행사 개막식에 웬 드라마 타령이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드라마는 행사를 빛내는 최고의 틀거리이다. 세계적인 행사에 유명 연출가들이 나서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아시안게임 개막식의 틀거리는 허약했다. 예산 부족 얘기도 들리고 주최 측과의 불협화음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그런 것은 부차적인 걸림돌이다. 많은 예산을 쏟아 붓고 전폭적인 협조와 지원이 있어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핵심은 재료를 찾는 혜안이고 주어진 조건 안에서 그걸 엮어내는 극화 능력이다.

그런데 그 두 가지 모두 불만스러웠다. 88올림픽의 굴렁쇠를 이번에는 체육 꿈나무 소녀가 굴리고 그 굴렁쇠를 배우 장동건이 받아 돌려주고, 비류 왕자와 심청이 만나고, 그 두 주인공에게 우체부가 편지를 전달하고, 우체부 복장의 무용수들이 안무를 펼치고, 철도와 기차, 그리고 비행기의 형상을 그려내고, 이윽고 대형 배가 등장하여 무대가 되고, 그 무대에서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관객, 선수들과 함께 말춤을 추는 것으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한 마디로 콘셉트가 없다. 계속 공부를 시켜주는 설명은 고맙지 않고 짜증이 난다. 결국 재미도 감동도 아름다움도 이루지 못 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영화가 이미 세계적으로 성장했고 한류 드라마는 중요한 수출 품목이다. 물론 연극의 가시적 성과는 그에 아직 못 미치지만 영화와 TV 드라마가 우리 연극의 극화 역량으로부터 상당한 도움을 받은 것 또한 부정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런 극화 역량이 충분히 모여 발휘되지 못한 데 있을 것이다. 그게 주최 측의 안일한 판단 때문인지, 이번에 지휘를 맡은 임권택과 장진, 두 감독의 잘못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출연진을 보면 알 수 있듯 여러 대학 연극학과와 무용학과 학생들이 동원되었다. 그런데 그들을 이끄는 데 있어 여러 무용 전문가들이 안무자로 참여한 것은 맞지만 정작 극화를 위하여 연극 전문가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 같지는 않았다.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나 대단히 정교하고 세련된 드라마가 필요하고 그렇다면 많은 전문연극인들이 참여하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연극계의 반성도 필요하다. 국가적 행사에 연극인들이 느끼고 행해야 할 할 책무가 있건만 그저 남의 일 보듯 하고 말았던 것이다. 선택되지 않은 것에 대해 잠시 섭섭해 하고는 이내 우리와는 상관없다 넘겨버렸던 것이다. 선택에 대해서도 의견 개진이 있어야 하고, 선택된 뒤 올바르게 갈지에 대해서도 계속 질문을 던졌어야 했다. 대외적으로 부실한 결과물을 내놓은 마당에 그건 우리 잘못이 아니라고 항변한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차피 한 나라의 극화 능력을 따질 때 가장 먼저 연극을 생각할 것은 당연할 텐데 말이다.

비록 힘들고 열악한 환경에서 연극을 하지만 우리는 예술가이다. 우월감을 갖자는 게 아니라 일반인들과는 다른 책임감을 지녀야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 모두 특히 우리의 능력과 관련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 방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발언하고 행동하는 공인으로서의 연극인들이 될 것을 제안한다.

2014년 10월 1일

‘오늘의 서울연극’ 편집인 오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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