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수/ 김창화

 

조선 최고의 스토리텔러 “전기수”

김창화 (상명대 연극학과 교수)

 

작 : 박윤희

연출 : 이돈용

단체 : 극단 목수

공연일시 : 2014.10.24. – 26, 11.19. – 12.7.

공연장소 : 국립극장 별오름, 대학로 시월소극장

관극 일시 : 2014년 10월 26일 오후 3시

 

 

 

얼마 전, 어디선가 읽었던 기억이 있는 희곡이 극단 ‘목수’에 의해 공연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국립 별오름 극장에서 단 3일간. 물론 11월 19일부터 12월 7일까지 대학로 시월소극장에서 연장공연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왠지 별오름에서 그 공연을 봐야 할 것 같아, 부지런히 마지막 공연을 찾았다. 과거에 읽었던 기억이 있었기에, 공연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 매우 궁금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조선 최고의 스토리텔러 “전기수”는 별오름극장이 가장 적절한 공연장이었다. 물론 시월소극장도 나쁘진 않겠지만, 그래도 별오름극장이 이 공연에 더 어울렸다.

“전기수(傳奇搜)”는 ‘기이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노인’이라는 의미로, 조선 후기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직업적인 ‘스토리텔러’였다. 물론 당시에는 소설을 읽어주는 일종의 이야기꾼이지만, 최근 ‘이야기 산업’이 차세대 문화산업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희곡 ‘전기수’에 대한 관심과 공연에 대한 기대가 매우 컸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었다.

지난 10년 이상, 정부 지원을 거의 받지 않고, 꾸준하게 연극을 해 온, 극단 ‘목수’의 이돈용 연출과 함께, 희곡 창작과 연출, 연기를 해 온, 박윤희의 희곡 “전기수”와 ‘동하’라는 예명으로 공연에서 ‘전기수’역을 연기하는 배우가 바로 작가인 박윤희였다는 사실을 공연이 끝난 다음, 연출자인 이돈용에게 들었을 때 사실 충격이었다. 이 이야기만으로도, 공연을 본 보람이 넘쳤다.

‘전기수’라는 형식을 빌려서, 현재의 ‘스토리텔러’가 과거 자신의 운명을 바꾼 인물에게 복수를 하는 마지막 10분간의 클라이맥스도 물론 흥미로웠지만, 단순한 낭독의 형식이 아닌, 탈춤, 판소리, 인형극, 풍물의 기법을 동원해서, 이야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액자형’ 공연구조가 더 재미있었다.

특히 심봉사와 곽씨 부인, 뺑덕이의 이야기를 행동으로 재현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매우 신선하면서도, 감동의 폭이 크게 다가왔다.

진부한 이야기를, 간결한 표현법으로, 그리고 이야기속의 이야기로부터, 지금의 이야기를 발전시켜 나가는 점층적 스토리텔링의 방식이 공연의 문법과 어우러지면서, “전기수”의 공연은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면에서 입체로 형성되는 이야기의 증폭이 가능한 공연이 되었다.

공연에서 ‘전기수’역을 맡은 배우 동하와 작가인 박윤희가 동일 인물이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지만, 배우 동하의 연기도 대단했다. 설득력 있는 음성과 유연한 움직임, 절제와 힘이 잘 어우러진 연기에 노래까지 더해지면서, 매우 고급스러운 엔터테이너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했으며, 집중력과 진지함, 강단과 유연함의 조화로운 연기가 정말 훌륭했다.

무대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숨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영화나 방송드라마가 이 희곡을 소재로, 확장된 이야기의 형식으로 표현해 줄 수 있다면, 대단히 비싼 문화콘텐츠로 발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아이디어와 구상이 처음 희곡을 읽었을 때에는, 너무나 엄청난 분량이라서, 무대 위에서의 재현이  불가능 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졌는데, 이돈용연출의 공연을 보고나니, 그 많은 이야기가 무대라는 공간에 다 담을 수 있는 이야기이며, 무대 밖에서 펼쳐도 충분히 표현이 가능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야기가 지닌 엄청난 폭과 양, 층위와 에너지에 다시 한 번 더 놀랐다. 극단 ‘목수’가 감당해야 할 무대 위에서의 표현은 이번 공연으로 충분했으며, 이렇게 좋은 ‘콘텐츠’를 눈여겨보고, 활용할 수 있는 제작자가 빨리 나타나, 이 작품의 아이디어와 구성을 더 크게, 더 깊게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 진다면, 한국의 문화는 정말 융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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