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마치후덴/ 최세아

 <코마치후덴>

 

최 세 아

 

원작 : 오타 쇼고

연출 : 이윤택

단체 : 연희단거리패

번역 : 심지연, 김세일

공연일시 : 2014년 9월 29일~2014년 10월 2일

공연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관극일시 : 2014년 9월 29일

일본 극작가 오타 쇼고의 <코마치후덴>은 일본의 고대 전통 설화인 ‘절세미인 코마치’를 주연으로 등장시킨 작품이다. 문헌상에 여류시인으로 남아있는 코마치는 시(詩)를 통해 사랑을 열망하고 노쇠해가는 인생을 탄식하거나 삶의 덧없음을 노래한다. 이를 읽어본 사람들은 코마치에 대해서 다양한 여성상을 품게 되고, 이러한 이미지는 다양한 전설을 탄생시키면서 많은 작품에 차용된다. 오타 쇼고는 <코마치후덴>에서 다양한 코마코의 이미지 중, 비록 신체적인 나이는 노인에 해당하지만 여전히 사랑을 갈망하는 여인의 모습을 다룬다. 죽음을 목전에 둔 코마코는 이승에서 자신이 살 수 있는 날이 3일 밖에 남지 않았다고 선고를 받고도 꿈속에서 젊은 코마치와 조우하면서 과거에 행복했던 날들을 회상하고, 꿈을 꾼다.

 

우리는 대중매체를 통해서 죽음 직전에 놓인 사람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그들이 마지막까지 하는 것은 지난 살아온 날들에 대한 회고이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과거가 그들의 기억 안에서 파노라마처럼 빠르게 흘러간다. 오래된 클리세로 시청자 혹은 관객들은 이 장면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인다. 이러한 연출기법은 흔히 영상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연극 무대인 <코마치후덴>에서도 시도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유리문이 미끄러져 오고, 밥상이 땅바닥을 기어서 행렬처럼 다가오는 장면은 늙은 코마코의 기억 속에서 여러 가지의 과거의 일들이 흘러가는 것을, 세트(다다미 넉장 반의 노파의 방)가 완성될 때에는 그 흘러가던 많은 과거 중 코마코가 기억하고 싶은, 가장 붙잡고 싶은 추억에서 멈춰지는 것이 표현됐다. 작가와 연출의 상상력이 빛나는 지점이었다.

 

이 외에도 삶과 죽음, 현실과 비현실(꿈)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다리기 하는 것 같은 무대 공간 연출은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노파에 방에 앉아서 꿈을 꾸는 늙은 코마코는 현실 속에 존재하고 있으며 꿈속의 젊은 코마치는 무대 중앙에서 움직인다. 이 둘은 소통되는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각자 자신이 처해있는 현실에서의 필요한 대사를 할 뿐이다. 젊은 코마치는 과거의 인물과 나누는 대사를, 늙은 코마코는 그 장면을 떠올리며 자신의 욕망이 담긴 내면의 대사를 툭툭 던지고, 읊조린다. 그러나 공연이 진행되면서 현실과 비현실(꿈)의 경계는 점차 무너지기 시작한다. 경계의 무너짐은 늙은 코마코의 죽음 이후로 나타나고 있다. 가면을 쓴 채,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다미 넉장 반의 공간에 향을 피우기 시작하면 앞에서 만들어졌던 노파의 방은 그들로 인하여 다시 분해되고 소멸해 버린다. 죽음과 함께 현실과 비현실의 공간 구분이 사라지면 늙은 코바코와 젊은 코마치는 서로 만나서 우주로 합일된다. 그 과정에서도 이 둘은 늘 꿈꿔오던 사랑을 또다시 갈망하고, 이웃집 남자를 그린다. 코마치와 이웃집 남자가 키스를 하는 장면에서는 붉은 실이 입과 입을 거치게 되는데 이것은 이 둘의 관계가 중국 설화에서 등장하는 월하노인의 ‘운명의 붉은 실’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아니, 코바코는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현실에서 미진했던 사랑을, 상상 속에서 불러낸 남자를 통하여 한평생 함께하는 인연이고 사랑이었음을 믿고 싶었던 것이다.

 

꿈속이기 때문에 서사 구조에서 비논리적인 부분도 많았다. 갑자기 삿짱(사치코)이 등장하여 개입하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늙어버린 자신을 보며 인생의 덧없음에 눈물을 흘리는 삿짱, 나이에 상관없이 여성성을 보여주는 그녀의 귀엽고 동그란 배, 마지막으로 죽으러 가는 삿짱의 모습을 통해 관객에게 무엇을 보여주려고 했는지에 대한 의도는 확실하다. 그러나 삿짱의 등장과 퇴장하는 시점이 뜬금없다. 이러한 인물의 개입은 꿈속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현실에서 우리가 꾸는 꿈 자체가 비논리적이기 때문이다. 꿈인데도 불구하고 논리적인 상황만 전개된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이 작품에서 쓰인 음악은 인물들의 감정을 오롯이 담겨 있다. 젊은 코마치가 소위와 데이트를 할 때, 늙은 코마코는 축음기에서 ‘장밋빛 인생’ 노래를 튼다. 연인과의 사랑의 감정이 녹아있는 장밋빛 인생의 가사를 통해 인물의 감정을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정보를 주고 있다. 이는 관객들에게 시각적인 것 외에 청각적인 사유를 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준다.

 

이윤택 연출은 <코마치후덴>을 통해 공연장의 시간을 느리게 만들고, 절제의 미학을 보여준다. 운동회를 제외한 인물들의 걸음걸이, 들려오는 대사가 모두 느리다. 늙은 코마코의 울림이 녹음된 느린 대사는 몽환적인 느낌마저 들게 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함께 꿈속을 거니는 기분을 갖게 했다. <코마치후덴>은 대사를 최소한으로 하여 배우들의 표정과 몸, 걸음걸이, 음악 등으로 극을 진행시키고 있다. 인물들이 입을 열지 않아도 몸을 통해 보여주는 움직임은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한 편의 시(詩)를 쓰는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시(詩)적인 표현이 많은 대사와 더불어 이러한 배우들의 움직임은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한 편의 움직이는 시화(詩畵)를 보고 있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연극의 미학적 완성도가 높은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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