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극장으로서 한팩 운영의 합리화를 기대하며 / 오세곤

(제52호 편집인의 글)

공공극장으로서 한팩 운영의 합리화를 기대하며

서울연극제 한팩 대관 탈락 사태를 놓고 여전히 시끄럽다. 지난 연말 문예위 위원장의 유감 표명과 일부 대관 허용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듯하더니 한팩에 대한 서울연극협회의 고소취하 건으로 다시 꼬이는 것 같다.

4가지 요구 사항 중 책임자 문책과 향후 재발 방지에 대한 보장이 없는 상태에서 사태 발생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밝혀줄 고소의 취하는 불가하다는 서협 측의 입장과 고소 취하가 모든 것의 전제라며 완강한 태도를 보이는 문예위 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협 회장이 보낸 메일 질문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입장 표명과 그에 대한 서협의 반박으로 끝없이 가열될 것 같던 공방이 전격적인 회동에 이은 화해 선언으로 이어지면서 적어도 더 이상 갈등의 골이 깊어지지는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들의 입장 표명 내용 중에 있었던 서울연극제에 대한 평가와 대관 탈락 결과의 연결은 계속하여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이 무엇일까? 그것은 크게 보자면 예술지원 정책일 수도 있고, 더 크게 보자면 정부와 민간 전문 분야 간의 관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직접적으로는 공공극장의 역할과 운영에 대한 합의가 없다는 문제일 것이다.

공공극장은 상대적으로 공연 조건이 양호하다. 특히 대학로에 위치한 한팩의 극장들은 연극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공연장이다. 그러니 공급 양에 비해 대관하려는 단체가 많을 수밖에 없다. 까다로운 대관 심의가 불가피한 이유이다.

수요가 많으면 공급을 늘려야 한다. 그런데 이번 한팩 정기대관 심의 결과에서 보듯 4개 극장의 1460일(365일*4개 극장) 중 740일만 대관이 되고 나머지 720일은 어떤 용도인지 알 수 없는 상태이다. 아마도 한팩이 직접 주최하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와 마로니에 축제, 그리고 여러 기획 작품을 위하여 남겨 놓은 듯한데, 탈락한 단체들로서는 참으로 화가 날 법한 대목이다.

물론 예술성 등을 토대로 엄격한 심사를 했으니 탈락은 각 단체들의 능력이나 노력 부족의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그렇게 주장할 정도로 정확한 예술 평가 기준을 가지고 있는지 따져볼 일이다. 어차피 절대평가보다는 상대평가로 이루어지는 게 공공극장의 대관 심사라 할 때 심의결과를 기준으로 갈리는 예술성 인정 여부는 참으로 가혹하다.

흔히 극단이 너무 많다거나, 아무나 너무 쉽게 극단을 만든다거나, 공연이 너무 많다거나 하는 말들을 한다. 그 말에서는 자신이나 자신의 극단은 존재 가치가 있고 다른 극단은 그렇지 않다는 묘한 우월감마저 읽혀진다.

그런데 이런 말들이 연극계를 넘어 관련 공무원이나 정부 산하기관 직원들한테서도 나온다 할 때 그 위험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문화융성을 국정과제로 선언한 이 정부에서 과연 연극이 국민들에게 얼마나 필요하며 그래서 어느 정도의 극단과 공연이 적당한지 따져보지도 않은 채 막연하게 형성된 선입견은 올바른 예술지원을 가로막는다.

이번 사태 과정에서 한팩이 새로이 대학로 소재 극장들을 임대하여 공공극장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이 알려졌다. 앞서 수요가 많으면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과 맞아떨어진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정책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누군가 자문을 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드러나지 않았으니 밀실 행정이라는 비난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알려진 바로는 동숭아트센터, 아트온 시어터 등, 6개 극장을 2년 동안 임대했고 거기 26억원(?) 정도의 예산이 투입되는 모양이다. 극장 경영이 만만치 않은 현실에서 극장주에 대한 특혜가 아니냐는 지적은 차치하고라도 이 사업이 연극계에 미칠 영향에 대하여 충분히 살펴보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은 이미 진행되어 취소하거나 크게 변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합리적 운영 방식을 찾아 연극계에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자면 한팩으로 대표되는 우리 공공극장 운영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명동예술극장은 이미 제작극장으로 자리잡았다. 국립극장과 세종문화회관은 산하단체들의 공연을 우선으로 할 수밖에 없다.

결국 서울에서 일반 단체들이 대관할 수 있는 공공극장은 주로 한팩의 극장들이다. 그런데 심의 규정도 애매하고 과정도 불투명하다. 그래서 요행을 바라듯 신청을 하고 탈락하면 열등감에 싸이며 자포자기한다. 그리고는 어떤 방향으로 노력해야 할지도 모르는 채 한 해를 보내고 다음 해 다시 똑같은 도전과 절망을 반복한다.

우리나라 연극의 질적 향상은 한팩이 나서서 책임질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되도록 많은 단체들에 골고루 대관 기회를 주고 그 단체들의 작품이 기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옳다. 그래서 한 가지만 우수한 요소가 있어도 나머지가 지원됨으로써 능히 훌륭한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는 예술지원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가능한 한 공급을 늘리고, 최소 요건만 갖추면 대관을 허용해야 하며, 부득이 심의가 필요하다면 그 기준과 과정에 대해 철저히 공개하야 하고, 일단 대관이 된 단체에 대하여 어떤 부분이 약한지 세심하게 살펴 지원해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특히 홍보 마케팅 부분의 취약점을 보완해 준다면 그냥 진흙 속에 묻히고 말 수많은 보석들이 빛을 보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연극에서 배우와 스태프는 각기 할 일이 다르다. 무대에 나서는 배우가 편하게 기량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안 보이는 곳에서 일하는 게 스태프의 자세이다. 공공극장은 그런 스태프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연극만 돋보이고 공공극장과 거기 종사자들은 잘 안 보여서 불만이라면 그건 올바른 스태프의 자세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한팩이 연극의 발전을 진정으로 기뻐하며 묵묵히 봉사하는 공공극장의 모델로 재탄생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2015년 2월 2일

‘오늘의 서울연극’ 편집인 오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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