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과 명동예술극장의 통합/ 우상전

국립극단과 명동예술극장의 통합

우 상전 (연극배우)

 

서울연극제 ‘대관탈락사태’이후 연극계의 젊은 연극인들 사이에 ‘공공기관과 공공극장’에 많은 관심이 쏠려 있다. “우리가 공공극장에게 왜 간섭을 받아야 하는가?”이게 논의의 핵심인 것 같다.
“우리는 공공성에서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왜? 당연히 우리는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는 예술가니까!” 이런 인식이 배경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과연 연극계가 이런 발언을 할 처지에 있을까? 이 글을 쓰는 와중에 국립극단과 명동예술극장이 통합된다는 발표가 있었다. 지금 온갖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무슨 이유인지 연극판은 다양성은커녕 외려 획일적인 사고와 인식에 짓눌리는 세상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또 소극장을 건물주가 폐쇄한다고 나서니 시위를 하자고 한다. 글쎄, 먼저 개인의 사유재산과 문화지구의 소극장보호책이 상호 충돌하는 것은 없는지를 먼저 살펴야 하지 않을까?
왜? 지금은 법의 만능시대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마저도 정치를 버리고 ‘헌재’로 쫒아가 위법을 가리는 시대다. 한마디로 이제는 법원이 건물주의 손을 들어주면 모든 게 ‘도로 아미타불’이 되는 시대다.
따라서 ‘상여를 매고’ 행진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예술가를 자부하면서도 행동은 ‘학생운동권의 사고’에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점에서 ‘공공극장’을 사유화하고 싶다면, 당사자나 정책기관의 책임자까지도 참석시켜 논의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토론마저도 상대도 없이, 연극인들끼리만 모여 ‘북 치고 장구 치고’ 끝내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매사를 ‘한풀이’로 끝내려드는 태도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운동권식 투쟁방식’- 항상 상대가 없이 일방통행식의 자기주장만을 ‘구호’로 외치는데 익숙해 있어서 그럴 것이다. 지난 시절 구호를 외치는 투쟁방식으로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시위가 자칫 또 다른 형태의 ‘독재적 행태’로 보일 수 있는 게 사실이다. 정말이지 헌재도 있고 개성적인(?) 판사들이 널려 있는 세상에서 아직도 구호를 외쳐대는 게 바람직한 일일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달라져 가니, 일방통행식의 투쟁방식으로는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하고 ‘울분만 끓게’ 할 뿐이라는 것을 지난 ‘대관탈락사태’을 통해서 조금은 터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 이제는 모두가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권한이 주어진 시대여서 그렇다. 따라서 여론을 자기 쪽으로 이끄는 힘을 갖지 못하면 무용한 일이 되기 십상이다. 그런 판에 남의 지원으로 유지되고 있는 장르에서 남과의 상호 소통을 거부하는 것은 스스로 멸망을 재촉하는 일이 될 것이다.

지원(기관)과 관련된 연극의 현대사

솔직히 한국연극에서의 최고의 핵심 과제가 바로 ‘지원정책’인데도, 그래서 연극계가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분야가 실제로 지원책인데도 그동안 이에 가장 무관심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지원이 없으면 생존이 어려운 예술집단이면서도 어떻게 지원을 받아야 하는지를 망각하고 사는 동네처럼 보이고 있는 게 현실이다.
거기다 선배들마저 이런 것들에 리더십을 발휘해 본 적도 없고, 관심을 표한 적도 없어서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저 모두가 ‘몇 푼 받으면’ 그것으로 감지덕지 만족해하는 안이한 태도로 일관해서 그럴 것이다.
어쩌면 지원에 의존하는 처지가 스스로에게 무척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여겨 애써 외면하려고 해선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원에 관한 한 알아도 모른 척, 보아도 못 본 척하며 지내고 있었던 것일까?
따라서 (이에 관한 긴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먼저 내가 직접 체험한 지원(기관)과 관련된 초현대(?) 연극사를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사례 1, ‘사랑티켓’이라는 게 있다. (유명무실해졌지만) 아직도 미미하지만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원래 이는 연극 입장권을 구매하는 관객을 위해 마련된 지원제도로, 한때는 아주 ‘기발한'(?) 지원제도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관객이 ‘사랑티켓’을 구입하면 당시 1만 5천원인 연극공연 티켓을 8천원에 살 수 있는 제도로, 그러니까 당시 문예진흥원(지금의 문화예술위원회)이 관객에게 7천원을 지원해주는 제도다.
따라서 관객은 ‘사랑티켓’을 구입해 8천원만 내면 관람이 가능하고, 관객으로부터 받은 ‘사랑티켓’을 후에 문화진흥원에 제시하면 공연단체가 7천원을 지원받게 되는 제도인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아주 이상적인 지원제도인 셈이었다. 세상에 다시없는 바람직한 제도로 보였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 부작용이 너무나 심각한 제도가 바로 ‘사랑티켓’이다.
처음 시행하자마자 (지원금의 목돈을 노리고) 연극인들 중에 ‘사랑티켓’을 매점매석하는 행위가 발생했다. 즉 몇 극단이 미리 단체관람인 것처럼 조작해 ‘사랑티켓’을 통째로 선점하는 ‘잔머리’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인식할 것은 우리에게는 본시 지원제도를 ‘악용하는’ 못된 습성을 가지고 있음을 아는 것일 거다. 자칫하면 지원에서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방죽을 다 더럽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를 보완하고자 관객들이 ‘사랑티켓’을 구입하는 방법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우선 연극인의 매점매석’을 막기 위해 관객, 개개인이 자기의 ‘민증’을 제시하고 현장에서 직접 구입도록 하는 등 제도개선에 많은 시간을 허비한 게 사실이다.
따라서 (요사이 주장처럼) 한팩의 공연장을 연극인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하는 느슨한(?) 정책을 시행하면 (통제가 불가능해져) 자칫 불미스러운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연극계가 명심해 둘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일례로 한팩의 경우, 대관료가 (시설은 좋은데) 여타 사설극장에 비해 저렴해서 대관 후에 여러 핑계를 대면서 자신들은 공연을 하지 않고 다른 단체에 웃돈을 얹어 파는 사례도 없지 않을 것이라는 거다.
좌우간 (결과적으로) ‘사랑티켓’의 커다란 맹점은, 한마디로 대학로의 ‘유료입장객’이 ‘사랑티켓’의 발권 수로 제한되는 부작용을 발생시킨다는 것이었다. 처음 시행해 보는 것이어서 모두가 이를 간과한 게 사실이다.
즉 하루에 ‘사랑티켓’을 무한정 발행하는 게 아니어서 결국 하루 발행량이 5백장(후에 7백 명)이면, 그날 밤 대학로에 유료관객이 5백 명으로 한정되어 버리는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왜? 관객들이 ‘사랑티켓’이 마감되면 8천원에 보던 연극을 1만 5천으로 봐야 하는데, 바로 이게 문제가 되어서다. ‘사랑티켓’을 구입하지 못한 관객이 관람을 포기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대학로의 유료관객이 하루를 통틀어 ‘사랑티켓 발권’인 1일= 5백 명을 넘어서지 못하는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유료관객이 현격히 감소해 오랫동안 대학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 것이다.
또 하나는 인기 공연에 ‘사랑티켓’이 몰려 다른 공연단체에게는 전혀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령 어느 한 공연이 4백장 가량을 소화해버리면 타 공연장들은 1백장을 가지고 ‘나눠먹게’ 되는 식인 것이다. 그래서 당시 ‘사랑티켓’의 최대 수혜자는 당연히 인기작인 ‘지하철 1호선’이었다.
이런 불합리한 허점을 안고 있는 제도인데도, 연극인들은 이를 ‘술집’에 모여 투덜댈 뿐 아무도 나서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어쨌든 지원제도를 없애는데 따른 불안감이 연극인들을 주저하게 만든 게 주원인일 거다. ‘혹시나’ 자신들도 언젠가는 최대 수혜자가 되는 희망을 버리기 힘들어 용기를 내지 못한 것일 거다.
보다 못한 내가 두 차례에 걸쳐 실시한 문예위의 공청회에 나가서 이의 불합리를 공개적으로 따져 실질적으로 ‘사랑티켓’이 막을 내리게 된다. 당시 문예위의 간부가 나 때문에 무척 곤혹스러워 했던 게 사실이다.
“왜 이런 나쁜 제도를 없애지 못하는 거야!” 이렇게 내가 달려들면 “국회의원들이 가장 좋은 제도로 알고 있어 없애기가 힘듭니다.” 나의 항의에 그는 정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곤 했다. 국회의원들이야 단순히 관객 = ‘유권자’에게 베푸는 혜택으로 인식했으니 대환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좋은 의도로 시작한 지원제도가, 자칫 심각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지원제도가 결과적으로 지원이 아닌 자칫 연극을 망치는 제도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례 2, 또 이런 적도 있었다. 연극관람에 아예 입장료라는 게 없이, ‘초대권’만 가지고 가서 극장입구에서 프로그램만 사면 관람이 가능한 적이 있었다. 처음 발단은 명문 K고교를 나온 모 극장 대표의 ‘잔머리’에서 나왔다.
먼저 시중에 초대권을 마구 뿌려대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초대권을 들고 극장으로 몰리게 마련이다. 그러면 단돈 1,000원을 받고 입구에서 프로그램을 사도록 해서 관객을 입장을 시키는 방식이다.
그런데 극장 객석이 3백석을 넘으니 매회 ‘만땅’을 채우면 3십만 원의 수입이 되고, 이걸 한 달로 계산하면 대략 1,000만원의 수입이 되는 것이다. 당시로는 적지 않은 입장료 수입이 된 게 사실이다.
그렇게 해서 장기공연을 하면 손익분기점을 충분히 넘기게 되는 ‘잔머리의 극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에 일반 공연에서는 제대로 된 정가(입장료 만원)를 받아도 공연수입을 한 달에 1,000만 원을 올리기가 너무나 힘든 게 현실이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보면 입장료를 없애고 초대권을 남발해 단돈 천원으로 관람객을 모으는 게 훨씬 더 ‘남는 장사’가 되는 게 현실이었다. 특히 대극장의 경우는 빈 객석을 남김없이 채울 수 있어 더더욱 이점이 많은 시스템(?)인 셈이었다.
이렇게 되니 자연히 관객들은 ‘초대권’을 뿌리는 연극으로 몰려들게 되고, 아예 초대권이 아니면 연극관람을 하지 않게 되는 ‘초비상사태’가 전 공연장으로 확대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이를 대학로 연극인들이 비웃다가 (어느 사이에) 대세가 ‘초대권’으로 흐르게 되니,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대세가 되어 연극인들이 이에 전폭 쏠리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지금 연극인들이 대학로 뒷골목에서 ‘삐끼’를 동원해 뿌려대는 각종 악덕매점행위에도 제대로 대결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당하고 있는 것도, 이때의 충격이 너무 크게 작용한 것을 부인하기 힘들 정도로 당시에 쇼크가 너무 컸다.
당시에 흥행이 저조할 경우 이런 비양심적인 행위가 대단한 ‘비방’(?)으로 둔갑한 게 사실이었다. 더구나 대극장의 경우, 객석을 텅 비우고 공연하기 보다는 차라리 이게 훨씬 더 ‘남는 장사’라는 생각이 연극계 전반에 ‘초대권 살포’를 무르익게 한 게 사실이다.
이렇게 되자 이게 만연해, 전 연극공연장에서 아예 ‘입장료’가 사라지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나는 (당시 ‘연기자그룹’ 이름으로 ‘소식지’를 만들어) 이런 공연현실을 ‘유인물’로 만들어 각 공연장에 뿌리기 시작했다. 이를 읽은 조선일보 기자가 이를 기사화하자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자 직접 사태를 유발케 한 문예회관(현 아르코극장)을 관장하던 문예진흥원(현 문화예술위원회)이 공청회를 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때 내가 (골똘히 머리를 굴리다가) 떠올린 게 바로 ‘진흥기금 포탈행위’였다. 당시에는 입장권을 사면 의무적으로 ‘문예진흥기금’ (당시 입장료의 3%로 기억되는)을 떼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걸 주관하던 기관이 바로 문예진흥원이었다. 주로 관객이 많은 영화관이 주된 진흥기금 모금처였다.
따라서 초대권을 뿌리게 되면 실제로 입장료가 없어 자연히 진흥기금을 포탈하게 되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
공청회장에서 나는 “진흥기금을 거두어야 하는 문예진흥원이 자기들이 관리하는 극장에서 대관단체가 진흥기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초대권을 남발해도 묵인하는 것이야말로 직무유기(진흥기금 포탈행위를 묵인하는)를 범하는 너무 한심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고 떠들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진흥원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건 당연했다.
나는 “이런 단체에는 반드시 진흥원이 벌칙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뒤부터 진흥원이 그런 짓을 한 단체에 문예회관(현 아르코 극장)의 대관을 주지 않는 벌칙을 가하자 그때서야 ‘초대권 남발’이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왜? 당시에도 문예회관에 대관을 주지 않으면 단체가 공연하기 힘들었던 시절이라 어쩔 수 없이 초대권 살포를 포기하게 된 것이다.
그 얼마 후 배우 박정자 선생이 보란 듯이, 공연에 입장료를 2만 5천원을 받겠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 ‘초대권 남발’은 겨우 막을 내리게 되었다.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가슴 답답한 추억이 아닐 수 없다.
정말이지 ‘경제적 사안’에서만은 우리 연극인들이 그다지 크게 자존심을 내세울 게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례 3, 그럼 왜 한국연극에 지원금이 (세월이 갈수록) 쪼그라들게 된 것일까? 여기에 나도 일조한 사건을 이야기해 보기로 하겠다. 어느 해 내가 ‘셰익스피어’ 공연에 주인공을 한 적이 있었다.
이 공연은 당시 ‘셰익스피어 공연’에 나름 명성이 높은 연출가(극단 대표)의 연출이어서 연극계의 심사위원들이 엄청난 기대를 걸고 지원금을 단일 공연에 자그마치 1억 원에 가까운 총 ‘9천 8백만 원’을 베풀어준 행운이 충만한 공연이었다.
두 군데서 이른바 ‘중복지원’을 받았던 공연이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한때는 연극이 이토록 넉넉한 지원금으로 충만했던 꿈같은 시절이 있었다. 거기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대극장 공연이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초연은 ‘아르코대극장’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공연의 질은 형편없었다는 게 중론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 연극계의 기술로 ‘대극장공연’을 성공시키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관객도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긴 하지만, 내가 3개월을 봉사(?)하고 받은 개런티가 겨우 150만원이 전부인 게 현실이었다. 그것도 공연을 마치고 3개월이 지난 후에야 가까스로 지급되었을 정도였다. 어쨌든 이런 식의 ‘공연’이 지원 생태계에 미친 영향은 아주 심각했다.
민간단체의 한계를 완벽하게 노출한 공연이었음을 부정하기 힘든 게 사실이었다. 그리고 민간단체들의 제작운영상의 한계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 연극판에서 ‘중복지원’이 사라졌다. 거기다 지원금도 점점 적어지기 시작해 결국 지원이 ‘소액다수’로 된 것이다.
내가 보아도 이런 식의 공연은 그저 ‘돈 먹는 하마’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튼 무엇보다도 아쉬운 것은 이후로 ‘거액지원’이 귀해지게 된 것일 거다. (물론 한국극단들의 현실을 감안한다 해도) 이런 사태를 발생케 한 것은 나 자신을 포함한 우리 연극인들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었다.
지난번 예술가의 집에서 벌어진 X포럼에서도, 여전히 우리 연극계가 얼마나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가를 새삼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 자리에서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젊은 직원 왈
“서류도 제대로 제출하지 않는 곳, 약속마저도 지키지 않아 자신들(지원기관)을 항상 곤혹스럽게 하는 유일한 곳이 바로 연극계다!” 그의 발언의 요지를 정리하면 이렇다. 그의 발언은 우리 모두를 ‘패닉상태’에 빠뜨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도대체 연극은 무슨 이유로 이런 난맥상을 여전히 노출하고 있는 것일까?

 

연극의 태생성(胎生性)에 대한 고찰

그럼 한국연극이 이런 보잘 것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근본적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먼저 결론부터 말하면, 연극계에는 현실을 타개해 비전을 제시할 ‘리더십’이 부재한데 있다. 아니 여태껏 ‘리더십’이 있어 본 적이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기술발전’이 연극대학이 생긴지 50년을 넘겼는데도 전혀 이루지지 않고 있는데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연극의 ‘태생적’ 생태계를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흔히 연극인들은 우리 자신의 잘못이나 리더십의 부재에는 눈을 감고, 연극의 문제점이 지원정책에 있다고 여긴다. 단적으로 ‘외부’에 있다고 여기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까 정책이나 지원을 관장하는 기관의 성의가 부족해서, 또는 지원금이 적어, 또는 문화예술정책이 부실해 한국연극이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곧잘 말하곤 한다.
하지만 앞의 여러 사례를 통해서 알 수 있듯, 결국 모든 사태의 책임은 연극인 자신들로부터 출발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단적으로 한국연극이 애당초 이런 비극(?)을 잉태한 ‘태생’에서부터 기인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다. 따라서 이제 와서 젊은 연극인들이 지원책이나 공공성을 의욕적으로 개선하려 든다고 해서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한마디로 나나, 또 여러분들이 떠든다고 될 일이 아닌, 희망한다고 이루어질 수 없는 오래된 부조리가 잠재된 있는 곳이 연극계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따라서 한국연극이 되살아나려면 (되레 자유가 구속되는) 공공극장의 활성화를 위한 ‘비전제시’가 더 필요하고 이를 실천할 용기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왜? 바로 우리에게는 한국연극의 생태적이며, 개선이 어려운 고질적인 불합리(부조리)가 잠재해 있어서 그렇다.

 

‘동인제’ 시스템에서 ‘사설단체’로 진화

첫째, 먼저 한국연극의 ‘태생성’을 역사적(?)으로 고찰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연극은 애초부터 (태생적으로) 미국이나 일본처럼 ‘자본주의 방식’-사설(민간)단체의 활성화를 추구하면 안 되게 태어났다는 말로 시작하고 싶다.
해방된 한국에서 ‘국립극단’이 그토록 일찍 만들어진 것은 당시 ‘안호상’이라는 독일 유학파 초대 문교부장관의 공로였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그가 생각한 시스템은 당연히 ‘유럽식’의 공공극장의 운영방식이었을 것이다.
우선 ‘국립중앙극단’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을 것이다. 명칭의 한가운데에 ‘중앙’이라는 단어를 넣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국립극단을 전국 각처로 점점 보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연극은 되레 유럽식의 공공단체 시스템을 육성시키지 못하고, 아마추어 성격의 개인(사설)단체인 – ‘동인제’ 시스템을 더 선호하고 발전시킨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한국에 자본주의식 경제가 전혀 정착될 수 없는 처지에 있었는데도, 외려 오락물인 영화나 TV드라마가 판을 치는 형편에서도, 왜 예술장르인 연극이 공공체제가 아닌 흥행을 해야 하는 민간(사설) 시스템을 더 선호하게 된 것일까?
일본이나 미국과 달리 빈곤한 경제적 상황에서, 또 극단을 만들어도 경제적으로 자립이 불가능한 처지에서 왜 ‘공공극단’체제를 부르짖지 못하고 개인들에 의한 ‘동인제 시스템’을 발전(?)시키게 된 것일까?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여기에 역사성을 부여하지 못하면) 현재의 한국연극의 현실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게 나의 주장이다.
여태껏 아무런 생존력도, 다른 장르와 견줄 경쟁력도 없으면서 마치 자신들이 보호받아야 할 (귀한 존재인) ‘천연기념물’이나 되는 것처럼 여기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한국공연예술계의 생태계 분석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장충동의 옛 국립극장에 있던 ‘국립오페라단’의 체제를 들여다 볼 (참고할)필요가 있을 것이다.
내가 국립극장에 근무하던 초창기, 국립오페라단은 유일하게 ‘상주단원’이 단 한명도 없는 단체로, 즉 성악가인 (철저히 고참 대학교수들로 이루어진) 비상주단원들에 의해서 운영되던 단체였다. 다시 말해 ‘정기공연’이 있을 때만 성악가인 대학교수들이 모여서 무대에 공연을 올리던 단체였다.
왜 그랬을까? 우선 그들에게는 국립극장에 단원으로 상주할 필요가 없는 ‘본업’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수입은 대학에서 ‘교수직’으로 얻을 수 있으니, 단지 국립오페라단원으로서 활약은 (명성을 얻어) 부와 명예로 기득권을 유지하면 됐던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자기들에게 편리한 비상주단원체제인 ‘교수카르텔’(?) 조직으로 단체가 운영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부러울 게 없던 그들이 기를 쓰고 ‘단원의 신분’을 유지하려 했던 것은 ‘오페라 출연’인 대외활동으로 논문을 쓰지 않고 교수직을 수행하기 위한 편의성 때문이라고 사람들이 수군대며 말하곤 했다.
그래서 교수들만의 ‘카르텔’이 형성돼, 외부인에게 함부로(!) 출연을 개방하는 것마저도 금기시하는, 마치 요사이 예술원처럼 철저히 ‘시크릿’하게 운영되던 조직이었다.
그래서 공연에서는 심심치 않게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출연자가 무대에서 폼 나게 ‘아리아’라도 부를라치면 아무도 기립하지 않는데 한쪽에 몰려있던 그 대학생 제자들만이 몽땅 일어나 ‘브라보’를 외치며 그것도 장난스럽게 기립박수를 쳐대곤 했다. 그 다음 차례에는 또 다른 대학의 제자들이 일어나고.
이처럼 예술계에서는 태성적인 생태계가 바로 해당 장르의 발전과 미래의 운명을 결정하는 ‘바로미터’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예술의 태생적 생태계가 결과적으로 해당 장르의 진로와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어 꺼낸 이야기다.
그러니까 한국연극이 어째서 출발과 달리 공공극장의 육성을 버리고, 사설단체를 추구하는 ‘동인제’ 시스템을 더 선호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기 위함인 것이다.
물론 이는 대학교수로 수입을 얻으면서 ‘호사가’로서의 연극을, 또는 탤런트, 성우 등으로 활동하면서 연극이라는 취미활동을 통해서 사회적 ‘명예’와 예술가로서의 ‘신분상승’을 도모하려는 사람들의 절대적인 소망의 결과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공공극장을 통한 연극의 ‘전문화’를 꾀하려는 노력은 되레 ‘귀찮은 사안’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그러니 항상 입만 열면 연극의 리더 격인 사람들이 연극(극장)운영의 갖가지 사례로 유럽의 공공극장(단체)을 거론하면서도 – 아는 것도 대개 유학생활에서 얻은 게 전부여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 현실적으로 자신들은 은연중에 ‘동인제’라는 이름의 ‘사설극단’에 더 많은 희망을 가졌던 것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동인제’는 말 그대로 ‘끼리끼리’ 노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제작비 걱정이 당연히 적을 수밖에 없다. 일단 ‘개런티’라는 게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연극예술가로서 호사를 누리기에 이 보다 더 좋은 시스템은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런 처지의 사람들에게 전문화를 꾀하는 연극의 ‘공공성 확립’은 진정으로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소규모의 극단을 조직해 운영하면서 ‘호사가’로서 만족하기를 우리 모두는 더 원했을 것이다. 그저 취미생활로 명예만 얻으면 만족한 게 사실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연극의 장래를 위해 비전을 제시하거나, (직업화 된) 전문성을 도입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게 연극계의 오랜 ‘전통’으로, 또 연극계의 무의식적인 ‘인식’으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국립극단의 운영이나 단장, 혹 예술감독직 등은 (젊은 시절에는) 전혀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왜? ‘상임’으로 근무하는 게 불가능하고 ‘비상임’도 외려 부담스러워서) 당연히 공공극장에 의한 운영이 확립되는 것도 그들에게는 결국 ‘남에게 좋은 일’만 시키는 꼴이 될 뿐이라고 여기는 게 고작이었을 것이다.
오로지 공공극장이나 기관에 관심(?)을 표할 경우는, 교수은퇴 후에 일자리가 없어 심심해지면 ‘노리는 곳’이 전부일 것이다. 요사이 한예종 이승엽교수가 교수를 사직한 채 세종문화회관의 사장직에 취임했다고 해서 만인이 놀라는 것으로도 이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체계적인 지원책이나 공공극장의 육성에 대한 관심을 주문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것은 대학로의 무능하기 그지없는 ‘만년 실업자들’= 떠돌이 연출가나 배우들에게만 절실한 문제가 될 뿐인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이에 대한 리더십도 조성될 리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세미나만 열리면 ‘유럽연극’이 어쩌고저쩌고 떠들어대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하긴 나의 이런 논리는 아무리 석, 박사를 따려고 ‘참고문헌’을 뒤져보아도 나오지 않을 것이니, 따라서 젊은 연극인들이 이런 식의 인식을 가질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 것이다. 그러니 자연히 젊은 연극인들이 자꾸만 야당인 ‘새정치연합’의 구호나 운영체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젊은 연극인들이 알아두어야 할 것은 바로 ‘사설극단’의 출발점이 되고 있는 한국연극의 ‘동인제’ 시스템에 관한 생태계와 그의 출발과 발전과정이다. 그러니까 현재 연극계의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제반 현상은 모두 이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연극은 그동안 전문화와는 너무 거리가 먼, (구조적으로) 아마추어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늘 아마추어를 고수하면서, 그래도 예술가인 척 하려니 공연히 ‘실험극’을 내세워 난해한 연극만을 펼쳐 관객들에게 고통만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겉으론 초연한 척, 속으론 공공기관에 의한 지원금을 학수고대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늘 모여서 여전히 “공공극장을 사유화할 수 없을까?” 이런 메아리 없는 허망한 소리만 지껄이고 있는 게 전부일 뿐이다. 세금도 못내는 주제에 왜 남의 재산(?)을 넘보는 것인가!

 

왜 모두가 연극인이 되려고 나서는 것일까?

계속해 거론할 게, (오페라의 경우) 성악가들은 공공단체인 ‘국립단원’이 되지 못하면 차라리 해외유학을 통해서 교수나 솔리스트가 될 미래를 기약하지, 교수들의 영역을 넘보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연극처럼)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곧장 ‘사설단체’를 만들겠다고 ‘예술의 전당’ 주변으로 모여들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게 연극과 다른 풍경이다.
가령 현대무용의 경우, 한때 연극처럼 ‘동인제’ 체제의 사설(민간)단체가 번성했으나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이제는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국립현대무용단’을 창설하기에 이른 것에서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연극인들은 (현시점에서도) 국립단원이 되지 않아도, 타 장르처럼 자기의 ‘진로’를 포기하지 않고 곧장 대학로에 나와 여전히 단체를 만들고 소극장까지 차리는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왜 그럴까? 나는 ‘연극의 생태계’라는 측면에서 이에 대한 많은 연구(심리적 연구까지도)가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니까 타 장르는 대학에서 아무리 자신들의 전공인 성악이나 무용을 열심히 연마했어도 공공극장의 단원이 되지 못하면 중도에 포기(은퇴)하는 게 일반적인 현상인데, 유독 연극만은 예외다.
왜 그럴까? 성악만 해도 졸업 후에 솔리스트가 될 것인가, 합창단에 입단을 할 것인가, 아니면 중고교에 교사가 될 것인가, 또는 개인레슨을 전업으로 할 것인가를 학창시절부터 결정한다.
왜냐면 대학의 교육단계에서 상당한 기술발전을 이루고 있어 (해외의 기술도입이 이를 가능케 해서) 학생들 스스로도 이를 인지케 하는 나름의 평가지침(?)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립무용단원은 나에게 “우리가 국립단원이 되려면 대학 4년 동안 연애를 한번만 해도 불가능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따라서 그들은 솔리스트나 교수요원이 되기 위한 더 높은 교육을 위해 유학을 시도하기도 하며, 합창단 입단을 위한 오디션을 보기도 하고, 학교 교사로 진출을 모색하기도 하며, 입시생의 개인교습을 통해 나름의 사회생활을 도모하기도 한다. 그런데 연극대학에는 이런 ‘분류’마저도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그러니 기술은 물론이고 자기들의 재능도 판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대학로로 쏟아져 나와 ‘사설단체’를 만들어 관객들에게 예술가로서의 입신을 테스트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니 한국연극이 질적인 문제로 어려움에 처하지 않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생태계에서 간절히 요구되는 것은 바로 지원정책이나 지원금이 전부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과연 지원이 연극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고 있는가 하는데 있을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아무리 지원금을 쏟아 부어도 완성도를 얻기도 힘들고, 관객들의 관심을 끌기도 힘들다는 게 나의 주장이다. 왜? 타 장르- 영화, 뮤지컬과의 갭이 너무나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외려 외부의 지원책에 대한 의존심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을 뿐이며, 그래서 생존에 더 많은 위협을 느끼게 하고 있는 게 현실인 것이다.
‘기술발전’이 연극계의 중요한 과제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무척 불합리한 집단처럼 보이는 성악계지만, 현재 유럽의 여러 오페라단들이 한국의 성악가가 아니면 운영이 어려울 정도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한국의 성악계는 날로 풍성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다시금 ‘오페라 융성을 위한 모임’을 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현실 등은, 이런 불합리한(?) 시스템을 유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날로 국제무대에서 성과를 얻고 있는 것에 자신감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왜 그럴까? 물론 이는 (연극과 달리) 해외교육에 의존해서라도 기술발전을 꾀할 수 있는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장인인 나로서는 너무나 부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에 반하여) 연극은 타 장르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국내에서의 왕성한(?) 활동을 꾸준히 지속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관심은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으며, 예술적 수준은 갈수록 저하되어 가고 있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일 것이다.
외려 비주류라고 해야 할 ‘조재현 사단’이 연극계의 주류로 두드러지고 있는 풍경을 우리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형편에 있는 게 현실이다.
이건 단적으로 해외에서도, 국내에서도 절대로 불가능한 연극의 기술발전의 ‘한계상황’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성악의 사례에서 보듯) 기술발전을 도외시 한 채, 설령 아무리 좋은 지원책을 강구할지라도 발전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하나 더 붙인다면, 세상의 흐름을 도외시한 채 자신들의 아집, 아니 무지만을 고수한 잘못도 포함될 것이다.
좌우간 타 장르는 해외를 통한 흐름의 변화와 기술습득을 위한 통로라도 열려 있어, 자본에 의한 투자만 잘 이루어지면 얼마든지 부활이 가능한 게 현실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연극은 어디에서도 기술도입은 물론이고, 어떤 방법으로도 연극고유의 기술을 개발하고 습득할 길이 막혀 있는 게 현실이어서 지원책에도 그다지 희망을 걸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러니 타 장르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연극만의 풍경인 ‘사설단체’에 의한 공연활동이 되레 지원책과 지원금에 의한 의존도만 가속화 시킬 뿐, ‘청년실업’만을 양산할 뿐, 예술적인 실질적인 성과와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일 것이다.
그러니 여전히 한국연극은 예술적 창조보다는 ‘참고문헌’이나 뒤져야 생존이 가능한 침체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오세곤교수의 외침으로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한팩 운영의 합리화를 기대하는’ 글에서 “흔히 극단이 너무 많다거나 아무나 너무 쉽게 극단을 만든다거나, 공연이 너무 많다거나 하는 말을 한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일단 누구도 그런 말을 쉽게 내뱉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수요가 많으면 공급(대관)을 늘려야 한다. 또 우리나라 연극의 질적 향상은 한팩이 나서서 책임질 일이 아니다. (솔직히 아무도 책임질 수 없는 게 현실) 따라서 한팩은 되도록 많은 단체들에 골고루 대관기회를 주고 그 단체들의 작품이 기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옳다. 그래서 한 가지만 우수한 요소가 있어도 나머지가 지원되므로 해서 능히 훌륭한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는 예술지원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아마 이런 주장을 하는 곳은 연극밖에 없을 것이다. 그동안 자신의 생태계를 연구한 적도 없고, 그렇다고 어떤 비전을 제시해 본 적도 없으며, 기술발전을 위한 노력도 없이 무책임하게 제자들만 길러낸 교수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외침일 것이다. 따라서 현재 연극계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항은 현실을 타개할 진정한 비전제시와 리더십의 중요성일 것이다.
따라서 한국연극이 살아날 수 있는 길은 오직 두 가지 뿐이다. 하나는 공공극장을 통한 전문화와 기술발전을 꾀하는 일이며, 또 하나는 리더십을 확립해 장래의 비전을 명확히 제시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연극계에 자기 성찰과 반성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즉 현실인식에 대한 뼈를 깎는 각성이 필요할 것이다.
또 하나는 모두가 미래를 위해서 연극인들이 자기들의 ‘이기주의’를 제어할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무조건 “나는 정당하다. 고로 나는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모두가 마치 ‘죄인’처럼 겸허한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발전을 위해서, 아니 목전의 생존을 위해서도 이론이 아닌 경험과 기술이 절대적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각성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 불가능하면 한국축구처럼 외국인에게라도 의존하려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한국축구의 사례 (슈틸리케의 리더십)

솔직히, 요사이 한국축구가 아시안컵에서 슈틸리케 감독에 의해 좋은 성과를 내자, 나에게는 기쁨보다는 되레 우울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왜? 나는 늘 국립극단의 예술감독을 외국인으로 영입하자는 주장을 (욕을 먹으면서도) 꾸준히 주장 해 왔던 사람이어서 그렇다.
왜 그럴까? 우리에게 ‘선택과 집중’이 긴요하기 때문이다. 즉 선택(평가)에서의 공정성과 기술발전을 위한 집중력이 연극계에 시급하기 때문이다. 그럼 먼저 슈틸리케의 리더십을 살펴보기로 하자 그의 리더십을 요약하면

1. 사심이 없다. 선수 선발에서부터 공정한 시각을 갖는다.
2. 선수의 잠재력을 알아보려는 노력, 적소에 선수를 배치하려는 끊임없는 노력
3. 세계의 기술수준을 우리 축구에 접목시키려는 노력
4 친화력을 발휘해 선수들의 마음을 읽어내려는 노력
5. 즐기는 축구, 자신부터 감독직의 수행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게임 시에도 한 번도 자리에 앉지 않고 서서 열심히 작전지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홍명보감독은 히딩크의 수제자로 알려져 있는데도, 그는 스승과 달리 지난 월드컵에서 선수선발에서 실패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하긴 축구협회의 부회장인 전 국가대표 ‘허정무’감독, 기술위원 등이 홍감독과 모두 동반 퇴진한 것으로 미루어 ‘선수선발’을 자기 혼자서 결정한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축구가 지난 월드컵에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해 다시금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 놓은 게 사실이다.
어째서 우리는 외국인이 아니면 이처럼 선수선발에 실패하는 것일까? 그건 우리가 한국적 ‘온정주의’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서 일 것이다. 인맥, 학맥, 지역 등의 사사로운 개인적 관계에서 탈피해 객관성을 유지하기 힘들어서 그럴 것이다.
다음으로는 기술적으로 허약해 ‘전문성’을 갖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이게 없으니 아무리 공정성을 갖고 싶어도 불가능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선택(선발)할 안목’이 발휘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슈티릴케 감독의 경우에서 보듯이 외국인은 이에 자유롭다. 이번에도 차두리와 이정협을 선발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이건 히딩크 때도 그랬다. 그는 속칭 2류 선수로 지목되는 황선홍, 박지성 같은 건국대 선수를 대거 기용해 (4명이나) 대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건 분명 외국인 감독들이 기술적인 안목이나 경험에서 우수함을 말해주는 것일 거다.
그런데 한국연극은 어떠한가? 우리 역시도 축구이상으로 기술적인 전문성에서 아직도 아마추어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심사나 평가에서 항상 불공정의 시비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자연히 ‘끼리끼리’에서 벗어나지 못해 이에 대한 불평이 그칠 날이 없을 정도다.
요사이 벌어지고 있는 X포럼에서 발표자들의 원고를 읽어보면 전혀 현장경험(인식)이 없이, 오로지 (참고문헌에 지나지 않는) 통계자료만을 인용하는 게 눈에 띤다. 아마 잘못 받아들인 ‘미국식 교육’의 부작용일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실질적인 전문성에서 허약하니 자꾸만 노트북을 두드려 학술적 ‘이론’만을 내세우는 게 고작이다.
그러니 X포럼을 개최해도 현실감이 전혀 없어 나 같은 사람이 나서서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모두가 꾸벅꾸벅 졸기 마련인 게 숨길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또 요사이 실시된 국립단원의 모집만 해도 그렇다. 넉넉한 시간을 갖고 입시와 다른 ‘새로운’ 테스트로 ‘국가대표’를 선발할 시도조차도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것조차도 연극판의 ‘빅 이슈’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의 실정이다.
아마 한국축구처럼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에서 벗어날 ‘의지’마저도 갖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축구를 보면 이런 타성적인 태도를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환장할 노릇이) 슈틸리케 감독이 오자, 숨어있던 새로운 인물을 ‘군발이’에서도 찾아내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기술적 안목’의 중요성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을 정도다.
사실 한국축구는 학교교육에서 별로 배운 게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저 어릴 때부터 무작정(?) 운동장에서 공을 찬 게 전부여서 좋은 감독(리더)이 되기도 쉽지 않은 게 당연지사일 것이다.
그렇다면 연극계의 형편은 어떤가? 내가 연극을 시작한 70~80년대만 해도 엄청나게 화려한 학벌을 자랑하던는 곳이었다. 웬만한 선배들은 거의 다 일본 유학파나 서울대 출신이었고, 또 그들이 연극협회 이사장직을 독식해 연극판에서 마음껏 리더십을 발휘할 자리를 독점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어디 그뿐인가, 지금도 연극대학에는 내외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많은 인재들이 포진해 있다.
아마 한국 문화계에서 가장 ‘가방끈’ 긴 동네가 연극판일 것이다. 그런데도 (역설적으로) 전혀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집단으로 여태껏 지원금으로 겨우 연명해 오고 있는 게 전부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지금 연극동네에는 학벌도, 학위도 리더십과는 전혀 무관한 동네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연극판은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온 사람이나 시골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온 사람이나 리더십이라는 측면에서는 전혀 차등이 없는, 차별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다.
그러니 리더십이 확립되지 않을 수밖에 없으며, 한국연극은 아직도 아마추어리즘에서 벗어나기 힘든 게 현실이다. 따라서 한국연극을 부흥(?)시키려면 유럽식의 공공극장에 의한 운영을 도모해 진정한 ‘현장인’을 양성하는 게 최선책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도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이다. 왜 그럴까?

 

왜 ‘선택과 집중’인가?

지금 현실타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매사에 심사와 평가를 동반하는 연극계에서) 중요한 것은 올바른 ‘선택과 집중’일 것이다. 모든 연극인과 단체를 다 살려낼 수는 없는 처지에서 자연히 좋은 재능을 가진 인재를 찾아내는 게 커다란 과제가 아닐 수 없는데 이마저도 ‘기술적 안목’이 없어 어려운 게 현실이다.
따라서 ‘걸러내는’ 제도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선택과 집중’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선택과 집중’이 걸러내는 데에만 유용한 게 아니다. 우수한 인재를 ‘골라내는’데에도 중요한 기능을 한다.
스티븐 잡스로 애플만 먹고사는 게 아니다. 한국기업 ‘삼성’도 먹고 살 수 있듯이 예술에서도 천재의 탄생은 너무나 중요하다. 이걸 성취시키는 게 바로 ‘선택과 집중’인데 이게 불가능하다.
지금 한국연극에서 ‘경쟁’을 통한 취사선택과 자연도태를 유발시키는 일이 중요 과제가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대학교수들로서는 자기 제자들에게 재능에 상관없이 ‘보편적 지원’을 시도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까 ‘무상급식’처럼 빈부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급식을 하는 게 도리라고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 축구처럼 ‘선택과 집중’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할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세상에 모든 연극인이 다 훌륭한 예술가가 되는 것도 불가능할 뿐 아니라, 또 일 년에 2~3천명의 신진이 대학로에 진출하는데 무슨 재주로 그들이 ‘대가’가 될 때까지 그 많은 지원금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연극계가 (희망을 가지려면) 당연히 공공극장의 활성화를 통한 ‘경쟁’을 유도하고, 선배들이 나서서 ‘선택과 집중’의 시스템을 확립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내 주장이다.
이게 바로 미래를 기약하는 연극발전의 필요충분조건일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이에 대한 회의가 이는 것도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왜 공공극장을 싫어할까?

왜 연극인들은 ‘간섭 없는 지원책’만을 요구하는 것일까? 단적으로 공공성이 유발시키는 ‘경쟁’에 대한 거부감 때문일 것이다. 타 장르처럼 공공극장이나 공공단체에 소속되어 이를 자기의 직업으로 삼으려면 엄청난 ‘경쟁’을 치러야 하는데 이게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러니 간섭받지 않고 지원정책으로 자신의 예술 활동을 유지하려는 속셈 때문일 것이다. 또 분명 리더십이 망가진 연극판에 이기주의가 자리를 잡은 결과일 것이다.
거기다 지원기관의 편의주의가 이를 북돋은(?) 결과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의 지원기관은 모든 것을 책임감 없는 연극계에 맡겨, 연극판이 스스로 ‘자기함정’에 빠지도록 방관적 태도로 일관해 온 게 사실이다.
그러니까 “돈은 줄 테니, 결정은 당신들이 알아서 해!” 이게 모든 지원기관(정부, 지자체, 문예위)의 ‘슬로건’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지원으로 문제가 발생하거나 말썽이 일면, 사후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스스로 지원에 관한 결정권을 기피하고, 이를 연극계에 내맡기는 게 전통이 되도록 유도한 결과인 것이다.
이때 내세우는 이유가 자기들에게는 ‘전문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극계에 지원에 관한 한 모든 전문성을 스스로 발휘하도록 강요(?)하기 일쑤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외부 감사에 대비해 오로지 “회계철저!”만을 외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연극계가 전문성도 리더십도 갖지 못하고 있으니 자연히 예술정책이나 지원책이 난맥상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공공기관에 의한 지원정책은 애초부터 ‘돈 먹는 하마’로 실패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는 게 현실이다.
이번 ‘대관탈락사태’에서 보듯이 지원기관이 마냥 비실거려서는 희망이 없다. 이제는 지원기관도 옛날처럼 굽실거리기만(?) 할 게 아니라, “너희한테도 자존이 있다면 우리에게도 존재감이 있다!” 이런 방식으로 지원기관이 주체성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갑질’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된다, 안 된다’가 분명해야 연극인들도 정신을 차릴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이런 분명한 태도가 상호간에 훨씬 더 희망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면 ‘잘못된 지원’은 예술가를 게으로고 무사안일의 길로 인도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지원기관이 아쉬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실질적으로 ‘아쉬운 곳’은 연극계일 뿐이다. 따라서 연극계가 리더십을 발휘하는 게 당연할 것이다.
국립극단과 명동예술극장의 통합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4월부터 국립극단과 명동예술극장이 통합된다는 발표가 있었다. 공공극장의 활성화를 부르짖는 나로서는 최대의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왜? 내가 판단하기에 이에 한국연극의 미래(부흥)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국립극단과 명동극장의 통합보다는 국립극단과 한예종 연극원의 통합을 더 바란 사람이다. 왜냐면 한국의 현실에서는 ‘교육기관’과 ‘공공극장’의 결합이 기술발전에 더 바람직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나는 러시아의 세계적 연출가 ‘레프 도진’이 자신들의 작업에 극단과 교육기관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시범(?)을 한국공연에서 보인데 솔직히 깊은 감명을 받은 게 사실이다.
현장과 연결된 교육기관을 통한 인재양성과 전문 인력의 확보 (교수의 확보), 이를 통한 지속가능한 기술개발이 절실하다고 시급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이보다 더 절실한 게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나다.
지금의 한국연극처럼 이론교육에 치중된 학교교육으로, 즉 대학이 현장과 따로 놀게 되어 있는 변형적인 생태계를 유지해서는 한국연극의 발전은 요원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국립극단과 명동극장의 결합은 (내가 보기에 전혀 이질적인) 단순히 국립극단이 ‘전용공연장’을 확보하기 위한, 단순히 ‘공간 확보’차원이나 ‘운영합리화’ 차원의 통합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게 우리의 어쩔 수 없는 형편(수준)이라면, 어떻게 이 결합이 한국연극에 공헌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를 우리 모두가 머리를 싸매고 궁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것도 한국연극의 현실에 알맞게 말이다.
가령 국립극단의 서계동 소극장들을 명동예술극장을 위한 전초기지 – 사전에 흥행을 도모하기 위한 전단계로 활용해, 즉 대뜸 공연을 명동예술극장에 등장케 해서 보기 좋게 깨지는(?) 것을 사전에 막는 기능을 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을 것이다.
왜? 지금 한국연극은 엉터리 공연이 너무 많은 게 문제다. 연극인들은 현재의 소극장 위주의 공연이 자유로움이 있어 좋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우리 관객들은 불편한 시설에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연극공연에 넌덜머리를 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는 불편한 좌석, 우중충하고 초라한 공간에서의 공연은 시대를 역행하고 있는 게 현실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관객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통합공간에서의 공연을 정의하면

1. 해외공연물처럼 완성도가 높은 공연이거나
2.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공연이어야 할 것이다.

사실 두 극장의 기능을 통합하면 예산만 해도 무려 90억에 이른다. 따라서 이를 통해 우리의 미래를 그려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덧붙여 앞으로 이 공공극장(단체)의 운영에서 부대비용을 최대한 절약해 기술발전으로 전용하는 일일 것이다. 기획인력 등을 최대한으로 줄여야 한다. 쓸데없이 ‘자료집’ ‘프로그램 제작’ 등에 돈을 낭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내가 보기에 자료에 남길만한 공연도 적을 뿐 아니라 이런 것은 창작자가 스스로 하는 게 좋을 것이다. 공공극장이 평가자들을 위한 성과용(과시용)으로 너무 많은 돈을 허비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솔직히 한국연극은 지금 관객을 모실, 흥행을 할 처지에 있지 못한 게 현실이다. 좋은 인력도 태부족이고 기술도 타 장르와 경쟁하기에는 너무나 허접하다.
그런 점에서 문화부 소속의 한팩과 한예종 연극원을 통합해 새로운 발전모델을 모색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나의 이런 대담한(?) 논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극원’을 전폭적으로 혁신해야 할 것이다.
솔직히 사설(민간)단체에 체계와 합리성이 없는 ‘단순지원’은 타 장르의 발전 속도를 감안할 때 너무 무의미한 게 현실이다. 그리고 세상이 하도 복지로 시끄러우니 예술지원을 ‘복지개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무리 공공기관이 많은 투자를 한다 해도 흥행을 목표로 투자(투기)를 감행하는 민간의 ‘자본투자’를 따라잡기는 역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공공성 투자의 최대한의 효율성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공극장마저도 ‘돈을 먹는 하마’에 지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의 정책기관들은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연극인들은 공공극장의 활성화를 그다지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아마 제일 싫어하는 게 교수들인 평론가들일 거다. 자꾸만 자기들이 심사나 평가할 기회가, 또는 평을 쓸 공간이 줄어드는 게 걱정돼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등받이도 없는 소극장에서의 극장환경으로 어떻게 연극의 진흥이 이루어지겠는가? 또 배우들이 대극장 무대에 서면 ‘악을 써야’하는 연기술로 한국연극의 중흥을 이룰 수 있겠는가?
아무리 자기들은 대학에서 월급이 나와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데 아무런 걱정이 없다 해도 어떻게 그런 이기적인 사고에만 파묻혀 지낼 수 있는가!
또 현장인들 중에도 이에 관한 한 불만을 터트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왜? 공공극장에서 작업을 하면 우선 ‘선택’- 오디션을 받아야 하는 심적 부담도 클 것이고, 자기 마음대로 ‘골목대장’ 노릇하기도 힘들어져서 그럴 것이다. 또 혹시 외국인들에게 할애해야 할 공간도 많아지지 않을까 싶어 걱정도 클 것이다.
지원금 몇 푼 받아서 주변의 관객 몇 명 모아서 공연을 끝내도 (연명하는데) 아무런 뒤탈이 없는데, 구태여 공공극장에 진입하게 되면 우선 예술 감독이나 연배가 많은 배우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데다, 성과가 좋지 못하면 다시 진입하는 길도 막히니, ‘자유스러운’(?) 예술 활동을 내세워 지금과 같은 복지개념의 ‘개인지원’(?)을 더 선호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노숙자들처럼 좋은 시설을 거부하고 옹색하지만 자유로운 ‘지하철’에서 생활하기를 더 원하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따라서 공공극장을 잘 운영할 아이디어와 리더십이 긴요한 게 우리의 현실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근 50년 가까이 연극계를 지켜본 나로서, 현재로서는 개인극단들에게 더 이상의 희망을 걸기는 어렵다는 게 내 판단이다. 다시 말해 개인단체들이 가진 조그마한 장점들마저도 이제는 공공극장을 통해서 이를 재생산할 지혜가 필요한 게 현실이다. 우선 관객들이 다리도 펴기 힘든 좌석에 앉아 연극을 관람하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젊은 연극인들마저도 “나에게 경쟁도 책임감도 부여되는 것은 싫다. 그저 내게 공연할 기회(극장)만 다오, 왜? 나는 ‘딸X이’ 치는 게 허용된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자유인이다.”
아니면 “지원금 떨어지면 잠시 집에 있다가 다시 지원에 당첨(?)되면 그때 등장해도 되는데, 왜 구차하게 경쟁에 뛰어들어 자존심까지 상해가며 살아가야 하나, 나 같은 예술가가!” 이런 배짱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꾸만 공공극장의 확대보다는 소액이라도 지원금을 받아 마음대로 쓰면서 공연을 하고 싶은 욕망이 클 것이다. 이는 관객이 없어도 소극장만이 꾸준히 늘어나는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오세곤 교수 등을 내세워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한팩의 무조건 대관을 원하는 논리로 글을 쓰도록 (앞장을 서도록) 강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그동안 나의 오랜 경험으로 미루어 무질서와 무책임만 양산할 뿐 아무런 연극적 성과도 거둘 수 없다는 것이다.
막말로 ‘끝이 뾰쪽한 송곳은 안주머니에 깊이 넣어두어도 언젠가는 삐져나오게 마련이다.’ 재능이 뛰어나면 지원이 약해도 (비록 후원이 없어도) 언젠가는 살아날 기회가 오는 게 예술세상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지원만을 학수고대하게 되면 되레 연극인들의 약점만 공공기관에 노출하게 돼, 점점 여론이 악화되어 지원의 폭과 ‘액수’만 점점 줄어들게 될 뿐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따라서 공공극장(기관)의 근무자들도 당연히 연극인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도 사명감을 가지고 제 역할을 다 해야 할 것이다.
우선 외부에 발주를 주거나 외부기관과 계약을 해서 경비도 줄이고, 성과도 확대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일단 책임자가 무조건 자기 임기를 채우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야구감독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면 탈락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나는 오랫동안 국립단원으로 있으면서 공공극장(단체)의 폐해를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이다. 무사안일한 공무원, 아무 생각 없는 리더, 마냥 게으른 단원들, 그렇다고 대학로의 사설(민간)단체의 육성이 대안이 될 수 없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다음에 이런 것들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나열할 기회를 갖도록 하겠다.

 

 

One thought on “국립극단과 명동예술극장의 통합/ 우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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