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술학회 창립, 이론과 현장의 진정한 일치를 기대하며/ 오세곤

(제 56호 편집인의 글)

화술학회 창립, 이론과 현장의 진정한 일치를 기대하며

 

 

한국연극교육학회 산하에 분과학회로 화술학회가 창립된다. 우리 연극계에서 이렇게 세분화된 학회가 생기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물론 몇 년 전 연기예술학회가 생겼지만 연기만 해도 워낙 방대해서 화술학회와는 비교할 수 없다.

그리고 또 하나 특징은 한국연극교육학회를 모(母)학회로 하는 분과학회라는 점이다. 이것은 소수의 연구자가 밀도 높은 연구 활동을 펼치되 연극이라는 전체 맥락과 항상 긴밀하게 연결되도록 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분과학회 체제의 모델은 한국체육학회이다. 그 산하에는 총 17개의 분과학회가 있는데 각각의 규모가 거의 우리 연극 분야 단독학회들과 같거나 더 클 정도이다. 물론 크기만 갖고 따질 수는 없는 일이지만 역시 국가적으로 체육이 갖는 위상이 대단하며 그에 힘입어 학술적으로도 상당한 성과가 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학회의 주된 목적은 학술 연구이다. 연극 관련 학회는 당연히 연극을 그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거기에는 연극사나 작가연구 같은 순수 이론도 포함되지만, 연기, 연출, 무대기술과 같은 실기 분야도 포함된다. 연극학계의 고민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순수 이론에 비하여 실기 분야의 이론화가 상당히 미흡하기 때문이다.

이론과 현장은 어떤 관계일까?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그런 것일까? 실기를 가르칠 때 설명이 따른다면 그것도 이론이라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이론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 현장과 바로 붙어 있는 것도 있고 아주 형이상학적이거나 철학적인 것도 있는 거 아닐까? 또 그 이론들은 어떻게든 서로 연결되어 현장으로부터 최상부의 철학까지 하나의 맥락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할 때 그 원리는 소리가 어떻게 발생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소리는 현장이고 현실이다. 그걸 관찰해서 원리를 찾아내고 그걸 응용할 수 있게 이론화했기 때문에 인류 역사상 가장 과학적인 글자가 탄생했던 것이다. 이론과 현장 또는 현실이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가장 확실한 사례라 할 것이다.

연극은 말과 몸짓, 또는 대사와 동작을 주된 표현 수단으로 한다. 이 중 말에 대한 이론이 바로 화술학이 될 것이다. 물론 화술을 좁게 보면 의미와 느낌을 분석해서 그에 맞게 휴지와 억양 등을 구사하여 말하는 부분만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나 넓게 보면 발음, 호흡, 발성, 공명 등까지 포함하여 말에 관한 모든 세부 항목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예술과 달리 일상에서 쓰는 것과 똑같은 말과 몸짓을 사용한다는 데서 발생한다. 누구나 다 하는 것인데 특별히 이론화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비학문적인 생각부터 국어에서 다 해놓았을 텐데 연극에서 따로 할 게 있겠느냐 하는 안이한 태도까지 화술학 연구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태도는 실로 다양하다.

그러나 일상의 언어와 연기자가 구사하는 대사는 문법과 어법 등 그 모양만 같은 뿐이지 성격으로 보아서는 전혀 다른 언어이다. 모양은 같지만 다른 언어이므로 별도의 훈련 과정이 필요하고, 훈련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론화가 필요하다. 물론 모양부터 다른 음악이나 미술 언어의 습득 과정과 연기 언어로서 대사 구사력의 훈련 과정이 꼭 같지는 않다. 그러나 분명한 건 평소처럼 별 인식 없이 구사할 수 있는 상태와 달리 하나 하나 인식해 가며 구축해 나가는 언어이며 더욱이 예술적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 인식의 정밀도가 대단히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동안 화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열정적으로 가르친 분들이 계셨다. 많이들 아는 얘기로 우선 이원경 선생님이 계실 것이고, 여전히 기회만 되면 후배들에게 정확한 화술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 오현경 선생님도 화술의 선구자로 일컫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화술 이론의 체계화 시도는 상대적으로 약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2000년대 초반 이후 간간이 저술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그 빈도가 꽤 높아졌다. 화술학회의 창립 결정은 이렇게 인적 자원이 어느 정도 모였다는 판단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제 6월 20일 화술학회 창립 세미나를 기다린다. 그것이 우리 연극계에서 현장과 이론이 일치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이후 훈련을 위해서나 예술 창작을 위해서나 완벽한 지침이 될 그런 이론의 정립을 기대한다. 그래서 적어도 연극계에서는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는 말로 부실을 타당화하거나, 무엇이 옳고 그른지 구분이 안 돼 지망생들은 물론 현역들마저 그야말로 “암중모색(暗中摸索)”하는 일이 없어지기를 고대한다.

2015년 6월 1일

‘오늘의 서울연극’ 편집인 오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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