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문화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정명문

미성숙의 세대, 복고에 갇히다

–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

정명문

 

작 : 이금구
연출 : 박장렬
출연 : 박창근, 디안, 정수훈, 박두성, 황지영, 최윤희, 문보람, 이현도, 이가을
제작 : LP스토리
일시 : 2015.4.24.~4. 26.
장소 : 안산 문화예술의 전당 달맞이 극장

 

주크박스 뮤지컬과 과거 돌아보기

 

주크박스 뮤지컬(Jukebox Musical)은 기존에 있던 가요들을 극과 연결하여 만든 뮤지컬을 일컫는다. 이 형식은 유행가요를 모아 만든 컴필레이션(Compilation)과 한 작곡가 혹은 가수의 노래만을 모은 어트리뷰트(Attribute Show)방식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특히 <맘마미아>가 작품성을 인정받으면서 주크박스 뮤지컬은 핫한 제작방식으로 등극한다. 알려진 곡은 음악 창작의 시간적 한계를 극복하는 동시에 곡의 이미지와 추억을 연결하기에 관객몰이와 관련되리라 기대되었다.

한국에서 주크박스 뮤지컬이란 명칭으로 제작된 작품은 <와이키키 브라더스>(2004)부터이다. 이 작품은 동명 영화에서 밴드 구성원 스토리를 가져오고, 1980년대에 유행한 가요들을 중간에 넣는 컴필레이션 방식이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작품성 보다는 관객의 확대라는 부분에서 주목받았다. 당대 뮤지컬 관객은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의 여성관객이 대다수였는데, 이 작품은 386세대를 새로운 관객으로 유입시켰기 때문이었다. 흘러간 가요로 중장년의 관객을 끌어당긴 주크박스 뮤지컬은 이후 카테고리 화 되면서 꾸준히 만들어졌다.

한국형 주크박스 뮤지컬은 다음의 줄거리로 요약된다. 주인공은 중년인데 바쁘고 행복하지 않은 상태이다. 주인공은 갑자기 과거와 연결된 이를 만나면서 그 시절을 회상하게 된다. 과거는 학창시절 에피소드에서 출발하여 우정, 첫사랑, 군대, 좌절로 열거된다. 다시 현재로 돌아온 주인공은 걱정을 떨치고 희망찬 내일을 꿈꾸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대부분의 작품은 주인공의 직업만 다르지 이 구성과 주제의식이 상당히 유사하다. 그 이유는 뮤지컬에 활용되는 노래가 비슷한데다가 노래의 원 이미지를 고스란히 가져오기 때문이다. 중년이 된 이들은 자신에게 익숙한 노래를 통해 ‘참 좋았던 과거 시절’을 떠올리고 나와 유사한 관객들이 공감하는 것을 확인하면서 팍팍한 지금을 잠시 잊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소가 학교라는 점이다. 이는 가능성이 열려있었던 그 시기의 대표적인 장소를 그리워하는 것일 수도 있다. 획일성으로 인해 비슷한 추억이 형성되었다는 점은 잊은 채 말이다. 데이비드 로웬델이 말한 것처럼 노스탤지어로 유희와 즐거움이 되고 있는 과거는 심각하게 보일 필요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거를 회고하는 것은 현재의 위기로부터 출발한 것일 수도 있다.

초창기는 70-80년대를 호출하였지만, 근래 90년대로 시기가 상향 조정되었다. 90년대는 IMF와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냈던 현재 40대 초중반의 인물들이 20대를 보냈던 시기이다. 하지만 90년대를 복구하는 방식은 7-80년대를 그리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90년대는 음악만 보아도 모던 락, 발라드, 포크, 펑키, 랩, 힙합, 테크노 댄스와 아이돌과 같은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었던 시기이다. 개성이 돌출되고, 다양한 분위기를 표출하였던 시기였는데도 이전 시기와 유사하게 그려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한국 주크박스 뮤지컬이 ‘복고’란 이름 아래 유사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관객’ 때문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아야 한다.

 

김광석을 추억하는 세 가지 방식

 

김광석의 곡들은 2013년을 전후로 세 편(<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날들>, <디셈버>)이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김광석의 가사와 음색이 만들어내는 감성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은 것에 비해 뮤지컬화 된 것이 상대적으로 늦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뮤지컬은 가창 방식만 해도 독창, 중창, 합창이 고루 운영되어야 하고 내용도 분위기, 감정, 코미디, 갈등의 해소 등이 담겨야 한다. 또한 대화하는 듯 노래가 진행될 때 자연스럽다. 하지만 김광석 원곡 창법과 분위기를 유지하게 되면, 뮤지컬의 전형적인 방식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김광석의 노래는 서정적인 가사와 절박함이 있어 듣는 이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고, 담백한 목소리는 감성을 증폭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기에 매력적이다. 결국 90년대의 감성이 담긴 원곡의 분위기는 뮤지컬을 과거로 돌리는데 기여하게 된다. 그래서 20년 전의 과거의 에피소드(실연, 군대, 좌절, 나이)나열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세 작품은 같은 곡이 포함되어 있지만 오리지널 곡 이미지를 극 안에 가져오느냐, 포기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나타난다. <디셈버>는 김광석을 연상시키는 인물(지욱)의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 안에 원곡 이미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날들>은 대통령 경호원(무영)의 과거(사랑, 우정, 실종)가 현재에도 반복된다는 추리 서사에 원곡을 변형하여 배치한다. <디셈버>와 <그날들>은 과거를 현재에 반추하는 방식은 유사하나, 흥행과 평가부분에서 명암이 갈렸다. 원곡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온 <디셈버>는 노래와 극의 연결이 부자연스럽고, 무대를 채우는 방식이 극과 다른 방향이어서 문제가 있었다. <그날들>은 완전히 새로운 서사에 곡 이미지를 변형한 것이 극과 자연스레 연결되면서 설득력을 가져왔다. 이로 보아 원곡을 변형해도 극을 추동하는데 기여한다면 가능함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어쿠스틱 뮤지컬’이라는 명칭이 붙어있다. 이 명칭은 오리지널 곡을 살렸음을 강조한다. 무대 활용이나 음악구성도 이를 분명히 드러낸다. 무대는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제일 큰 영역인 중앙에 악기(키보드, 드럼, 기타, 퍼커션)가 배치되어 있다. 무대 오른쪽은 벤치와 나무 한 그루, 왼쪽은 탁자와 의자만 놓여 있으며, 장소의 이동을 최소한으로 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최소한의 무대는 노래에 집중하기 위한 장치이다. 또한 이 작품은 배우들이 22곡을 직접 연주하며 노래하는 것이 특징이다. 배우의 반주로 인해 관객들은 ‘바람밴드’가 모인 연습실, 대학가요제 현장, 콘서트 속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보컬 이풍세(박창근 분)의 창법은 김광석과 흡사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콘서트처럼 구성한 전략은 원곡 분위기를 가져오는 데에 거부감이 없게 만든다. 이 방식은 추억에 잠기게 하는 데 효과적이기도 하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노래패 대학동아리 5명의 이야기와 그 상황에 맞는 노래로 구성된다. 이들은 노래패라는 공통된 관심사로 마음을 열고(광야에서, 너에게) 대학가요제(어느 목석의 사랑)에서 수상할 정도로 실력이 있었지만 입대(이등병의 편지), 졸업, 취직, 결혼 등의 과정(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을 거치면서 음악에 대한 꿈과 열정을 놓게 된다.(변해가네) 은영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일상을 열심히 살았지만 자신의 존재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며 흐느끼고(잊혀지는 것), 영후는 소심한 가장이 되어 삶의 무게를 버거워한다.(내가 필요한 거야) 상백은 연구소의 비리에 분개하며 사표를 쓴다. 고은은 비정규직의 고단한 일상을 좌충우돌 살아낸다.(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풍세만이 좌충우돌 노래를 지키려고 애쓰지만(서른 즈음에) 연예인의 자질만 요구하는 현실(바람이 불어오는 곳)과 자신의 위치를 깨달으며 상처를 받는다.(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풍세에게 이별을 선고 받았지만, 그의 좌절을 잘 아는 고은은 친구들을 불러 모아 밴드를 다시 결성하게 되고, 이후 신나는 콘서트로 극이 마무리 된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어느 목석의 사랑) 인물 각각의 일상과 맞닿는 노래는 상황 속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에 관객들이 이를 파악하고 공감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렇게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현재 콘서트- 과거- 대학가요제- 현재 콘서트의 흐름으로 구성되어 있다. 콘서트 때는 극과 상관없는 노래가 나오며, 심지어 극중 대학가요제 수상 곡은 박창근의 곡을 활용한다. 콘서트 방식은 장단점이 있다. 우선 극과 상관없는 노래들이 나와도 무리가 없다. 이 작품은 김광석 곡을 가능한 많이 보여주려는데 주력하였기에 이런 방식은 나름 영리한 계산이었다. 소극장 뮤지컬임에도 2시간 40분이 넘는 러닝타임 내내 노래가 나온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좋은 노래도 개연성이 부족하면 지루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극- 콘서트로 넘어가는 부분에는 배우의 등퇴장이 부자연스럽고, 연결이 안 되면서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는 점은 단점이다. 그래서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서사보다는 노래들려주기에 더 특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낭만적 호출과 씁쓸한 공감 사이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90년대의 일상이 왜 그랬는지 이유를 탐구하기보다는 척박한 현실을 드러내고 멈춘다. 그래서 콘서트를 하는 결말은 현실의 문제들을 희석해버리고 만다. 현실에서 그럴 수 없기 때문에 관객들이 열광하는 것일 수도 있다. 콘서트 이후 그룹 바람이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는 뮤지컬에서 나오지 않는다. 사실 현재를 파괴하는 선택 뒤의 모습이 진짜인데 딱 거기서 멈춘다. 그래서 경제력과 존재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던 고은과 풍세, 은영과 영후의 갈등은 확장되지 못하고 스쳐가 버린다. 풍세가 꿈을 이루려면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이고 주변인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결론은 개운치 않다.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기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도 아닌 듯 하다. 현재를 변화시킬 수 없기에 과거를 들추는 것이라면 비겁하다. 그러기에 공연을 보고 돌아서는 발걸음은 그리 가볍지만은 않게 된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의 주요 타깃은 결국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러 간 40대 이상이다. 특정세대를 겨냥하게 되면, 그 외 관객들의 감성에 반향을 일으키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김광석의 노래는 명곡으로 끊임없이 소환되고 있지만, 20대에게는 부모 세대의 지나간 노래일 뿐이다. 관객들이 잘 알려진 노래로 인해 작품을 선택하는 것도 맞지만, 뮤지컬을 보러갈 때 ‘노래’외에 볼거리, 재미, 감동도 함께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원곡이 가진 정서와 지식만을 나열하는 것으로는 감성의 흐름을 장악할 수 없다. 특정세대를 다룬다면 그들의 문화, 감성에 대한 이해와 스토리가 곡과 맞물려야 한다. 혹은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내용으로 공략해야만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 주크박스 뮤지컬이 재공연이 되려면, 다양한 관객을 섭렵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야 한다. 오랜만에 극장에 나오는 중 장년층의 1회성 나들이 가 아니라, 그들에게 또 보러가고픈 장르가 되어야만 제대로 관객 확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의 주 정서는 왜 이렇게 꿈을 잊고 달려왔는지 모르겠다는 탄식이다. 해결책도 없는 현실을 드러내는 방식들이 썩 잘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흥미로운 것은 40대가 아닌 20대의 반응에 있다. 포기하는 에피소드는 5포 세대라는 자신의 상황과 연관성이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부모 세대의 일상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보편적인 감성들이 김광석 곡에 많이 있기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문제가 심각하다. 분명 20년 전과 현재는 많은 것이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들은 그저 열심히 살 수밖에 없고, 꿈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과연 노래를 부르면 문제가 해결되고, 그 감성을 이해받는 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이 되는 것일까. 자칫 젊은 관객에게는 이러한 중용이 최선인 것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초창기 한국 주크박스 뮤지컬에는 유명 곡의 분위기에 기대 드라마를 제대로 짜지도 않고 곡만 끼워 맞추는 허술한 스타일이 많았다. 이는 에피소드 별 소소한 재미를 추구하기에 극적 완성도 보다는 버라이어티 쇼 방식으로 이것저것 보이는데 급급하였고, 결국 천편일률적인 스토리로 인해 재공연이 되지 못하는 사례들도 있었다. 그에 비해 어트리뷰트 방식은 특정 인물의 인생을 통해 시대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주크박스 뮤지컬에서 노래는 양면의 동전과 같다. 좋은 노래가 들어가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완결된 스토리가 받쳐주었을 때, 그 작품의 생명력이 생기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저지보이스>의 경우 1960년대의 대중 문화, 보이밴드의 인기, 이탈리아계 미국인의 의리, 가벼운 허슬댄스와 밴드 4명의 엇갈리는 회고와 그룹의 운명이 어우러지면서 그들이 밴드를 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역사였음을 드러낸다. 포시즌스의 노래 가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성장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진 스토리이기에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명곡의 분위기를 다음 세대에게 이해시키고 현재화 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게다가 소극장 장기 공연, 시즌 2, 지방에서 서울로 역 전파된 방식 등 타 주크박스 뮤지컬과 차별화된 부분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콘서트 방식이여서 ‘김광석’을 추억하는 사람이 있는 한 계속 공연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90년대를 낭만적으로 보여주는 역할만 담당한 것은 분명 문제이다. 어쩌면 그것이 90년대라는 시대의 한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반성이 없는 복고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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