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본가/ 이주영

씁쓸한 시절과 공존

<종일본가 -부제: 아버님의 일기장>

이주영(연극평론가)

 

작: 이선희

연출: 김제훈

단체: 조은컴퍼니

일시: 2015년 12월 5일~27일

장소: 설치극장 정미소

관극: 2015년 12월 25일

 

 

울타리인지 철창인지, 모르겠다는 늙은 아버지(김태훈 분)는 하루 종일을 집 안에 있다. 종일본가終日本家. 집을 둘러싼 울타리가 철창이라면 그곳을 벗어나고 싶을 터인데, 그러지 않은 것을 보니 이 아버지에게 뭔가 사연이 있는 듯싶다. 아니나 다를까, 마당이 메인 무대임에도 이 마당까지 시선을 옮기기 위해서는 우선 아들의 방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 아들이 죽었다고 한다. 죽은 아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그래서 아버지는 늘상 집을 지키고 있는 걸까.

아들이, 죽은 아들이 아버지의 일기장을 읽는다. 이 작품은 아들의 내레이션과 아버지의 삶이 교차하며 진행된다. 잠시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아들은 죽었고, 그런 아들이 아버지의 일기를 읽는다. 그런데 아버지의 현재 삶에는 아들은 죽음으로 인해 부재하다. 선후 관계가 어긋나 보인다. 작품 후반부에 성인인 아들의 목소리와 함께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오버랩되어 어린 시절의 아들이 아버지의 일기를 읽은 것처럼 보이나, 그간 목소리로 작품 안을 채운 담담하고 무게감 있는 정서, 아이들이 표현할 수 없는 그 감정을 생각한다면 후반부에 잠시 잠깐 삽입된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일기의 낭송자가 어린 시절의 아들이라 해석하는 것은 좀 억울하다. 그런데 이러한 설정이 이선희 작가의 전작 <헤드락>을 생각한다면 그리 낯설지는 않다. 그 작품에서도 죽은 아들이 현재의 순간에 등장하였고 그렇게 무대 안은 생과 사가 공존하였다. <종일본가> 또한 공간(아들의 방/아버지의 마당)과 낭송과 재연의 시간 속에 생과 사가 서로를 응시한다. 그리고 아버지는 울타리인지 철창인지 모를 곳에서 하루를 보낸다.

아들의 애인으로 추정되는 은실(김민경 분)이란 여자가 찾아온다. 맹랑하게도 그녀는 이 집에서 살고 싶다고 한다. 되바라졌을 거란 예상과는 달리 구김이 없고 착하다. 나쁜 구석은 없어 보인다. 아버지는 아들의 애인을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이내 은실이 임신했음이 밝혀지고 자연스럽게 아버지는 은실을 받아들인다. 어두웠던 공간이 며느리와 새생명으로 밝아진다. 아버지의 삶 또한 전과 다르게 활기차졌다. 이즈음 되면 세상과의 소통을 시도해 볼 법하다. 그러나 아버지는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집 밖을 선뜻 나서지 않는다. 그가 세상과의 소통은 방법은 간간히 오는 택배원 오봉구(라경민 분)와 작품에서 희극적 인물로 재미를 선사하는 친구 박씨(오주환 분)가 유일해 보인다. 아, 그리고 종종 들리는 딸 미주(이선희 분)와 사위 황진상(전익수 분) 정도.

무대 안, 모든 패가 깔렸다.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 같지만 모두가 이면에는 힘듦과 상처들로 가득하다. 아들을 먼저 보낸 아버지의 고통만이 아닌, 무대 안에는 등록금으로 생활전선에 나서야 했던, 현시대 청년들의 힘겨움을 대표하는 봉구의 사연이 있으며, 불임으로 예민해진, 그럼에도 애써 그 아픔을 안으로 누르려는 딸 내외의 깊은 고통이 있다. 심지어 은실 또한 아들의 아이를 임신한 것이 아니라 가정과 남자에게 버림 받은 인물이다. 모두가 아프고 불안하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세상은, 집 밖의 공간은 이들을 품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이 이 집에 모였다. 죽은 아들은, 관객의 시야에 맨 처음 들어오는 공간인 그 방에 살았던 아들은 이 아픈 사람들을 한 데 모은다. 세상이 그들을 돌보지 않기에.

그나마 은실과 딸 내외인 젊은이들은 집 밖을 나간다. 남은 사람은 아버지뿐이다. 결국 아버지가 집에 있는 이유는 아들이 그리워서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알았다. 철저하게 집 밖의 공간은 그를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세상에서 고립된, 살아가고 있지만 눈길을 주지 않는, 마당 한 구석에 고개만 빼꼼히 내민 낡은 스텔라 자동차처럼, 너무 낡아 기능여부가 의심되는, 마치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는. 씁쓸하고 뼈아픈 생과 사의 공존이다. 이 상황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집에 있는 것이다. 종일본가. 이 타의적이며 자발적 행동이라는 아이러니한 선택이 그에게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울타리인지 철창인지 모르는 집이라도 있는 것을, 종일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 안타까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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