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의 아내/ 양근애

탈인간의 거주처

– <곰의 아내>

 

양근애(연극평론가)

 

작 : 고연옥

각색/연출 : 고선웅

단체 : 극공작소 마방진, 남산예술센터

공연일시 : 2016/07/01~07/17

공연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관극일시 : 2016/07/15 pm. 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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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숲에서 길을 잃었다가 곰을 만나 곰의 아이를 낳고 동굴에서 살았다. 어느 날, 여자는 죽으러 온 ‘남자’를 우연히 구하게 된다. 남자는 죽다 살아나 자기 옆에 있는 여자를 본다. 여자는 사냥꾼이 자신을 발견하고 인간 세계로 데려가기 위해 곰의 아이를 죽인 일과, 다시 인간이 되라고 쑥과 마늘을 먹인 인간 세계로부터 다시 도망쳐나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나 아내와 아이를 잃은 곰은 온 몸을 뜯으며 울며 떠났고 여자는 곰에게로 돌아가 용서를 구하고 싶어 한다.

여자와 남자는 한 번씩 인간에게서 벗어나 인간을 생각하게 되는 일을 겪었다. 여자에게는 곰을 만나고 헤어진 일, 남자에게는 죽기로 결심한 자리에서 곰의 아내인 여자를 만난 일. 이 말을 확대해석하고 싶다. 인간은 누구나 한 번씩 인간에게서 벗어나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일을 겪는다, 라고. 그러나 그 일이 다 같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가령, 여자는 우연히 인간을 벗어났으나 자발적으로 인간-됨을 포기하려고 한다. 남자는 자발적으로 인간을 벗어나고자 시도했으나 결국 인간-됨의 세계로 도망친다. 두 세계가 충돌하고 깨지고 부서진다. 무엇이 남았나. 탈-인간이 사는 곳, 인간을 벗어나고 또 넘어서고자 하는 사람들이 머물 곳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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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웅의 <곰의 아내>는 고연옥의 <처의 감각>을 원작으로 한다. 두 개의 작품은 곰의 아내인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지만 바라보는 세계가 다르다. 희곡 <처의 감각>에서 지칭하는 ‘처’는 곰의 아내가 된 여자만을 지칭하고 있지 않다. 여자는 극의 마지막에 마치 아내에게 돌아가듯 곰에게로 돌아가는 것으로 암시되어 있다. 극의 제목대로, 감각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감각은 인간, 이성, 논리로 환원되지 않는다. 여자는 곰의 언어를 느끼고 곰의 냄새를 맡고 곰의 아픈 마음을 공감한다. 뿐만 아니라 여자는 자신이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느끼고 자신이 돌아갈 자리를 직감한다. 여자는 자신이 낳은 아이가 짐승인지 인간인지 규정짓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어서 예쁘다는 것을 알아차릴 뿐이다. 희곡에서 이 말은 두 번 반복된다. 사냥꾼이 곰의 아이를 발견했을 때 한 번(사냥꾼: 그거 참, 신기하게 생겼네./ 여자:(자랑스럽게) 귀여워요./ 사냥꾼: 사람도 아니고, 짐승도 아닌 것이./ 여자: 그걸 알고 태어나진 않아요./ 사냥꾼: 그래, 그럴 거다./ 여자: 그래서 예뻐요.), 사냥꾼이 남자의 아이를 발견했을 때 다시 한 번(여자: 자세히 보면 신기하게 생겼어요. 사람도 아니고, 짐승도 아닌 것이./ 사냥꾼: 그걸 알고 태어나진 않았을 거야./ 여자: 그래서 더 예쁜가 봐요.). <처의 감각>에는 인간은 원래 짐승도 사람도 아니라는 것, 또 짐승이기도 하고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이 풍부하게 나타나 있다.

연극 <곰의 아내>는 이와 같은 대사를 전폭적으로 수정하고 어쩌다 곰의 아내를 만나게 된 남자의 이야기를 좀 더 비중 있게 다룬다. 남자는 죽으려고 했다가 아이러니하게도 ‘곰의 아내’를 만나 사람의 아이를 가지고 인간의 세계로 귀환한다. 그러나 이내 남자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에 짓눌려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멀리서 보면 평범한, 돈 버는 남편과 아이를 돌보는 아내의 모습은 피로와 고단함만을 남길 뿐이다. 남자는 자신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 아내를 탓하며 살아간다. 따로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지만 자신의 아이를 가진 곰의 아내와 살기로 한 남자의 선택을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남자는 인간적인, 혹은 짐승이 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윤리로 곰의 아내를 버릴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짐승 같이 살지 않기 위해’라는 흔한 비유는 짐승을 인간 이하로 두는 관점이 반영된 것이다. 과연 인간은 짐승보다 나은 존재인가. 남자는 세속의 눈을 의식하며 현실보다 이상이 큰 자신을 비하하고 바로 그런 세속의 따가운 눈총을 피하기 위해 자충수를 두며 살아왔다. 그리고 잃어버린 자신을 찾기 위해 자신의 아이를 낳은 아내를 떠난다. 곰의 아내 덕분에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로. 만약 연극이 여기에서 그쳤다면, 남자의 선택을 짐짓 모른 체하거나 승인하는 결말에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뒤늦게 자신을 찾겠다며 떠나버리는 남편과 그런 남편을 붙잡지도 못하고 남겨진 아내와 아이들의 이야기라니 너무 구시대적인 발상이 아닌가. <곰의 아내>는 <처의 감각>의 결말을 완전히 고쳐씀으로써 그러한 우려를 넘어선다. 마치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듯,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에게로 떠나고 홀로 남겨진 아내는 곰을 만난다. 그 마지막 장면은 귀엽고 영특한 위로였지만, 인간-여성-존재의 외로운 고투가 낭만적으로 봉합되는 순간임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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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곰의 아내>는 역설적으로 원작 희곡을 읽고 싶게 만든다. 소녀 같은 천진함과 생기, 여성으로서의 어여쁨과 섬세함, 복합적인 감정을 잘 담은 표정과 몸짓 등 김호정의 연기는 눈부셨지만 인간을 넘어섬으로써 인간-됨에 대해 성찰하게 만드는, 곰의 아내로 행복했고 인간의 아내로 실패한 한 여자의 삶의 여정이 무대 위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극은 원작 희곡에 없는 무당을 등장시키고 산장지기, 역장, 이웃집 노인, 사장을 노래하게 하면서 극에 활력을 부여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전체적인 흐름이 어그러지는 것도 사실이다. 곰의 아내와 세상에 찌든 남자 이외의 인물들은 기능적으로만 유효할 뿐, 그들이 인간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로 보이지 않았다는 점도 아쉽다. 곰의 아내가 개별적인 사례가 아니라 우리가 인간이라고 믿었던 세계를 해체하고 다시 성찰하게 하는 상징으로 형상화되려면 차분히, 고요한 채로, 곰의 아이와 함께 원초적 친밀성을 체득하며 자신이 가야할 곳이 죽음이라도 두려움 없이 형형했던 한 여자의 얼굴과 몸짓을 오래도록 들여다보게 하면 좋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녀가 인간이었던 자기 존재를 변이시키고 주변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다른 분위기로 만들 수 있는 힘을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 자꾸만 상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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