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김태희

잡히지 않는 삶, 그 환영의 공간 속으로

– <환영>

 

김태희

 

원작 : 김이설 소설 <<환영>>
각색 : 황이선
연출 : 황이선
드라마투르그 : 이주영
단체 : 공상집단 뚱딴지
공연일시 : 2016년 9월 16일 ~ 2016년 10월 2일
공연장소 : 선돌극장
관극일시 : 2016년 9월 23일

 

<환영>은 불편한 작품이다. 작품 초반부에서부터 인물들은 소리를 지르고 울부짖는다. 주인공 윤영의 삶은 그렇게 고난과 역경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둘째보다 못난 언니, 아들에게 치이는 장녀, 그게 애초에 윤영에게 마련된 자리였다. 윤영은 동생들의 성장을 기원하며 군소리 없이 뒷바라지를 하지만 그녀의 기대는 보기 좋게 배신당하고 만다. 동생 민영은 허황된 꿈을 꾸다 불행하게 삶을 마감하고 남동생 준영은 윤영의 집마저 날려버린다. 그녀의 가족은 그야말로 남보다 못한 인물들이다. 남편이라고 다르지 않다. 공부를 하겠다고 집에 눌러 앉은 남편은 생계에는 관심이 없고 아이는 걷지를 못한다. 이 구구절절하고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우리가 왜 지켜보아야만 하는지, 관객들을 온당하게 설득하는 것이 이 작품 앞에 놓인 가장 큰 과제였다.
연극 <환영>은 김이설의 소설 <<환영>>을 원작으로 한다. 소설을 연극으로 각색하는 일은 이제 너무나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으며 그 공연 형식 역시 다양해졌다. 이 작품처럼 연극대본으로의 완벽한 각색을 목표로 하기도 하고 낭독 공연의 형식으로 무대에 올라가기도 한다. 한편 텍스트를 중심에 놓고 그 텍스트의 창작이나 소비의 과정을 극화하는 경우도 드물게 있었다. 어찌되었건 소설을 연극으로 각색하는 과정은 치밀한 계산과 오랜 고민이 필요하다. 소설의 언어와 연극의 언어를 적절히 고르고 배치해서 이 작품이 오롯이 연극 무대 위에 버티고 설 수 있게 만들어주는 작업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환영>의 각색 방식은 주목해볼만하다. 주지하다시피 윤영의 삶은 고난과 역경으로 가득 차있다. 그런데 윤영의 고난은 그녀에게서 시작된 것들이 아니라 주로 외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어서 더 비극적이다. 가족들을 위해 고시원 방에서 부업을 했고 공장에서 일을 했지만 그런 윤영에게 돌아오는 것은 동생들이 남긴 빚 독촉과 외면할 수 없는 핏줄들이다. 그런 가족이 싫어서 남편을 만나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지만, 그 역시 윤영에게는 짐이 되고 만다. 덕분에 윤영은 백숙집에서 성을 상품화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황이선 연출은 시간적 흐름에 충실한 소설의 서사를 그대로 따라가는 방식 대신에 이 고난을 세 가지의 에피소드로 분절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를 통해 비극적 삶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주는 셈인데, 덕분에 윤영에게 닥쳐온 고난은 보다 입체적으로 형상화될 수 있었다.
세 가지 에피소드 중 첫 번째, 두 번째 에피소드는 윤영의 가족들과 관련되어 있고 마지막 에피소드는 윤영을 둘러싼 사회 구조와 연관되어 있다. 백숙집에서 성매매를 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지만, 사장의 친척이 그 지역 관할 경찰인 탓에 묵인되어 왔다. 윤영은 조금 더 보수가 높다는 말에 백숙집의 정체를 모르고 일을 시작하지만, 생계의 지속이 간절한 그녀에게 백숙집은 최악이자 최선의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앞의 두 번째 에피소드에 비해 세 번째 에피소드는 사회적 구조의 문제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더 중요하게 다루어질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반복되는 성매매 장면은 가학성을 부각시키는 측면이 있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매춘을 대하는 윤영의 태도 변화, 그로 인해 암시되는 삶의 고단함 등을 읽어낼 수는 있었지만 이것이 사회적 구조까지 확장되기에는 요원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최악인 상황들과 맞닥뜨려도 윤영은 삶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그녀를 불행으로 몰아넣는 모든 고리를 끊어내기에는, 그녀는 어설프게 못됐고 어설프게 윤리적이다. 동시에 그것이 우리의 가장 현실적인 모습에 가까울 것이다. 환영처럼 잡히지 않는 평범한 삶, 그걸 쫓기 위해 우리는 이 지난한 삶을 꾸역꾸역 견뎌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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