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홉을 여행하다/ 오유경

<체홉을 여행하다>
연극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게 된 청소년
연극을 통해 참 인간으로 성장하는 청소년

 

극단 그룹動·시대 연출 오유경

 

원작: 안톤 체홉
구성/연출: 류미선
단체: 청소년 예술단체 키움쨍이
공연일시: 2017/03/03-03/04
공연장소: 카페극장 디마르가리따
관극일시: 2017/03/04

 

chkovjourney

 

스산한 바람이 부는 창 너머 메마른 자작나무 한 그루가 쓸쓸히 서 있다. 어둑한 거실 한 벽면을 가득 채운 초상화들. 그 액자들 속에는 체홉 작품 속 인물들이 하나하나 들어가 있다. 그들은 차오르는 그리움, 애잔한 염원, 쓸쓸한 사랑과 허망한 인식의 순간에 액자 속에서 나와 스산한 바람 속 자작나무처럼 어둑한 거실 한 켠에 자리하여 <갈매기>의 뜨레플레프가, <벗꽃동산>의 아냐가, <세자매>의 마샤가, <바냐아저씨>의 옐레나가, 또 로빠한이 되었다. 17세~24세 이하의 젊은 청소년 배우들은 자신들의 모든 진심을 다하여 인물들의 정서를 관객에게 전달하려 최선을 다해 몰입한다. 당시 러시아의 환경과 문화가 낯설고 어색했었을 텐데도, 체홉이라는 작가의 작품 속에 흐르는 사유의 깊이가 그들의 어린 목소리를 통해 묻어 나오게 하기가 좀체 어려웠을 텐데도 도망가지 않고, 날 것 그 자체의 거칠음을 두려워 않고 그들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공연 전 그들에게 세련됨을 기대하였던 한 기성 연극인의 욕망이 부끄러워질 만큼 가슴마다 가득 찬 그 열기가 예뻤다.
<체홉을 여행하다>는 체홉의 네 작품-<갈매기>, <세자매>, <벗꽃동산>, <바냐아저씨>-을 주요 등장인물의 중요한 독백이나 장면을 중심으로 정서와 리듬의 흐름으로 잘 엮어 구성한 2시간 여 진행된 workshop 공연이다. 구성에서 흥미로운 것은 <벗꽃동산>의 장면들이 이 네 작품을 구성해내는 씨줄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마치 다른 세 작품을 여행하는 동안 <벗꽃동산>의 장면이 스쳐 지나가는 간이 휴게소처럼 등장하기 때문이다. 삶에서 수 없이 치러지는 만남과 추억, 그리고 이별과 기억 속에서 그리움은 스치는 바람처럼 창 너머 한그루 자작자무를 흔들 뿐이다. 삶에 대한 그 한없이 쓸쓸한 사유가 한 청소년 극단의 작품에서 읽혀질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갈매기>의 마지막 니나와 뜨레플레프의 대화 장면이 끝나고 커튼콜을 위해 무대로 걸어 나와 죽 나열하여 서 있던 청소년배우들의 얼굴은 무대를 끝냈다는 상기된 뿌듯함보다는 생각지도 못한 체홉의 무게에 당황한 듯, 황망한 듯, 무언가 해결해야할 더 많은 물음과 숙제를 가득 안은 듯 작품만큼 풀죽은 듯 쓸쓸해 보였다. 하지만 그 모습도 예뻤다.

 

KakaoTalk_20170319_213140525

 

TIS의 필진이 되어 자유로운 형식으로 review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본인은 속으로 살짝 마음먹은 것이 있었다. 이왕 공연 후기를 써야 한다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명하지도 않지만, 내어 놓으라하는 공연장에서 올려 지지도 않지만, 검증된 훌륭한 스텝진과 배우분들이 참여하지도 않았지만, 세련된 기획으로 멋진 홍보의 위력도 없지만 뚝심을 갖고, 소박하지만 당찬 포부와 알 찬 재능으로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숨겨진 진주 같은 작품, 공연 그리고 극단들을 찾아보고 소개해야겠다고 말이다. 서울연극협회가 연극예술의 지역화를 위해 각 구에 서울연극협회 산하 구연극협회를 조직하면서 각 구에서 활동하는 숨겨진 지역연극단체들을 발견하고 만나게 되었는데 누림극장, 곧 작품 《체홉을 여행하다》을 구성하고 연출한 류미선 대표가 갈고 다듬는 청소년극단 ‘청소년 예술단체 키움쨍이’가 바로 그 중 하나다.

 

무용을 전공하고 연극으로 분야를 옮겨 모스크바 국립 쉐프킨 연극대학과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을 졸업한 류미선대표는 2009년부터 박경륜 선생님(현재 청소년예술단체 키움쨍이 대표) 외 러시아에서 함께 공부했던 각 예술분야의 선후배들과 함께 사회에서 다양한 이유로 소외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예술을 교육하는 청소년 healing을 위한 여러 장학재능기부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그 노력을 뜻있게 여긴 지인의 후원으로 5년간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청소년들로 구성한 ‘아름다운 십대들’이라는 초기 청소년극단을 이끌었다. 이후 다시 2011년 박경륜선생님을 대표로 하는 정식법인 청소년극단 ‘청소년 예술단체 키움쨍이’를 설립하고 사회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청소년들이 각 예술분야의 전문인들로부터 예술교육을 받아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런 활동들의 결과로 ‘청소년 예술단체 키움쨍이’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이 다시 예술 전문인이 되어 류미선대표 아래 모여들었고 2015년에는 아카데미적인 색깔을 버리고 젊은 예술가들의 집단(young artists’ group)인 지금의 ‘청소년 예술단체 키움쨍이’로 변화하였다. 더불어 청소년극단을 졸업하고 다음 senior단계로 자연스럽게 옮겨갈 수 있도록 ‘디마르가리따 예술팀’창단을 계획하고 있다.

 

《체홉을 여행하다》가 공연된 카페극장 디마르가리따(서초동에 위치)는 참으로 매력적인 공간이다. 홍차향기가 그윽하게 배인 카페 안은 그야말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올만한 달콤한 환상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아기자기한 차 세트와 티(tea) 관련한 여러 소품들. 독특한 홍차 향기와 더불어 달콤한 디저트가 제공된다. 그저 평범한 카페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카페 중앙에는 2층에서도 차를 마시면서도 관람할 수 있는 공연공간이 자리한다. 짙은 색 마룻바닥과 벽면 하나는 거울로 되어 있으며 천장엔 다양한 디자인의 샹들리에가 달려있고 그 사이사이에 작은 LED조명램프들이 포진해있다. 더구나 스피커로는 최고라는 회사 제품의 음향시스템이 자리한다. 곧 이 공간은 평소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청소년배우들이 연습을 하고 작품을 발표할 때는 공연 공간으로 활용되는 다목적 공간이다. 이 카페를 찾은 손님들은 단순히 홍차 맛을 음미하고 가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홍차와 더불어 연극예술을 준비하고 계획하고 고안하는 과정과 공연까지 즐기는, 한마디로 연극예술을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그 속에서 청소년들은 체홉 작품을 준비하며 체홉 인물들을 이해하고 표현하려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그 환경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젖어들었을 것이다. 혹 당시 스트린드베리히가 꿈꿨다는 ‘친밀한 극장(intimate theatre)’이 이렇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이 공간에서 <미스 줄리>가 공연된다면 어떨까…하고 생각해 봤다.

 

KakaoTalk_20170319_212432778

 

서울의 연극은 비단 잘 알려진 주된 공연들만이 아니라 숨겨진 수많은 공연들의 활동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 《체홉을 여행하다》에서 만난 청소년배우들은 기성 배우들에 비해 많은 점에서 덜 세련되고 부족하며 때론 어색하고 때론 설익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 못지않게 진지하게 작품 속에서 체홉을 만나고 작품 속 인물들을 만나고 또한 관객과 이를 공유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들 ‘청소년 예술단체 키움쨍이’ 속에서 아니 카페극장 디마르가리따를 통해서 연극이 생활의 일부분, 삶의 일부분이 되는 경험을 만났다면 이건 간과할 문제가 아니다. 연극이 관객의 삶 속에 공기처럼, 숨 쉬는 것처럼, 저녁나절의 향기로운 휴식처럼, 편안한 음악처럼, 연극이 스며들 수만 있다면 거창한 극장에 화려한 스텝진이 압도하는 미학이 아니어도 좋지 않겠는가. 연극인 복지재단이 추진하는 배우의 집에서 배우의 1인극 모놀로그를 접하는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내 이웃에 배우가 산다!’ 그렇지! 이것이 지역연극인이 꿈꾸는 지역 연극문화의 미래가 아닐까 생각된다. 정말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