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는 다 할 수 없는 말/ 김태희

돌고 돌아, 우리는 어디쯤에 있을까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말>

김태희

작.연출 : 이은준

단체 : 극단 파수꾼

공연일시 : 2017.06.08.-11

공연장소 : 미아리고개 예술극장

관극일시 : 2017.06.08.

우리 현대사는 어떤 단면으로 잘라내도 비극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대표되는 독재정권은 본인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해가 되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자행했고 그 긴 시간동안 우리는 말로는 다 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왔다. 이은준 연출의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말>은 비극적인 한국의 현대사를 몸소 겪은 사람들의 말을 우리에게 다시 들려준다. 그것은 위정자의 말이기도 하고 이름 없는 학도병의 말이기도 하다. 이 말들의 나열은 곧 우리 현대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말이 빚어내는 섬뜩한 비극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가식적인 당신의 말들

작품은 어린 학도병의 편지에서 시작된다. 매일 밤 빨간 도깨비가 나오는 악몽에 시달린다는 어린 소년은 6.25 전쟁에 참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사람이 사람을 죽여야 하는, 그래야 본인이 살 수 있는 절박하면서도 잔인한 상황에서 어린 소년이 느낀 두려움은 필경 빨간 도깨비의 악몽으로 드러났으리라. 그런데 소년이 괴로움을 토로하는 대상인 아버지는 그 다음 순간 우리에게 익숙한 그들로 등장한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비춰지는 아버지들이 등장하면서 대통령과 국민은 곧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비유된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아버지처럼 존경을 받는다는 일은 얼마나 진귀한가. 그러나 문제는 지도자를 아버지처럼 섬기는 미덕이 강요된 것이고 이를 명분삼아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극 중에서 지도자들은 아버지로 대접받고 아들들을 향해 끊임없이 발화하지만, 이들의 말은 가증스러운 위선들로 가득 차 있다.

빨간 도깨비가 무섭다는 아들에게 이승만은 빨간 도깨비가 물러가고 없다는 거짓말을 늘어  놓는다. 정작 본인은 짐을 싸면서 아들들에게는 집을 지킬 것을 권하는 그의 모습은, 한강 다리를 끊고 남으로 도망가던 지도자의 씁쓸한 뒷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습관처럼 “나라를 위해”라는 말을 달고 다니는 아버지나,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아버지 역시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의 위선적인 모습을 상기시키기에는 충분하다.

지도자들이 우리에게 되풀이했던 가식적인 ‘말’들만으로 관객들이 그들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왜 나만 갖고 그래” 따위의 말들은 마치 유행어처럼 듣자마자 그들을 연상시키지만, 그 말들은 결코 한 나라의 지도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언어들이다. 이승만이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호전적이고 도발적인 자세로 허풍을 늘어놓고 있을 동안 얼마나 많은 학도병들이 전쟁터에서 죽어나갔는가. 모든 것이 나라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운 박정희 정권 하에서 얼마나 많은 부정부패가 일어났는지,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키고도 전두환 정권이 얼마나 뻔뻔한 자세를 보여줬는지,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질기고 질긴 아버지들의 역사

주지하다시피 작품에는 아버지의 말 외에도 학도병을 비롯한 어린 아들들의 말들도 등장한다. 전면부에 배치된 학도병의 편지가 전쟁의 비극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면, 후반부에 배치된 어린 소년의 말은 광주의 비극을 떠올리게 만든다. 여느 때와 같이 평화로웠던 어느 날, 집에 가는 길에 갑자기 사라져 버린 동생과 멀리서 다가오는 사람들의 위협적인 소리. 이 기억의 편린은 그 시절 광주에 살았고 광주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비규환의 비극이 생생하게 살아오는 효과를 갖는다.

대중의 피를 딛고 서는 지도자들은 어디에나, 어느 시대에나 있다. 전두환을 끝으로 무대에는 히틀러, 빈 라덴, 레이건, 부시와 같은 다양한 지도자들이 등장한다. 이들이 훌륭한 지도자였는지는 논외로 치자.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 대중의 희생을 강요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공포심을 심어줌으로써 권력을 누렸던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아이들은 증언한다. 전쟁은 결코 대통령이 하지 않는다고. 전쟁은 이제 막 15살도 안된 어린 아이들이 나가서 총을 쏘고 또 그 총에 맞아 죽는 일이라고. 도대체 누가 이들을 전쟁터로 내몬다는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무대 중앙 높은 탑에 얼굴을 내민 지도자는 아이들에게 숨바꼭질 놀이를 제안한다. 우리는 그의 얼굴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볼 수 없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 우리는 오로지 그의 얼굴 표정과 알량한 말로서 알 수 있ᅌᅳᆯ 뿐이다. 그와 아이들의 숨바꼭질은 발랄하게 시작되지만 이내 공포스러운 것으로 변질되어 간다. 애초에 그는 아이들과 숨바꼭질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가 원하는 것은 어쩌면 그들을 협박하고 복종시키는 것이 아니었을까.

여러 아버지를 겪었지만 또 다시 그런 아버지가 등장했다는 사실에 주목해보자. 어느 때이고 그런 아버지가 등장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러니 우리는 언제고 그런 아버지를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그의 말 속에 숨어있는 위선을 거부하고 그의 알량한 손을 거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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