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과 이론] 코스프레 파파 / 정명문

살아남은 자들의 특별한 애도
뮤지컬 <코스프레 파파>

정명문

 

작 : 변효진
작곡 : 박지영
연출 : 장병욱
음악감독 : 정상우
출연 : 임진웅, 홍기주, 김준오, 조현우, 정다운, 박서영, 조세연, 이유리
일시 : 2018.11.30~12.1
제작 : (재)안산문화재단

 

안산문화재단은 <전설의 리틀 농구단>, <더 넥스트 페이지>, <에릭 사티> 등 세대가 함께 볼 수 있는 뮤지컬을 개발해왔다. 이번 <코스프레 파파>도 이런 시도의 연장이지만 소재나 구성에서 독특한 점이 발견된다. 아이를 내세운 가족 뮤지컬도 아니고, 예술가의 상처와 치유, 경성, 스릴러 같은 최근 창작 뮤지컬의 흥행공식을 적용한 것도 아니다. ‘사고를 당한 가족’과 40대 가장이 하게 된 ‘코스프레’가 주 소재이다. 일반적이지 않을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세대를 아우르는 흡입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우리는 그 저력과 방향성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들 동수의 사고로 엄마(동지), 아빠(백홍), 딸(은수)의 일상은 무너진다. 함께 밥 먹을 여유조차 사라진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괴로움을 버텨보려 한다. 동지는 골드프라자 붕괴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시위에 참여하고, 은수는 엄마 대신 식탁을 챙긴다. 백홍은 동수의 가방과 핸드폰에서 아들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유가족 협회 부회장을 맡은 동지는 단식투쟁을 외롭게 진행하고, 은수는 고3인 본인과 동지를 챙기지 않는 백홍이 야속하다. 백홍은 동수의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할 수가 없다. 누구의 상처가 더 크다고 할 수 없건만, 자신의 기준으로 보자면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 가족들 간에도 일어난다. 이렇게 남겨진 이들이 오히려 죄인이 되어 다양한 충돌을 겪고 있는 이 모습은 꾸며지지 않아서 현실적이다.

 

이들 주변에는 두 부류의 군상이 존재한다. 하나는 골드프라자 측 입장으로 협상에 임하는 오과장과 흥미위주의 보도를 진행하는 언론이다. 동지는 사고를 돈으로 무마하려는 오과장과 충돌하고, 탈진하여 입원한 자신에 대해 소설을 써대는 기자들에게 지쳐간다. 백홍은 동수(별칭 동동이)의 코스프레 팀(체유라: 리즈, 데카르트, 릿카짱)을 만난다. 비현실적인 세계에 빠져있는 이 팀의 구성원들은 동수의 흔적과 함께 묘한 매력을 보여준다. 백홍네 가족은 이 두 부류와 부딪치며 일상을 살아내게 된다.

 

이 작품은 2016년 서울예술 대학 졸업 작품에서 출발하여, 2017년 세월호 사고를 기리는 4월 연극제에서도 선보였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품고 있는 도시에서 그들과 마주한 예술인들이 유가족의 이야기를 무대화한 작품인 셈이다. 문제에 맞서고 해결해보려는 가족의 속내를 비춘 이 시선은 소중하다. 남은 이들이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와 돌아봐야 하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엄마, 아빠의 변신과 고군분투는 예측하지 못한 감정의 기복을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흥미롭다.

 

 

사실 확인과 보상 사이

 

동지는 사고 이후 밤마다 동수를 보는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녀는 자신의 일상을 멈추고 재수사촉구를 위해 노력한다. 그녀는 스스로 ‘산업안전대사전’을 찾아가며 시추조사 미비, 기초공사가 진행되지 않은 부실시공 등이 원인 중 하나임을 밝혀낸다. 이는 아무도 이유를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를 이유 없이 떠나보내는 것, 그 아픔은 당사자가 아니고는 제대로 가늠할 수 없다. 사고 원인 밝히기를 제 1의 원칙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는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며, 사과와 책임 소재 확인은 문제 해결의 기초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이들이 진실규명을 위해 삭발까지 하며 투사로 변모하게 되었건만 주변인들의 시선과 반응은 잔인하기만 하다. 어떤 누구도 유가족들에게 괜찮은지 혹은 도울 것이 없는지 묻지 않는다. 언론은 이들의 몸부림을 그저 보상, 돈을 더 받기 위한 것으로 조명하여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오해하게 만든다. 돈을 받는다고 죽은 이가 돌아올 수 없는데 말이다.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가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오과장도 기자도 자신의 입장만 고집하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가 무너지는 모습은 이 작품에서는 재즈 풍의 <돈세상>이란 넘버로 부각시켜준다. 돈이면 다 되는 세태를 신나는 리듬으로 그에 반발하는 동지의 상반된 입장은 씁쓸한 가사로 엮어내어 아이러니한 세태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동지의 상황은 여기저기서 받아온 김치에 곰팡이가 난 반찬을 품은 ‘가엾은 부엌’과 같다. 엄마가 식구를 위해 밥을 해 먹이려면 사랑과 정성을 쏟아야 가능하건만 동지의 단식은 이런 기본적인 행동을 중단하게 만든다. 은수는 고3 수험생이건만 혼자 밥을 꾹꾹 차려 먹으며 가족의 부재를 견뎌내고 있다. 사라진 이의 무게가 남은 이들의 생존을 짓누르는 것이다. 그래서 은수가 부르는 <있잖아, 엄마>는 꾸며지지 않은 가사임에도 절절하다. 마트에서 식료품을 사고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고 힘을 내는 평범한 일상이 그들에게 돌아오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안전치 못한 곳에서 자식을 잃은 가족 이야기’은 남겨진 이들의 방법 모색과 과제를 보여준다. 동지와 은수, 백홍의 삶은 개인의 서사이기도 하지만, 원인 찾기, 생존하기, 기억하기에 대한 시도의 형태를 보이기도 한다. 어떤 방식이 옳고 그른지 구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가족들은 그리움이나 미안함, 죄책감,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나>에서 노래한 것처럼 이들이 찾은 방법은 모두 살기 위해서였고, 살아있어야만 끝까지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4년간의 경험으로 조금씩 깨닫고 있다. 결국 비난하지 않고 각각의 의도를 보듬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니 제대로 애도하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자본’의 잣대를 접어두고, 재발을 막고자 하는 그 마음들을 헤아릴 수 있는 시선처럼 공동체의 자각과 따스한 접근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작가는 실제 유가족의 곁에서 변화를 목격하고 인터뷰 등으로 접한 그들의 생존 방식을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눈물을 짜내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각자를 존중하는 것에 대해 조심스레 읊조릴 뿐이다. 서사를 차근히 따라가다 보면 관객 스스로 감정의 자장을 울리게 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미덕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뮤지컬 넘버가 민중가요, 포크송, 재즈, 발라드, 락의 상징적 분위기를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분위기를 환기시키는데 기여하였다.

 

 

 

Change your life!

 

만화 속 주인공처럼 멋지게 문제 해결을 꿈꾸던 시절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백홍은 ‘코스프레’로 이 판타지를 마주하게 된다. 코스프레가 오타쿠의 별난 활동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코스어들은 캐릭터 형태를 따오는 것을 넘어서, 분장하여 무대에 서는 그 순간만큼은 그들 자체라고 여긴다. 이들은 현실 속에선 존재감이 없지만, 코스프레로 등장했을 때 그 노력을 고스란히 인정받기에 멈출 수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와 그 세계관이 존중되는 이들만의 세계는 <Change your life>란 넘버로 표현되는데 마치 애니메이션 주제곡 같은 발랄함으로 에너지가 채워져서 그 분위기를 객석에 전염시킨다.

 

릿카짱은 온라인으로 연락하던 동동의 연락두절을 걱정했지만 그 이름으로 백홍이 등장하자 <살아있으니까>됐다며 안도한다. 삶이 있어야 무엇이든 할 수 있음을 만화로 체득하고 바로 자신의 삶에 적용한 것이다. 무엇을 시작하든 생존과 인정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백홍은 동수의 죽음을 모르는 이들이 던지는 이 관심에 멍해지고, “아저씨의 꿈은 무엇인가요?”란 질문에 대답하다 이들의 코스프레에 동참하게 된다. 그는 ‘인디아나 존스’를 떠올렸는데, 이는 가족의 행복했던 순간을 연상시키는 그만의 아이콘이었다. 중년 가장은 소중했던 순간과 그 존재를 지키는 것을 꿈이라 표현한다. 아직 해보고 싶은 것이 많은 10대와 삶의 녹록함을 경험한 중년이 바라는 꿈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각자의 경험 치에서 최선이었을 꿈이기에 누구도 경중을 따지지 않는다. 그래서 ‘취향 존중’을 외치는 코스어의 태도들은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들을 다시금 고민하게 만든다.

 

백홍은 골드프라자 희생자 추모집회 단상에 아들 동수의 최애 ‘세일러문’을 코스프레한 채 등장한다. 그는 락 스타일의 넘버 <코스프레 파파>로 아들의 세상에 대해 발언한다. 그 무대는 중년 남성이 소녀로 분장한 그로테스크한 모습이지만, 전혀 몰랐던 아들의 세상을 이해하고, 기억하기 위해 수많은 연습과 노력으로 최선을 다해 꾸민 것이기에 먹먹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백홍을 위해 전국 코스프레 대회를 포기하고 단상에 함께 올라선 체유라 팀은 약속하지 않았지만 팀코스프레를 선보인다.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만화 속에만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무대에서 코스프레를 한다 해서 즉각적인 변화가 오길 기대하긴 어렵다. 하지만 함께하면 이상해도 재미있고, 마음이 시킨 일을 꿋꿋이 해내는 모습들은 현실에 적응하느라 애썼던 관객들에게 삶의 기본을 떠올리게 하며 가슴 벅차게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타인의 마음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의 에너지야 말로 무언가 바꾸는 계기를 만들 것이란 기대를 품게 하기도 한다.

 

백홍은 현실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아들이 행복하게 품었던 세상을 만나고, 그곳에서 아들을 기억하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코스프레는 일상과 한 발짝 벗어나 다른 세상을 꿈꾸는 ‘그들만의 리그’이거나 도피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코스프레를 통해 다름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거기에 성별을 뛰어넘는 장치들은 덤이다. 삶에 대한 기대 혹은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방식을 인정한다면, 해석의 폭은 넓어질 수도 있다. 소수의 취향처럼 보이던 그들은 오히려 편견이 없고, 각각을 존중하기에 연대의 가능성까지 보여주었다. 이렇게 이 작품은 비현실적인 세계를 살아 숨 쉬게 만들고 타인에 대한 신뢰로 각각의 세계가 유지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현실세계에서 찾을 수 없는 가치를 이들을 통해 다시금 발견하게 만드는 것이다. 평범치 않은 소재이지만 그 안에서 보편적인 감성을 끌어낸 작가의 구성력이 빛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상황에 스며드는 뮤지컬을 위하여

 

이 작품은 화려한 스펙터클을 구현하지 않았지만 효율적으로 무대를 활용하였다. 특히 앵글로 짠 구역은 만화 컷처럼 기능한다. 인물이 부각되는 배경 막 활용으로 코스프레 쇼 등장 모습이 되기도 하고, 모든 배경을 걷어낸 뒤 공간감을 깊게 하여 시위장면을 표현하기도 한다. 특히 극 초반 일상의 무너짐을 가운데 무대 붕괴와 앵글 떨어짐으로 실감나게 구현하는 등 시청각을 적절하게 제시한 것도 재치 있다. 소극장 공연으로 기획된 작품이 안산문화재단의 제작으로 대극장 무대화 되면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나름 구현해낸 결과라고 하겠다.

 

이 작품은 평범한 인물이 겪고 있는 심각한 현재진행형의 이야기를 뮤지컬 화법으로 구현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희생자와 현실에 대해 조망하고 고민하는 작품들이 연극에 비해 뮤지컬에서 다뤄지기 어려운 이유는 노래와 춤이라는 요소 때문이다. <코스프레 파파>는 한없이 무거울 수도 있는 이야기에 코스프레라는 흔히 볼 수 없는 소재를 결합하여 유쾌하면서도 자연스레 동조하는 감정을 만들어냈다. 물론 뮤지컬 결말은 완벽한 해피엔딩이 아니다. 이는 현실자체가 해결된 것들보다 해야 할 것이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서로 다른 세계와 생각을 인정해 주는 공감과 연대라는 것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남아있는 우리 모두를 위해 계속 공연되어야만 한다. 가슴 벅차게 노래한 뒤 중요한 감정들을 끊임없이 기억하기 위해서 말이다.

 

 

 

사진 제공_안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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