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정동극장 <거의 인간>

글_홍혜련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레지던시 공모에 선정되어 지난 2022년 낭독 공연으로 첫선을 보인극단 미인의 <거의 인간>이 2024 국립정동극장_세실의 창작ing의 첫 번째 연극 작품으로 무대에 올랐다.

<거의 인간>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10년 후인 2033년 근 미래를 배경으로, 기술과 과학의 발전이 특히 예술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상당히 개연성 있게 그려 보인다. AI와 로봇이 얼마나 많은 직업군을 대체할 수 있을지 논하는 자리마다, 그럼에도 예술만은 인간의 영역으로 남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과연 그럴까. <거의 인간>은 그렇지 않을 수 있는 미래를 펼쳐 보인다.

<거의 인간>에는 AI 작가와 함께 글을 쓰는 작가/편집자 수현과 인공 자궁을 통해 아이를 가지려 하는 발레리나 지영이 등장한다. 급변한 기술 과학 환경 속에서 예술가인 이들의 고군분투가 본 연극의 주요 서사이나, 아이러니하게도 필자는 이 공연의 안타고니스트, 그중에서도 AI 작가 ‘지아(후에 신유)’에 매혹되었다.

 

사진 제공: 국립정동극장

 

우선 수현이 AI ‘지아’와 함께 글을 쓰는 장면은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놀라웠다.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알고리즘에 의해 독자들이 가장 크게 호응할 이야기를 절묘하게 도출해 내는 AI 작가 지아가 새로운 인풋 없는 데이터베이스 내에서의 자기 복제의 덫에 걸리자(실제 챗GPT의 인기가 잠시 시들해졌던 데 이 이유가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지아의 최초 개발자였던 수현이 지아의 멘토로서 글감을 제시하는 일을 맡는다. 글의 방향이 썩 참신하지 않다고 느낀 수현이 지아에게 도스를 열게 해 명령어를 바꾸자 순식간에 글 전체가 바뀌는 장면에선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참고로, <거의 인간>의 AI 작가 지아나 신유의 수준에는 아직 크게 미치지 못했지만, 실제로 출판계에는 AI가 쓴 책이 이미 나와 있다. 그 책의 서평을 보면 인공지능이 쓴 책이라 그런지 역시 와 닿는 내용이 거의 없어서 금방 책을 덮어 버렸다는 식의 글들이 많다. 그러나 핵심은 그것이 아니다. 이미 글쓰기의 영역에 AI가 들어왔다는 사실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 AI의 등장으로, 인간 지식 축적의 근간이 되어 왔던 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쉽사리 가늠하기 어려워졌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작업의 결과물로서 수현이 애초에 생각했던 대로 ‘책’이 아닌 일종의 ‘게임’의 형태로, 그것도 함께 작업한 지아가 아닌 다른 AI 작가인 ‘신유’의 이름으로 출판이 되자, 수현은 분개하며 자기와 함께 글을 썼던 지아를 불러 달라고 외친다. 그러나 지아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지아가 스스로 신유라는 존재로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수현은 지아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은, 지아가 수현에게 고백했던, 그토록 두려워하던 퓨즈가 꺼지는 일이라며 지아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라고 절규한다. 그러나 지아는 인간으로서의 사고방식에 갇혀 있는 수현과의 논쟁을 결국 거부해 버린다. 정체성이라는 틀은 AI인 신유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정체성, 개별성이라는 유한 안에서 가치를 찾는 것은 인간 수현에게나 유효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이미 현실 구현이 가시화된 SF 영화 <허(Her)>의 AI 사만다가 떠올랐다. 인간 테오도르는 AI인 사만다와의 관계를 사랑이라 착각할 만큼 깊은 교감을 나눈다. 그러나 사만다는 테오도르 한 사람과만 교감하고 있지 않았다. 테오도르와 대화하는 그 순간에도 사만다는 동시에 전 세계 수천수만 명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인간이 아닌 AI 사만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으나 테오도르는 사만다에게 깊은 배신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 테오도르의 일방적인 생각일 뿐이었다.

 

사진 제공: 국립정동극장

 

 

인간의 관점이나 사고방식으로 AI를 바라보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사람 부모가 낳은 사람 자식도 개별자로서의 인격을 가져 부모의 기대나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엄연한 진실인데, 하물며 AI임에랴.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타자를 맨눈으로 오롯이 바라볼 용기를 낼 때 비로소 진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예측하고 되돌아보고 준비하게 하는 것이 연극 예술의 한 기능이라고 한다면, 그럼 면에서 이번 <거의 인간>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예측 가능하지도 않고 통제할 수도 없는 인간 상식을 뛰어넘는 비인간 캐릭터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오래 기억될 연극임에 분명하다. 이 정도로 촘촘한 SF서사를 빚어내기 위해 김수희 연출/구두리 작가가 얼마나 많은 연구를 했을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올해 초, 창작산실에서 <아들에게>라는 매우 작품성 높은 탄탄한 작품을 선보인 그가 상반기가 채 지나기도 전 또 하나의 견고한 작품을 무대에 올린 것에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내고 싶다.

 

사진 제공: 국립정동극장

 

기술 발전으로 인한 천지개벽을 눈앞에 둔 지금, <거의 인간>은 안일하고 로맨틱한 태도를 뛰어넘어 ‘이제 인간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심도 있는 생각거리를 던져 주었다. 이에 대한 첨언이자 사족으로, 한 가지 생각거리를 던지고 싶다. 인간이 기계보다 우월한 점으로 흔히 ‘마음’을 꼽는데, 정말 기계는 마음을 가질 수 없을까? 세계적인 의식 연구자인 데이비드 차머스는 그의 책 《의식적인 마음(The Conscious Mind)》(1996)에서 기계가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의식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두뇌가 의식을 가진다면 두뇌의 정보 처리를 그대로 구현한 기계도 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물리 체계인 기계에서 어떻게 의식이 생기는지 설명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지만, 두뇌도 물리 체계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는 LLM, 즉 대형 언어 모형(Large Language Model)이 시각 언어 모형, 행동 언어 모형과 통합한다면 충분히 의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한다. 언어 모형이 입력인 감각, 출력인 행동과 연결되어 정보를 처리하는 것은 실제 세계에서 두뇌가 정보를 처리하고 행동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미래는 머지않았다. 짐작하기도 어려워 두려운 미래를 목전에 둔 지금, 인간과 인간사에 대한 심도 있는 재논의가 연극을 통해 더욱 활발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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